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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파동’이 남긴 문제들

BoardLang.text_date 2009.10.09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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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파동’이 남긴 문제들


김한종(한국교원대학교)


1.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파동’은 지나간 과거의 일인가?

  역사인식이나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종종 있어 왔던 일이지만, ‘침략과 전쟁’의 세기 20세기를 넘어 ‘화해와 평화’의 세기가 되어야 할 21세기 들어서 오히려 더욱 자주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일본 우익 단체가 펴낸 역사교과서가 문제를 일으키더니, 중국의 동북공정을 놓고 온 사회가 들끓었다.

  역사교육과 교과서를 둘러싼 분쟁은 국내 문제로 이어졌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나 교과서포럼을 비롯한 뉴라이트, 일부 경제단체가 산발적으로 제기하던 역사교과서 문제가 정권이 바뀌면서 전면화되었다.


<사진 1> 보수단체인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회원들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교과서가 ‘좌편향’되었으니까 수정하겠다고 나서면서 2008년 하반기에는 역사교과서를 놓고 뜨거운 사회적 논란이 벌어졌다. 우익 단체들은 특히 금성출판사의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를 집중 표적으로 삼았다. 교과서 내용이 ‘좌편향’이라고 문제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친북’, ‘자학사관’, ‘반(反)대한민국’과 같은 말들을 동원하면서 비난하였다.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파동’은 외견상 2009년에 접어들면서 잠잠해졌다. 저자들의 반발과 역사학계의 비판에도 교과부는 출판사를 통해 수정지시안을 관철시켰다. 저자의 동의 없이 수정된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보급되어 사용되고 있다. 교육청들이 나서서 금성교과서를 다른 교과서로 바꾸라고 압력을 넣어서, 50%가 넘던 금성교과서 채택률을 20%정도 떨어뜨렸다.


<사진 2> 금성교과서 (출처 : 오마이뉴스 )


  언론들도 더 이상 역사교과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파동은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비판했던 세력이나 교과부의 뜻대로 일단 결말을 맺은 셈이다. 그렇다면 역사교과서 파동이 마무리되어 이제 과거의 일로 마무리된 것일까? 교과서 문제는 한국근ㆍ현대사에 한정된 것일까? 
2. 교육과정 개정과 역사교과서 내용 기준안

  애초 이 문제는 금성출판사의 『한국근ㆍ현대사』에 한정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뉴라이트 단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는 역사학계, 특히 근현대사학계가 전체적으로 좌편향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대 후반 이해 활발해진 한국근대사 연구가 ‘운동’의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대담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뉴라이트나 일부 경제단체들이 문제삼았던 교과서들에는 『한국근ㆍ현대사』 외에 『사회』, 『국사』, 『경제』 등 사회과 과목들이 두루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이들이 중점적으로 문제 삼았던 교과서 내용이 북한이나 미국 관련 서술, 남북관계, 경제문제 등이었으므로, 이런 내용을 다루는 교과목들은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될 소지가 있는 것이었다.

  이 때문인지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만큼 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그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는 일들이 도덕일반사회 과목에서 일어났다. 교과부는 2009년 1월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와 같은 이념논란이 재연되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2007년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중학교 도덕교과서의 집필기준을 수정하였다.

  “북한의 부정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각하기보다는 긍정적 측면도 포함해 균형 있게 기술한다”, “북한의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 “평화의 가치와 갈등 해결 태도 및 기술을 중심으로 평화교육을 통일교육에 접목시킨다”, “주요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각적이고 비판적 검토를 거쳐 윤리적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한다”와 같은 통일ㆍ평화교육의 기술기준을 삭제되었다.

  그 대신, “통일환경의 변화에 대해 진술하고 통일 대비 과제들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기술하도록 한다”, “북한사회에 대해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균형적으로 기술한다”와 같이 북한 사회의 현실이나 통일의 과제를 서술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평화교육과 통일교육이 사라진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힘으로 북한을 제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그리고 ‘북한 사회의 현실’이라는 말에서는 북한 사회의 문제점을 서술하라는 의미를 읽게 된다.

  이어 2월에는 고등학교 1학년 일반사회 교육과정을 바꾸어 경제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하였다. ‘문화’, ‘정의’, ‘세계화’, ‘인권’, ‘삶의 질’이라는 5개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이, ‘사회변동과 문화’ ‘인권, 사회정의와 법’ ‘정치과정과 참여 민주주의’ ‘경제성장과 삶의 질’ ‘국제거래와 세계화’로 변경되었다.

  2007년 만들어진 교육과정을 한 번 시행해보지도 않은 채 바꾼 것이다. 별개 단원이던 ‘정의’와 ‘인권’은 한 단원으로 묶여서 축소되었다. 여기에 ‘법’이 덧붙여진 것은 법치를 강조하는 현 정부의 통치방향과 무관한 것일까?

