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신화시대의 하늘세계 ②, 천왕지신총 벽화의 二頭獸 地神

BoardLang.text_date 2006.06.02 작성자 전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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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시대의 하늘세계 ②, 천왕지신총 벽화의 二頭獸 地神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환형동물인 지렁이는 자웅동체이다.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가 한 몸에 있다. 자체적인 교미가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번식이 존재의 목적이기도 한 생명체에게 이처럼 암수가 한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이 보기에 따라서는 이상적인 존재방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원생동물인 아메바처럼 개체가 둘로 나뉘면서 개체 수를 증가시키는 무성생식이 가능하다면 번식의 최종적 목적인 유전자 존속은 더욱 용이할 수 있다.

신화적 관념에서 특히 중시되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재생력이다. 우주만물이 현상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재생이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어떤 생명체가 신화세계의 일원으로 자리 잡으려면 먼저 강한 재생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신체의 구성 부분 가운데 본래 있어야 할 것보다 많은 수를 지닌 존재가 있다면 그 생명체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신화․전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더욱이 머리가 둘이거나 그 이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춘 신화적 존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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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천왕지신총 벽화: 地神

 

순천의 천왕지신총은 널방 천장고임에 그려진 기이한 모습의 새와 짐승으로 잘 알려진 벽화고분이다. 그림 활개와 실물 제궁, 소로로 구획된 천장고임 제1층의 8개 화면에는 天王, 地神, 千秋, 萬歲 등이 그려졌는데 하나 같이 평범한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 가운데 천장고임 북측에 자리한 地神은 몸이 하나이고 양쪽 끄트머리에 사람의 머리가 달린 신비한 형태로 그려졌다. 네발 달린 뱀을 연상시키는 몸을 뒤틀며 활처럼 휘게 한 상태에서 두 개의 머리는 둥근 호의 안쪽 아래에서 나란히 곧추 세워 앞을 보는 상태이다. 신으로서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함인 듯 머리에는 모두 네모진 관을 썼다.

一身兩頭의 길짐승 형태의 생명체는 남포의 덕흥리벽화분에도 보인다. 덕흥리벽화분 앞방 천장고임 북쪽 상단에는 몸의 양 끝에 각각 사람 머리가 달린 네 발 달린 길짐승이 등장하는데, 그 곁에 ‘地軸一身兩頭’라는 묵서가 있다. 파충류의 몸을 지닌 천왕지신총의 地神과 달리 덕흥리벽화분의 地軸은 몸의 형태상 특징이 포유류와 같고, 지신과 달리 지축의 사람 머리는 상투를 그대로 드러냈다. 지축은 말 그대로 땅을 제자리에 있게 하는 중심축이다. 축이 흔들리거나 부러지면 땅은 한가운데를 받치게 세워 놓은 거대한 기둥을 잃은 건물의 지붕처럼 그대로 내려앉거나, 기울거나 이지러지면서 제 모습을 잃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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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덕흥리벽화분 벽화: 地軸

 

표현방식의 세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마 이 지축과 지신은 동일한 신화적 관념이 형상화 된 결과물일 것이다. 지신 역시 그 존재의 출발은 땅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게 하는 신비한 힘, 또는 그 실체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덕흥리벽화분의 벽화가 408년경 제작되었고, 천왕지신총 벽화가 5세기 중엽 즈음에 그려졌음을 감안한다면 지신은 지축에 대한 신화적 인식이 보다 깊어지고 풍부해지면서 드러낸 지축의 또 다른 형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땅의 중심, 혹은 지상세계의 축이 지상에서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까닭에 예로부터 신화적 관념과 인식의 주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를 늘 염려했던 杞憂國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단층작용으로 땅이 어긋나며 무너지는 엄청난 사태를 직접 경험할 수도 있고, 소식으로 전해들을 수도 있었다. 지축은 그대로 있어야 하고, 지신은 땅이 온전히 있도록 늘 힘을 써야 했다. 사람들은 天王이 하늘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듯이 음양을 한 몸에 지닌 地神이 조화롭고 평정한 상태를 유지하여 주기를 기도하고 제사하면서 불안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천왕지신총 널방 천장고임 북측에 지신이 자리한 것은 생명의 나고 돌아감이 북쪽 먼 곳에서 이루어지듯이 세상의 중심, 땅의 축도 북쪽 멀리 보통 사람의 여행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북극성은 지축이 있는 자리를 알려주는 하늘의 표시로, 북두칠성은 세상 삶을 마친 사람의 영혼이 돌아가야 할 곳을 일러주는 안내판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고대 천문학에서 북두칠성은 북극성을 보좌하는 별자리로 인식되고 묘사된다는 사실이다. 혹 신화시대의 사람들은 영혼이 나고 드는 곳, 모든 생명의 씨앗이 담겨 있는 곳이 지축이고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가 지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