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을 말한다 -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BoardLang.text_date 2006.10.19 작성자 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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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을 말한다 - 『우방과 제국』

박태균(현대사 분과)

“우방과 제국”은 창비사의 제의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강의에 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해서 작가를 선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다지 재미없는 강의를 재미있게 들어주었던 학생들 덕에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업의 목표는 “한국전쟁”(책과 함께)이 대중적인 작업이었다면, “우방과 제국”은 학술적인 작업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었다.

창비사에서 1945년부터 1980년까지의 한미관계를 전체적으로 다루는 것을 요구했지만, 실제 필자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게다가 1970년대 이후는 1차 사료를 직접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곤란한 작업이었다. 또한 5.16 쿠데타를 전후한 시기까지는 2001년 이후 정전협정 및 5.16 쿠데타와 관련하여 역사비평에 이미 발표한 논문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작업을 할 수 있었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는 새로운 연구가 되어야 했다. 결국 1970년대 이전은 미시적으로, 1970년대 이후는 거시적으로 분석하기로 결정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목표가 수정되어야 했다. 오히려 1960년대 이후의 자료들을 새롭게 보면서, 이 시기가 더 중심이 된 것이다. 1960년대의 자료들을 보면서 필자는 너무나도 생동감 있는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이후의 미국의 대한정책과 한국 정부의 대응 사이에는 필자가 분석하고 싶었던 한미관계의 다양한 전형들을 보여주는 사건이 많았다. 또한 이 책의 주 자료가 된 FRUS는 당시의 상황을 눈에 보이듯이 잘 설명해 놓고 있었다. 필자는 창비사에 책의 내용을 1960년대를 중심으로 해서 다루는 것으로 수정할 것을 제의하기도 했었다.

“우방과 제국”을 보면 이러한 필자의 작업 과정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책의 앞부분은 조금 힘이 빠진다. 필자로서도 기존의 연구성과 중 도진순(“한국민족주의와 남북관계”), 정용욱(“해방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정병준(“여운형 평전”과 “우남 이승만 연구”), 홍석률(‘한국전쟁 직후 미국의 이승만 제거 계획’) 등 기존의 연구를 뛰어 넘는 새로운 성과를 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필자의 석사논문이 그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었지만, 새롭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필자가 보다 주목한 것은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부와 미국의 관계였다. 2000년 박사논문을 쓴 이후 한미관계를 연구하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 한일협정과 베트남 전쟁이었고, 이 부분을 중심으로 한미관계와 한국현대사를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두 사건은 현재를 규정하고 있는 사건이면서, 당시 한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김종필’에 대한 인물 연구를 장기적으로 계획하면서 이 시기의 정치적 역관계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60년대를 통해 미국과 김종필의 관계를 추적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감추어진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었다. 1960년대의 자료를 분석하면서 스스로 엔돌핀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또 하나 중요하게 고려했던 것은 현실의 문제와의 관련성 속에서 과거 한미관계를 분석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부쩍 줄어들었다. 세미나는 주로 역사적 자료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고, 이전에 있었던 현재 한국사회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모임은 점차 줄어들었다. 어쩌면 역사 연구가 다시 실증주의로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다행히 역사비평의 편집위원회에서의 논의와 일부 신문에 쓰던 칼럼을 통해서 현실 문제에 대해 천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지만, 혼자서 하는 고민은 결코 생산적이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역사학자들이 현안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는데 반해서 한국의 역사학은 왜 ‘학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필자가 국제대학원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 역시 현안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한 요인이었다.