  ‘삶의 질’이라는 단원 제목에는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덧붙었으며, 내용에서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변동 과정을 이해하고, 지속적인 성장이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요인임을 인식한다.”는 말이 추가되어, 경제성장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세계화’라는 단원 제목에도 ‘국제거래’가 덧붙여졌다. 교육과정의 단원구성이나 제목, 내용의 변경은 경제단체들의 관점을 받아들인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교과내용의 이러한 개정은 지난 8월에 발표된 역사교과서 기준안에도 나타난다. 2007년 3월에 시안이 나와서 공청회를 거친 기준안이 왜 이제야 확정되었는지 그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2000년 7차교육과정의 「국사교과서 준거안」이나 2007년 기준안 시안과 이번 확정안을 비교해 보면,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파동’을 의식하거나 뉴라이트 단체 등이 제기했던 역사교과서 비판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진 3> 역사교과서 기준안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통치 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비판적으로 서술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삭제하거나 완화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이승만 또는 이승만 정부의 역할 서술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을 쓰라”는 내용이 추가되고, 2000년 준거안의 “근대화 정책의 문제점을 서술한다”, 2007년 기준안 시안의 “재벌체제의 공과를 이해한다”는 내용을 빼고 “산업화에 따른 문제점도 함께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로 대치하였다.

  “대한민국이 성취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상관관계가 있음도 서술한다”는 내용이 새로 들어갔다. 사회변화의 문제점,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이 대폭 삭제되고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수립 후 “대한민국은 이후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친일파 청산에 노력하였음을 서술한다”는 내용은 마치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 청산에 힘쓴 것 같은 인상을 주게 한다. 4ㆍ3사건, 여수ㆍ순천 10ㆍ19사건, 한일국교 정상화, 베트남 파병 등과 같이 논란이 되는 역사적 사건은 그 중요성의 여부와 관련 없이 빼버렸다.

  “광복 직후 정치 상황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와 관련된 미국과 소련에 대한 서술에서, 특정 국가, 특정 이념에 치우친 편향된 시각은 지양하고”나 “6ㆍ25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와 같은 내용은 마치 이전 역사교과서들이 좌편향되어 반미적 시각으로 서술되었거나 6ㆍ25전쟁을 남침이라고 명확히 서술하고 있지 않은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변경의 와중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계승한 정통성 있는 국가임을 설명한다”고 하여,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의 정통성 계보에 추가된 것은 어쩐 일일까? 물론 대한제국을 당당한 자주독립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유력하지만, 광무개혁논쟁에서 보듯이, 대한제국을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대한제국의 황제 주권을 거부한 대동단결선언에 영향을 받아서 공화정을 채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강력한 군주정을 목표로 했던 대한제국을 계승한 것인지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대한제국과 광무개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이글에서 검토할 문제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제까지 교과서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대한제국에 있다고 서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은 없다.

그런데 기준안에는 갑자기 대한민국이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렇다면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의 정통성으로 보지 않으면 좌편향이고 친북적 서술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의 과정에서 누군가 자신의 견해를 교과서에 정설인 것처럼 끼어 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이런 주장이 있으니까 이를 기준안에 넣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우려한 관계자가 포함시킨 것일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교육과정이나 기준안들이 정치적 고려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주장한 사람들 중에는 드러내놓고 정권이 바뀌었으니 교과서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는 하였다. 역사교과서 논란이 학문이나 교육적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임을 감추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가 문제가 많은 데도 그동안 제대로 수정되지 않은 것은 ‘좌파’ 정권이 옹호하였기 때문이므로, 정권이 바뀐 지금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권력의 힘으로 교과서 내용을 좌우하겠다는 것이다.
3. 역사교과서 소송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파동’은 역사교과서 소송으로 이어졌다. 금성출판사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저자들은 출판사가 저자의 동의 없이 교과부의 지시에 따라 교과서 내용을 수정한 것에 대해 저작권 침해 정지소송을, 교과부를 대상으로는 수정지시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은 교과서 수정 및 채택 변경 압력이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였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헌법소원은 각하되었지만, 저작권 침해정지 소송과 수정지시 취소청구 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이와는 별도로 교과부가 공개하고 있지 않은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수정권고안」의 작성 과정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소송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2일 열린 저작권 침해정지 소송 판결에서는 저자의 동의 없이 내용이 수정된 교과서를 발행, 판매, 배포해서는 안되며, 저자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해 일정 금액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저자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한국근ㆍ현대사』 수정을 추진했던 교과부로서는 ‘순조롭게’ 일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사실 자체의 다툼은 아니었다. 이미 확인된 사실을 놓고 어떻게 판단을 하는가 문제였다. 판결의 핵심은 교과서라도 저자의 저작권이 보호되어야 하므로, 저자의 동의없이 임의로 교과서 내용을 수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 소송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교과부가 1심 판결이 난 당일 곧바로 아직 확정 판결이 난 것이 아니고 출판사가 항소를 하겠다고 하니까,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수정된 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출판사에게 항소를 하라고 공개적으로 압력을 넣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지 않아도 교과부의 눈치를 보면서 교과서 내용을 임의수정한 출판사가 항소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12년까지로 되어 있는 현행 교과서 사용시한이 만료될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한 일이었다.

