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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합의의 국제적 의미

BoardLang.text_date 2007.04.10 작성자 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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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평】

2.13 합의의 국제적 의미
- 미국의 대외전략을 중심으로 -


박태균(현대사분과)


1. 2.13 합의와 근거 없는 보수 신문들의 깍아내리기

2월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6자회담 전체회의에서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북한이 5메가와트 영변 원자로 및 방사화학 실험실 등 5개 핵심시설에 대한 ‘불능화 조치’를 이행하면, 일본을 제외한 다른 4개국이 북한에 중유 100만 톤 상당의 에너지와 함께 경제, 인도적 지원을 균등 분담하기로 한다는 것이 합의문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또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실무그룹(Working Group)의 설치에도 합의했다. 실무그룹은 비핵화(핵 폐기), 에너지, 경제지원, 동북아 안보협력, 북미관계 정상화, 북일관계 정상화 5개 분야 이행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실무를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일본이 납치문제로 대북지원 분담에서 빠져 있지만, 일본의 참가를 기대한다는 별도의 ‘합의의사록’도 채택하였다.



 

  2.13 합의는 북미 간, 남북 간의 관계를 풀고,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2005년 9.19 합의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합의가 이행되지 못함으로써 2006년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강행, 그리고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과 유엔의 북한제재 결의안 등이 맞섬으로써 동북아시아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의 실행을 위하여 북한의 행동에 따라 다른 나라의 지원이 결정되는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갖추고 있다.

  또한 합의문은 북한 핵시설을 ‘불능화’하겠다는 조치를 명시함으로써 단순하게 ‘동결’에 그쳤던 북미 간의 1994년 합의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실무위원회의 구성을 통해서 대표들의 만남을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요했던 6자회담을 내용과 실무 면에서 상설화할 수 있게 되었다. 상설화된 실무그룹의 역할이 규정되어 있지만, 현안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북한 핵 문제뿐만 아니라 북미, 북일 간의 수교, 동북아에서의 평화체제로의 이행 문제 등을 자연스럽게 논의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9.19 공동성명 이후의 상황과는 달리 2.13 합의 이후 한반도 주변의 긴박한 정세가 해빙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신문들은 비판적인 기사와 사설로 일관했다.

  그 동안 한국의 보수신문들은 남한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미국의 신문들을 인용하면서, 참여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으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그리고 유엔의 대북제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 등을 계기로 하여 ‘햇볕정책의 파탄’을 선고했었다. 그러나 2.13 합의와 관련해서는 후술하듯이 미국 언론사들의 일반적인 평가마저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는 한마디로 2.13 합의에 대해 앞으로 한국 정부가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정책 실패로 몰아갔다. 『조선일보』는 6자회담의 합의를 앞둔 13일 ‘합의 땐 당장 한국 부담 최대 7,200억’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북한에 중유 200만 톤을 지원할 경우, 우리 정부가 전체의 70%를 분담할 가능성이 크다고 근거 없는 내용을 보도했다. 실제 합의를 통해 나온 지원 양 100만 톤이었으며, 일본을 제외한 4개국이 균등 분담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외교통상부가 밝히고 있는 바에 근거해서 볼 때 한국 정부의 부담은 초기 긴급 에너지 지원 분 5만 톤(140억)과 북한의 ‘불능화’ 조치에 따른 95만 톤의 1/4인 670억원으로 총 81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물론 810억원 역시 적은 액수가 아니며 여기에 경제적, 인도적 지원을 합치면 액수가 늘어나겠지만, 7,200억원은 전혀 근거가 없다. 여기에 북한에 지원해 온 쌀과 비료까지 6자회담 합의에 따른 분담금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쌀과 비료의 지원은 6자회담과 관계없이 차관의 형식으로 북한에 지원되고 있기 때문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는 또한 2.13 합의가 발표된 직후인 2월 14일의 사설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제하에서 북한의 의도는 ‘궁극적으로 핵 폐기보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으로 알려진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계좌 동결을 푸는데 더 초점을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을 제외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모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잔꾀에 속아 넘어간 것이 곧 2.13 합의라는 주장이다.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의 잔꾀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보수세력들이 소위 ‘2중대’로 규정한 한국 정부가 큰 역할을 했다는 보도가 왜 나오지 않는지 이상하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주장 역시 『조선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합의 소식을 다루면서 ‘한국 돈 얼마나 드나, 매년 1조 이상씩… 못 들어도 10조원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으며, 대북 송전 문제와 경수로 문제를 함께 다루면서 한국정부의 부담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역시 ‘기존 핵무기 처리 논의도 안했다’를 2.13 합의에 대한 메인 보도로 뽑았으며, 분담금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했다. 아울러 2.13 합의가 햇볕정책의 성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충고 역시 잊지 않았다.

