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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동아시아 도시이야기] 타이베이의 어제와 오늘

BoardLang.text_date 2017.03.08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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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성시(城市), 타이베이(臺北)를 걷다


[근현대 동아시아 도시이야기] 타이베이의 어제와 오늘




이연경(근대도시건축연구자,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학사지도교수)


한국역사연구회 근대도시공간연구반은 <Redian>에 '근현대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하는 이연경 선생님의 기고글입니다.(http://www.redian.org/archive/108248)







 

타이베이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왜 타이베이를 ‘오래된 성시(城市)’라 칭하였을까 의문이 들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타이베이에는 성문은 있어도 성은 없으니까. 성시(城市)라면 한양도성같이 견고하게 쌓은 성벽이 있어야 할 것인데 사실 타이베이에는 이런 종류의 성벽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동양에서 도시란 곧 성시(城市)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타이베이 역시 전통적 개념의 ‘성시(城市)’를 추구한 도시였다. 비록 성은 사라지고 없지만, 여전히 그 성의 흔적들과 기억들은 남아 현재의 타이베이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성시(城市)는 타이베이의 어제와 오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타이베이의 성벽, 대로가 되다

1624년 네덜란드인들이 대만을 점령한 즈음, 타이베이 인근 단수이(淡水)지역은 스페인에 의해 점령당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까지 대만의 중심은 남쪽의 타이난(臺南)이었고, 타이베이 지역은 17세기 말~ 18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한족(漢族)들이 단수이 강을 따라 본격적으로 경작을 시작하며 정착함에 따라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이 시기 타이베이의 중심은 항구가 있었던 방카(艋舺, 현재의 완화(萬華)) 지역이었으며, 1861년 단수이를 무역항으로 개항함에 따라 다다오쳉(大稻埕) 지역이 빠른 속도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 타이베이는 방카와 단수이 두 개의 항구가 중심이 된 항구도시의 성격에 가까웠고, 타이베이 성시라 할 수 있는 (현재의) 타이베이 중심가는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타이베이가 성시(城市)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타이베이는 1871년 부(府)로 승격되며 타이난과 함께 대만의 2대 도시가 되었고, 1879년부터는 성벽을 쌓아 성시(城市)로서의 타이베이부를 완성하였다. 성벽이 완성된 1885년 이후 대만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은 타이베이가 되었고, 1891년 이후에는 대만의 수도가 되었다.

타이베이의 성벽건설은 1879년부터 1884년에 이르는 5년에 걸쳐 진행된 사업인데, 타이난의 경우에 비교하면 이는 매우 수월하게, 그리고 완만하게 진행되었다. 타이난에서 성벽 쌓기는 반역을 두려워한 청왕조의 반대로 무려 1세기가 넘는 시간(1725~1836)이 걸렸으며, 처음에는 나무 울타리로 이후에는 흑벽돌과 돌로 성벽을 건설했다. 그러나 타이베이에서는 처음부터 돌과 벽돌을 이용하여 단 5년 만에 성벽을 쌓았으며, 타이난의 성벽이 자연지형과 기존의 취락을 둘러싸는 형태로 자유곡선의 형태를 가진 데에 반해 타이베이는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답게 장방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가진 성벽을 쌓았다.

타이베이 성벽에는 기존의 타이베이 중심인 방카와 다다오쳉, 그리고 동쪽의 경작지대로 이어지는 5개의 성문이 위치하였다. 이 성문들의 위치는 주변 지역과의 연계뿐 아니라 풍수와 방어를 고려한 것이었는데, 북동 방향에는 일본군과 프랑스군이 주둔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 타이베이성의 북문은 거의 남서쪽 코너에, 동문은 남측으로 치우쳐 위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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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왼쪽 (1895 台北及大稻埕、艋舺略圖 위에 필자 표시, 이미지출처: 文化部文化資產局 ) 오른쪽 (1907 台北市區改正圖 위에 삼선도로와 로타리, 기존의 성문 위치를 필자 표시, 이미지출처: )

