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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Cogito, ergo sum : 근대적 인간의 재발견, <백자의 사람>

BoardLang.text_date 2013.09.04 작성자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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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Cogito, ergo sum : 근대적 인간의 재발견,


<백자의 사람 : 조선의 흙이 되다>

 

김동진(중세2분과)


 

   영화 <백자의 사람 : 조선의 흙이 되다>의 감독은 일본인 타카하시 반메이며, 요시자와 히사시, 배수빈 등 한국과 일본의 명배우들이 함께 출연하여 만든 영화이다. 이 영화는 해방 후 암울했던 과거 일제 식민지시기를 되돌아보면서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존재했던 한 줄기의 빛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을 근거로 만든 영화 <백자의 사람>은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일제 식민지시기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림1]  영화『백자의 사람 : 조선의 흙이 되다』메인 포스터  ⓒ영화 홈페이지

   이 영화의 원작은 에미야 다카유키의 소설 ‘백자의 사람’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책은 일본에서 통산 200만부의 판매를 기록하였고, 전국 독자 감상문 콩쿨 고등부 과제도서, 고교생 필독 도서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8회 나카무라 세이코 문학상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국내에 번역 소개할 당시에는 이어령 前 문화부장관이 추천하였고, 한국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이 영화는 장편으로 쓰여진 소설의 뛰어난 문학성을 영상미로 재현하면서 동시에 서정시처럼 간결한 가운데 깊은 감동이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소설과 영화는 일본인에게 조선백자의 멋과 한국 전통 공예품의 맛을 일깨워 준 아사카와 타쿠미의 일생과 일제 강점기라는 아픈 역사 속에서 피지배인의 아픔을 함께 하려 했던 아사카와 타쿠미의 일대기와 인간적인 면모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조선의 말을 사용하며, 한복을 즐겨 입고, 조선의 물품을 애용하며, 조선의 걸인과 영세 상인들에게도 늘 온정을 베풀었던 아사카 다쿠미의 헌신적인 조선 사랑은 당시 대부분의 일본인과는 다른 것이었으며, 이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림2]  조선을 사랑했던 일본인 타쿠미   ⓒ영화 홈페이지

   그런데 타쿠미의 삶이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에게 감동을 주며 공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이 영화로부터 많은 감동을 받은 사람의 하나로서, 그리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역사적 관점에서 이 영화를 읽고 해석하는 관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는 세계사의 발전 과정에서 일제 식민지 시기의 역사를 읽는 동시에, 지성사의 입장에서 근대적 인간으로서 타쿠미의 역사적 의미를 통찰하는 것이다.


   한국사의 전개 과정에서 일제 식민지 시기는 근대 자본주의의 내재적 발전 과정이 억압된 시기라고 보든, 일부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듯 진정한 근대화가 시작된 시점이라고 보든 역사적 의미에서 근대에 속하는 시점으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마도 과학기술의 발전, 근대공업과 자본주의의 발전 등 물질적 조건의 발전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의 측면에서 이러한 시각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근대사회는 물질적 조건만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역사의 주체로서 인간을 인식하는 방식 역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근대화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의 성립에 바탕을 두고 성장하였으며, 이러한 사상이 내면화하는 가운데 법과 제도로 정착하면서 근대적 사회로 이행한 바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서양의 근대화의 이정표에서 17세기 초 프랑스 출신의 인물 르네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이라는 명제를 통해 사유의 주체로서 개인을 발견하였다. 데카르트를 포함한 일련의 사상가들이 발견한 감각과 사유의 주체로서 발명된 개인은 이전의 신 중심적 세계관을 벗어나 개인에 기초한 인간 중심주의 세계관을 확립할 수 있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의 성과를 담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에서는 모든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양도할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갖고 태어났으며, 이러한 개인들이 자유, 평등, 인류애(형제애)의 주체가 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사상에 기초하여 확립된 개인의 인권과 재산권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산업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고, 그 결과 근대적 이념은 세계의 보편적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일제 식민지시기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전개되고 있고, 그러한 논점 가운데는 일제 시기가 한국의 근대화에 어떻게 기여했는가 하는 점이 중핵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이 영화는 야마나시현 기타코마군에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 하래 한 사내가 엎드려 흙의 냄새를 맡고 있는 타쿠미와 친구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흙을 무한히 사랑하는 타쿠미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영화에서는 빈번히 흙냄새에 취한 채 볼에 흙을 묻히는 타쿠미의 모습이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서울의 도심에 조선의 흙이 된 타쿠미를 딛고 웅장하게 자란 큰 나무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타쿠미가 평생 사랑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친 것이 흙이었고, 이러한 흙에서 연유한 나무와 백자였다는 점에서 당연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타쿠미의 흙에 대한 사랑은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것이었으며, 그가 보여준 흙에 대한 사랑은 그가 만난 모든 사람을 변화시켰다.


