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말 그리는 사람, 말 먹이는 사람, 덕흥리벽화분 벽화의 마굿간

BoardLang.text_date 2006.07.26 작성자 전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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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리는 사람, 말 먹이는 사람, 덕흥리벽화분 벽화의 마굿간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는 기마민족인 스키타이인에 대한 이미지로부터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과 일체가 되어 달려와 사람과 짐승을 붙잡아 평원 너머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그리스인에게는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말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인지 신화 속에서 켄타우로스는 술 마시고 싸우기 좋아하며 약탈을 즐기는 존재로 그려진다.

소를 쟁기 끄는 짐승 정도로 여기며 일정한 공간에 머물며 살던 사람들에게 말과 수레를 끌고 초원의 이곳저곳을 떠도는 삶은 이해되기도 어려웠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낯선 것이었다. 스키타이인처럼 몇날 며칠을 말 위에서 먹고 자며, 심지어 말의 정맥에 대롱을 꼽아 말의 피를 마시면서 전쟁에 나서는 사람들이 그리스인에게는 말 그대로 괴물로 보였을 것이다.

문명세계 전체를 하나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1세도 북방의 기마민족 스키타이인의 세계는 정복할 수 없었고, 항우와의 쟁패에 승리하여 통일중국의 새 황제로 등극했던 漢 高祖 유방도 흉노의 선우에게는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전한 무제의 명을 받은 장건이 20여 년에 걸친 서역행에 나선 것도 천리 길을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는 汗血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한의 병사들에게 흉노의 기병은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고 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은 북방 흉노의 남하 약탈의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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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안악3호분 벽화: 마구간

안악3호분 동쪽 곁방 서벽에는 마구간에서 건초 먹기에 바쁜 말 세 마리가 묘사되었다. 누르고, 붉고, 흰 말들은 구유를 향해 머리를 수그린 채 건초를 씹는데 열중하고 있다. 안장은 벗겨졌고 붉은 색 고삐는 주둥이 옆으로 늘어뜨려진 상태이다. 풍성한 갈기가 목과 어깨 앞부분을 덮었고, 다리는 짧고 튼튼하다. 재미있는 것은 누렁이는 눈길이 구유 안의 건초에 가 있지만, 붉은둥이는 주둥이는 구유를 향했지만 눈길은 옆의 누렁이쪽을 향한 듯하다는 사실이다. 두 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붉은둥이의 눈길이 아무 뜻 없이 곁을 향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흰둥이의 표정은 머리 부분이 지워져 알 수 없으나 옆의 두 마리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밥 챙기기에 바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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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덕흥리벽화분 벽화: 마구간

덕흥리벽화분 널방 남벽에 그려진 마구간에도 세 마리의 말이 등장하는데, 표정이나 자세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구유 앞에 나란히 서서 건초 먹기에 열중하는 모습은 안악3호분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나 구유가 말의 가슴팍 높이에 설치되어 있어 세 마리 말 모두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구유에 주둥이가 닿는다. 말의 큼직한 눈에는 별다른 표정이 담기지 않았고, 목덜미를 덮은 갈기도 그리 풍성한 편이 아니다. 어깨와 엉덩이가 두툼한 데 비해 네 다리는 짧고 가늘다. 과일나무 밑을 지나갈 정도로 작았다는 고구려의 果下馬라면 다리는 짧으면서도 굵고 갈기는 어깨를 덮을 정도여야 하지만 벽화 속의 말 세 마리는 이런 특징을 지니고 있지 않다.

벽화의 마구간 장면에서 오히려 눈길을 끄는 것은 말을 돌보는 사람들의 부산한 모습이다. 말 몸을 손보아주려는 듯 말 뒤에 서 있는 사람, 건초를 모으고 다듬는 듯이 보이는 마구간 뒤의 두 사람이 그들이다. 통 좁은 바지와 짧은 소매 저고리를 입은 것으로 보아 모두 말 돌보기를 도맡아하는 이 집 하인들일 것이다. 화가는 이들을 등장시켜 마구간의 말들이 늘 잘 돌보아야 하는 이 집의 귀중한 재산임을 알게 하려는 듯하다. 실제 당시의 좋은 말 한 마리의 값은 건장한 남자노비 몇을 살 수 있는 비용과 맞먹었다. 말은 전쟁과 사냥, 농사, 물품운반 등에 두루 쓰였고, 특별한 털빛을 지닌 것은 제의의 희생으로도 쓰였던 까닭이다. 안악3호분 벽화의 화가는 말이 지닌 이러한 가치와 의미를 염두에 두면서 마구간의 말들을 건장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그려내는 데에 필력을 모았다면, 덕흥리벽화분 벽화의 화가는 말을 돌보는 사람들을 함께 표현하여 말과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려 한 것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