1895년, 그러니까 타이베이가 대만의 수도가 된 지 4년 만에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타이베이 성벽은 1905년 일제의 타이베이시구계획에 의해 건설한 지 20여 년 만에 철거되기에 이르렀다. 철거된 타이베이 성벽의 자리는 가로수가 늘어선 근대적 대로(Boulevard)가 대체하였다. 37~72m의 폭을 가지는 이 대로는 삼선도로(三線道路) 혹은 삼선로(三線路)라 불리는데, 두 열의 가로수가 식재된 안전도(安全島)로 구분되어 있어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함과 동시에 차량 통행을 원활하게 하고 도시 경관을 미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타이베이가 동양의 작은 파리라 불린 이유도 바로 이 삼선도로가 오스만이 만들어 낸 파리의 대로와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삼선도로는 타이베이 성벽이 있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지금은 도로 위 섬이 된 성문들과 함께 남아 타이베이의 옛 중심부를 동서남북(中山南路(동), 中華路(서), 愛國西路(남), 忠孝西路(북))으로 둘러싸고 있다.

삼선도로는 산책하기 좋아 1930년대 자유연애 분위기와 맞물려 산책로로 사랑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유독 공원을 중시했던 일제시기 타이베이 도시계획과 맞물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공원처럼 여겨지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실제로 일제시기 이 삼선도로는 공원로(Parkway)로 분류되며 도시공원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지금도 밀도가 높은 타이베이 시내를 걷다 이 삼선도로를 만나면 탁 트인 시야와 함께 파란 하늘로 뻗은 야자수를 만나는 게 반가운 기분이 들 정도니, 이 삼선도로가 타이베이라는 도시에서 가지는 의미는 꽤나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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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왼쪽 (일제시기 삼선도로(三線道路)의 모습, 이미지출처: 三線道路#/media/File:日治時期台北三線路.jpg) 오른쪽 타이베이 삼선도로(三線道路)의 동측 대로인 중산난루(中山南路) 이미지출처: 필자촬영)

대로와 로터리, 로터리를 둘러싼 도시건축

1905년 타이베이시구계획은 성벽을 대체한 삼선도로와 평행한 그리드 시스템을 만들며 방카와 다다오쳉을 타이베이부와 연결시켜 하나의 도시로 통합시켰다. 이 과정에서 방카와 다다오쳉의 도로들 역시 직선화되었으며, 타이베이에는 여러 개의 로터리가 등장하였다.

1932년의 타이베이시구계획에서는 타이베이의 도로를 3개의 레벨로 분류하였는데, 그 첫 번째는 직교 그리드 체제의 100m, 70m, 50m 폭의 대로, 그리고 두 번째는 40m 폭의 방사선도로, 그리고 마지막은 그 사이를 연결하는 20~30m 폭의 도로였다. 방사선 도로들의 경우 로터리에서 방사형으로 분화되는 경우가 다수였는데, 타이베이 중심부의 경우 문이 있던 자리들, 즉 동문, 남문, 서문, 북문 자리와 동서남북 네 모퉁이에 로터리가 계획되었다. 로터리는 방사형으로 뻗는 도로들이 한 곳에서 모이게 됨으로써 하나의 결절점이자 소실점의 역할을 하며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는데, 타이베이의 경우 성벽이 모두 철거되고 홀로 남은 문들이 이 로터리의 중심에 위치하여 타이베이성의 기억을 간직한 랜드마크가 되었다.

또한 로터리는 대로의 투시도적 효과를 더 강화시켜주어 소실점에 위치하는 건물의 지배적 인상을 강화시켜 주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만총독부 건물(현재의 대만총통부)이 위치한 카이다거란 대도와 만나는 동문 로터리이다. 동측에서 방사선으로 뻗어온 도로는 동문 로터리를 지나 왕복 10차선의 카이다거란 대도(凱達格蘭大道)로 직진한다. 이 도로의 끝에는 서 있는 대만총독부 건물은 권력의 위용을 뽐내며 주위를 지배한다. 로터리와 대로. 식민권력이 만들어 낸, 그야말로 정치적인 스펙터클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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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왼쪽 (동문로터리와 카이다거란대도(凱達格蘭大道) 1932 台北市區計書街路並公園圖, 이미지출처: ) 오른쪽 (10차선의 카이다거란대도(凱達格蘭大道) 끝에 있는 대만총독부(현재의 대만총통부) 건물 이미지출처: 필자촬영)

한편 로터리와 방사선 도로들은 타이베이의 독특한 풍경들, 즉 Y자로와 로터리를 둘러싼 코너타입의 건축물이라는 독특한 도시건축의 형태들을 만들어 냈다. Y자로는 도로가 직교하지 않고 어슷하게 만나며 만들어지는 도로 유형인데, 타이베이에서 이런 도로들이 유독 많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선 로터리로 인해 5거리, 6거리 등이 만들어지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대로변의 Y자로들이 있다. 이 곳에는 주로 ‘코너’가 강조된 건축물들이 지어졌다. 북문 로터리를 둘러싼 타이베이 우편국 건물, 철도국 건물은 모두 북문 로터리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코너 타입의 건물이다. 또한 기존의 체계와 새로운 체계가 맞물리며 만들어지는 Y자로들도 있다.

