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함을 없게 하라 : 역사이야기』(프로네시스, 2006)

BoardLang.text_date 2007.10.01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페이스북으로 공유 X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밴드로 공유

나의 책을 말한다 :
『원통함을 없게 하라 : 역사이야기』(2006, 프로네시스)
-  ≪無寃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前提 -


김 호(중세사 2분과)


1.


  인간이 죄를 저질렀을 때, 범행을 조사하고 죄를 부과하는 이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다. 범죄에 대하여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사회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법과 도덕이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를 따지는데 있어 우리는 무엇보다 ‘책임’의 문제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법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행동의 동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우이다. 둘째,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우이다.

  먼저 前者는 어떠한 행동을 하는데 있어 동기가 선한지 악한지를 묻는 것이다.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태도로 동기의 선함과 악함만이 고려된다. 반면에 後者는 동기의 善惡 여부는 차치하고, 행동의 결과가 사회의 도덕적 혹은 법적 통념이나 상식에 비추어 선한지 악한지를 판단한다.

  물론 이상의 표현이 동기만을 고려한다고 하여 결과를 무시하거나, 결과를 중시한다고 하여 동기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양자의 입장은 분명 큰 차이가 있으며,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태도임을 전제해야 한다.

  대립하는 듯 보이는 두 입장에 대해 일찍이 茶山 丁若鏞은 전자를 禮治로, 후자를 法治로 구분하면서 예치와 법치 양자를 모두 적절하게 고려해야 이상적인 통치가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欽欽新書≫ 中).

  조선의 많은 학자들은 예치나 법치 어느 한 가지만으로는 인간을 통제할 수 없다고 보았다. 물론 그들이 법치에 비해 예치를 우위에 둔 것은 사실이지만(“백성을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여도 부끄러움을 모르지만, 도덕으로 이끌고 禮義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알고 또 善行한다.”는 공자의 차원에서 그러하다) 그렇다고 하여 조선을 禮治 국가라고 하거나, 사실은 法治 국가였다고 말하면서 둘 중 하나만으로 정의하려고 한다면 본질에서 벗어난 이해가 되고 말 것이다.

2.


  동기의 선악과 결과의 선악 여부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판단해 보면 현실의 많은 행동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패턴으로 구분된다.

 결과(행)
동기(열)







① 동기가 선하고 결과도 선한 경우


 ② 동기가 선하지만 결과는 악한 경우


 ③ 동기는 악하지만 결과가 선한 경우


 ④ 동기가 악하고 결과도 악한 경우















  ①번의 경우는 사회가 제일 바람직하게 여기는 행동들로 칭찬받고 격려될 일이다. ④번의 경우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데 역시 異議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②와 ③의 경우들이다. ② 동기는 선한데 결과가 나쁜 경우와 ③ 동기는 악한데 결과가 좋은 경우, 우리가 늘 접하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는 문제로 치환된다. 동기만 선하다면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또 그 결과가 어떻든 모두 가능하다는 주장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이다. 혹은 동기는 상관없이 결과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또한 정당한가라는 문제이다.

  바로 이 동기와 결과의 고려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조선시대의 형사 사건조사와 관련된 법의학적 방법들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동기가 선한데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한 私的인 복수가 정당한지 여부는 이러한 논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보다 <동기가 선하지 않은 경우> (조선시대에는 동기의 惡함으로 형사처벌의 대상 유무를 판단하였다. 오늘날 사건으로 여겨지지도 않을 詛呪라든지 혹은 민사사건으로 처리될 수 있는 僞造, 詐欺 등의 경우도 모두 犯意의 不純함으로 그 죄질이 倫常罪에 해당하였다)를 처벌하기 위하여 고심하였다. 따라서 범인의 범행 ‘의도’를 증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사실 동기가 선한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범인의 ‘自白’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범인들은 동기의 선함을 강조하거나 우발적인 사건-犯意가 없거나 故意는 아니었음을-이라고 주장하기 일쑤이다. 살인사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다. 때문에 사건 담당자들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拷問을 택하는 것이 불가피하였다.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이 不當함을 깨닫는 일은 늘 남용되는 고문의 현실이 옆에 존재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동기의 惡함을 증명하기 위한 고문(폭력)이 善하지 않다는 사실은  유학자들을 불편하게 했다. 따라서 고문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犯意의 확인이 가능한 방법이 요구되었다. ≪無寃錄≫은 바로 이때 필요한 책이다.

  ≪無寃錄≫은 죽은 자를 조사하여 ‘犯意’의 유무를 결정하는데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無寃錄≫을 <단지 죽은 자를 조사하는 방법>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無寃錄≫의 본질은 범행을 저지르고도 태연한 범인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수단이었다. 자신의 惡意를 자백할 생각이 없는 범인에게, 사건은 우발적이거나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殺意’를 지닌 범죄 행위였음을 증명하려는 방법, 다시 말해 정의(justice)를 구현하는 진정한 儀式(A true ritual)의 과정이었다는 말이다.

3.


  ‘동기’의 善惡이 범죄 여부나 형량의 輕重을 따지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야말로 조선시대 형사 사건의 이해를 위한 매우 중요한 前提임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차원에서 儒敎의 가르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단지 仁政의 차원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실로 모든 동양사회는 仁政의 원리를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필자는 비로소 18세기에 이르러 특별히 조선 정부가 ≪無寃錄≫을 다양한 버전(version)으로-諺解本, 增補版 등-간행하는지 그 진정한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이는 단지 법의학의 주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 本性에 대한 조선인들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조선후기 人物性 논쟁 등 성리학적 고찰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후기 사회의 변화를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 모두를 ‘조선후기적 조건’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필자는 ‘조건’들을 설명하기 위해 전진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본격적인 行步를 위한 준비 운동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