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세상읽기

[역사3단체 공동성명]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하라!

BoardLang.text_date 2016.04.06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페이스북으로 공유 X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밴드로 공유

[역사 3단체 공동성명]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하라!

  2011년 11월, 서울시 종로구는 독립문역 3번 출구 앞에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아낙들의 임시기거 100년 여관골목” 글귀가 적힌 골목길 관광코스 표지판을 세운 바 있다. 기록에 따르면 종로구가 일종의 관광자원으로 골목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이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2009년 9월 23일부터 몇 차례에 걸쳐 “600년 옛 도시 종로의 길을 걷다 ― 고샅길 20코스”라는 제목의 공지사항을 올렸고, 당시 언론은 종로구가 “골목마다 숨어 있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 되살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옥바라지 골목’은 이때 기획된 ?무악동: 인왕산 영기코스?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종로구는 표지판을 설치했고, 2012년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직접 제작한 ?동네 골목길 관광 제6코스: 무악동? 리플릿을 구청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다. 동네 주민의 기억에 따르면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을 생각해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옥바라지 골목에 해당하는 무악2구역은 바로 그 종로구에 의해 재개발이 결정되었고, 롯데건설에 의해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단지 아파트 4개 동을 세우기 위해 종로구는 스스로가 부여한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적 의미를 그 어떤 거리낌도 없이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종로구의 이번 처분은 상당히 의아한 일이지만, 여기에는 분명 자본 중심의 재개발 논리가 깔려 있을 것이다. 도시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역사적 공간이 폭력적으로 소멸되는 역사가 또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옥바라지 골목’이 이런 종류의 폭력에 저항해 왔던 공간 그 자체였음을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싶다.

  우선 ‘옥바라지 골목’이 바로 맞은편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서울구치소)와 시간을 함께 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제는 자신들을 향한 크고 작은 항일운동을 범죄로 취급하면서 감옥의 기능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도 민주화 운동을 범죄로 취급했던 순간순간을 가지고 있다. 저항의 격화는 수감자의 격증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동시에 옥바라지의 증가를 의미했다. 옥바라지는 수감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지키면서 그들과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는 저항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려는 국가의 의도와 완전히 반대되었다. 결국 옥바라지는 매우 사소해 보이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저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옥바라지 골목’은 이런 역사를 거의 100년에 걸쳐 축적한 공간이다.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옥바라지 골목’이 서울의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저항들은 서울을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공간을 거점으로 하고 있었다. 그 공간들의 기억을 모은 것이 바로 서울의 역사이다. 따라서 서울시가 해야 하는 것은 ‘옥바라지 골목’이 담고 있는 서울의 역사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지 그 공간의 소멸을 방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리한 철거에 제동을 걸기 위해 얼마 전 “철거유예”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는 이 골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주민과 활동가, 연구자들의 첫 번째 성과인 동시에 서울이 스스로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울시의 이런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서울시가 지금 막 시작한 고민을 보다 실질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행하기를 촉구한다.

‘옥바라지 골목’과 이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기억은 우리가 겪어 왔던 고통 속에서도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할 수 있었던 따뜻한 보살핌과 연대의 기억이다. 좁은 골목길 구석구석에는 옥바라지 하러 온 사람들에게 가장 따뜻한 밥을 먹였다거나 사형수 아내의 처절한 통곡소리에 온 마을이 같이 울었다거나 날마다 치마바위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아낙들을 위로했다거나 하는 인간적인 이야기들로 넘쳐났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그곳을 오갔던 시민들의 역사이며, 그곳을 오고 갈 시민들을 위한 역사이다. ‘옥바라지 골목’을 소멸시키면서 ‘시민을 위한 도시’, ‘시민과 함께 하는 도시’ 서울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기로이다. 서울시가 이 기로에서 선택해야 할 도시정책은 역사와 주민과 함께 하는 도시재생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울시에 다음의 몇 가지를 요구한다.


1. 서울시는 자본 중심의 도시재개발정책을 인문 중심의 도시재생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1. 서울시는 종로구 무악동 46번지 일대의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하는 직접적인 행정주체가 되어야 한다.

1. 서울시는 상위 주무관청으로서 종로구와 롯데건설이 행하는 무리한 철거를 실질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1. 서울시는 ‘옥바라지 골목’의 보존을 위해 주민 및 역사학자 등의 전문가와 협의해야 한다.

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



[사진]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의 재개발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주민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