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유배당한 정승나무

BoardLang.text_date 2007.12.12 작성자 홍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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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당한 정승나무


홍순민(중세사 2분과)



소의문―서소문이 있던 자리, 곧 시청에서 아현동으로 나가다가 중앙일보사 조금 못미쳐 고가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좁은 길이 나 있다. 외진 그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정동제일감리교회 뒷편, 지금 체이스 맨하탄 은행이 들어선, 예전의 배재고등학교 터가 나온다. 거기서 조금 더 진행하면 이화여고 노천 극장과 유관순 기념관 있는 데로 들어가는 문이 가로 막으며 길은 거기서 끝난다. 그곳 체이스 맨하탄 은행 부지를 경계짓는 시멘트 블록 담장 안에 웬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둥치 안은 썩어 들어가 시멘트로 수술을 받고 가지는 지지대로 부축을 받고 있는 그 나무는 수령이 적어도 500살은 넘었음직하다. 한데 그 나무는 현재 주위 지면과 같은 높이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기이하게도 사람 키가 훨씬 넘게 축대로 빙 둘러 싸인 위에 높이 솟아 있다. 얼핏 보면 아카시아 나무같아 보이지만, 아카시아와는 달리 가시가 없고 크기도 훨씬 더 커서 한결 기품이 있는 그 나무는 괴목(槐木), 회화나무 또는 홰나무라고 하는 나무이다.

회화나무는 중국 고대의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서술한 <주례>(周禮)라는 책에 의하면 궁궐의 바깥 문을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조정―외조(外朝) 가운데 세 그루를 심게 되어 있는데 그 아래가 곧 최고 벼슬아치인 삼공(三公)이 앉는 자리이다. 이런 까닭에 회화나무는 삼공을 뜻하게 되었고, 괴신(槐宸) 그러면 궁전, 괴정(槐庭) 그러면 조정하는 식으로 조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로 받아들여졌다. 지금 창덕궁에 가면 돈화문을 들어가자 마자 왼편으로 그 회화나무가 세 그루 있고, 덕수궁이나 다른 궁궐에서도 가끔 눈에 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회화나무는 나무 가운데 가장 출세한 나무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회화나무가 왜 이런 후미진 곳에 이렇게 어색한 모습으로 서 있을까. 나무가 제 스스로 지면보다 한 길이 넘게 솟았을 리는 없다. 나무가 솟은 게 아니라면 주위 땅이 내려 앉은 것일 터이다. 실은 내려 앉은 게 아니고 땅을 깍아내린 것이다. 말하자면 이곳은 본디 경운궁의 궁역이었고, 그 옆으로 소의문―서소문에서 돈의문―서대문으로 이어지는 도성이 지나갔던 것인데, 그 자리에 배재와 이화학당이 들어선 이후 언젠가 주변 지형을 깎아 터를 넓히는 바람에 이렇게 기이한 모습으로 서 있게 된 것이다. 그 회화나무는 지금 비록 재상은커녕 동네 아이들도 찾지 않는 후미진 곳으로 유배되어, 그나마 늙고 병든 몸으로 공중에 붕 떠 있는 고달픈 형세가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이곳이 도성이 지나간 자리요, 옛날에는 범상한 곳이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