  실제 남북, 북미 간의 긴장관계로 인해서 드는 정신적, 물질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이번 합의로 한국 정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2.13 합의의 내용을 폄하할 수 있을 만큼 큰 비용은 아니다. 2006년 대한민국의 국방비가 22조원을 넘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2.13 합의로 인한 북한에 대한 지원비가 최대 840억원이 될 경우 국방비의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만약 2.13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어 북한 핵 관련 시설들이 ‘불능화’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될 경우 상정할 수 있는 ‘평화비용’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할 것이다.

  보수 신문들이 주장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비용에 대한 평가는 마치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어 ‘통일비용’만을 강조하면서 통일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확산시키는 보수세력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실제로 ‘통일비용’에 못지않게 큰 규모이며, 지난 반세기 동안 지불해 온 ‘분단 비용’은 무시한 채 우리와는 다른 상황이었던 ‘독일’만을 모델로 하여 통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신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오히려 독일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통일비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분단비용’을 없앨 수 있는 윈윈 전략에 대한 고려를 보수 신문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다.

  보수 신문들의 견해에 비하여 진보 또는 중도 성향의 신문들이 2.13 합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었다. 물론 2.13 합의가 초석을 놓았을 뿐,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면밀하게 실천해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북한과 미국, 그리고 남북 간에 형성되어 있었던 긴박한 상황을 해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또는 중도 성향의 신문들이 앞으로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긴 했지만, 2.13 합의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 도출된 것이며, 앞으로 국제질서나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질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내놓지 못하였다. 진보 또는 중도 성향의 신문들은 단지 2.13 합의 이후에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남북 간의 접촉과 그 결과를 보도하는데 급급하고 있으며, 2.13 합의 이후 ‘국정브리핑’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 역시 동일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2.13 합의에 대한 미국 신문들의 보도

  그렇다면 미국의 신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보도했을까?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는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폐기하겠다고 동의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백악관의 입장을 인용하면서도 2.13 합의에 대해서 비판적인 부시 행정부에서 퇴진한 네오콘 계열 인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려를 표명했다.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는 부시 행정부의 갑작스러운 방향 선회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면서도 라이스 국무장관이 ‘이제 막 경기가 시작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향후 몇 년 동안 플라토늄 생산을 영원히 중단하게 만든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고 말한 점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물론 다음 날 네오콘이 2.13 합의를 비판한 내용도 비중있게 다루었다.

  『보스톤 글로브』(Boston Globe)는 비록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부시 대통령이 교조주의적 환상에 빠진 행정부내 매파(hawks)들에게 핵확산 방지라는 중요한 업무를 맡겨놓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고 논평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키신저 방식의 레알 폴리틱스(Real Politics)로 돌아가는 현실주의적 방식으로의 전환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아울러 공화당의 보수적인 대통령이 동의한 이 합의를 강경파들(hard-liners)이 뒤짚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았다.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은 1994년의 제네바 합의에 비하여 2.13 합의가 중요한 두 가지 차이점을 갖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나는 북한에 경수로와 같은 발전시설을 세워준다는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러시아, 남한이 함께 합의에 참여했으며, 경제적인 부담을 공유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북한에 경제원조를 주고 있는 중국과 남한이 참여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후자의 지적은 2.13 합의의 성과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시카고 트리뷴』의 사설은 김정일 정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기나긴 여정이 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종착점으로 가는 짧은 길이 될 수도 있다는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2.13 합의가 이전에 비해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과 같은 미국 신문들의 보도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2.13 합의가 중대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시카고 트리뷴』의 사설과 같이 전체 액수 면에서 1994년의 제네바 합의보다 싼 가격에 합의를 이루었으며,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의 생존에 기여하고 있는 주변 국가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2.13 합의는 앞으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첫 번째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다.

  둘째로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 때문에 2.13 합의가 앞으로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제네바 합의가 깨지게 된 데에는 클린턴 행정부가 깅그리치 공화당 하원의장이 지배하는 의회에서 제 시간 내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보스톤 글로브』)을 제외하고는 모두 김정일 정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2.13 조치를 비판하는 미국 내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주목하고있다.