특히 필자가 많은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은 현재의 한미관계였다. 이라크 파병으로부터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 한일관계에 대한 미국의 입장, 한미 FTA의 추진, 그리고 전시 작전통제권의 반환문제 등은 1945년 이후 1980년대까지 진행된 한미관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현안들이다. 특히 이라크 파병 문제는 1960년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야 할 현안이었으며, 한국군의 작전 통제권 문제는 이미 미 행정부에서 1960년대부터 고민해 왔던 내용이었다. 만약 그러한 내용들을 한국정부가 숙지하고 있었다면, 현재와 같이 여러 가지 파문을 불러 일으키면서 미국의 정책에 실속없이 대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북문제와 한반도의 핵 문제 역시 이미 1950년대 미국의 정전협정 일부조항 무효선언을 통해 미국의 대북한 정책의 패턴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한미관계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미국은 철저하게 학습효과를 누렸다. 한미관계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미국의 관료들은 철저하게 과거에 있었던 유사한 사건들을 추적하였다. 그리고 과거의 사건을 통해서 현안을 풀어가야 할 방안들을 모색하고자 했다. 우리의 경우 그러한 과거로부터의 학습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었다. 만약 학습효과가 있었다면, 미국의 정책에 대해 보다 능숙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우방과 제국”의 출간은 필자 개인의 성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도움이 숨어 있다. 우선 1989년 시작된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분과의 세미나는 필자가 한미관계에 천착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군대에 입대하면서 중요한 자료를 기꺼이 내어 준 정병준 선배, 거의 모든 시간을 현대사를 전공하는 선후배들에게 쏟아 부었던 정창현 선배는 현대사분과 세미나반의 기둥이었고, 필자가 이 작업을 포함한 현대사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세미나에 함께 했던 도진순, 김광운, 정용욱, 김점숙, 홍석률 선배, 그리고 박진희, 류정임, 강성천 등 친우들과 함께 했던 토론 내용은 “우방과 제국”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어쩌면 필자의 연구자로서의 길과 연구주제는 이미 이 때 결정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충격은 미국으로부터 왔다. 하바드 옌칭의 베이커 부소장과 에컬트 교수는 미국에서 새로운 자료와 이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20여개월 간 보스턴에 머물면서 사회학과의 김호일·정일준 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두 분이 없었다면 미국에서의 연구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일준 선배와는 연구 주제가 거의 비슷해 처음부터 많은 토론을 했으며, 정 선배가 준 자료 중에는 아직까지도 필자가 다 보지 못한 자료들도 있다. 연구자가 자신의 자료를 아낌없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외교학과의 신욱희 교수님, 성공회대학의 오유석 선배, 그리고 부산대학의 이철순 선배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려야만 할 것 같다.

어쨌든 이 연구는 최종 도달점이 아니다. 이제 시작해야 할 출발점에 도달해 있다. 다른 연구성과들에 비하여 가능한 한 꼼꼼하게 자료들을 보았다고 자신하면서도, 아직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다. 자료의 측면에서 볼 때 “우방과 제국”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로부터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했다. 인터뷰 자료에는 많은 자의적인 왜곡이 존재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문자로 된 자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인터뷰와 문서 자료들을 상호 교차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 공개되기 시작한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정부의 문서들에 대한 꼼꼼한 검토가 필요하다. 독자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책을 낸 직후부터 본격적인 한국 정부 문서에 대한 강독에 들어갔다. 개정판을 내게 된다면, 거기에는 한국 정부의 문서들과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아울러 “우방과 제국”에서 담지 못한 중요한 주제들도 있다. 특히 아쉬운 것은 1950년대 경제 문제 중 환율과 관련된 부분을 한 장으로 다루지 못한 것이다. 필자는 1950년대의 환율 문제가 한미관계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4.19 혁명 시기 이승만의 퇴진에 대한 미국의 압력에는 환율을 둘러싼 한미간의 갈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4.19 혁명을 통한 이승만의 하야는 미국이 바라는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방과 제국”에서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또 하나 다루었어야 할 주제는 민주당 정부와 미국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특히 이 시기 미국이 민주당 정부에게 했던 요구를 담고 있었던 ‘딜론 각서’에 대한 분석은 당시의 한미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다. 아울러 1960년과 1961년의 열린 공간에서 민주당 정부와 미국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 및 국민의 정부 시기 한미관계와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러한 주제들 역시 추후의 과제로 넘겨야 함을 독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당분간은 “우방과 제국”이 다루지 못했던 자료와 주제들을 보완하는 작업들을 진행할 생각이다. 특히 올해 8월부터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으로부터 한국 정부의 자료들을 강독할 수 있는 지원을 받게 되었다. 필자는 특히 베트남 전쟁과 1970년대 한미관계의 복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아마 이 과정에서도 앞에서 언급한 선배, 동료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독자분들, 그리고 필자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따끔한 충고와 질책이 앞으로의 연구를 더 진행해 나가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