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를 다녀와서 (상)

BoardLang.text_date 2007.11.25 작성자 한승훈
페이스북으로 공유 X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밴드로 공유

영국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를 다녀와서 (상)


한승훈(근대사 1분과)


  이 글에서 저는 영국 런던 남부에 위치한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일상적인 고적답사의 내용과는 거리가 좀 멀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영국 국립문서보관소는 한국인 연구자들이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연구 활동에 매진했던 장소입니다. 현재에도 몇몇 분들이 그곳에서 조사 및 연구 활동 중에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35일 남짓 조사 활동을 수행했던 저로서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대해서 짧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조언을 통해서 저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조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부분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서술하기로 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짧은 조사 일정으로 인해, 일부 잘못되거나 누락되는 내용이 서술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저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리면서 글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1. 영국 입국과 조사를 위한 준비

  2007년 8월 15일 오후 5시 20분경, 저를 태운 비행기는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를 히드로 공항으로 장식했던 영화 Love Actually를 떠올리면서, 저는 런던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곧 저에게 다가올 살인적인 물가를 미처 상상하지도 못한 채 말이죠(물론 서울에서 밥보다 비싼 별다방이나 콩다방 커피를 마셔본 유경험자들에게는 런던에서의 살인적인 물가가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료 조사에 앞서서 저는 국제고려학회에서 주최한 제8차 국제학술토론회(8월 16일~18일, University of London, SOAS)에 참석했습니다. 학술대회 기간 동안 저는 영국의 거문도 점령사건의 근원에 대한 글을 발표했습니다. 

  이틀간의 학술발표를 마친 후, 저는 참가하신 선생님들과 함께 옥스퍼드 대학교가 위치한 옥스퍼드시를 답사할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고풍스러운 학교 건물들로 가득한 옥스퍼드 시의 전경들은 왜 옥스퍼드 대학교가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학문의 중심지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학회 일정이 끝난 후, 저는 미리 예약했던 사설 기숙사로 짐을 옮겼습니다. 제가 사용하기로 한 방은 원래 한국인 유학생이 사용하던 곳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유학생이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무르게 되어서, 저는 비교적 싼 가격에 런던 중심가(대영박물관과 SOAS 근처)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 기숙사 방에서 8월 20일부터 본격적으로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수행할 조사 활동에 대한 검토를 실시했습니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는 이용자들을 위해서 국가 기록 관련 사료들을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http://www.nationalarchives.gov.uk/)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트에서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뿐만 아니라, 영국 내 대학 도서관 등 각지에 산재되어 있는 국가관련 기록들에 대한 검색 결과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1)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 홈페이지

 한국과 일본 내 일부 기관들의 경우와 달리,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는 자료의 원문을 스캔해서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행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문서(집) 번호, 문서(집)가 위치한 곳, 문서(집) 생산 연도, 문서(집) 공개 연도(비공개 기간), 문서(집)의 제목 등의 기본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서지 사항들은 이미 한국에 있는 자료(집)의 목록들과 제가 찾으려는 자료들의 중복을 피하게 해 주는 충분한 정보들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영국으로 떠나기 전, 한국 내 소장 자료와 비교하면서 제가 찾고자 하는 자료 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2) 검색 결과 예시(검색어 : Corea)

  2. 조사활동의 시작

  8월 20일, 대학원 선배와 함께 영국 국립문서보관소로 향했습니다. 그 선배는 1년 동안 SOAS의 객원연구원으로 머물면서,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자료 조사를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선배 덕분에 저는 수월하게 런던 남부에 위치한 영국 국립문서보관소[Kew Garden Station]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영국 국립문서보관소는 런던 중심가에서 지하철(District Line)로 약 1시간 소요됩니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는 호수와 잔디밭으로 이루어진 작은 공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각종 새(비둘기 포함)들도 그 주변에서 평온함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 곳의 근방에는 영국 여행책자에 꼭 등장하는 왕립정원(Kew Garden)이 위치해 있습니다(그 곳에서 Kew Garden이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자연환경들은 연구활동으로 지친 이용객들에게 여유로운 휴식 공간으로 다가가는데 충분했습니다.


