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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동아시아 도시이야기] 오래되고 새로운 도쿄, 도시 정체성과 1980년대 에도도쿄학의 부흥

BoardLang.text_date 2018.05.02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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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동아시아 도시이야기


오래되고 새로운 도쿄,


도시 정체성과 1980년대 에도도쿄학의 부흥


 

김은혜




1980년대 도시론의 유행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 일본사회는 ‘탈공업화 사회’로 점차 전환되면서,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적 풍요를 구가했다. 에즈라 보겔(Ezra Vogel)의 『일등 국가 일본(Japan as No.1)』(1979)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정체성을 규명하려는 ‘일본인론’ 관련 서적들이 대유행했다.

 

세계화가 ‘국가’에서 ‘도시 단위’로 경제의 단위를 촉진하면서 과거 국가론과 이데올로기론 등이 점차 그 힘을 잃어갔던 반면(Jacobs, 1985=2004), 도시의 문화와 경제적 중요성만큼 도시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확대되었다.

 

종래의 도시사가 도시의 유형과 도시-농촌의 분업·시장 관계 등에 중점을 두었다면, 새로운 도시사는 일상생활, 사생활, 풍속, 심성이나 감성까지 연구대상으로 삼는 프랑스 아날학파(Annales school)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말하자면 기존 분과 학문의 틀로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여러 도시 현상들에 주목하는 학문들 간의 상호 교류가 전개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본래 ‘에도도쿄학(江戸東京学)’은 에도문화사학자 니시야마 마츠노스케(西山松之助)가 중심이 된 ‘에도쵸닌연구회(江戶町人硏究會)’가 제창한 에도학을 모체로 해 근대적 의미의 도쿄학을 포괄한 연구 경향을 말한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반 문화사학자 오기 신조(小木新造, 1924~2007)가 일본의 역사와 도쿄에 새로운 해석을 제기하면서 커다란 주목을 받는다.

 

‘오기 사학’이라고도 불리던 에도도쿄학은 비단 역사학이나 도시사 영역뿐만이 아니라, 문학, 민속학, 사회학, 미술사, 건축사, 경관 공학 등까지 폭넓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에도-도쿄 연구에 대한 학제적 교류를 통해 생산된 학문적 성과들은 대중적인 ‘도쿄 붐’을 선도했을 뿐만 아니라, 도쿄의 문화정책과 ‘수변 공간(waterfront)’의 재개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에도도쿄학의 역사성과 현재성: 도쿄의 수도성과 도시성


 

일본 도시사학계에서는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경계로 에도와 도쿄를 이분법적으로 파악해서, 도쿄의 역사도 ‘유신 정치사’의 공간적 배경인 ‘암흑기’ 정도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반 사이 ‘도쿄’ 그 자체를 주요한 분석의 대상으로 하는 연구들이 제기되었다.

 

비판적 도시사학자 나리타 류이치(成田龍一, 2003=2011:79)는 세로축(수도-도시)과 가로축(축제-일상)으로 도쿄 연구를 분류한다<그림 1>. ‘한 국가의 도시로서의 성격’에 초점을 맞춘 이시즈카 히로미치(石塚裕道)의 일본 근현대 도시론(日本近現代都市論, 1991년)이 대표적인 반면, 오기의 도케이 서민생활사 연구(東亰庶民生活史硏究, 1979)와 도케이시대: 에도와 도쿄 사이에서(東亰時代: 江戸と東京の間で, 1980)라는 저서는 ‘서민생활 총체의 유기적 관련’에 집중했다. 오기는 일본 근세-근대 대변혁 연구 분야에서 ‘에도-도쿄’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도케이 시대’(東亰時代) 메이지 원년(1868년)부터 메이지 20년 무렵까지) 개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小木新造, 1986=2005:106).

 

나리타는 에도에서 도쿄로 ‘수도(首都)로의 전환’(협의)과 달리, ‘수도에서 제도(帝都) 도쿄로의 전환(광의)’을 각기 구분한다. 오기의 에도도쿄학이 주로 ‘수도로서의 전환(협의의 전환)’에 중점을 두는 반면, 나리타는 ‘1880년대 도쿄(광의의 전환)’을 강조하며 수도 공간의 양상을 분석해야 한다고 봤다. 1880년 전후 도쿄는 근대 도시공간의 모델 형성기로서 문명화와 대극점이기 때문에, 도쿄의 ‘도시 하층민’을 봐야 한다는 시각이었다.