  이러한 지적들은 미국 신문들의 논평을 자주 인용하는 한국 내의 보수 성향 언론들과는 초점을 달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경제적 부담이 늘어났다고 강조하기는커녕 오히려 제네바 합의와는 달리 6자회담 참가국들이 공평하게 경제적 부담을 공유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강조되었으며, 2.13 합의의 성과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그다지 인색하지 않았다.

  단지 미국의 신문들은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의 ‘신념에 바탕을 둔 비확산정책(Faith-based Nonproliferation)’라는 제하의 사설이 주목된다.

  (상략) 아마 우리가 이번 협상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것은 북한이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동결시킨다고 약속하고 두 개의 경수로와 1년에 50만톤의 중유를 공급하기로 했던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평양은 2002년에 알려진 다른 핵 프로그램으로서 우라늄을 비밀리에 개발하면서 몇 년 안에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중략)

1994년과의 또 다른 차이는 중국이 하나의 당사국으로 합의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베이징은 정치적 후원자이며 그들이 필요한 대부분의 에너지에 대한 공급자로서 평양에 대해 가장 중요한 지렛대를 갖고 있다. 중국은 3년간의 공백 이후에 평양을 협상 테이블에 앉혔으며, 미국이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그러나 김정일은 그가 중국에 맞설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고 믿을 것이며, 독재자는 일반적으로 합의를 깨고 더 좋은 조항들을 위해 재협상을 시도하곤 한다. 약속과 일정이 최소한의 것으로 불분명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어제의 합의에 대해서 합의를 깰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가질 것이다. 중요하면서 특별한 단 하나의 약속은 60일 이내에 영변에 있는 플루토늄 시설을 중지시키겠다는 것일 뿐이었다. (중략)

이러한 합의는 2003년 사담 후세인의 축출에 잠을 깬 리비아의 모아마르 가다피가 만들었던 비확산 모델과는 다르다. 가다피는 그의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했고 핵물질의 폐기가 분명해지면 미국은 리비아를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하고 다른 보상들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미스터 부시는 날로 힘이 약해져가고 있는 그의 행정부에서 (2.13 합의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는 가장 우호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란의 핵 개발의 야망을 통제하기 위한 더 중요한 정치적 자산을 위하여 이 문제를 덮어두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란은 이번 협상을 보고 있을 것이며, 핵이라는 수단에 의해 잃을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이 더 좋게 변화할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역사는 그러한 믿음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워낙 보수적인 사설을 많이 쓰고 있는 『월스트리트 저널』이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만한 내용은 되지 않으며, 한국의 보수 신문들이 인용하기 좋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사설은 한국의 보수와 진보 신문들이 모두 언급한 것처럼 2.13 합의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전반부의 주요한 쟁점이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후반부에서 지적하고 있는 중국과 이란의 문제이다.
3. 2.13 합의 이후 미중 관계의 변화 가능성

  우선 주목되는 것이 중국 문제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설은 중국이 참여한 것이 1994년의 제네바 합의와 다른 점의 하나라고만 언급했지만, 이 언급은 미국의 동북아 및 세계 전략에서 중요한 변화가 올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북한 핵문제가 해결될 경우 미국과 중국 사이에 해묵은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부시 행정부 초기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클린턴 행정부 시기와는 다르게 전략적 파트너에서 경쟁자 관계로 갈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특히 NATO 군이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을 오폭뿐만 아니라 2001년 4월에 발생한 미국 EP-3 정찰기와 중국 제트 전투기와의 충돌사고, 그리고 미사일 방어계획(MD) 계획 추진 등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악화시켰다. 부시의 대외정책을 ‘ABC(Anything but Clinton)’로 규정할 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우호적인 미중관계가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1990년대를 통해서 진행되었던 탈냉전 이후의 세계체제가 9·11 이후 또 한 차례의 변화를 맞이하면서 ‘탈-탈냉전(post-post cold war)’ 시대 하에서 미중관계의 새로운 전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탈-탈냉전 시기에 있어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미중관계의 변화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탈-탈냉전 시기를 주장하는 미국의 전략가들은 대체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관계가 9·11 이후 변화하였다고 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과 기타 국제적인 회의에서 미국의 반테러 전쟁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국의 적은 아니지만, 여전히 진정한 친구도 아니다’라는 이중적인 인식이 남아 있는 반면, 중국에 대한 정책은 매우 적극적이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미중관계의 변화가 강조되었다.