(사진 3·4)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 전경  (사진 출처www.mytimemachine.co.uk)

  정문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안내 데스크가 있습니다. 그리고 로비 좌측으로 가면 신규 이용자들에게 출입카드를 만들어 주는 데스크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 여권 등의 공인 신분증을 제출하고, 컴퓨터로 본인의 개인정보를 입력합니다. 

  그 후 본인의 순서가 되면, 컴퓨터용 화상카메라로 출입카드에 들어갈 증명사진을 찍습니다(한국에서는 화상카메라가 화상체팅에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국도 물론 그렇겠지만, 공공 기관-대학 도서관 포함-에서는 화상카메라로 출입증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과정을 마친 후, 1분 남짓 기다리면, 3년간 사용할 수 있는 출입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출입증을 받으면, 바로 자료실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료실 입구 우측에 위치한 사물함 보관소로 가서 개인의 짐들을 보관해야 합니다. 주로 가방과 점퍼(점퍼 전용 락카도 있습니다) 등을 사물함에 넣어 둡니다. 

  아울러 자료실에 가지고 갈 수 없는 물품(연필을 제외한 대부분의 필기구 반입 금지, 특히 지우개를 비롯해서 자료에 손상이 갈 수 있는 물품 반입 금지, 음식물 역시 반입 금지)들도 사물함에 넣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물함 보관소의 한견에 비치되어 있는 투명한 비닐 가방에 자료 조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넣습니다. 참고로 비닐 가방 안에는 연구 및 조사와 관련된 노트북, 도서, 카메라, 메모지, 연필, MP3, 외장하드 등을 넣어서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참고로 자료실에서 나올 때에는 노트북을 열어서 그 속에 자료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마치면 검색대를 통과해서 한국식으로 2층, 영국식으로 1층(First Floor)에 위치한 자료실(이하 2층으로 표기)로 이동합니다. 2층에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통해서 자료를 받아 볼 수 있습니다. 

  (1) Research Enquries Room에 있는 컴퓨터 및 자료 목록파일을 이용해서 자료를 검색 

  (2) 컴퓨터를 이용해서 금일 이용할 Main Document Reading Room의 좌석 번호를 지정
(개인 노트북 및 카메라를 사용할 것인가의 여부에 따라서 좌석의 위치가 달라짐)


  (3) 컴퓨터를 이용해서 원하는 자료를 신청(한번에 3개까지 총 20권(piece)을 대출할 수 있음; 즉 3권의 문서가 개인 사물함에 도착하면 다시 3권까지 문서를 신청할 수 있으며, 대출된 자료의 권수가 20을 넘을 수 없습니다. 하루 대출 총 권수가 20을 넘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하루에 다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직원에게 부탁을 해서 자료 열람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4) 자료가 Reading Room의 개인 사물함(좌석 번호로 구분)에 도착할 때까지 약 30분간 커피 등을 마시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기다립니다. 로비 한 켠에 있는 작은 서점과 기념품 가게에서 구경을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영국 국립문서보관소 내부 곳곳에 위치한 컴퓨터 모니터와 출입증 바코드 인식기를 통해서 신청 자료의 도착여부를 확인할 수 있음).

  (5) 모니터에 자료가 반출되어서 최종적으로 2층 Reading Room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나오면, 2층 개인사물함이 위치해 있는 곳(Document Collection)으로 이동. 

  (6) 개인 사물함에 자료가 있으면, 이를 반출해서 Main Document Reading Room의 개인 자리로 이동(박스로 되어 있는 자료는 1개, 도서로 되어 있는 자료는 3개까지 반출이 가능)

  (7) 해당 자료가 마이크로필름이라는 메모가 발견되면, 그 메모를 가지고 2층에 위치한 Microfilm&Fiche Reading Room으로 이동. 데스크에서 안내 직원이 마이크로필름 리더기좌석을 지정해 준 후, 마이크로필름을 인계.