   흙을 사랑한 타쿠미는 조선의 흙을 사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조선의 흙에서 나고 자란 모든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였다, 조선의 임업시험소의 기술자로 취직한 타쿠미는 조선의 땅을 밟는 순간 조선의 땅에서 나고 자란 모든 것을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보며, 배웠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인, 그리고 조선인이 창조하고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에 대한 사랑이 포함되어 있었다.


   영화를 통해 볼 때 일본의 땅을 그토록 사랑하던 타쿠미는 조선의 땅 역시 아무런 차별 없이 사랑하고, 조선의 땅이 만들어낸 그 모든 것도 아낌없이 사랑하는 보편주의자로서의 모습이며, 이는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강압적 식민지 지배를 위해 조선에 머물던 대부분의 일본인들과 명확히 구분되는 점이었다. 심지어 그의 가족들 역시 조선을 사랑하는 타쿠미에 대해서는 같은 일본인으로서 무한한 애정을 가졌지만, 타쿠미가 사랑한 조선인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고, 더럽고, 시끄럽고, 거짓말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철저히 차별하였다. 그러나 타쿠미의 노력을 통해 모든 것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영화 <백자의 사람>의 스토리 라인에는 다양한 복선이 숨겨져 있고, 이것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전근대성과 폭력, 타쿠미가 사랑하는 가난한 조선의 근대성과 휴머니즘을 드러낸다. 원작으로부터 시작되어 감독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러한 스토리 라인의 전개와 복석을 통한 새로운 세계관을 각성하는 경험은 신선하기 그지없다.


   먼저 임학자로서 타쿠미의 업적은 일본 제국주의가 자랑스러워하는 과학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후일 임업시험소의 소장으로 승진하는 마츠다 기사는 확장되는 일본 제국을 위해 사용할 재목을 빨리 생산하기 위해 육묘를 하고, 산에 나무를 심는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타쿠미는 조선의 산을 푸르게 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로맨티스트 다운 주장을 펼친다. 제국주의에 기여하기 위해 마츠다가 미국산 개오동 나무나, 사할린 원산의 낙엽송의 육묘를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이와 달리 조선의 땅에는 조선의 나무를 심어야 하고, 그 나무가 자라는 곳과 비슷한 환경에서 싹을 띄어 키우면 된다는 아이디어를 시험한다. 언제나 자신의 한국어 선생이며 동료인 청림(일본식 이름 세이린)과 함께하는 실험은 크게 성공하게 되었고, 이는 후에 소임업시험소 소장이 된 마츠다와 함께 국제 학술지에 이른바 ‘노천매장법’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될 정도로 탁월한 학문적 업적이 되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타쿠미는 청림과 함께 육묘에 성공한 조선의 오엽송을 청림의 집에 심어 둘 사이를 잇는 영원한 우정의 징표로 삼게 되며, 이는 이 영화의 전개에서 매우 설득력있는 스토리 라인으로 기능한다.



[그림3]   타쿠미와 그의 동료 이청림   ⓒ영화 홈페이지

   조선의 땅을 푸르게 하기 위해 조선의 오엽송 육묘에 성공한 타쿠미는, 조선의 땅에서 만들어진 백자의 매력에 푹 빠진다. 1914년 5월 경성부에 도착한 타쿠미는 근대와 전근대가 교차하는 다양한 모습에 직면하면서 호기심을 들냈다. 집에 도착한 타쿠미는 다리 달린 밥상에 놀라고, 이어서 형이 헐값으로 수집해 두었던 백자를 발견하고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백자 달항아리를 바라보면서 타쿠미는 너무나 진솔하고, 그리고 과학자라기보다는 심미안을 가진 예술가로 변신하여 백자로부터 ‘묘한 따뜻함’과 ‘본능적 순수함’을 느끼고, 이를 ‘눈으로 보는 음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조선의 백자에 흠뻑 빠진다. 이러한 백자에 대한 감동은 3.1 운동 이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개하려는 총독부의 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잡지 <시라카바>의 편집장이었던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백자를 포함한 조선의 민예품을 전시하는 ‘조선민족미술관’을 건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조선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김치를 담아 먹는데 사용하고 있으며, 헐값에 팔리고 있었다. 따라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백자의 아름다움은 타쿠미의 열정으로 야나기에 의해 재평가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생활도구였던 백자는 실생활에 뿌리내린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또한 타쿠미는 조선인들에게 인감으로서의 존엄성을 깨우쳐 주었고, 일본인들에게는 사무라이 정신의 복제판에 지니지 않는 온갖 편견을 버리고 인간이 가진 보래의 심성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조선을 처음 찾았을 때 전철에서 만난 노인과 청림으로부터 배운 조선말 “감사합니다!”는 죽음을 앞둔 타쿠미가 서대문 형무소에 갖힌 청림에게 되갚은 마지막 말이 되었다. 조선인과 조선인을 옹호하는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타쿠미는 한복을 입고 어눌하게 조선의 말로 외친다. “무슨 옷을 입든 내 자유다!”, “무슨 말을 쓰든 내 자유다!”, “인간에게는 이상도 이하도 없다!” 권총을 겨는채 방아쇠를 당기며 협박하는 헌병 앞에서 타쿠미는 두려움에 전율하지만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와 평등의 원리를 굽히지 않은채 당당하게 피력한다.