 

반면 츠카모토 마나부(塚元学)는 에도가 ‘선진’적이었지만 교토(京都)의 ‘오랜 전통을 지닌 궁정의 우아함’이 없어 유일한 ‘문명’은 아니며, 도쿄는 ‘위치(에도)’와 ‘수도(교토)’를 계승하는 상반적 도시라 지적했다. 안세이(安政: 1854-60년) 말년 무렵 에도는 이미 어느 정도는 실추 상태였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 당시 오사카 천도론도 유력했다. 그러나 도쿄가 일본의 수도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ⅰ) 도쿄가 일본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ⅱ) 에도 막부 300년이 가진 유형·무형의 유산을 계승하며, ⅲ) 유신 정부의 재정난도 크게 감안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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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최근 도쿄 도시사 연구의 동향(成田龍一, 2003=2011:73-5)




 

이렇듯 당시의 여러 요인들이 교차된 결과, 현재의 도쿄가 명실상부한 수도로서 천황과 ‘궁정’이 도쿄로 이전되어 일본 전국을 ‘교화하는 거점’이자 ‘문명의 창구’가 된다. 1868년 7월 메이지 신정부는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고, 근대 ‘국가의 ‘수도’ 만들기에 돌입해서 차츰 현재의 도쿄의 모습을 갖춰가게 된다.

 

사회학자 요시미 슌야(吉見俊哉)도 역시 ‘번화가(盛り場)’에서 전개되는 사회 공간적 위치와 공간의 권력작용에 대해 마치 연극론적인 관점에서 주목했다. 그는 ‘제도(帝都)로서의 도쿄’가 천황제 시스템과 밀접한 연관성을 ‘근대 도쿄’의 특징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요컨대 도시사 연구의 초점이 각기 수도성(capital city, 상징성)과 도시성(urbanism, 생활)에 있다 하더라도, 제각각 다른 방향의 학문적 전개로 나아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반면 오기는 도케이서민생활사연구(東亰庶民生活史硏究, 1979年)에서 도시사회의 주역으로서 서민생활의 존재와 문화의 특질을 고찰했다. ‘문명 개화기’를 통해서 ‘에도’에서 ‘도쿄’로 이행했다 할지라도, 갑자기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사회관계가 변화할 리는 없다. 물론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당시 사람들에게 미친 서양 문명과 문물, 그리고 새로운 건물과 풍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또한 메이지 정부에서도 ‘긴자(銀座) 벽돌가’나 ‘히비야(日比谷) 관청가 계획’ 등 근대적 국가와 서양적 도시 계획에 역점을 두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근대도시로 개량하려던 서구풍 도시개조는 실제로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습한 일본의 기후 조건에도 맞지 않는 실패한 건축의 사례들이기도 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오기의 관점에 따라 일상생활의 장으로서 도시공간을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한다면, 근대 일본이 스스로 자신과 단절하려던 과거의 에도와 오늘의 도쿄는 여전히 면면히 이어지게 된다. 물론 그 자신도 에도-도쿄의 이행과정에서 여러 단절들을 인정하지만, 사회나 생활환경, 도시공간의 기반을 보면 오히려 에도로부터의 연속성이 부상하게 된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는 ‘도케이(東亰) 시대’라는 개념을 통해 ‘생활사로서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서구의 도시들이나 아시아 도시들과도 또 다른 ‘현재(즉, 1980년대) 거대 국제 도시(세계도시) 도쿄’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유럽 도시=사물(物)’과 달리 ‘아시아 도시=퍼포먼스 공간’이자 도시연구의 세 가지 축은 ‘시간·공간·생활 문화’이기에, 일본의 도쿄야말로 낡은 것을 흉내 내서 세운 도시라고 주장했다.

