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세 유교정치사상과 농업』(혜안, 2007)

BoardLang.text_date 2007.12.20 작성자 한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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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을 말한다 :
『한국 중세 유교정치사상과 농업』(2007, 혜안)


한정수(중세사 1분과)





최근 한미FTA체결 등으로 대표되는 농수산물 수입 자유화에 따른 농촌사회의 피해와 산업사회의 성장으로 인한 농업과 농촌, 농민의 소외 등의 문제는 농민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큰 시련이다. 농민들은 국가에 대해 농촌현실과 농민의 처우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을 해 주길 원한다. 이러한 요구에 응하는 정부의 농업관, 농민관은 무엇일까?

  먹는 것을 생산하는 자는 지금까지 농민이었다. 농민들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생산력을 증대해왔고 역사는 발전한 것 같았다. 적어도 기왕의 연구 성과를 보면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역사는 매번 혼란을 맞으며 그 속에서 민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유리걸식에 자식까지 팔아야만 했을까? 또 그들은 왜 송곳 꽂을 땅도 없을 정도로 무소유의 존재로 전락해야 만했을까? 매우 현실적인 의문이었다.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하여 더 많은 고민을 하였고, 수많은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 정점이 국가의 구성과 국가의 역할 기능에 대한 기대였다. 개개인의 끊임없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국가권력과 지배층의 역할이 그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중세단계에 들어왔을 때 이러한 고민들은 어떻게 나타났고 그 해결책은 어떠했을까? 그것이 필자의 매우 기본적인 문제의식이었다.

  필자는 현재 한국 사회가 봉착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중세 왕조의 중농사상과 정책, 농경의례 등에 접근하여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였다.

  과연 중세 사람들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어떻게 먹을 것을 생산하고 왕조 차원에서 이를 해결하려 했을까? 이 질문들은 매우 일반론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조사회에서 이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해결하였고 그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하기는 어려웠다. 필자는 이 문제를 중세 유교정치사상의 핵심이라 할 천명민본사상(天命民本思想)과 왕도정치론(王道政治論)이라는 고전적 이해를 토대로 접근하였다.

  고려왕조는 하늘이 인간에게 내리는 때라 할 수 있는 천시(天時)와 하늘이 내린 명령이라 할 천명(天命)의 이해와 그 실천적 노력을 왕조 운영의 정당성으로 삼았다. 왕조에서는 천문지리의 이해를 도모하여 하늘의 뜻을 해석하고 이를 받들어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른바  ‘관상수시(觀象授時)’의 정신은 이를 말한다.

  고려왕조에서 형성된 천인감응적 농업관은 여기에 바탕을 두었다. 고려왕조가 천시(天時)를 해석하고 여기에 맞추어 행하여 할 정치적 내용을 담은 시령(時令) 즉 월령(月令)을 마련한 것 역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권농정책 역시 천인감응적 농업관과 월령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 이른바 민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역전(力田)의 권장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왕조의 중농이념과 그 실천적 노력을 대내외에 보여줄 수 있는 제사의례에도 주목하였다. 제의를 행할 장소와 제단을 마련하고 그 의례 절차를 고려왕조의 성격에 맞추어 중국의 예제에서 수용하였던 것이다. 국가적 제의의 가장 큰 목적이 바로 풍년의 기원과 추수 감사 등의 기곡(祈穀)과 가뭄 등 재이의 극복이라 할 기양(祈禳)에 있었던 것은 이를 말한다.

  필자는 이와 같이 고려왕조를 대상으로 하여 당시의 정치사상과 그에서 파생된 농업관과 정책, 의례를 분석하였던 것이다. 고려왕조가 그 분석대상이지만 그 관점은 조선왕조까지도 유지된다. 그렇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천인감응적 농업관이나 월령에 따른 농사 권장, 국가적 차원의 농경의례의 시행 등은 더 이상 수용될 수 없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며, 또 거대정부는 수많은 목적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의 글에서 제시된 바처럼 농업이나 농민을 포함하는 시민 개개인이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이념적 기초를 제시하면서 다양한 합리적 정책을 구상 실현하는 것이 왕도가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