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천지만물에 대한 지식의 그릇 문자, 통구사신총 벽화의 글 쓰는 선인

BoardLang.text_date 2006.10.24 작성자 전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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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물에 대한 지식의 그릇 문자, 통구사신총 벽화의 글 쓰는 선인


전호태(울산대 역사문화학과)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점점 더 자주 발견되는 유물 가운데 하나가 뼈점의 증거물들이다. 이들 유적의 주인공들이 소, 돼지, 사슴의 넓적다리뼈나 어깨뼈에 간단한 기호를 새기거나 크고 작은 흠집을 낸 뒤, 불에 구워 나타난 균열을 보고 저들의 물음에 대해 ‘신이 내린 답’을 읽어낸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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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해남 군곡리 조개더미 출토 뼈점에 사용된 짐승뼈


갑골문이란 이런 뼈점의 전통에서 비롯되었고, 간단한 기호들은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자라는 문자체계로 정리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기호 안에 저들이 믿던 신의 이름, 만났던 종족의 풍속, 사물의 형태와 특징, 저들의 생각, 느낌, 저들 사이의 상호관계 등을 담았다. 간단한 기호에 불과했던 문자는 언제부터인가 저들이 살던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거대한 그릇처럼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이 그릇에 대해 알지 못하면 자신이 사는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또 그런 취급을 받았으며, 그런 평가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통구사신총의 널방 천장고임 벽화에는 신과 선인, 상서로운 짐승과 새, 기이한 얼굴의 괴수들이 그려졌다. 이 가운데 용이나 학, 기린 등을 탄 채 구름 사이를 날고 있는 신인들이나, 해와 달을 머리 위로 받쳐 든 해신, 달신 등은 오회분4호묘, 오회분5호묘와 같이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고분벽화에도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널방 천장고임 제2층 서쪽에 묘사된 두 사람의 仙人이다. 한 선인은 두 손바닥으로 곧추 세운 나무막대를 맞잡아 비벼 회전시키고 있고,


5e0ee300404771372fbb7bd5f6e443fb_1698397(그림2) 통구사신총 벽화의 글 쓰는 선인과 불 일으키는 선인


다른 한 선인은 얕은 상 위의 펼침 면 위에 부지런히 글을 쓰고 있다. 이 두 선인이 하늘세계의 존재임은 주변을 가득 채우다시피 한 구름무늬로도 충분히 확인된다. 천장고임의 같은 층 동쪽에 그려진 해신과 달신, 남쪽과 북쪽에 묘사된 남두육성, 북두칠성, 짐승머리의 새들 역시 이 선인들과 함께 하늘세계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들이다.


하늘세계에 묘사된 ‘나무막대를 비비는 선인’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나무를 서로 비벼 불을 일으켰다는 燧人氏에 관한 중국의 신화전설이다. ‘부싯돌을 쓰는 사람, 혹은 불을 일으키는 사람’ 수인씨에 얽힌 신화전설 가운데 남북조시대의 소설 『拾遺記』에 실린 수명국 이야기에 따르면 한 현자가 遂明國에 이르러 遂木이라는 거대한 나무 밑에서 큰 새가 수목의 가지를 쫄 때 빛이 나는 것을 보고 나무를 비벼 불을 얻는 방법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불씨 얻을 걱정을 하지 않게 된 백성들이 이 현자를 ‘수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고구려의 신화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벽화 속 나무막대를 비비는 선인을 ‘수인’을 묘사한 것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천장고임 서쪽에 그려진 두 선인 가운데 한 사람이 불의 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인이라면, 길게 네모진 판에 글을 쓰고 있는 선인은 과연 누구일까. 중국의 신화전설에 따르면 황제의 신하 창힐은 용의 얼굴에 눈이 넷이었는데, 하늘과 땅의 모습, 새와 짐승의 발자국 등을 참고로 하여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에서는 곡식이 쏟아져 내리고, 땅에서는 귀신들이 한밤중에 통곡하고 용이 모습을 감추었다고 한다. 이는 우주만물의 정체와 움직임이 ‘문자’라는 약속된 기호로 구분되어 인식되고 표현될 수 있게 되자 자연을 바라보던 인간의 의식과 태도가 더욱더 명료하게 객관적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신화적 표현이라고 하겠다.


벽화의 선인은 비록 용의 얼굴도 아니고, 눈이 네 개인 듯이 보이지도 않는다. 이미 네모진 판을 글로 가득 채워 놓았지만, 무슨 내용의 글을 썼는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다. 전하는 도판으로 볼 때 벽화를 그린 화가도 네모진 판 위에 글이 써졌음을 나타내려 했을 뿐 실제 글자를 썼던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이 정도 묘사로도 6세기 고구려 사람들은 누구나 이 글 쓰는 선인이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글자를 나타낸 검은 세로줄들만으로도 그 내용이 저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온갖 지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까닭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나무막대를 비벼 불을 일으키는 사람’이 중국에서는 ‘수인’으로, ‘상위의 네모진 판에 글 쓰는 사람’을 고구려 서쪽의 큰 나라에서는 ‘창힐’로 일컬어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고구려인 자신은 이들을 어떻게 불렀고, 이들을 어떻게 받들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