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이야기] 에돌아 가는 길

BoardLang.text_date 2007.12.26 작성자 홍순민
페이스북으로 공유 X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밴드로 공유

에돌아 가는 길


홍순민(중세사 2분과)



뱃길이 막혀 있으니 하는 수 없이 뱃길을 타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훗날로 뒤로 미루고 다시 육로를 탈 수 밖에 없다. 육로로 가더라도 외통길 48번 국도로 해서 냉큼 강화교를 건너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얀정없는 짓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강화 답사를 할 때 될 수 있으면 48번 국도를 타고 가 바로 강화 다리를 건너지 않으려 한다. 다른 길로 에둘러 두어 곳을 들러 간다.

서울서 88도로를 타고 가다가 보면 행주대교를 지나면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굽는다. 안쪽으로 급하게 돌면 김포공항과 김포읍으로 통하는 길이고 바깥 쪽으로 크게 돌면 부천 중동 신도시로 통하는 길이다. 바깥 쪽으로 돌아 조금 더 가면 오른 쪽으로 쓰레기 매립장 가는 길이 갈라진다. 그 길을 한 십여분 달리면 인천서 서구를 지나 검단으로 가는 305번 지방도로와 만나는데 오른 쪽으로 갈라져 이 도로를 탄다. 가다가 검단을 지나 양곡에서 왼편 우회도로로 해서 서쪽 대명리로 가는 352번 지방 도로로 좌회전하여 달린다. 그 길을 직진하여 끝까지 가면 대명 포구가 나온다. 서울서 쓰레기 매립장 가는 길로 들어서지 않고, 그냥 4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김포 읍을 지나 가다가 누산리에서 좌회전하면 352번 지방도로가 나오고, 그 길을 계속 직진하면 마찬가지로 양곡을 지나 대명리에 이른다.

대명은 인천 인근 연안에 살아 있는 거의 유일하다 할 포구다. 소래 지역 등 바다가 죄다 메꾸어지는 요즈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며 숭어, 망둥이에 병어, 밴댕이 같은 잡어들이 주종이지만 그래도 배에서 갓 내린 고기들을 만날 수 있어 대명리 가는 길은 휴일이면 차들로 가득 메워진다. 조만간 이 곳에 제2의 강화 다리가 놓인다 하니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를 곳이다. 대명 포구에서 건너다 보이는 곳이 초지다. 대명에서 건너다 보는 초지와 강화는 그 안에 바로 들어 가서 보는 것과는 다른 인상을 준다. 초지 너머로 전등사가 들어 있는 정족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마니산이 보인다. 왼편 쪽으로는 인천 앞바다, 영종도가 펼쳐져 있고, 오른편으로는 덕진진, 광성보로 염하가 흐른다. 배를 타고 갈 수 없는 염하를 이렇게라도 그 초입에서 한 번 만나는 보고자 하는 것이 대명 포구에 들르는 심사다.

대명 포구에서 한 1Km 쯤 되돌아 나오면 왼쪽으로 꼬부라지는 길이 있다. 그 길로 올라서자 마자 다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중 왼 쪽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농로를 따라 한 참을 쭉 들어가면 덕포진(德浦鎭)이 있다. 제법 넓게 주차장 시설도 해 놓았고, 너무 아담하기는 하지만 김포군에서 건립한 전시관도 있다. 전시관 서편 언덕을 올라 서면 염하다. 염하 가를 따라 조성된 둔덕, 사실은 둔덕이 아니라 해안가를 따라 방어용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지만, 토성을 따라 포와 총을 쏘는 진지가 만들어져 있다. 그 토성을 따라 끝에 이르면 염하를 향해 돌출한 지형이 나오고 그곳에 웬 커다란 무덤이 하나 있다. 묘비에 이르기를 '손돌장군지묘(孫乭將軍之墓)'. 손돌묘라고 하는 곳이다.

손돌묘에서 건너다 보면 바로 광성보요, 그 끝 염하로 돌출한 지형에 만들어진 작은 성이 바로 용두돈대이다. 뱃사공 손돌이 언제 장군이 되었는지, 그보다도 손돌이 실존 인물인지 어떤지도 의문이다. 이런 의문이야 풀 길이 없고, 아무튼 그곳에서 손돌이 전설을 한 번 되새겨 보고, 이 곳이 손돌목이라는 것만 확인하면 그 뿐이다. 더 나아가서 광성보에 가서 광성보를 보는 것보다 이렇게 손돌묘에서 광성보를 건너다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판단되어서 나는 손돌묘를 찾는다.