** 영국 국립문서보관소 내에서는 이용객들을 위해서 무료로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물론 MSN 등 일부 서비스가 차단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무료라는 것이 매력적이더군요.


(사진 5) First Floor map


(사진 6) Research Enquries Room


(사진 7) Document Collection



(사진 8) Document Collection 맞은편에 위치한 Self 복사기


(사진 9) Main Document Reading Room의 개인 좌석


(사진 10) Main Document Reading Room 내에 있는 카메라 거치대


3. 자료 조사를 통해 느낀 점


  이상으로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자료조사를 위한 기본적인 절차를 설명했습니다. 위 절차들 중에서 출입증 카드 만들기와 마이크로필름을 읽는 경우를 제외한 모든 과정들을 연구자(이용객)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제도화가 되어 있습니다(그 이면에는 영국의 비싼 인건비도 한 몫을 했겠죠). 

  물론 자료 검색 등에서 의문이 생기거나, 혹은 신청한 자료가 도착하지 않을 경우에는 직원에게 문의를 하면 친절하게 해결해 줍니다. 

  저 역시 신청한 자료들이 모니터 상에서는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실제 사물함에는 없었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전자사전을 찾아가면서 뭐라 말할지 1시간 넘게 고민했을 텐데, 그 날이 귀국하기 하루 전날이었던지라 빨리 받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용감하게 담당 직원에게 되지도 않는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써가면서 저의 딱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일반 영국인들이 볼 때, 저의 말과 행동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의 직원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제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그 직원은 활짝 웃으면서 제가 원하던 자료집을 직접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100여년 된 영국 외교관 기록의 원본(가장 오래된 자료는 1884년 주한 영국총영사관 보고서였습니다)을 제 자리에서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료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서워 보이지만 그래도 친절한 직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곳은 기본적으로 이용자를 믿고 그 자료들을 자유롭게 보면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물론 한국의 대부분의 관련 기관에서도 이러한 환경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영어로 의사표현이 매우 서투른 관계로 모든 것이 두려웠던 저에게 편안하게 자료조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제가 원하는 모든 자료들을 디지털 카메라로 담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촬영한 개수에 따라서 직원의 확인을 거쳐서 요금을 지불해야 하거나, 하루에 찍을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습니다(왜냐하면 인터넷 사이트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정보만 제공할 뿐, 가격을 비롯한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거든요).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그 곳 직원들은 이용자가 찍은 자료가 몇 장이나 되는지 조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디지털로 담은 자료에 대해서 비용을 부과하지도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 곳에서는 이용자들에게 자료를 촬영하는데 편리함을 주기 위한 도구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8대의 카메라 거치대가 Main Document Reading Room 한 편에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두꺼운 자료집을 받칠 수 있는 각종 모양(자료집의 두께가 다양하기 때문)의 스펀지들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설들은 30여일의 조사 기간 동안 제가 10,000여 장의 개항기 한국관련 문서를 찍는데 편리함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국가기록원이나 미국, 일본 등 국가기록을 보관하는 기관에 가서 자료 조사활동을 수행한 경험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각 국의 기관들을 비교하면서 영국 국립문서보관소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적어도 영국의 국립문서보관소가 이용자 중심 서비스를 하며, 아울러 자료를 공개하는 전반적인 과정이 체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저의 짧은 영어로 인해서 이용자가 원하는 문서만을 정확히 찾아주는 능력을 갖춘 직원들이 있으며, 이러한 서비스를 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그 곳 직원들이 도와줄 수 있는 범위는 아마도 Research Enquries Room에 있는 컴퓨터와 자료 목록이 수록되어 있는 파일을 찾아 주는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11) Main Document Reading Room 내에 있는 카메라 거치대

(하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