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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이 가야할 길

BoardLang.text_date 2007.01.11 작성자 오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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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평】

역사교육이 가야할 길


오  종  록(중세2분과)


1. 역사과목 개편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초등학교로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 개편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부분 개편이라고는 하나, 사실상의 8차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도 들린다. 처음에는 부분적인 보완을 목적으로 교육과정 개편 작업에 착수하였다가 교육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과 아울러 비판적 여론이 심해진 사정 때문에 생각보다 큰 규모로 개편하게 된 것으로 짐작되나, 어떻게 결말을 볼 지는 아직 가변적인 듯하다. 아무튼 금년 말에는 새 교육과정의 골격이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현재 사회과 교과에 포함되어 있는 역사과목은 다른 교과목에 비해 더 큰 변화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역사과목이 사회과 교과 안에서 독립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아서 역사과목 독립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말이 들려오기도 한다.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의 심화선택과목이었던 한국근현대사가 고등학교 1학년의 필수과목으로 이동하여 ‘역사’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도 큰 변화이다. 이 ‘역사’ 과목은 한국근현대사를 중심내용으로 하되, 그 이해를 위해 해당 시기 세계사의 내용을 포함하도록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고등학교 1학년 국사과목이 대신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의 선택과목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국사의 반복 학습을 피해야한다는 의견에 따라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이 과목은 현재 임시로 ‘한국문화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이미 선택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세계사는 ‘세계문명사’를 임시 제목으로 달았다가 ‘세계 역사의 이해’로 이름이 정해졌다.

위와 같은 변화와 관련하여 초등학교 및 중학교 역사교육에서도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의 역사에서는 저학년의 교육 내용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생활사가 제외되고 국사를 연대기 형식의 통사 체제로 구성하기로 되었고, 여기에 세계사가 일부 포함되도록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국사는 고등학교 역사 과목이 근현대사를 다루도록 한 것에 짝하여 전근대사를 중심으로 하면서 정치사 중심이던 데서 각 분야사를 모두 다루기로 정해졌고, 세계사는 주제별로 단원을 구성하여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모두 다루기로 되었다.

이 밖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다음의 것들이 있다. 하나는 중고등학교의 역사 필수과목 즉 중학교의 ‘국사’와 고등학교의 ‘역사’과목의 교과서도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검정교과서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육과정의 내용을 현재 소주제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에서 바뀌어 ‘대강화’체제라 하여 주제 및 그 설정 배경과 목표만을 제시하고 소주제는 제시하지 않도록 하고, 성취기준도 최소화하기로 한 점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2. 역사교육의 문제점은 어느 정도나 해결될 수 있을까

  그 동안 우리의 역사교육은 허다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어 온 것이 역사과목이 사회교과에 통합된 데서 발생하는 문제들이었다. 이로부터 역사학이나 역사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교사가 역사과목을 담당할 수 있도록 되었다. 이로부터 역사과목이 그렇지 않아도 내용이 많아 대표적 암기과목으로 인식되고 있는 터에 암기 위주로 교육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이어서 학생들이 역사과목에 대한 흥미를 잃고 외면하는 현상이 심해졌었다. 아직 교육과정 개편 작업이 끝난 것이 아니어서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과목 독립이 이루어지면 이 문제점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1) 역사연구단체협의회 소속회원들이 23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역사 '교과'독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5.5.23(서울=연합뉴스)

역사과목의 독립은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상당한 영향을 끼쳐 얻어낸 소득이었다.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부터 가해진 충격은 국사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조성하게 되었고, 교육과정 개편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사회교과에 통합되어 있는 역사과목을 독립시키는 쪽으로 수렴될 수 있었다. 당초 과목 독립을 넘어서서 역사과목을 단독교과로 만들 것을 희망하였으나, 일단 사회교과 안의 독립과목으로 운영하기로 정리된 상태에서 후일을 기약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로써 역사과목이 암기과목으로 남을 위험성이 꽤 줄었을 뿐이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 교사의 문제는 상당한 시간과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며, 특히 교과서의 내용이 어떻게 갖추어지는가가 위험성을 줄이는 데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역사과목 교육과정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의 성과는 역사과목이 암기과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역사가 어떠한 속성의 과목인가를 인식하는 첫 계기이자 결정적 계기라 할 수 있는 초등학교에서의 역사는 내용이 전보다도 크게 늘어나고, 외워야 할 고유명사도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국사에서도 역사가 무엇인지를 이론적으로 학습하는 내용이 첫 부분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의 고등학교 국사의 첫머리에 있는 것이 옮겨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학에서 역사를 교육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고등학교에서 간단하게나마 역사가 무엇인지를 교육한 효과가 고마울 정도였다. 과거의 학생들에 비해 요즈음의 학생들은 대체로 우리가 실제 접할 수 있는 역사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가의 연구 성과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서, 이를 깨우쳐주기 위한 노력을 줄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의 현장에서의 경험은 교과서 첫 머리에 있는 이 지극히 이론적인 내용 때문에 상당수의 학생들이 역사를 매우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결국 필자의 판단은 서울의 주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내려진 것이었다. 현재 연구가 진행 중인 고등학교의 선택과목 ‘한국문화사’와 ‘세계 역사의 이해’도 암기과목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어느 정도나 줄일 수 있을지 미지수로 남아 있다.