1937년 타이베이도시계획령에서는 타이베이의 영역을 크게 확장함과 동시에 새로운 그리드 체계를 만들어 냈는데, 이 그리드 체계는 1905년 계획 당시 만들어진 기존의 성벽과 평행한 그리드체계와 달리 동-서-남-북의 자연 방위를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그리드와는 그 축이 어긋날 수밖에 없었고, 이 두 개의 그리드 사이에는 자연스레 예각으로 만나는 지점, 즉 Y자형 도로들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골목길의 경우에는 기존의 물길이 복개되어 길이 되면서 Y자형 도로들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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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북문 로터리와 로터리 주변 건축물들, 1945 Taihoku-Matsuyama 지도 위 필자표기, 이미지출처: 지도 / 철도국: 필자촬영/ 우편국 ©CEphoto, Uwe Aranas / Y자형도로: 구글맵)

로터리 주변의 건축은 자연스레 로터리에 대응하는 형태로 형성되기도 하였는데, 그 중 하나는 바로 방카(현재의 완화) 지역의 화강정건(華江整建)주택이다. 1970년 사회주택(social housing)의 일종인 정건(整建)주택으로 계획된 이 주택은 완화구의 서측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사거리를 잇는 환상형 육교가 곧 이 주택의 2층으로 연결되는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다. 1층에는 상점이 있으며, 2층에는 작은 정원이자 골목길이 전후면의 단위세대를 이어주는 이 공동주택은 타이베이에서 전후(戰後) 도시로 몰려 든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2016년 12월 이 주택의 육교를 철거하고자 하는 시정부의 시도가 있었으나, 또 다른 정건주택인 난지창(南機場)을 지켜낸 타이베이의 활동가들이 이 곳 역시도 주말 시장으로 활용한다든지 예술의 장으로 만든다든지의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지켜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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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왼쪽 (1974 타이베이항공지도, 이미지출처: 臺北歷史地圖) 오른쪽 (華江整建주택과 육교, 이미지출처: 필자촬영)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를 가로지르는 시민과 공간

성벽과 대로, 로터리와 방사형 가로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타이베이의 도시 구조는 20세기 초중반 권력(청왕조 그리고 일본)에 의한 도시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 일본의 식민화를 겪었던 서울 뿐 아니라 대만의 원래 중심이었던 타이난의 상황과도 많이 다른 양상이다. (오래된 도시의 관성이 강했던, 즉 지배권력보다 그 곳의 사람들이 강했던 타이난에서는 가로수나 쭉 뻗은 직선 대로를 발견하기 어려우며, 타이난의 도시계획시에도 5개의 로터리를 계획하였으나 겨우 1개만 실제로 실현되었다. 성벽 역시 거의 철거되긴 했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남아 옛 타이난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권력에 의해 새롭게 계획된 도시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도시가 가지고 있었던 체계, 그리고 관성과의 충돌이 최소화될 수 있었고, 따라서 근대적 공간의 생산이 권력의 의지에 따라 성공적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공간들은 시간이 흐르며 그 성격과 용도가 바뀌고,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생산해 내었다. 19세기의 성벽은 20세기의 산책로가 되었고, 20세기의 로터리와 사회주택은 21세기의 문화 운동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식민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건축물들은 21세기 ‘舊建築新生命’이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타이베이의 ‘오래된 도시’ 이미지를 생산하는 아이템들이 되었다. ‘성벽’을 쌓고 허물며 만들어진 타이베이라는 도시는 이렇게 20세기의 시간들을 품고 ‘오래된 성시’로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참고문헌>

Ping-Sheng Wu, Phantasmagoria: A study on the Transformation of Urban Space in Colonial Taiwan- Tainan and Taipei, 1895-1945, Ph.D dissertation, National Cheng Kung University, 2006

中央研究院 數位文化中心, 臺北歷史地圖散步, 台灣東販, 2016

栖來光, 在台灣尋找Y字路, 玉山社,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