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사람들] 유토피아와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

BoardLang.text_date 2004.07.27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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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와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


농민들의 역할이 본래 비극적이라고는 하지만, 역사상 농민들의 항쟁은 거의 한결같이 패배하여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싸웠다. 그들에게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반드시 진다고 믿는다면 애당초 싸울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힘과 용기를 준 건 이길 수도 있다는 아니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긴 다음 맞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도 한몫 했으리라. 또 싸우는 것이 정당하다는 신념도 용기를 배가시켰으리라.

19세기 ‘민란의 시기’에 우리 농민들에게는 이처럼 저항행위의 정당성,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믿음들이 있었다. 정감록이나 홍경래불사설,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 미륵신앙 등이 그것이었고 동학이 이를 집성하였다. 이것들 중 지금까지 잘 안 알려져 있고 그래서 좀 독특한 믿음이 있다. 바로 해도진인설이다. 해도진인설은 뭘까? 해도를 이상국가로 생각하고 거기서 어떤 영웅이 나타나 현세의 어려움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도대체 왜 이런 믿음이 나타났을까? 그리고 그런 믿음은 전혀 황당하기만 한 것일까? 물론 답은 ‘아니다.’이다.

상상력은 이성(理性)을 가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원초적 본능’이다. 그래서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이란 뜻으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하지 않았던가.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우리는 현실의 여러 가지 고통을 떠나 무한한 자유의 세계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상상(想像)에는 공상(空想)과 이상(理想)이 있다고 한다. 공상은 다만 현실로부터의 도피일 뿐이다. 그래서 망상(妄想)이 되기 쉽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해 ‘현실에 대한 개혁’에 도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상은 또 어디까지나 이상이다. 현실에 닥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에는 없지만 이론으로나마 실현 가능한 어떤 세상을 꿈꾼다. 이상사회, 그게 유토피아였다. 그런 상상은 토마스 모어(Tomas More, 1477~1535)가 시작했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U(없다)’와 ‘topos(장소)’의 복합어로 ‘어디에도 없는 땅’이란 말이다. 그러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있고 나아가 현실의 개혁의지도 담고 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뭔가 불안한 사회라는 뜻이다. 플라톤이 꿈꾼 ‘아틀란티스’도 아테네의 불안을 배경으로 한다.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토마스 모어의 시대도 그랬다. 르네상스로 새로운 희망에 들뜨지만, 역시 변화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던 때였다. 이때 사람들은 에덴의 낙원처럼 주어지는 유토피아가 아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창조하는 유토피아를 그리게 된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산업화 초기 영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 만들어낸 이상이었다. 양떼에 쫓겨난 농민들에게 주려 했던 이상사회였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유토피아를 그렸을까? 홍길동의 율도국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율도국은 “수십대를 전자전손(傳子傳孫)하여 덕화유행하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넉넉한” 그런 곳이었고, 홍길동이 새 왕으로 등극한 후는 나라가 태평하고 곡식이 잘 되며 사방에 일이 없는 그런 나라가 되었다. 이런 홍길동의 율도국 꿈을 안고 민중들에게 퍼져나간 또 다른 생각이 있었으니 바로 조선후기인 19세기 ‘민란의 시기’에 나타난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이었다.

해도진인설은 현실에서 태어난 이상이었다. 조선후기에 섬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개척의 땅이었고, 그래서 ‘살기 좋은 땅’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육지사람들이 보기에 섬은 불온한 집단이 사는 곳이었다. 섬에는 사람의 대열에도 끼지 못하는 천한 존재인 수군(水軍), 죄를 짓고 도망하거나 주인을 피해온 사람들, 그리고 유배되어온 반역죄인들이 살고 있었다. 한마디로 섬은 ‘반역향(反逆鄕)’이었다. 그래서 섬은 ‘살기 좋은 땅’이지만 ‘반역향’이었다.

이런 두 가지 인상은 묘하게 교차한다. 이제 민중을 구원할 진인을 찾는다면 육지의 봉건정부에 온통 불만을 갖고 있을 섬 사람 가운데서 찾는 게 제일 빨랐다. 그리고 섬은 이상사회로 보기에 하등 모자랄 게 없었다. 민중들이 생각해 낸 해도진인설은 이렇듯 공상이 아니었다. 섬의 현실에 토대를 둔, 그래서 육지의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이상이었다. 「홍길동전」에서 찾은 이상사회가 율도국이란 섬이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민중들의 믿음 속에 있었던 해도는 율도국이었고 진인은 홍길동이었다.

그러고 보니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역시 섬이었고, 모어의 유토피아 역시 섬이었다. 고립의 땅, 섬! 그래서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유포티아는 유토포스가 만들었다. 유토포스는 율도국의 홍길동 같은 사람이다. 우리의 역사에 나타난 유토포스는 다산 정약용을 꼽을 수 있다. 다산은 잘 알다시피 강진 땅에서 18년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보냈다. 그의 생각은 이곳 전라도 땅에서 무르익었다. 그런데 전라도 땅은 잘 알다시피 전형적인 농촌사회였다. 따라서 그가 생각한 이상사회는 농민들이 잘 사는 사회였다. 이를 위해 토지개혁을 이루고자 했다. 그의 대표적인 토지개혁 구상이 여전제(閭田制)였다. 여전제 사회란 30가구 정도로 여(閭)라는 단위를 이루어 여민이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하고, 그 수확물을 공동으로 나누어 갖는 이른바 공동체사회였다. 이와 같은 여전제 사회는 유토포스가 만든 유토피아의 모습과 기이하리만치 일치한다. 다산은 그 생각을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에서 했다. 강진은 서남해에 바둑알처럼 널려 있는 섬들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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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마량항>

 

인간 세계를 고해(苦海)라고 한다. 고통의 바다! 그 바다에 불쑥 솟은 섬은 피로에 지친 사람들을 쉬게 하는 이상사회가 아니었을까? 다도해를 품고 있는 서남지방의 미래 속에는 이런 유토피아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