역사과목이 암기과목으로 전락한 책임을 사회교과에 통합되었던 것에 다 떠넘길 수 없다는 것은 역사교육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 이전에도 이미 많은 학생들에게 역사는 대표적 암기과목이었다.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책임이 시험제도에 있다는 것도 웬만큼 알려져 있다. 그나마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제도가 현재의 것으로 바뀐 덕에 역사를 암기하기보다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으나, 학습 내용이 워낙 많은 까닭에 또는 우수한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선택하는 까닭에 세계사와 국사가 기피 대상 과목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교사가 되고자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중고등학교 때 어떤 방식의 역사과목 교육을 받았으며 어떤 경우, 어떤 방법으로 가르친 교사가 좋았었는지를 물어본 결과, 그나마 중학교에서는 다양한 역사교수법이 실천되고 있는 반면, 고등학교에서는 획일적으로 강의식 교육만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누구나 짐작하듯이 간단하였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학을 위한 교육에 구속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 입학 관련 시험에서 역사과목을 제외하는 것도 제도적으로나 사회 정서로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 난관은 이해력 검증을 중심으로 한 시험 출제, 수준 높은 교과서 제작, 교사들의 실천적 노력 등이 종합되어야 풀 수 있을 것인데, 실상은 연구자들의 노력이 가장 절실하고 시급하다.

얼마 전 북한에서 대포동호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미사일 실험발사를 하여 비난 여론이 들끓은 적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 전문가가 미국과 일본이 실제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중지시킬 수 있었음에도 북한으로 하여금 발사를 강행하도록 몰아갔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미국과 일본의 북한 군사정보 수집 능력은 이미 알려져 있는 바이다. 북한의 미사일은 미국과 일본의 군사 능력에 비추어 보면 심각한 위협이 되기는 어렵지만, 각각의 자국민이 지닌 불안감과 적대감을 높이기에는 충분하다. 따라서 북한이 미사일 실험발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군수산업과의 유대 강화를 위해 또는 평화헌법의 개정을 위해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보고 정보를 퍼뜨려 북한의 자존심을 자극하였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은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이 사건을 알리고 설명하는 전문가들 가운데에도 여러 정황을 인과관계를 갖추어 비판적으로 접근하여 차분하게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려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있다. 미사일 시험 발사 사건 외에 국내외의 여러 사건에 접근하는 모습 전반이 이와 거의 마찬가지의 사정에 있다. 이는 간단히 말해서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이다.

역사라는 학문은 각각의 사건이 ‘왜 그러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본령이며, 역사교육의 요체는 그 능력을 키우는 데에 있다. 여러 역사 연구자가 이를 몸에 익히고 있다고 해도, 학생들이 그리고 대중들이 그것을 익힐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얻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일선 교사들이 다양한 교수방법의 개발을 통해 이에 다가가고 있는 편이다. 나아가 역사교육이 이 요체를 갖출 수 있도록 하려면 내용 요소를 대폭 줄이고 구체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 수학능력 평가 시험에서 언어 영역의 시험을 출제한 바 있는 학자와 교사 가운데에는 역사를 소재로 한 글이 흔히 지문으로 이용되는 외국의 사례를 들며 우리도 그와 같이 시도하고 싶으나, 수준을 갖춘 쓸 만한 책이 의외로 적다는 애로를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이 전문 연구자들이 역사대중화에 적극 나서야 하는 한 이유이다.

