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상」, 천명의 시대를 관상으로 엿보기

BoardLang.text_date 2014.03.20 작성자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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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중세2분과)


   영화「관상」은 2013년 9월 개봉 직후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2013년 9월 11일에 개봉된 이 영화는 개봉 10일 만에 관객이 500만을 넘어섰고, 종영될 때까지 900만 이상의 사람들이 관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동명 소설 역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소설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제작하자는 논의도 있다.

   영화 뿐 아니라 관객이 700만을 넘길 무렵부터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관상 서비스가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이전에 영화가 허영만이 관상을 주제로 그린 만화「꼴」이 다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관상가 신기원 씨를 비롯한 관상가의 집에는 밀려드는 손님으로 넘쳐났고, 관상과 관련된 각종 기사는 많은 지면을 채웠다. 가히 관상 신드롬이었다.



[그림 1]  영화「관상」메인 포스터  ⓒ영화 홈페이지


   영화「관상」은 노년의 한명회가 회고하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한다. 자신의 목을 자르려는 자에 맞서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시작되는 첫 장면은 극도의 공포감을 유발하며 모든 관객의 시선을 영화로 끌어 모은다. 이어 자신은 어느 유명한 관상가의 말과 달리 목이 잘리지 않았음을 술회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그 당대 최고 관상가는 내경이었고, 한명회가 김내경과 계유정난의 과정에서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경은 부친이 역적으로 몰려 처단된 후 몰락하여 학문하여 벼슬하는 길을 버리고 붓을 만들어 팔며, 배운 관상을 보며 처남 ‘팽헌’, 아들 ‘진형’과 함께 산속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내경은 점차 관상가로 실력을 인정받는 가운데 무릇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천재 관상가라는 소문을 얻게 되었다.



[그림 2]  김내경과 그의 처남 팽헌  ⓒ영화 홈페이지


   이 소문을 들은 기생 ‘연홍’은 새로운 돈벌이를 위해 내경을 찾아왔다. 내경도 자신의 뜻을 더 넓은 곳에서 펼쳐 보기 위해 연홍의 한양 기방을 찾아가게 되었다. 바로 그곳에서 내경은 연홍의 꾀임에 빠져 연홍의 기방에서 관상 보는 일을 시작했다. 관상을 통해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발휘하면서 내경은 그 이름을 한양 바닥에 널리 알릴 수 있었다. 덕분에 이후 내경은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김종서, 문종, 수양대군과 차례로 인연을 맺으며 조선 역사의 향방을 가를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는 문종의 유지를 받아 김종서를 도와 나이 어린 국왕 단종을 보필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에 내경은 왕권을 찬탈하려는 수양대군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노력했지만 계유정난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막지 못한 채 아들을 잃게 된다. 이후 청맹과니가 된 내경과 말을 할 수 없게 된 팽헌은 한양을 떠나 아주 먼 곳에 칩거하면서 살게 된다. 그렇지만 얼굴을 숨긴 채 살던 이들에게 책사 한명회가 찾아와 “난을 즐기는 자들의 상을 명백히 기록하면 후세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관상서의 집필을 요구하고, 이 자리에서 내경은 한명회의 오묘한 관상에 대해 말하며 결국 목이 잘리게 될 것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한명회는 자신이 죽기까지 결코 목이 잘리지 않았음을 술회하며 관상으로 주어진 운명을 극복해냈음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림 3]  문종의 유지를 받드는 김내경  ⓒ영화 홈페이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계유정난을 통해 역사의 승자처럼 보였던 세조는 재위 14년 만에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고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책사 한명회는 4명의 왕을 모시며 천수를 누렸지만 부관참시를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글로 보여주면서 천재 관상가 김내경의 관상 실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하며 마무리한다.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관상이라는 시점으로 재해석하여 만들어낸 영화「관상」은 애초 그리 큰 흥행이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는 계유정난이 조선의 역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건의 시작과 끝이 자명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키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림 4]  훗날의 세조, 수양대군  ⓒ영화 홈페이지


   그러면 영화「관상」안에 담긴 매력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언급하듯이 이 영화의 첫 번째 매력은 시나리오 작가가 기울인 오랜 노력과 열정에서 뿜어져 나온다. 파리 8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한 김동혁 작가는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관상’이라는 독특한 시점을 적용하여 치밀하고 탄탄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난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시나리오마켓 한국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주어진 대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였음에도 이 영화가 새롭게 다가온 것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소재인 관상을 역사와 영화를 해석하는 새로운 도구로 활용하는 독창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영화의 두 번째 매력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관상은 매우 오래 된 것이며, 오늘날도 정치와 기업경영에서 이를 중시했다는 주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찍이 우리의 고대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던 불교는 부처님의 특징으로 32상과 80종호를 강조하였고, 유교 경전인 예기에서도 3대에 용모와 기색으로 사람을 취했다는 기록을 살필 수 있다.


   작가가 가진 역사적 상상력과 논리적 해석 능력이 창출한 세 번째 매력은 이 영화가 분명히 허구적 영화임에도 마치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조선의 정사인『조선왕조실록』의 편찬 과정과 원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실록에 실린 역사적 사실과 실록에 기재할 수 없는 내용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우는 삽입과 보간의 기술을 활용하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을 엿볼 수 있다. 황표정사, 전순의 등 소소한 내용까지 실록의 기사를 참고하면서 실록이나 여타의 사료에 나타나지 않은 부분을 상상력을 통해 메운 것을 역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매우 훌륭한 역사 창작물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영화「관상」은 천재 관상가로부터 관상의 본질을 엿들을 수 있고, 이는 관상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부정적 편견을 거두는 데도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觀象不如心象’이라고 한다든가, 내경이 그 아들을 향해 “눈은 마음의 표식이다. 얼굴의 상이 나쁜 방향으로 바뀌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한다. 나도 자식에게 뒤지지 않는 아비가 되어야겠다.”라는 독백을 통해 한 인간이며, 한 아비로서 관상을 공부한 이가 가질 수 있는 관상에 대한 최상의 경의를 읽어낼 수 있다.



[그림 5]  관상을 보는 내경  ⓒ영화 홈페이지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 내경의 관상에 대한 관점은 역사학 연구자에게도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 풍부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고, 생활사를 비롯한 한국사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촘촘하게 영화의 얼개 속에 녹여 놓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관상」은 한국사 연구자가 문화콘텐츠의 창작을 돕기 위해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는 인디케이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사학자들이 다루어온 천명, 심상, 정통론, 종법질서 등의 개념, 시호로서 조와 종의 부여 방식 등이 관상이나 민중의 관점에서 재해석될 때 단순한 개념 표상을 떠나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을 규정하는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해준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관상에 대해 자문한 한 관상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생각은 말을 만들고, 말은 행동을 만들며,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인격을 만든다. 인격이 달라지면 상이 바뀌고 운명도 바뀐다. 어제의 마음이 오늘의 얼굴이 되고, 오늘의 마음이 내일의 얼굴이 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분명히 좋은 상을 갖게 된다.”



개연성이 높은 주장으로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관상가가 말한 인간의 삶에서 역사학과 역사학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마도 영화「관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돌이켜 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것 같다. 김동혁 작가가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이 역사학의 연구 성과와 자료였듯이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상을 만들어주는 시발점으로서 생각의 꼬투리를 제공해주는 데 있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재미있는 영화를 즐기며 함께 역사적 상상력의 세계에 푹 빠져 보자.


*이 글은 영화의 공식 스틸컷을 저작권법에 맞게 인용하였습니다.*


※ 영화 스틸컷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