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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2) : 애국 서사로의 귀결 (드라마 ‘미스터선샤인’) BoardLang.text_date 2018.10.14 작성자 김헌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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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보는 역사미스터 션샤인(2) : 애국 서사로의 귀결(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김헌주(근대사분과) * 17회까지 시청하고 작성한 원 글에 대한 보완 요청에 따라 드라마 후반부인 18~24회의 감상평을 이어서 연재한다. 4. 서사의 귀결점 : 민족과 애국지난 글에서 미스터 션샤인(이하 션샤인)을 ‘21세기형 신소설 서사’로 명명한 바 있다. 실제로 17회까지의 내용은 민족과 계급, 근대가 교차하는 맥락을 보여주는 구성이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후반부로 질주하면서 서사의 구도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드라마 중반까지 의병의 대의에 의문을 품던 유진이 점차 조선에 대해 애정을 가지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유진은 드라마 최고의 악당이며 의병탄압의 최선봉에 선 모리 다카시를 번번이 가로막고 결국 그를 살해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고애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그 이유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23회에서 나오는 의병대장 황은산과 나눈 대화에서 유진의 심경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네. 전 아직도 조선의 주권이 어디 있는지 관심 없습니다. 전 다만 그 여인이 제 은인들이 안 죽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계속 멀리 가보는데 그 길이 계속 겹칩니다. 의병이랑.” 24회에서도 유진은 스크럼을 짜면서 일본군 앞을 가로막고 애신을 지키는 한성주민들을 보면서 “저 여인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한 조선이 이제 저 여인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라고 독백한다. 이 대사들 속에서 유진의 연인과 은인에 대한 사랑이 애국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림1]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tvN 미스터션샤인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드라마 중반까지 애국에 대한 방향성을 뚜렷이 보여주지 않던 김희성과 쿠도 히나 역시 후반부로 오면서 민족주의적 색채를 드러낸다. 김희성은 글의 힘을 통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애국을 실천하려 한다. 20회에서 김희성은 “신문사를 차렸다고 들었소. 난 글의 힘을 믿지 않소.”라고 언급한 고애신의 비판에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오. 애국도 매국도.”라고 답한다. 마지막회 고문장면에서는 의병과 자신의 이름과 같이 불리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장면도 등장한다. 애국과 사적 이익 중 늘 후자를 선택하는 듯 보였던 쿠도 히나 또한 자신이 사랑한 구동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 상태에서 일본군이 호텔을 점령하고 태극기까지 내린 것을 본 순간 “이렇게까지 빼앗으면 울어야 하나, 조선의 독립에 발 한번 담가 봐?”라고 독백한다. 애국과 매국의 회색지대에 있던 이 두 사람의 민족주의적 전회는 드라마 후반부의 지향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애국 서사의 정점은 역시 고애신을 필두로 한 의병들의 모습이었다. 친일파 이완익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고애신에게 “나 하나 죽인다고 다 넘어간 조선이 구해지니?”라고 반문하지만 고애신은 “적어도 하루는 늦출 수 있지. 그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것이다.”라고 비장하게 대답한다. 또한 마지막회에서 의병이 일본군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의병장 황은산이 또박또박 내뱉은 대사는 애국 서사의 백미였다. “이길 수 있을까요?” “글쎄 말이다. 그렇다고 돌아서겠느냐?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질 것도 알고 이런 무기로 오래 못 버틸 것도 알지만 우린 싸워야지. 싸워서 알려줘야지. 우리가 여기 있었고 두려웠으나 끝까지 싸웠다고.” 5. 애국 서사에 가리워진 다양한 경로들드라마의 후반부가 다루고 있던 시기, 특히 1907년 이후의 시점에 전국적으로 항일의 열기가 뜨거웠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이 시기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일어섰던 주체들의 애국의 방식 또한 백화제방(百花齊放)이었다. 하지만 션샤인은 후반부를 전형적인 항일 애국 서사로 귀결시킴으로써 그 다양한 경로를 무화시켜버리고 말았다. 우선 고종의 사례를 살펴보자. 20회에서 충신 이정문은 고종에게 “부디 신을 칼날 삼으시고 백성과 함께 싸워주십시오.”라고 절규한다. 이에 고종은 “경은 오늘도 싸웠구려.”라고 격려한다. 아울러 의병임을 알고도 장승구를 경위원 총관으로 임명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비운의 군주이자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일본에 저항했던 고종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고종 황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매우 논쟁적이다. 광무개혁을 둘러싼 연구지형 또한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인간 고종의 모습을 명쾌하게 설명하긴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황제가 전권을 행사하는 대한국국제 하의 군주였던 고종이 생각하는 애국과 인민들이 생각하던 애국의 범위는 분명히 달랐다는 점이다. 