역사과목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단순하게 반복되는 성향이 강하다는 문제는 앞으로 크게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의 국사와 중학교의 국사는 내용적으로 반복될 소지가 전보다 커지게 되었다. 검정교과서 발행제도를 채택하고 교육과정의 대강화가 관철되면, 다양한 교수방법 개발을 위한 교사들의 노력도 크게 절감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어쩌면 교과서 발행제도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대로 관철될 수 있도록 학계에서도 예의주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3. 역사교육을 둘러싼 싸움

  작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역사과 교육과정 개편과정은 과거의 사례에 비해 일보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구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관련 학회에 대표를 불러 의견 교환에 참여하도록 하였고, 올해에는 연구 과정에서부터 관련 학회에게 연구에 참여할 인력의 파견을 요청한 점이 그 예이다. 그렇지만 넘어설 수 없는 틀이 이미 짜여져 있는 부분도 있고, 역사교육 전공자들 사이에서만 일부 정보가 유통되는 문제점도 나타난 바 있다. 뒤의 문제점은 역사학 연구자들이 역사교육의 실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점과 융합되어 활동이 위축될 수도 있는 어려움마저 낳는다. 그 반면에 역사교육 전공자 가운데에는 연구 성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바람직한 교육과정 구상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더 나아가서 많은 경우에서 양쪽의 연구자 모두가 교육 현장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의견을 펼치는 경우들도 발생한다. 그나마 역사교육 전공자 가운데에는 교직 경험자가 많아 사정이 나은 편이다. 논의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교사들의 발언이 보여준 상당한 추진력은 이 지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단합된 의견을 제시한 것이 강점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사정은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사이에서 원활한 소통이 절실함을 나타낸다.

한국의 대학에서 역사학은 문과대 또는 인문대에 소속된 학과에서 연구, 교육되고 있다. 역사학이 사회과학적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한국의 역사학은 인문학으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역사과목이 사회교과에 통합될 수 있었던 것은 희극에 가깝다. 다만 한국의 교육학이 사회과학과 상당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으므로 역사교육학도 그렇지 않을까 의심할 수 있으나, 이는 수학교육학이나 음악교육학을 사회과학으로 취급할 수 없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교육내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사항이다. 요컨대 역사과목이 사회교과에 통합되었던 것은 학문 외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며, 우리 정치문화의 토양에서 가능했던 일일 뿐이다. 노무현정권을 거치면서 우리의 정치문화가 꽤 바뀌기는 했으나 문화가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여 과목 독립이나마 확실히 관철할 수 있도록 학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이번 교육과정 개편 과정에도 각 사회과목의 교육 종사자와 연구 종사자들이 치열한 로비를 하였다는 소문도 돌고 공청회장에서 세 동원을 하는 광경도 보였는데, 역사과목 관련자들은 선비와 같은 자세를 견지하면서 이러한 활동을 하지 못하여 손해를 보아 왔다는 생각을 피력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아왔다. 그러나 사람으로서의 올바른 품성을 함양하기 위한 연구와 교육을 하는 당사자들이 법도를 어기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된 역사왜곡으로 말미암아 동아시아에서 마치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가의 문제가 중심이라면, 중국의 동북공정은 역사 소유권 분쟁으로 치달아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사진 2) 출처 : 뉴스메이커

역사 속의 중국인들이 남의 역사로 보았던 것을 현재의 중국인들이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함으로써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흐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반인들에게는 그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을 악용하여, 일본의 우익세력이 국가주의적 국민 만들기를 목적으로 한 역사 교과서와 교육을 옳지 않다고 격렬하게 비난하던 이들이 우리의 역사교육이 국가주의적 국민 만들기로부터 벗어났다고 여러 수단을 동원하던 터였다. 전반적으로 보수적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극우적 시각으로 재단하여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좌편향적 내용이라고 여론 몰이를 한 것이 그 사례이다. 이러한 경우는 언론을 이용한 까닭에 세상에 알려지기라도 하지만, 교육부에 대한 끈질긴 ‘시정’ 요구로 인해 한국 근현대사 검정교과서 집필자들이 겪는 고충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의 역사과목 교육과정 개정의 진행상황으로 볼 때, 선택과목인 한국 근현대사로부터 필수과목으로 바뀌는 고등학교 1학년의 ‘역사’과목이 전에 이어 치열한 싸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미래의 싸움은 현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놓고 진행 중인 대립이 확대되어 벌어지는 연장전이 될 것이다. 새로운 우익을 표방한 이들이 교과서 집필 계획을 표방한 바 있으므로, 싸움은 그 교육과정의 내용을 놓고 새롭게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을 지나서 또는 이와 함께 진행될 교과서 제작은 단순한 경쟁일 수 있겠으나, 검정을 통과하고 교육현장에서 채택되도록 하는 일은 다른 차원의 경쟁이 될 것이다.