  이 판결을 놓고 그동안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한 신문은 사설에서 “법원 판결은 출판사가 저자들의 창작물에 개입해 내용을 수정한 행위, 즉 저작인격권에 대해 판단한 것”이므로, “일부 역사학자는 자신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법원이 인정한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선 학교가 잘못된 역사교과서를 일절 채택하지 않는 단호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 4> D 신문사의 사설 (출처 : 오마이뉴스 )

  이 신문의 말처럼 이번 판결은 교과서라고 해도 저자의 창작물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니까 저자의 의사에 반해서 내용을 임의로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과부가 나서서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학교에 압력을 넣어서 사용하는 교과서를 바꾸는 행위를 당연시 한다. 이들이 말하는 역사교과서를 채택하고 채택하지 말라는 ‘일선 학교’의 실체는 무엇인가? 역사교사와 학생들인가, 아니면 상부의 지시라면 무조건 따르는 학교 관리자들인가?


<사진 5> 역사교과서 선정은 역사교사 힘으로  (출처 : 오마이뉴스 )

  역사교과서 소송을 일부에서는 일본의 사례를 떠올리면서, ‘이에나가 소송’과 같은 성격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 단계에서 소송의 내용,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적 환경, 교과서 소송에 대한 관심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이 두 가지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한편에서는 과연 역사교과서 문제를 재판정으로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물론 역사인식이나 교과서 내용을 ‘법’이라는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상 권력을 앞세워 교과서 내용을 임의로 수정하고 채택을 변경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도 사실이다.


<사진 6> 역사교과서 수정중단 요구 (출처 : 오마이뉴스 )


4. 앞으로 우려되는 문제들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파동’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작년에 일어났던 건국절 소동, 현대사 특강, ‘기적의 역사’ DVD나 현재도 진행 중인 『친일 인명사전』 편찬을 둘러싼 논란들도 사람들이 역사에 얼마나 민감한 지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런 논란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우려되는 문제들도 있고 아쉬움도 남는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좌편향’이나 ‘친북’이라는 말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유용한 무기로 사용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말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이런 공격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이런 비판을 받는 편에서는 “우리는 친북이 아니다”, “그 내용은 좌편향되지 않았다”고 해명을 하는데 급급하기도 한다. 이제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이데올로기 공세가 커다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파동’ 이후 예상되는 현실적 문제 중 하나는 검정제 강화이다. 현재 2007년 개정교육과정에 터한 교과서 개발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으로 필수과목인 중학교와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올해 11월에 검정심사본을 제출하게 되어 있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교육부는 북한이나 남북관계 서술을 심사과정에서 ‘전문기관’에 검토를 의뢰하는 등 심사절차를 강화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뉴라이트 단체 등에서 제기한 이념 공세를 우려한 때문이었다.

  앞으로 검정 심사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교과서 검정 절차가 까다로워지고 심사가 강화될수록, 역사해석은 제약을 받고 교과서의 다양성은 줄어든다. 국정제에서 검정제로 바뀐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 못지않게 우려되는 것은 교과서 집필자나 출판사의 ‘자기검열’이다. 물론 이제까지 모든 교과서 집필에는 ‘자기검열’이 존재했다. 애써 집필한 교과서가 검정심사에 통과되지 않으면 빛조차 보지 못한 채 사장되어 버리는 상황에서, 검정심사에 통과하고 싶은 마음을 거의 모든 집필자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영업과 직결되는 출판사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자연히 교육과정이나 기준안과 같이 국가가 제시한 내용기준에 얽매이고, 심사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검정통과를 생각한다면, ‘핑계’를 잡힐 수 있는 내용의 서술을 가급적 피하려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역사교과서 기준안」이 나오자,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는 상관없이 출판사들이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기준안에 있는 대로 내용을 쓰자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들도 들린다.

  물론 학문이나 교육적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교과서 집필자들이 검정심사 기관의 눈치를 무조건 보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교과서 내용이 1980년대 이전처럼 단일한 역사관이나 역사인식을 보이거나,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듯한 내용을 담을 것으로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전보다 교과부의 눈치를 더 본다든지, 다른 단체들의 비판을 의식해야 하는 것 자체로 역사교과서 서술의 자율성은 줄어들게 될 가능성이 많다.


<사진 7> 역사 관련 단체 공동 토론회

  역사적 사실을 보는 다양한 관점을 기르고, 자신의 역사관이나 역사인식을 가지게 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중요한 목적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는 역사교육의 후퇴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많다. 과연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갈 것인가?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발행될 역사교과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역사인식을 보여줄 것인가?

  우리 사회는 역사교과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어떻게 하면 좋은 역사교육을 하고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교육부는 교과서 검정 업무를 총괄하는 감독기관의 역할을 할 뿐이지, 좋은 교과서를 만드는데 필요한 지원 사업은 하지 않는다.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갖가지 기사로 역사교과서를 재단해 온 언론들은좋은 교과서 개발을 유도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역사교과서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조용하지만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역사가 독립교과와 과목의 지위를 상실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국근ㆍ현대사 교과서 파동’이 역사교육과 교과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여준 점만은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감사를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