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만화를 연상시키는 그림, 장천1호분 벽화의 무용과 연주

BoardLang.text_date 2007.01.24 작성자 전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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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연상시키는 그림,
장천1호분 벽화의 무용과 연주


                                                                                                 전호태(고대사분과)


  만화영화를 가장 적절한 다른 말로 바꾸어 부르라고 한다면 동영상만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이야기의 전개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림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만화는 동영상의 모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근대적 의미의 만화가 등장하기 전에도 화가들은 만화적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는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두루마리 그림이다. 그림과 이야기를 짝지어 알리고자 하는 여러 가지 사례를 늘어놓는 데에 두루마리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사건의 전개과정, 전후 인과관계를 잘 드러내고자 두루마리에 그림과 이야기를 시간적 순서에 따라 펼쳐놓기도 했다.

  두루마리에 담긴 한 사건을 그림과 설명 몇 장면으로 정리하여 종이나 비단의 한 면에 나타내면 오늘날의 3~4컷 짜리 만화와 비슷한 효과를 자아낼 수 있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는 삼강행실도와 같은 교육 자료의 제작에 이러한 방법을 즐겨 적용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이런 만화적 방식이 압축적으로 적용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대표적인 것이 삼실총 및 장천1호분 벽화에 보이는 매사냥 장면과 장천1호분 벽화 중의 거문고 반주에 맞춘 무용 장면이다. 장천1호분 앞방 북벽에는 여러 가지 놀이장면과 대규모 사냥장면이 묘사되었는데, 무용과 연주 모습은 서편 상부에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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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장천1호분 벽화의 무용과 연주

  무용도는 위 아래 두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위쪽부터 살펴보자.

  세 사람의 등장인물 가운데 제일 왼쪽 인물은 얼굴이 붉은 것으로 보아 분장을 한 듯하다. 오른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왼손에 작은 꽃봉오리가지를 든 채 오른편을 향해 선 자세이다.

  머리에 붉은 술이 달린 흰 책관을 썼고 좁은 허리 긴소매 저고리를 걸쳤으며 바지 단 가까운 곳에 검은색의 얇은 띠가 한 줄 둘린 통넓은 바지를 입었다. 배 앞에 손을 모아 잡고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의 가운데 여자는 얼굴에 흰분을 바르고 입술을 붉게 칠했으며 미간에 홍점을, 볼에 연지를 찍었다.

  양 귀밑머리를 앞으로 말았고 뒤로 내린 단발머리가 목 뒤에서 위로 구부러지면서 비둘기 꼬리깃처럼 좌우로 펼쳐진 모습이다. 겉에는 검은색 어깨덮개가 있는 연한황색의 좁은 허리 맞섶에 깃 있는 긴치마를 입었다. 맞잡은 두 손에 쥐어진 연봉오리 달린 꽃줄기가 가슴 앞쪽에서 구부러지면서 뻗어 나와 머리 양 곁으로 뻗어 올랐다.

  제일 오른쪽의 여인은 뒷머리가 위로 꼬부라졌으며 흰바탕 검은점무늬 좁은 허리 꽃깃의 긴치마를 입고 왼손으로는 거문고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이를 받친 채 걷고 있다. 거문고는 4현인 듯이 보이나 윗부분 끝의 축이 다섯인 것으로 보아 오현금임을 알 수 있다.

  아래쪽에도 세 사람이 등장한다. 얼굴이 붉은 제일 왼편의 인물은 춤을 추고 있는데, 머리에 흰책관을 썼고 허리를 맨 긴소매저고리를 걸쳤고 통넓은 바지를 입었다. 오른쪽 다리는 땅에 딛고 왼다리는 살짝 펴면서 일어서는데, 발바닥은 땅에 닿았다. 오른팔은 옆으로 뻗고 왼팔은 옆으로 뻗은 상태에서 안으로 굽혀 손목이 가슴 앞에 이르게 하고 몸은 약간 앞으로 굽힌 채, 윗몸을 서서히 일으키는 자세를 취하였다.

  춤추는 사람의 앞에는 그와 마주 보며 땅 위에 무릎 꿇고 앉아 거문고를 반주하는 여자가 한 사람 있다. 뒷머리 끝이 목 뒤에서 위로 휘었고, 양 귀밑머리 두 가닥이 앞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머리에는 이파리꼴 보요를 꽂았고 검은색 어깨덮개가 더해진 흰색맞섶의 긴치마를 입었다. 반주자의 뒤에는 녹색깃이 달린 치마의 아랫단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한 여자가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벽화가 남아 있지 않다.

  위아래 두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옷 입음새, 머리 형태, 얼굴생김 등을 꼼꼼히 비교해보면 춤추는 이와 반주자, 반주자의 시녀가 두 차례에 걸쳐 등장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누며 화면에 등장한 사람들이 연주를 하고 춤추는 장면이 잇달아 묘사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이시동도법(異時同圖法), 다른 시점의 장면이 한 화면에 나타내는 방식에 의한 그림이다. 오현금 반주에 맞춘 춤이 진행되기까지를 서사적으로 묘사한 그림의 사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만화적 표현방식이 고구려 화가들에게도 받아들여져 넓은 화면 속에 펼쳐진 다양한 제재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겠다.

  이시동도법이 적용된 무용과 연주 장면은 같은 북벽의 동편 하부에 표현된 매사냥장면과 함께 5세기 중엽 전후 고구려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넓어진 영토와 강화된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의 어우러짐이 이루어지던 전성기 고구려의 화단은 새롭고 이국적인 기법이나 화법의 수용, 실험, 적용에 인색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앙아시아 석굴사원 벽화제작에 즐겨 적용되던 이시동도법 수용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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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석굴사원 벽화

  한 사건이나 설화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개발되고 발전해나갔던 서역문화의 한 요소가 동아시아 차원의 활발한 문화교류의 흐름을 타고 5세기의 고구려에도 전해지고 받아들여져 장천1호분 벽화에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