을사조약과 병합조약에 명기된 바와 같이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면서 황실우대를 약속했다. 결국 이씨 왕족은 일본의 황공족으로 편입하면서 다수의 조선인과는 다른 안락한 삶을 살았다. 100년 전의 ‘애국’을 평가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21세기 한국인들이 비운의 황실 서사에 과도하게 몰입할 필요가 있을까. 더불어 당시 계몽운동 계열의 지향과 의병의 지향을 동일시한 부분 역시 문제적이다. 현재의 연구지형에서 계몽운동 계열의 지향과 의병의 지향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정설이다. 대한매일신보 등의 보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당대 한국언론에서 의병에 우호적인 보도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실력양성에 입각한 국권회복을 주장했던 계몽운동 계열의 지식인들은 대체적으로 의병의 노선에 부정적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대표적인 실력양성론자인 안창호가 유진에게 자신을 의병이라고 칭하는 장면이나 24화에서 언론인 김희성이 의병과 자신의 이름이 같이 불리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장면 등은 재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장면은 러일전쟁 이후 부터 모든 조선인들이 동일한 지향으로 저항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황성신문이 당시의 의병을 ‘폭도’라고까지 지칭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일원화는 당대 맥락을 거세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애국과 근대의 다양한 경로를 무화시킨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6. 여성캐릭터의 주체성 부여와 한계지점이 드라마에서 또 하나 돋보이는 것은 여성캐릭터가 극의 핵심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부모를 비명에 잃은 양반가 규수 고애신은 자신에게 놓여진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주체적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 여성임에도 의병이 되어 총을 쏘고, 가문에서 정한 정혼자와 파혼하고,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영어도 학습한다. 급기야 그는 노비 출신인 서양인유진 초이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는 인물이다. 9화에서 유진과 나눈 대화는 이러한 고애신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수나 놓으며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내 기억 속 조선의 사대부 여인들은 다 그리 살던데."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거사에 나갈 때마다 생각하오. 죽음의 무게에 대해. 그래서 정확히 쏘고 빨리 튀지. 봐서 알 텐데.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우린 이름도 얼굴도 없이 오직 의병이오. 그래서 우린 서로가 꼭 필요하오. 할아버님께는 잔인하나,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 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이렇듯 시종일관 극의 중심에는 주체적인 고애신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의병을 지휘하는 것은 고애신의 몫이었다는 측면에서 고애신에게 주체성이 부여되었으며 극의 핵심이 고애신임은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림2] 미스터 션샤인 '고애신'(tvN 미스터션샤인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결정적인 장면에서 남성 캐릭터의 헌신이 극을 좌우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구동매는 늘 고애신의 곁을 맴돌면서 그녀를 지켰고 결국 목숨까지 바친다. 유진은 시종일관 애신을 지키기 위해 모든 전력을 다했다. 특히 후반부에서 무신회 검객들에게 쫓기는 애신을 구하기 위해 주일미국공사관에 총을 쏘는 장면, 마지막 열차신에서 열차를 분리시키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장면 등은 모두 사랑하는 여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남성적 신파의 전형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개는 고애신에게 부여했던 주체성이 훼손되는 느낌도 있다. 왜 결정적 순간의 해결사는 애신이 아니라 유진이어야만 했을까? 또한 시종일관 국적과 가족마저 초월하며 냉철함을 잃지 않던 쿠도 히나라는 캐릭터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 완전히 무너지고 결국 구동매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중반부까지 부여했던 캐릭터를 너무나 전형적인 방식으로 해체한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모성, 사랑, 애국이라는 보편 감정 앞에 초연한 여성캐릭터의 마지막을 조금 다르게 그려낼 수는 없었을까. 시청률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배제한 가정이 무의미함을 알지만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가며작가인 김은숙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의 핵심은 대사이다. 애국과 사랑이라는 화학적 결합이 힘들어 보이는 두 가치가 내용 전개 속에서 절묘하게 뒤섞인다. 나쁘게 말하면 신파와 비장미의 극치이지만 뇌리에 강하게 꽂히는 절묘한 대사들이 백미이다. 그중에서도 이 드라마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대사, 삶의 끝자락에서 연인 애신에게 건넨 유진의 고백을 마지막으로 글을 맺는다. “이건 나의 히스토리이자 나의 러브스토리요. 그래서 가는 거요. 당신의 승리를 빌며 그대는 나아가시오. 나는 한 걸음 물러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