새로운 우익이 주장하는 역사관이나 역사인식은 전통적인 근대 통치엘리트의 그것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주장도 담고 있다. 근대 통치엘리트들에게 역사는 자유민의 자격을 확보한 일반인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정치적 지혜를 얻는 보고였고, 따라서 역사는 곧 정치사이고 정치사가 곧 역사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우익이 근대 통치엘리트들과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인식이나 탈민족주의적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나, 깊이 관련된 학자들의 주장은 그 본질이 정치사에서 전혀 벗어나 있지 않다. 이들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인식에 입각한 주장 가운데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것이 모든 역사가 허구라는 것, 독재에는 일반 대중의 책임도 크다는 것 등이다. 모든 역사가 허구라는 주장은 수학의 토톨로지(totology) 방식으로 판단하면 분명히 참(true)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진실에 가능한 한 가깝게 접근하려는 노력을 방기하는 것은 역사학자가 취할 자세가 아니다. 모든 역사가 허구라는 주장은 문헌고증에 치중한 역사학에 더 절실하게 와 닿는 지적이다. 증언에만 의지하여 범인으로 지목되고 증언을 근거로 재판 결과 실형을 살던 이가 진범이 잡혀 풀려나는 일과 유사한 일을 역사 연구의 결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문헌 기록을 맹종하여 제대로 사료비판을 거치지 않고 결론은 낸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며, 전문적으로 역사학을 배우지 않은 채 인접 분야의 학문 연구자가 역사를 연구한 경우에서 더욱 흔하게 발견된다. 역사가 모두 허구이므로 모든 주장이 허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며, 이러한 자세는 교육에서는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진범을 찾기 위해 온갖 과학적 수단을 동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범죄 수사와 같이, 역사학에서도 기존의 사료비판과 해석의 방법론을 넘어서서 보다 과학적인 증거를 확보, 연구하는 방법론을 개발하여 진실을 추구하는 자세를 더욱 가다듬는 것이 옳다. 일반 대중에게 과거의 독재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비역사적 인식의 결과이므로 췌언을 요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본령은 그것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이들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한데, 근대의 냉정하다 못해 냉혹함을 극복하자는 취지를 본령으로 보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포스트모더니즘은 냉혹한 근대를 연장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또한 탈민족주의 논의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나, 대표적 논자의 주장은 미국식 애국주의를 빌어 그 본질이 새로운 차원의 국민 만들기임을 가리는 것에 다를 바 없다.

새로운 우익의 다른 주장들, 예컨대 ‘평준화’ 교육에 대한 비난, 분배 보다 성장을 우선하는 경제정책 옹호,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및 박정희 개발독재에 대한 긍정적 인식,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한 비판 등을 종합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 것일까? 작금의 사교육 열풍은 공교육의 부실함에도 원인이 있겠으나, 세습신분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상급 신분을 확보한 이들이 자손에게 그 신분적 지위를 세습시키려는 노력이 근본적 동력이다. ‘평준화’ 교육 비난과 분배 정책에 대한 기피는 하급 신분에 위치한 자들의 신분 상승 방지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고, 부유한 지자체의 넓은 아파트 밀집 지역일수록 조세 저항이 심한 것은 아파트를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라기보다 재산으로 보는 인식에 더해 정보 접근 기회 등을 이용하여 축적한 재산 증식이 저해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여기에 과거사 청산에 대한 비판 등을 더하면 어느 정도 그림의 윤곽이 나타날 것이다.


