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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이임사

BoardLang.text_date 2016.12.30 작성자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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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병신년은 君舟民水라는 사자성어처럼 성난 민심의 물결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연 한해였습니다. 좌절 속에서 함께해온 빛나는 얼굴과 힘찬 목소리가 더 없이 값진 한해였습니다.

이 격동의 해에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소임을 맡았던 것은 제 생애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이제 책임을 내려놓고 떠나려니 우선 많은 분들께 도움 받았던 것들이 떠오릅니다. 환상의 드림팀인 29차년도 운영위원님들을 만난 것은 제게 행운이고 행복이었습니다. 또 긴급하게 도움을 청할 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성원해주신 원임회장님들,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흔쾌히 응낙해주신 회원님들은 든든한 지원군이었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부족한 능력에 과분한 회장 소임을 맡으면서 저는 두 가지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나는 연구회 창립 때 상임위원으로 인연 맺은 이후 연구회로부터 받았던 은혜를 갚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젊은 회원 대개가 그러하듯이, 젊은 시절 공부를 하고 한 길을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공감하며 함께 역사 연구를 궁리하는 공모자들과의 만남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직 기운 있을 때 보은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농사짓는 마음이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매해 새로운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일구고 地力을 회복하기 위해 施肥도 하고, 농기구도 새로 손봅니다. 멈추지 않는 신성한 노동만이 결실의 축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연구회는 여러 사람이 일구어 온 소중한 땅입니다. 이 땅의 생명력은 매번 새로운 농사가 지어질 때 이어집니니다. 그래서 올 한해, 땅을 고르고 수로를 내고 퇴비도 만들며 농기구도 손보듯이 일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마음은 마음일 뿐 제 능력은 부족하였기에, 올 한해 연구회가 거둔 수확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29차년도 운영위원님들의 능력과 회원님들의 헌신 덕분입니다. 되돌아보니 올해는 『역사와 현실』 100호 출간의 영광을 함께 할 수 있었고,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아름다운 웹진의 재탄생도 보았습니다. 또 연구역량을 다변화하고자 하는 회원들의 재기발랄한 이야기도 있었고, 연구발표회 지원금도 여러 곳에서 받아서 조금은 더 책임감과 여유 속에서 학담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 탄핵 국면과 맞물려 일관되게 반대의 입장을 견지하며, 여러 차례 대규모의 성명서를 통해 결집된 행동의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내년에는 국정 역사교과서 1년 유예가 발표되었기에, 역사 교육 전반에 대한 보다 전문적이고 복잡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회원 여러분,

저는 회장직을 마치면서 저희 연구회가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세계 속에서 지속적인 생명력을 발휘하는 옥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있는 저희 연구회는 그동안 여러 회원님들의 노력과 헌신의 결과, 학계 내외로 권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한편으로는 이미 셋팅된 것에 익숙해지고, 조직은 거대한 규율이 되어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연구회가 귄위적이다,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세대교체가 되어야 한다 라고 합니다. 매번 새로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우리안의 보수를 경계하고, 지루하지만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합니다. 지나온 길을 백미러로 되돌아보며 학문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합니다. 지난시절의 수확을 종자 삼아 매해 새로 농사짓듯이 앞으로 나가야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시대에 역사학은 어떻게 새로운 생명력을 창출할 것인가, 분단 70년이 지나면서 남북의 분단이 고착되는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학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변화하는 시대에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역사연구의 내용과 방법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새로운 학문 후속세대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등을 고민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여 연구의 혁신과 장기적 발전 방안을 논의하며, 미래 역사 연구자로서 희망의 길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가 각 분과와 위원회의 자발성과 기획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것에서, 또 내년에 출간될 『시민의 한국사』, 연구회 창립 30주년 준비 사업, 대중화·연구사업단startup, 개편된 웹진 등에서 시도되면 좋겠습니다.

회원여러분,

취임 인사에서 저는 새로운 길을 갈 때는 두려움과 난관이 있지만 ‘감미로운 긴장’도 있다고 했었습니다. ‘감미로운 긴장’을 잘 즐기면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으니, 함께 새로운 길을 가자고 청했었지요. 올 한해 저는 여러분의 과분한 사랑과 성원 덕분에 감미로운 긴장 속에서 퍽 행복했습니다. 올해의 감미로운 긴장의 성과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이제 그 성과를 디딤돌 삼아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모두 새로운 길에서 감미로운 긴장을 즐기며 건승과 건필이 이어지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丁酉年 신새벽의 雞鳴이 울리면서 우리 사회도 보다 나아지고, 여러분 가정에도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많은 사랑과 성원을 보내주신 여러분,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2016. 12. 30


한국역사연구회 29차년도 회장 이지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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