손돌묘에서 돌아 나와 아까 대명리에서 나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양곡 쪽으로 352번 도로를 다시 타지 않고 왼편으로 번호도 없는 길, 석정리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계속가면 오리정이라는 마을에서 다시 48번 국도와 만난다. 누구나 가는 그 길로 죽 가다가 강화 다리가 보이는 곳에서 그냥 강화다리로 들어서지 말고, 다시 오른편으로 꺾는다. 강화 다리가 낡아서 새 다리를 놓는 공사 현장으로 가는 길이다. 지금 버스나 트럭 등 큰 차들은 그 새 다리 공사용으로 놓은 임시 다리로 건너게 되어 있다. 그 임시 새 다리를 건너자는 게 아니라 그 길로 계속 직진한다. 그러면 왼편으로 염하를 끼고 오른 편으로는 꽤 큰 산을 감싸고 돌게 된다. 그 산이 문수산이다. 문수산에는 아까 다리 못미쳐 꼬부라지는 지점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염하 쪽을 바라보고 산성이 쌓여 있다. 문수산성이다. 문수산성은 조선 숙종 연간에 강화를 외호하는 전진 기지로 쌓은 성이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에는 염하 건너편 갑곶에 본진을 둔 프랑스 군에 맞서기 위한 조선군 본진이 들어섰던 곳이요, 이곳에서 한 차례 양군간에 접전도 벌어졌던 곳이다.

문수산을 감싸 도는 그 길을 계속 1.5Km 더 가다보면 오른편으로 성문이 하나 나온다. 문수산성의 북문이다. 문루(門樓)와 성벽이 무너지고 홍예만 간신히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그 문수산성 북문은 별 대단한 것이 없다. 그러나 굳이 그곳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문수산성의 한 자락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요, 그보다도 그곳에서 어디를 바라보고자 함이다. 문수산성 북문 문루에 올라가 북쪽을 바라보면 거기 염하가 끝나고 조강과 만나는 물길이 보인다. 아까 대명리에서 염하의 초입을 보고, 손돌묘에서 염하의 요충지를 보았으니, 이제 염하의 끝자락을 보고, 조강을 보고, 조강 너머 개풍군 이북 땅을 바라보자는 의도이다. 이렇게 하면 육로로 가면서도 뱃길 염하를 아쉬운대로 더듬어 본 폭이 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다.

대단히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지금 강화는 사실 시시하다. 거기에는 으리으리한 고층 빌딩도 없고, 어마어마한 공장도 없다. 그윽한 절도 없고, 그렇다고 그럴듯한 궁궐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대단한 절경, 짜릿한 놀이동산, 굉장한 음심점, 끝내주는 유흥장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강화를 보러 많이들 간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가고, 젊은이들도 가고, 중년 부부 가족도 가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간다. 관광 버스 타고 줄줄이 가기도 하고, 승용차로 휭하니 가기도 하고, 배낭메고 버스 타고 가기도 한다. 무엇을 보러 강화에 가는가. 그저 학교에서 가니까 따라 가기도 하고, 숙제 때문에 가기도 하고, 등산하러 가기도 하고, 데이트하러 가기도 하고, 관광차 가기도 한다. 어떤 목적으로 가든 강화는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면에 크게 감동시키지도 않는 듯싶다.

어느 곳 어떤 대상이나 그것을 볼 때는 그 대상의 성격에 따라 보는 법, 주안점과 마음가짐을 달리 갖게 마련이다. 설악산에 가서는 넉넉한 마음으로 경치를 볼 것이요, 박물관에 가서는 찬찬히 그 유물들의 아름다움과 특성을 관찰할 일이다. 교과서를 볼 때는 정신을 집중해서 그 뜻을 머리속에 넣을 것이요, 만화책을 볼 때는 슬슬 즐기며 넘기면 될 것이다. 그것을 뒤바꾸면 실패한다.

그렇다면 강화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경치를 볼 수도 있고, 유물 유적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강화에서는 무엇보다도 역사를 보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화는 우리 역사의 전시장이다. 단군할아버지 때부터, 아니 그 이전 먼 옛날부터 오늘까지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고인돌도 있고, 고려시대의 성과 무덤과 궁궐 흔적도 있고, 조선시대의 건물, 성곽도 있으며, 근대사의 격전장이 널려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다.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란 얼핏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다. 관심없이 지나치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현상의 갈피갈피를 뒤적여 옛날의 작은 흔적들을 찾아내고, 시시한 그 흔적들에 녹아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현상만을 보지 않고 현상 속에 녹아 있는 과거의 모습을 보려 애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연 이것이 제 모습인가, 왜 이렇게 남아 있는가를 따진다. 그러니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면 마음이 넉넉하지 않을 때가 많고, 힘들고 피곤할 때가 많다. 그냥 주욱 가면 쉬울 길을 이리저리 한 참을 에둘러 가며 사서 고생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 사는 모습, 앞으로 살아야 할 방향을 짚어 낼 수 없는 것을. 그러니 강화에 갈 때는, 대충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답사하러 갈 때는, 강화의 가장 큰 강점인 역사를 공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갈 때는 이미 나 있는 길을 편안히 앉아서 갈 것이 아니라, 살뜰한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길도 기웃거리며 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