사진 3) 뉴라이트 측 '교과서 포럼' 편 <한국현대사의 허구와 진실>(2005, 두레시대)

새 교육과정에 의해 제작될 검정 교과서는 더욱 진전된 체제와 내용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강화의 원칙에 의해 주어진 재량권을 어느 정도나 잘 활용하는가는 그 관건이 된다. 또한 이 대강화의 원칙에 따라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보다 어떤 내용을 담지 않도록 할 것인가가 싸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싸움은 ‘역사’ 교과서가 중심이 되겠으나, 이에 국한되기는 어렵다. 전근대사 가운데 특히 고대사도 전선을 형성할 공산이 크다. 그 예로 단군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4.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필자가 전공한 한국사를 놓고 볼 때, 국사교육의 문제 가운에 하나는 현재의 사회 나아가 미래의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한국사 정보와 지식의 개발이 침체되어 있는 점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현재 분야사 체제로 구성되어 있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문화사는 정치사와 함께 가장 큰 지면을 차지한다. 그런데 정치사가 지배층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문화사 또한 지배층의 문화 일색이고, 지배이념에 해당하는 것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정치사는 물론이고 사회사와 사상사 역시 제도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를 벗어난 내용을 담은 교과서를 쓰고자 해도, 실제 연구가 별로 없기 때문에 대단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데에 있다. 그나마 정치사의 경우는 제도의 운영이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치사상에 대한 일부 설명이 있으나, 사회사나 경제사는 메마른 제도 중심 서술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사의 경우 생활사에 대한 서술이 다수 나온 것을 제외하면, 기왕의 서술을 넘어설 수 있는 연구는 조선후기를 중심으로 일부 진척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연구 구상에서 교육을 적극 고려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이것이 역사교육계의 학자 및 교사들과 소통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의 하나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나타난 변화는 여러 가지이다. 그 가운데 정보의 홍수도 들어 있다. 그런 가운데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조차 인터넷에서 정보를 뽑아 어느 것이 전혀 엉뚱한 것인지, 낡은 것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얽어서 과제물을 작성하여 제출하곤 한다.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교과서가 더 이상 지식 정보의 공급원 기능에서 멈춰 있는 것은 곤란하다. 역사 교육은 이제 학생들이 역사상을 나름대로 구성할 수 있는 교육이라야 한다. 따라서 교과서도 학생들이 역사학 연구방법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짜여져야 한다. 그런데 역사학 연구방법론은 오랜 옛날의 것에서 크게 진전되어 있지 않고, 한국사 연구방법론은 따로 정리된 바가 없다. 연구방법론 개발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역사학은 사회과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속성이 없지 않다. 여기에 더해 교육은 연구에 비해 더 보수적인 속성을 띠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역사 연구 및 서술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평가를 일부 학회의 활동에만 의지하는 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또한 그 분석과 평가에는 역사교육의 측면을 고려하기 시작해야 한다.

10여 년 전부터 논위되기 시작한 인문학의 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 계기와 타개 방안을 보면, 여전히 무엇이 인문학의 위기인지 알기 어렵다. 인문학의 위기에 덩달아 논위된 적이 있는 역사학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은 사람이 사람답게 정신적 품격을 갖추도록 하는 학문이며, 무엇이 이로운가가 아니라 무엇이 올바른가를 추구한다. 인문학이 위기라면, 정신적 품격을 갖추는 연구가 아닌 다른 무엇을 좇고 있음을 지적해야 할 것이며, 사회나 인류의 부분 집단을 위한 이익에 봉사하며 사회 전체와 인류 전체 나아가 자연까지 포함하여 그 이익을 훼손하는 일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해야 할 것이며, 이라크 파병처럼 강압에 밀려 옳지는 않으나 이로울 것이라는 이유로 진행되는 일 등에 대해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지 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의의도 이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역사 교육의 상위 목표로 설정되어 있는 ‘민족 정체성’ 구축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맞게 표현을 조절하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

역사를 왜 가르쳐야 하나에 대한 아름다운 답변이 적지 않다. 현재를 이해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삶의 지혜를 익혀 당면한 여러 문제를 올바로 파악하여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역사적 사고력과 비판력을 기르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갖추는 등등이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역사교육을 겪은 학생들이 실제 그러한 효과를 얻었다고 생각할까? 어쩌면 이것은 역사교육이 지향하기는 하되 현실과는 꽤 거리가 있는 목표가 아닐지 회의마저 든다. 그렇다고 해도 한 발 한 발 그 목표에 다가서는 역사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몇 년 뒤부터 역사교육에 사용하게 될 여러 교과서의 제작 과정에 관심을 갖고 능력 있는 이들은 적극 참여하고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역사 대중화와 대중교육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