  중국은 유엔에서 이루어진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에 대한 제재 안에 대해서 찬성의 입장을 나타냈으며(UNSCR1373, UNSCR 1441),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위해 1억 5천만 달러, 이라크 재건을 위해 2,500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또한 이러한 미국의 인식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3자회담과 6자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2007년 2월 14일자 사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특히 장쩌민 정부 시기에는 중국이 스스로의 핵전략을 바꾸면서까지 북한 문제의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즉, 중국이 핵전략에 관한 한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지만,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식의 핵확산 금지 전략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기 중국과의 관계가 명확한 원칙 없이 ‘실질적이라기보다는 형식적으로’ 미중협력이 이루어졌던데 반하여, 9·11 이후에는 명확한 협력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의 기간 중에도 부시 행정부가 미중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우호적인 측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미 행정부는 중국 내부의 변화를 통해서 중국을 미국의 세계전략에 보다 ‘적합한 파트너’로 만들고자 하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했던 것이다. 때때로 전문가들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전략에서 중국을 보다 적절한 파트너로 만들고자 하는 정책이 결여되어 있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대테러 전략에서의 협조관계보다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더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대립 축을 만들어내는 요소는 정치·사회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으로 나뉘어진다. 먼저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식 자유주의의 원칙을 중국 사회 내에서 관철시킴으로써 명실공히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 미국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미 1989년의 천안문 사태를 통해서 미국은 그 가능성을 보았고,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를 내세워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것은 제2기 부시 행정부에서 ‘민주주의 확산’을 대외정책의 어젠다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두 가지 이슈로 외화되었다. 하나는 타이완과 홍콩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가톨릭 문제와 티베트 문제, 그리고 파룬궁 등 종교적인 문제이다. 타이완과 홍콩의 문제는 서로 떨어져 있는 문제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연결되는 문제이다. 타이완이 하나의 중국 정책(One China Policy)의 틀 안에서 고려된다면, 홍콩은 이미 영국으로부터 반환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영토적인 문제는 제기되지 않고 있다. 반면에 타이완과 홍콩 문제는 모두 1국가 2체제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2005년 3월 입법화한 ‘반국가분열법’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여기에는 중국식 모델로 타이완과 통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면서 거꾸로 타이완의 모델을 중국으로 확대시키려는 대안까지도 포함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문제를 통일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치적 민주화의 문제로 전환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와 티베트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온 문제이다. 가톨릭 문제는 2007년 1월 바티칸이 화해의 손짓을 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만, 티베트 문제는 소수민족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정당성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중국 내부의 안보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비록 부시 행정부가 티베트와 파룬궁(法輪功)에 대해서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않고 있지만, 이 문제들이 제기될 경우 이것 역시 중국 내부의 안보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는 정치적 문제보다 미국의 이해관계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특히 심각한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2004년 무역 적자액이 1,620억 달러에 달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무역적자가 중국의 저가제품의 공세로 인해서 나타난 것이라고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중국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WTO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자체가 세계경제와 완전히 통합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수출업자와 투자자들의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 국무장관 라이스는 중국이 ‘원칙에 근거한 경제(rules-based economy)’를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즉, 외적으로 볼 때 WTO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WTO의 제 규정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거나, 또는 중국 정부가 WTO의 규정을 지키도록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으며, 내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무역적자를 고려하는 바탕 위에서 위안화 절상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경제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미 국무장관 라이스가 이렇게 ‘원칙에 근거한 경제’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부시 행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 TPA)’ 및 ‘글로벌 자유무역협회(Grobal Free Trade Association: GFTA)’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무역 정책의 확산 정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효력이 상실된 ‘신속처리권한(Fast Track Authority)’을 부활시킴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자유무역의 이념을 확산시키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서 무역 상대국 내부의 무역정책, 자본유통과 해외투자, 지적소유권과 제도적 규제 등 4대 부문에서의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미국 부시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의 무역정책의 기조가 “세계적인, 지역적인, 양자간의 자유무역을 추진(promote free trade globally, regionally, and bilaterally)”하는 동시에 “성실한 파트너에게 보상을 한다(reward good partnership)”는 원칙을 수립했다. 그리고 이러한 TPA와 GFTA를 중심으로 한 정책은 중국이 WTO 가입을 결정한 1999년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즉, 이것은 이러한 정책의 목표의 한 축이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중관계는 반테러 전략과 6자회담을 축으로 해서 우호적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미중 간의 우호적인 관계의 기초를 마련해 주고 있는 반테러 전략과 6자회담에 변화가 올 경우 양국 사이에서 갈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2007년 2월 14일자 사설에서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을 의미심장하게 언급한 이면에는 미국 내 강경파 인사들의 입김이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 부시 행정부의 핵확산 억제 정책의 실패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설에서 또 하나 중요한 언급은 미국의 핵 억지 전략에 대한 평가이다. 부시 행정부는 리비아에 대한 핵 억지 전략이 유럽연합과의 공조를 통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해법은 리비아에서의 해법과 다르며, 미국과 대립하면서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게 있어서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핵 억제전략에 대한 평가는 보수적 입장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2.13 합의의 배경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2006에 있었던 미국의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북한의 내부 사정이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계좌봉쇄 이후 다급해졌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 특히 2.13 합의를 두고 전자가 많이 논의되고 있다.