유행하는 에도도쿄학과 도시박물관의 건립

오기의 논문모음집 에도도쿄학(江戶東京学, 1986·2005年) 중 ‘에도 도쿄의 토포스(topos)’에서는 ‘물의 도시’인 시타마치(下町)와 전원도시인 야마노테(山の手)로 구분해서, 근교 농촌에서 전해진 도쿄 교외의 풍경과 그 변용 및 서민들의 일상생활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예컨대 데라고야(寺子屋, 에도시대 ‘서당’과 같은 서민교육기관) 연구에서는 높은 교육-문화 수준을 가졌던 서민들의 독특한 ‘살롱 문화론’을 제기했다. 정부나 권력에 대한 민중의 반골정신과 도시사회의 병리도 함께 제시하면서, 이른바 ‘에도코(江戶っ子: 에도 토박이)’의 ‘놀이·연극’ 문화에는 넉넉한 에도 사람들의 정서와 생활이 담겨있음을 발굴해서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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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출판된 에도도쿄학사전(江戸東京学事典, 1987·2003)은 에도-도쿄로 이어진 일본 역사의 고유성과 풍부한 개성과 열린 시점의 ‘방법’을 제시했다. 이후 오기는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교수(1986년)부터 에도도쿄역사재단 이사(1988년)와 ‘에도도쿄박물관’에서 초대 관장(1998년)을 역임하는 등 역사적 전시와 시각화에도 힘쓰게 된다. 에도도쿄학은 ‘일상-도시’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역사적 발굴들과 현재의 도쿄가 가진 문화적 힘을 설명하는 강점이 있었다. 따라서 1980년대 에도도쿄학의 유행은 일본인들의 문화적 특질과 도시의 존재에 대한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도시정체성의 풍부한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한편 이탈리아 건축 전공의 도시사학자 진나이 히데노부(陣內秀信)는 오기의 에도도쿄학이 가진 서구 모델 중시나 에도-도쿄의 불연속을 강조하는 일본사학이 가진 장벽들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그의 유명한 저서 도쿄의 공간인류학(東京の空間人類学, 1985)은 에도의 유산을 계승·발전시킨 ‘오래된 도시’로서의 도쿄, 즉 새로움과 오래됨의 대립과 조화에서 생겨난 현대 도쿄에 주목했다. 특히 야마노테(山の手, 무사 주거지)에는 에도 다이묘(大名)의 토지의 특징인 절벽·언덕, 진수(鎭守: 수호신 사당)의 숲과 녹지, 지명 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시타마치(下町, 서민 주거지)에는 단지 과거의 보존이 아닌 현재 서민들의 생활공간 속에 그대로 녹아있는 에도시대의 수로, 교각뿐만 아니라 주변의 수변공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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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은 도쿄는 보이는 것과 달리, 오래된 도시이다. 그것이 도쿄의 깊은 품(懷)이며, 숨겨진 장점이다”라고 주장한다. 즉 첨단 도시 뉴욕을 방문했을 때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건설된 오랜 건물들이 현재도 사용되는 ‘오래된 도시’로서 뉴욕에 대한 ‘자각’을 얻었다고 했다. 또한 메이지 말기 소설가 나가이 가후(永井荷風)도 역시 1920년대 발표한 중앙공론(中央公論)에 기고한 신귀조자일기(新歸朝者日記)에서 당시 문명의 최전선인 뉴욕과 파리에서 오래된 좋은 것을 남기는 것이 오히려 ‘문명의 깊이’임을 깨닫게 된다. 서양문화 속에 새로움만을 보려던 당시 유학생들과 달리, 나가이는 새로운 서양문명 속에서 오래된 장점을 발견하는 자각을 통해서 비로소 ‘에도 도쿄’의 자취를 반영한 소설로 전환해 가게 된다.

 

그러나 도쿄의 물리적 경관의 실체를 살펴보면, 도시로서 도쿄 자체는 1923년 간토(関東)대지진과 1944-5년 도쿄대공습으로 궤멸되어, 실상 다른 서구 도시들처럼 오래된 건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거대한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남아 있는 서구의 도시들과 달리, 건조환경 자체는 모두 붕괴되었다 할지라도 ‘역사 속에서 배양된 독특한 분위기’가 도쿄의 토지 위에 남아 있다면, 도쿄의 장소성(placeness)이야말로 ‘도쿄의 공간인류학’으로 발전하는 기초가 된다.

