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교훈] 한국현대사의 선거, 그리고 2007년 대통령 선거

BoardLang.text_date 2007.01.26 작성자 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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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의 선거, 그리고 2007년 대통령 선거


박태균(현대사분과)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1987년 6월 항쟁 20년으로 제도적 민주화를 이룩한 지 20년이 되었으며, 1997년 금융위기로 사경을 헤맨 지 10년이 된 해에 맞게 된 대통령 선거라서 더 뜻 깊은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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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단체와 대중매체에서 6월 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와 연구성과를 싣고 있다. 그러나 왠지 이번 선거는 6월 항쟁 20주년보다는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구도 속에서 치루어지는 선거인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출범했고,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엄청나게 성장했건만, 개혁 세력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땅에 떨어졌고, 젊은이들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에 골몰하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가 번져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혁 세력이 국민들에게 전적인 지지를 받았던 적은 한국현대사를 통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개혁세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보수적이었던 민주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4.19 혁명이라는 열린 공간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고, 이후 40여년이 지나서야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그나마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의 출범 역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국민의 정부는 DJP 연합이 없었으면, 참여정부는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그리고 선거 전날 정몽준 후보의 후보 단일화 철회 선언이 없었다면, 출범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득표율도 50%에 미치지 못했다.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의 상징으로 몇 차례에 걸친 총선에서 야당의 바람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1958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약진했고, 1971년의 총선에서는 야당이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의석을 얻었으며, 국정감사를 실시하면서 집권 여당을 위협했다. 박정희 정부는 유신체제를 선언하면서 1971년 총선의 결과를 완전히 뒤집어 엎었지만, 1978년 총선에서 야당은 여당을 앞지르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1985년의 2,12 총선 또한 야당의 바람을 몰고 왔다. 그리고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혁신정당으로서는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했다. 민주노동당의 당 지지율도 전체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한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몇 차례에 걸친 총선에서 야당이나 개혁세력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과반수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여기에 더하여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개혁세력들은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지방주의나 관권의 개입을 고려한다면, 선거의 결과가 국민들의 지지 성향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없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조봉암 후보, 그리고 1971년의 김대중 후보의 득표에는 특히 관권의 개입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많은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현대사에서 개혁세력들은 항상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지금도 그 현상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사람은 본디 보수적이며, 변화를 싫어한다는 속설을 뒷받침하는 것일까? 특별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개혁세력들이 국민들로부터 많은 표를 받기는 어렵다. 이번 대통령 선거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지난 한국현대사와는 달리 현재 한국사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보수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 외에 개혁세력과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인터넷 매체들이 새로운 언론의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양극화의 문제, 부동산 문제 역시 보수세력보다는 개혁세력이 그 책임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이제 선거에 관권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왜 현재와 같이 개혁세력들이 힘을 못 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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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무능한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2006년 9월 13일자)

 

여기에는 다양한 진단이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개혁세력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현 사회문제를 심화시킨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개혁세력들이 장악했던 정부는 국민들의 개혁에 대한 희망을 반영하기보다는 기존의 보수세력과 타협을 선택했다. 아니 어쩌면 1997년 금융위기로 인해서 기존의 보수세력보다 더 자유주의적인 개혁을 선택했다. 이것이 개혁세력을 지지했던 국민들로 하여금 실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져다 준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린 열린우리당은 다시 지역주의 정당으로 돌아가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지방주의에서 벗어나겠다는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 보수정당과의 대연정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국민이 다수당을 만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물론 민생 현안들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당 내에서 파벌 간의 싸움만이 더 심해질 뿐이다. 사회 개혁을 위해 써야 할 연장들을 다 내주고 내부에서 땅따먹기만 하고 있으니,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개혁세력들이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리고 현 상황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들을 정책 대안으로 내놓지 못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56년 조봉암 후보가 극심한 관권의 개입과 부정개표 속에서도 어떻게 200만표를 넘는 득표를 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물론 이승만 정부에 대한 비판과 야당의 신익희 후보가 급서한데 따른 반사이익이 없지 않았겠지만, 당시 가장 중요한 핵심적 사안이었던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과연 무엇이 현실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개혁세력들이 고민하고 있는가?

야당이나 개혁세력들이 얻었던 지지는 결코 정책을 통해서 평가받은 내용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독재세력에 대한 국민의 염증으로 인한 반사 이익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객관적일 지도 모른다.

현재 보수세력들에 대한 높은 지지율 역시 보수세력의 정책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했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고 뉴라이트라는 새롭지도 않고 우익적이지도 않은 그룹이 나타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개혁세력들은 책임이 크다.

개혁세력들은 지금부터라도 한 걸음씩 사회적 과제들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아직도 1년이 넘는 기간이 남아 있다. 국회 내의 개혁세력들은 민주노동당을 합친다면 과반수를 넘고 있다.

국가보안법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KTX 여승무원들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국회 내의 개혁세력들이 한가롭게 집안 싸움할 시간이 없다.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기초를 놓아야 하며, 비핵화 선언 위반에 대해 항의해야 한다. 군대 개혁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FTA 협상이 졸속적으로 처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떨어진 신뢰도를 한걸음씩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언가 이벤트를 또 바란다면,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제 더 이상 반사이익을 통해서 집권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잔대가리’를 굴리면서 ‘꼼수’를 써서는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