  즉, 미국의 중간 선거 결과는 특히 네오콘이 중심이 된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로 이어졌으며,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의 퇴진을 이끌었다. 물론 네오콘의 또 다른 상징이었던 체니 부통령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국무부에서 네오콘으로 분류되던 관료들 - 대표적인 경우가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대사와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 비확산 담당 차관 - 의 잇단 퇴진을 통해 부시 행정부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와의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국정운영을 이끌기 위해 대외정책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외정책의 변화가 이번 2.13 합의로 이어졌다. 애초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협상은 양자 협상으로 진행되었다. 핵 문제를 둘러싼 협상 이전부터 미국이나 북한이나 정치적 협상에서 양자협상을 선호했다. 1968년에 있었던 푸에블로호 사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전후에 있었던 군사분계선에서의 사건들 역시 미국은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도 제네바 협상 이후 1999년 금창리 사건에 이르기까지 남한 정부를 배제한 채 북한과 협상을 진행했다. 특히 1994년 조문 파동 이후 미국과 북한의 양자 회담에 반대했던 김영삼 정부는 북미 협상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그러던 것이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 중국을 매개로 한 3자회담과 다시 6자회담으로 연결되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틀로 6자 회담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북핵 문제를 서로 간의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 해결하겠다는 것보다는 주변국들이 공동으로 압력을 가함으로써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장기간 긴장 상태를 지속시킴으로써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의미도 갖고 있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양자 간의 협상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각각의 이해관계가 다른 6개국이 모여서 논의를 한다는 것은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표현처럼 보이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6자회담은 성공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첫째로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예전과는 달리 어느 정도 떨어뜨려 놓는데 성공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중국 지도부는 북한 정권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중국과 북한 관계의 변화가 진실인지, 아니면 중국이 ‘꽃놀이 패’를 갖고 그런 소문을 퍼뜨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에 중국이 동의했고, 제한적이나마 제제의 실행에 참여하려 했던 것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정책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는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난 2006년 10월 3일 북한이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발표 이후 북한이 쉽게 핵실험을 할 수 없으리라는 가정 속에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컸기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 정부의 입장과는 관계없이 핵실험을 강행했던 것이다. 중국의 대북정책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미중 간의 협조 관계 속에서 북한의 대중정책 역시 변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도 가능하다. 어쩌면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가 북한에 위기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2.13 합의를 이끌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둘째로 궁극적으로 2005년의 9.19 선언과 2007년의 2.13 선언을 이끌어냈다는 것도 6자회담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비록 합의를 위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더 많은 국가들이 참여함으로써, 전술한 『시카고 트리뷴』의 사설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제네바 협상보다 더 강제력 있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6자회담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이미 작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미국 신문들의 대부분은 핵실험을 강행했던 북한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도록 만든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 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 11일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기고를 통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준다”라고 비판했다. 즉,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를 ‘금지선’으로 규정했던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부시 행정부는 ‘금지선’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며, ‘지난 6년 간 미국이 한 경고를 북한은 무시했고, 어떠한 대가도 치르지 않았던 북한이 앞으로의 제재와 관련된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같은 페리의 비판은 북한 핵실험 직후 대부분의 미국 신문들에 게재되었던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과 맥을 같이 한다. 즉,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한국의 보수 신문만이 북한 핵실험의 원인을 햇볕정책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번 2.13 합의는 부시 행정부의 핵확산 억제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2007년 2월 14일자 사설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북한과 유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소위 ‘악의 축’ 국가들이 ‘핵이라는 수단에 의해 잃을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것이 2.13 합의의 기본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에 6자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핵을 갖고 있는 것이 오히려 부시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갖도록 할 수 있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란뿐만 아니라 부시 행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남미의 국가들 역시 6자회담의 합의과정을 세밀하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들 국가들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핵’이 아니더라도 ‘에너지’를 통한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 계속 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다른 한편으로 핵 확산 전략의 실패에 대한 비판을 듣기에 지친 부시 행정부가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의 진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강경파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극단적 정책을 실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위의 사설의 마지막에서 ‘역사는 그러한 믿음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던 것은 아닐까?

