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물고기사냥, 삼실총 벽화

BoardLang.text_date 2006.12.12 작성자 전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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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사냥, 삼실총 벽화


전호태(울산대 역사문화학과)


피노키오는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의 주인공 가운데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나무로 만든 인형이었는데 여러 가지로 말썽을 부리다가 상어에게 통째로 삼켜져 그 뱃속에서 자신을 만든 목수이자 아버지 제페토를 만난다. 아버지와 함께 상어 뱃속에서 탈출한 뒤 오래지 않아 말썽장이 인형 피노키오는 천사와의 약속을 지킨 대가로 착한 사람아이가 된다. 나무인형 피노키오에게 상어의 뱃속은 사람으로의 재탄생을 준비하는 장소이다. 물고기가 존재 전환의 매개체로 작용한 것이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물고기는 재생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신화적인 의미에서 물고기는 물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의 결정체였고, 수많은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 데에서 드러나듯이 무한수의 생명을 재생시킬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존재였다.


선사시대부터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의 입에 물고기를 넣거나 물고기 형태의 옥을 물려 죽은자의 재생을 기원했다. 그릇이나 각종 도구에 물고기 문양을 그려 넣어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고, 사용하는 이들에게 다산의 힘이 끼쳐지기를 기원했다.

고구려 삼실총 제3널방 천장고임 제1단 동북벽의 쌍현무 가운데 남쪽 현무 뒤편에는 백로가 부리로 물고기를 쪼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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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삼실총 벽화의 조어도


조함어도(鳥銜魚圖), 혹은 조탁어도(鳥啄魚圖)로 명명할 수 있는 표현이다. 줄여서 조어도(鳥魚圖)로 일컫기도 한다. 새가 물고기를 쪼거나, 쪼아 먹으려는 순간을 묘사한 그림은 중국의 선사ㆍ고대 유적, 유물에서 쉽게 찾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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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한화상석의 조어도

흔히 음양조화, 음양의 순환, 상생(相生)을 통한 자연 질서의 회복, 생명의 재생에 대한 희구를 담은 장면으로 해석된다. 고대 동아시아사회에서 음양조화는 다산과 풍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으뜸조건에 속했다. 풍요와 재생의 모체로 여겨지던 물고기도 음의 정수(精髓)로 인식되는 한 양의 기운과 만나 음양의 합일을 이룰 필요가 있었다. 조어도가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조어도는 고구려의 유적, 유물 가운데에는 삼실총 벽화에서 유일하게 발견된다.


널방 벽 가득 우주역사가 그려진 것으로도 잘 알려진 삼실총 벽화에서 조어도는 아주 자연스럽게 현무 곁에 묘사되었다. 언뜻 보면 현무 곁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제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삼실총의 제1널방이나 제2널방 쌍현무 곁에는 이 조어도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조어도가 현무 그림과 꼭 짝을 이룰 필요가 있는 제재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벽화 속의 새가 물고기를 쪼는 장면과 현무도는 서로 잘 어울린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하늘 별자리의 화신이기도 한 사신(四神) 가운데 현무는 우주적 질서의 재생의 상징이다. 현무의 뱀이 양(陽)의 기운, 거북이 음(陰)의 기운을 대표하는 존재로 여겨져 이들의 얽힘이 우주적 의미의 음양교합을 나타내고 이것이 우주질서의 회복과정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벽화의 쌍현무는 이러한 우주적 음양질서의 회복을 강조하는 점층법적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미 언급하였듯이 조어도의 새가 양의 기운을 나타내는 존재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새가 하늘신의 전령이나 사신(使臣)으로 이해되고, 때로 하늘의 기운이 모여서 이루어진 존재, 양기(陽氣)의 결정체로 인식되기도 한다는 점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새가 물고기를 쪼는 행위는 현무와는 또 다른 형태의 음양교합이다. 새와 물고기 접촉 역시 양기와 음기의 어울림이며 흐트러진 자연 질서의 회복을 이루기 위한 만남인 셈이다. 벽화 속 쌍현무와 조어도는 음양교합을 통한 우주질서의 회복을 거듭거듭 강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중국의 선사 및 고대미술에서 조어도는 새가 뱀을 쪼아 잡아먹으려는 모습을 묘사한 조사문(鳥蛇紋)과 동일한 의미,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경우, 새는 양이 되고, 뱀은 음이 되지만 음양교합의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조어도와 다르지 않다. 조어도의 물고기가 뱀으로 대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표현 속의 뱀은 양기를 나타내는 현무의 뱀과는 정반대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새가 뱀을 쪼는 모습이 묘사된 사례는 고구려 유적, 유물에서도 확인된다. 6세기로 편년되는 통구사신총 널방 천장고임에 새가 뱀을 쪼아 머리 쪽을 이미 삼킨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중국미술에 적용된 조어도, 조사도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삼실총 벽화의 조어도가 통구사신총 벽화의 조사도로 이어진 셈이 된다. 두 그림이 집안지역에서 이루어진 특정 제재에 대한 관념과 표현상의 계승, 혹은 공유를 확인시켜 주는 의미 있는 자료로 자리매김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