   이러한 타쿠미의 행동에 청림은 갈등하지만, 자신이 느끼고 믿은 진실을 선택하였다.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청림에게 ‘일본의 개가 되었다’고 비판하고 등을 돌렸지만, 타쿠미와 청림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화해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며 노력하였다. 조선인을 불신하던 마츠다는 3.1운동 이후 청림과 같은 조선인의 도움이 없다면 육묘에 성공할 수 없다며, 총독부에 거짓말을 해서라도 이들을 복귀시킬 것을 소장에게 강요한다. 그 결과 조선임업시험소의 육묘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언제나 조선인은 더럽고, 시끄럽고, 이해할 수 없다고 비아냥 거리던 타쿠미의 어머니가 타쿠미의 장례식 행렬을 빠져나와 헛간에서 그녀가 비웃었던 조선인의 방식으로 대성통곡한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가난한 조선의 한 여인이 따뜻하게 위로한다. 가난하지만 인간의 진솔한 슬픔을 위로하는 한국인의 따뜻한 인류애는 여기서 더욱 돋보인다. 타쿠미와 청림을 통해 모든 불가능의 원인이었던 조선은 모든 가능성의 원천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함에도 <백자의 사람>은 타쿠미와 청림이 이룩한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위한 자유와 평등, 보편주의의 실현을 위한 인류애(플래터니티)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백자같은 사람을 찾아와 타쿠미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던 사쿠가, “일본에는 당신 같은 사람이 없거든요.”라고 했듯이 일본인의 다수는 타쿠미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타쿠미의 조선식 장례 행렬에서는 일본 헌병의 폭력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으며, 패전한 일본인에게는 해방을 맞이한 조선인들도 일본인들에게 보복적인 폭력을 행사하였다. 비록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려난 타쿠미의 가족은 조선인의 보복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이 조선에 진 것이 아니며, 한반도는 다시 다른 열강의 먹이감이 될 것이라는 일본인의 마지막 항변은 이후 한국사의 전개 방향과 조선의 근대화가 해방이라는 단일한 사건에 의해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암시한다. 아직 더 많은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근대성의 본질을 각성해야만 한다는 한계도 분명하게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우선적으로 전체주의 체제의 하나로서 일본의 군국주의의 역사적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울러 우리 한국인에게는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넘어서는 인간 본성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 근대적 한국이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임을 가리켜 준다. 또한 그동안 근대성에 대한 논쟁이 과학기술이나 경제적 발전과 같은 물질적 조건이 충족되었는지에 대한 논의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점은 더 큰 의미가 있다. 과학·기술과 그것을 뒤따른 산업발전은 애초 14세기 무렵 유럽의 인문주의(휴머니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이 이루어지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일제가 조선인에게 가한 비인간적 행위야 말로 전근대성의 중핵이었던 것이다. 암울한 일제 식민지시기에 타쿠미와 청림이 만든 휴머니즘의 빛은 21세기의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더 널리 비출 수 있도록 키워졌으면 한다. <백자의 사람>을 보는 데 들이는 2시간은 다양한 시각에서 일제 식민지시기를 검토하는 좋은 교과서가 될 듯하다. 한 번 보시며 감동을 함께 할 수 있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학기의 강의에서 이 영화를 함께 보고, 토론한 학생은 “일본은 자신이 30년간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으로 조선을 지배한 것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근대화된 국가’란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국가라는 점에서 오히려 일본의 지배는 ‘전근대적’ 성향을 띤다. …… <백자의 사람>의 주인공 타쿠미가 보여준 있는 그대로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자신이 보고 듣고 옳다고 판단한 것에 근거한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근대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여러 분의 다양한 의견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