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한국사』(애플북스, 2007)

BoardLang.text_date 2008.01.30 작성자 김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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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을 말한다 :
『라이벌 한국사』(2007, 애플 북스)



김갑동(중세사 1분과)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온 말들이다. 언행의 중요성을 뜻하는 말이다. 한번 접어든 길은 되돌아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한번 뱉은 말은 주어 담기가 어렵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건과 부딪친다. 이때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는다. 그것은 실제 생존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이미 돌아가신 과거의 인간이 삶의 교사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과거의 역사적 인물들에게서 많은 교훈과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책 탄생의 근본적인 배경은 여기에 있다. 

  1984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소위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 박사학위를 받고 꿈에 그리던 대학 교수가 되었다. 정신없이 지나온 세월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왜 역사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저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한 것이었나? 아니면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한 것이었나? 

  대학에서 한국사를 가리키는 데에도 어떤 때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가르쳐 보기도 하고 과학적 실천적 입장에서 역사의 진보와 발전을 강조해 보기도 했지만 학생들은 별 흥미가 없었다. 풋풋한 인간의 냄새를 느끼기에도 부족했다. 일반 민중들의 삶을 알아보려 해도 전근대에는 사료가 부족하여 그 구체적인 삶을 살피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때에 주목된 것이 인물사였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의 영향도 있었지만 역사적 인물들의 행적과 나의 행적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같은 시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에 전혀 다른 길을 간 사람들에 대해 탐구해 보려는 의욕이 생겼다.

  그때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집필하여 탄생한 것이 이 책의 모태가 된 《한국 역사상의 라이벌》이었다. 1990년 《나말려초의 호족과 사회변동 연구》라는 학위 논문을 출간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이 책에서는 동시대에 살았던 라이벌들을 골라 한국사의 시기별로 배치하였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시대적 배경을 서술하였다. 영웅은 시대 속에서 태어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완성해 놓고 보니 한국사에 대한 자연스런 개설서 성격도 띄게 되었다. 서장을 제외하고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강의를 하는데도 안성맞춤이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제외하고 14주 동안 한 주에 한 주제씩 강의하면 되었다.

  이 책을 가지고 강의를 하다 보니 학생들도 무척 흥미롭게 들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크게 두 조로 나누어 각 인물들의 입장에서 서로 토론을 시키기도 했다.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던 학생들도 한번 토론이 붙자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내 강의 시간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기도 하였다. 그런 대로 보람있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전공 강의만 하게 되었고 교양은 시간 강사들의 차지가 되었다. 내 책에 대한 존재도 점차 잊혀져 갔다. 그럴 즈음 어느 날 서점에 들렀다가 조그마한 충격을 받았다. 나의 책이 이미 4쇄가 되어 있었다. 처음 발간할 때 몇 십 만원의 인세를 받은 기억 밖에 없는 데 출판사에서는 나에게 통보나 인세 지급도 없이 몇 쇄를 더 찍어낸 것이었다. 워낙 그런 데에 둔감했던 터였지만 기분이 매우 상했다.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함과 동시에 절판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도 책은 서점에서 또는 인터넷에서 계속 판매되는 듯 했다. 다시 한번 절판을 요구한 뒤 한참 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던 2007년 초 어느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예전의 그 책을 수정, 보완하여 재출간하자는 제의였다. 그렇잖아도 언젠가는 수정, 보완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던 터라 쾌히 승낙을 하였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라이벌 한국사》이다. 전혀 새로운 책이 아니어서 마음 한편으로 부끄럽다. 그러나 빠졌던 삼국시대 부분을 첨가하였고 일부 자료를 수정 보완하였으며 문장도 많이 다듬었다. 자료 사진도 대부분 다시 선정하였다. 출판사에서도 표지와 장정을 하는데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출간을 해놓고 보니 책이 그럴듯하게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이름이 너무 작다는 불만 빼고는. 출판사의 제의에 따라 이번에는 인물들을 시대 순으로 배치하지 않고 주제별로 배치하였다. 그리하여 책의 내용은 서장을 제외한 4편, 14장으로 구성되었다.

  서장에는 역사의 현재성 문제와 인물사 탐구의 장ㆍ단 점을 언급하였고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라이벌〉 편에 남북국의 성립과 김춘추ㆍ연개소문, 조선 후기의 붕당 정치와 송시열ㆍ윤증, 일제의 침략과 이완용ㆍ민영환, 남북 분단과 김구ㆍ이승만을 다루었다.

  <한 시대가 머무는 자리, 승자는 누구인가〉 편에서는 고려의 건국과 견훤ㆍ왕건, 고려의 멸망과 최영ㆍ이성계, 한말의 쇄국ㆍ개화 정책과 대원군ㆍ명성황후 등을 배치하였고 〈같은 신념 같은 길, 역사 속 동반자들〉 편에서는 한국 불교사의 전개와 원효ㆍ의상, 한국 유학사의 전개와 이황ㆍ이이, 일제 강점기의 식민사학과 신채호ㆍ백남운 등을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딜레마에 빠진 라이벌들, 역사에 질문을 던지다〉 편에서는 삼국시대와 성왕ㆍ진흥왕, 고려 중기의 모순과 묘청ㆍ김부식, 조선 초기의 유고 정치와 성삼문ㆍ신숙주, 임진왜란과 이순신ㆍ원균을 다루었다. 그리고 맨 뒷부분에는 각 왕조별 왕계표를 붙여놓았다.     

  아쉬운 것은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이 대부분 당시의 정치적ㆍ사상적ㆍ종교적 지도자 급에 속하는 인물들이란 점이다. 일반 백성들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행에 있에 일반 민중들의 가치판단 보다 지도자들의 가치판단, 정책 등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또 그들은 돈과 명예, 권력이란 측면에서 특권을 누리는 만큼 책임도 그 못지 않게 크다. 어차피 현 제도하에서는 우리 모두가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집행하는 위치에 서지 못할 바에는 선거를 통해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도자들을 선택하였다.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대중들은 물론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유용하게 쓰였으면 하는 것이 마지막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