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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 조사 백서 발간에 즈음한 역사학계의 입장

BoardLang.text_date 2018.06.28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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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 조사 백서 발간에 즈음한 역사학계의 입장


 

2017년 9월부터 시작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 조사가 지난 6월 7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를 발간하며 일단락되었다. 아직 진상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위법하고 부당한 행위에 연루된 공무원에 대한 징계와 범죄 혐의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번, 백서 발간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헌법과 각종 법률, 그리고 민주적 절차를 어겨 가면서 국가기관과 여당은 물론이고 일부 친정권 인사들까지 총동원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역사교과서 편찬에 부당하게 개입한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 농단”을 어떻게 강행했는지 그 전모가 드러났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국민 대다수의 뜻을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며 강행된 시대착오적인 역사교육 농단’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재발방지를 약속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조광 위원장 역시 국민에게 사과하며 앞으로 역사 전문기관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임을 약속하였다. 교육부 장관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의 사과와 약속을 환영하며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 소속 공무원들이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을 살펴 자기 혁신의 계기로 삼기를 촉구한다.

 

역사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역사학계도 역사 교과서 진상 조사의 결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역사학자로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의 결정 과정과 국정 교과서 집필과 편찬 심의 과정에 참여해 특정한 사관의 주입을 요구하고 압박하며 상식을 벗어나는 고액의 집필료를 받은 이들이 있었다. 역사학계를 경악하게 했던 화이트-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변 단체의 전국역사학대회 대회장 난입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여기에 개입했거나 혜택을 누렸던 이들의 민낯도 차차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과정에서 역사학계는 일관되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이와 반대로 적극 개입하고 협조했던 일각의 학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역사학계는 국가 차원의 철저한 적폐 청산 및 재발 방지와 함께 역사학계의 성찰적 모색을 통한 정상화를 기대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검찰은 교육부가 수사의뢰한 사건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기 바란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청와대가 국정화를 주도하였다는 사실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권이 없어 완벽한 진상 규명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검찰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범법 행위도 불사했던 청와대 관계자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국정화 강행의 전모를 밝혀내고 나아가 범법 행위가 드러난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를 통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둘째, 교육부는 재발방지를 위한 약속을 철저히 이행하기 바란다. 교육부는 재발 방지 대책으로 다양성이 보장되고 탐구와 논쟁이 가능한 역사과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교과서 발행제도와 법규를 개선하며 민주적 가치가 구현되는 역사 교육을 뿌리내리도록 한다는 대안들을 내놓았다. 역사교육이 민주시민교육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과정은 시민적 합의와 교육의 자율성 확대라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연루된 역사 유관 기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현 조광 위원장이 사과했으나, 국정 교과서 집필을 주도했던 전 김정배 위원장은 침묵하고 있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적극 협력했던 역사학자들은 여전히 국사편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에게 책임지는 자세로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국사편찬위원은 즉각 사퇴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 또한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에서도 책임자와 소속 직원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협력한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이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함으로써 무너진 공신력을 회복해야 한다.

 

넷째, 역사를 더 이상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 역사학은 정쟁이 아닌 학문의 공론장에서 토의하고 논쟁하며 시대와 함께 변화해야 한다. 역사교육은 특정의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사관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학과 상호 소통하며 자율과 합의의 정신을 바탕으로 역사 교과서의 체재와 내용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는 역사 교과서가 정치와 언론에 의해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불행한 역사를 끝내고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전문성과 상호 소통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길로 나아가야 한다.

 

2018년 6월 27일


17개 역사학 및 역사교육 관련 학회


(대구사학회, 대한의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부산경남사학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교육학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일본사학회, 전북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한국과학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학사학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