  반대로 북한 역시 다시 한번 한번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북한 스스로도 6자회담의 과정을 통해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 이후에도 핵무기는 폐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이를 통해서 당분간 또는 영원히 ‘윈셋(win-set)’을 계속 남겨두려 할 것이다. 미국의 전략적 실패는 한반도에서의 비핵화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5. 에필로그: 한미관계의 전망

  2.13 합의가 지속되는 한 한미관계는 이전보다 좋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김대중 정부 이후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소위 ‘좌파적인 정책’ 때문에 한미관계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으며, 더 이상 한미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한미동맹을 외교관계의 축으로 하는 인물을 대통령에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 보수 진영의 주장이지만, 2.13 합의는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한미관계가 당분간 우호적으로 진행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한국과 미국이 서로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기를 통해 김영삼 정부는 북미 간의 협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하면서 북미협상으로부터 소외되었다. 마치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협상과정에서 박정희 정부가 소외되었던 것처럼. 김대중 정부 이후 클린턴 행정부와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었지만, 곧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상황이 돌변하였다. 노무현 정부 역시 김대중 정부 시기 한미 간의 갈등을 고스란히 계승하였다.

  그런데 현재 미국 내에서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했고, 2008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의회에서 네오콘 방식의 대외정책을 견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차기 미국 정부의 정책은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과는 다를 것이다. 물론 부시 행정부의 현재 대외정책 역시 2006년까지의 정책과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어쩌면 이러한 경향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동시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후진타오가 지도자가 된 이후 좌(左)로 선회하고 있다. 일본 역시 올 4월의 지방 선거와 7월의 참의원 선거를 통해서 아베 총리가 낙마할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오른쪽 또는 미국과의 동맹을 중심으로 해서 신보수주의로만 선회했던 일본에서 ‘진보’나 ‘좌’는 아니지만, ‘온건’으로의 새로운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미·중·일에서 새로운 정치, 사회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한국 내의 상황은 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는가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 핵심적인 문제는 한국 사회의 공감대가 보수적 성향을 강하게 띄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의 책임인가의 문제를 한가하게 논의할 여유가 없다. 만약 현재의 상황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한국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문제에서 다시 한번 소외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보수 언론들은 노무현 정부 때문에 한미관계가 나빠졌다고 하지만, 부시 행정부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졌던 다른 나라들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미간의 갈등이 반드시 한국 정부의 특정한 성향 때문이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오히려 향후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다른 국가들이 부시 행정부 이전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 때, 보수로 향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얻기가 어려운 네오콘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가?

  기간의 북미 간 협상과정을 고려한다면, 한국 정부가 6자회담 과정에서 주도적이지는 못했지만, 많은 노력을 했고, 한국이 참여한 가운데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2.13 합의의 진행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 분명하지만,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때 한국의 대외정책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는 첫 발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서 한가로이 앉아서 2.13 합의에만 박수를 보내고 있을 여유가 없다. 본고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핵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미중관계가 변화할 수 있으며, 미국의 대외정책도 변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그나마 외교적 균형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양국 관계에 변화가 발생한다면, 외교적 균형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미중관계가 변화될 때 중국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물론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하려고 할까?

  북한 역시 핵 프로그램의 폐기와 핵무기의 폐기를 서로 다른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한국 정부는 새로운 대외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이 새로운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한반도, 동북아, 그리고 세계에 대한 보다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공감대의 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어쩌면 이것이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보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과 지식인들의 책임성 있는 자세가 더욱 더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