 

진나이는 새로운 도쿄의 속에서 오래된 도쿄(에도)를 발견하고, 에도와 도쿄의 ‘분리’가 아닌 ‘연속성’을 포착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에도도쿄학의 부흥은 또 다른 학문 영역을 자극하면서 도쿄가 가진 도시로서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근거를 제공한 결과, 기존의 일본 학자와 대중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한탄’하던 문제로 가득한 도쿄를 ‘감탄’할 수 있는 도시로 변화시킨 결정적 계기로 작동했다.

 

한편 1979년부터 1995년까지 약 16년 동안 도쿄도지사를 역임했던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는 다양한 문화 시설들과 도시 이벤트들의 내용적 기초로서 에도도쿄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1980년대 12월 ‘도민생활국’의 명칭을 ‘생활문화국’으로 변경해서 ‘행정의 문화화’를 추진하는 거점으로 삼았다. 1983년 10월 제정된 ‘문화 진흥 조례’는 “민주적으로 문화적인 국가를 건설해서,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에 공헌하려는 일본국 헌법 정신의 기준으로”라는 의미를 담았다. 스즈키 도지사는 취임 이래 도민들에게 마치 ‘고향’과도 같이 친숙한 도쿄 건설을 목표로 ‘마이타운 도쿄(My Town Tokyo)’라는 슬로건과 함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활기차게 살 수 있는 도시·고향이라 불릴 수 있는 도시”로서 ‘도쿄의 정체성’을 재구축하고자 했다.

 

1980년대 ‘도쿄도 장기 계획’은 21세기 미래상을 실현하는 ‘기본 구상’과 ‘10개년 사업 계획’으로 점차 확대했다. 매년 약 1억 엔의 예산을 디자인 문화 사업에 계속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에도 도쿄 4백년 기념 사업’과 같은 대규모의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도쿄 르네상스’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鈴木俊一, 1986:258-274). 특히 1989년 기공해서 1993년 개관한 ‘에도도쿄박물관’과 ‘에도도쿄건축정원’(江戸東京たてもの園) 등 다양한 사업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었다. 유서 깊은 교각과 거리 등 명칭의 보존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있는 산책로나 신도쿄백경(新東京百景)도 선정되었다. 또한 도시 미(美) 추진모델 실시지구를 조성하는 한편, 10월 1일 ‘도민의 날’에는 고향 도쿄 축제 등도 기획되었다.

 

21세기, 도쿄 정체성 강화의 기로에서


 

1986년부터 ‘에도도쿄포럼’은 주택총합연구재단과 함께 역사학, 향토사학, 도시계획·공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학제간 연구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에도도쿄학은 현재 전세계 사람들이 소비하는 도쿄의 이미지와 각종 문화시설들이 품은 스토리텔링의 근거로 작동한다.

 

1980년대 에도도쿄학 붐은 오사카학(大阪学), 도호쿠학(東北学), 요코하마학(横浜学)과 같은 현지학(地元学)의 진흥을 자극했다. 결과적으로 도시학·지방학·향토사 등은 일본은 문화 교양층의 저변을 확대시켰으며, 도시박물관은 다양한 문화기반 시설들과 장소 마케팅을 전개하는 구심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학은 서민적 일상생활을 재조명하는 빛과 도시경쟁력 담론에 치우칠 수 있는 그림자라는 양면성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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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1980년대 에도도쿄학은 버블경제의 밝은 전망과 과도한 자의식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마치 1960년대 도쿄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가 도시개조를 가속화시켰듯이, 1980년대 ‘에도도쿄학’은 문화 내셔널리즘 시기의 전형적 기념물인 ‘에도도쿄박물관’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Sand, 2001).

 

1980년대 버블 경제기 도쿄 도심(urban core)의 과도한 도시 집중이 불러온 부족한 생활 편의 시설과 지가상승으로 인한 주택 부족 등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압박한 심각한 도시문제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록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점차 가속화되어 도시의 개성을 없애고 균일성이 강화될지라도, 도쿄의 고유한 공간과 문화의 존재를 계승·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도시민들의 과제’임을 부인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현재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목표로 해서 도쿄는 지금 그야말로 각종 문화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있으며, 역사-문화 시설들에 대한 개수(보강)공사와 리모델링도 한창 진행 중이다. 따라서 향후 도쿄가 도시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21세기 모델을 제시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 문화를 활용한 관광 마케팅에 재활용되는 수준에 머물 것인가는 여전히 우리 모두 주목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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