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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사를 말한다①] 한국사 속의 생태환경사_이현숙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02.21 BoardLang.text_hits 26,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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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생태환경사를 말한다]
한국사 속의 생태환경사 이현숙(중세2분과) 환경사의 등장 환경사(Environmental History)라는 말이 역사학계에서 등장하여 한 유파를 이루기 시작한 것은 1976년 미국에서 환경사학회가 만들어진 이후였다. 미국에서 환경사가 가장 먼저 발달하게 된 것은 1962년 DDT 살충제의 생태계 파괴를 폭로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래 환경사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 주립대의 로드릭 내쉬(Roderick F. Nash)와 같은 선구적인 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999년 유럽에서 환경사학회가 결성되었고, 세계환경사학회에 참석하였던 20여 명의 동아시아 역사학자들이 모여서 2009년에 대만에 동아시아환경사학회를 결성하였다. 환경사는 19세기부터 발달한 생태학과 지리학, 그리고 고고학과 인류학을 그 기원으로 삼을 만큼 다양한 학제 간 연구를 넘나들어야 한다. 미국환경사학회 창립멤버였던 도널드 휴즈( J. Donald Hughes, 1932–2019)는 환경사란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상호관계의 역사”라고 설명하였다. 실제 그동안의 역사연구가 인간에게만 치중하여 자연의 변화가 인간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점을 간과해왔다. 한국사 연구자들이 생태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역사의 변화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 이태진 교수가 서구의 17세기 소빙기설을 받아들여 조선왕조실록에서 한국의 소빙기 사례들을 발굴한 일련의 연구가 그 최초라고 할 수 있다(「소빙기(1500-1750) 천변재이 연구와 『조선왕조실록』 : global history의 한 章」, 역사학보, 1996). 그러나 이에 대한 학계의 반발은 예상외로 거세었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한국역사연구회의 생태환경사반 탄생 환경사라는 생소한 분야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교원대 김동진 선생의 공이 크다. 호랑이 사냥을 전담하는 군대인 조선의 착호군(捉虎軍)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그는 생태환경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가다 2014년 5월 생태환경사반을 만들어 환경사에 관심이 있던 젊은 연구자들을 모았다. 1970년대 서구에서는 환경사라고 명명하였지만 새천년을 맞이하여 ‘생태(ecology)'라는 개념이 첨가되었던 것이다. 처음 모인 반원의 수는 10여 명이 넘어 생태환경사에 대한 한국사 연구자의 관심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 처음 1년 동안은 주로 생태환경과 관련된 자연과학 전공자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수의학, 지리학, 생물학 등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와서 흥미로운 강의를 해주었는데, 김동진 선생이 사비로 강의료를 지출한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2차년도부터 지금까지 생태환경과 관련된 주제의 책을 선정하여 함께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를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생태환경의 제반 특성과 변화 양상을 통해 조선시대를 이해하려는 김동진 선생의 노력은 조선의 생태환경사(푸른역사, 2017)로 결실을 보았다. 김동진, <조선의 생태환경사> (출전: 도서출판 푸른역사 홈페이지)
해외환경사학자와의 교류 한국에서 생태환경사라는 생소한 분야가 자리잡기까지 이태진 교수의 개척자적인 연구와 한국역사연구회의 지원 및 김동진 선생의 노력뿐 아니라 해외 환경사학자들과의 교류도 있었다. 그 가운데 도널드 휴즈는 얼마 전 세상을 타계하였기에, 그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이번 기회를 빌려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이는 내가 생태환경사를 하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나는 1994년 박사 마지막 학기에 이태진 교수의 수업을 들었는데, H. H Lamb의 Climate, History and the Modern World(1991년 간행본, 김종규 역『기후와 역사』, 2004)의 한 부분을 번역하고, 신라 멸망을 기후 변화 및 자연재해와 연관하여 기말 과제를 제출한 적이 있었다. 11월 말에 프랑스 파리로 이사를 하였기 때문에, 팩스로까지 굳이 과제를 받는 이태진 교수를 원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멸망을 환경의 변화와 관련하여 고찰한 글을 쓴 경험 때문인지, 2002년 신라의학사연구로 박사를 받은 뒤 질병의 변화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생태환경의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2011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영월군의 지원을 받아 개최하는 YY Forum에서 사무국장직을 맡게 되었던 나는 “세계환경사 연구 동향”이라는 세션을 만들어 해외에서 환경사 연구를 하는 학자들을 초청할 수 있었다. 명망이 있는 환경학자들을 섭외한 결과 미국의 도널드 휴즈와 독일의 프랑크 외쾨터 등 세계환경사학자들을 초청할 수 있었다. 도널드 휴즈 교수 (출처: 덴버대학교 교수 소개(https://portfolio.du.edu/dhughes))
휴즈 교수는 환경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서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고 하였다. 당시 만79세였던 그는 부인과 함께 왔는데, 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글을 공부했다며 박물관에 전시된 한글설명서를 소리 내어 읽을 정도로 언어 천재였다. 라틴어에 능숙하였던 그는 로마사를 강의하다가 지중해 지역의 고대 환경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휴즈 부부와 일주일 가까이 함께 다니게 되었는데, 어떻게 환경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는지 그 동기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휴즈 교수는 학부 전공이 생물학이었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과의 길항관계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고 연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인과 늘 손을 꼭 잡고 다니던 그는 여든 노인임에도 상대적으로 젊은 60대 후반 부인의 여행 가방까지 모두 들었던 로맨티스트이자 신사였다. 임진각 전망대에서 프랭크 외쾨터 교수(2017년 4월)
프랑크 외쾨터는 비교적 젊은 학자로서 당시는 독일에 있었는데, 그의 영어에 독일어 액센트가 없어서 물어보니 미국에서 상당기간을 지냈다고 하였다. 독일 환경사의 거두인 요하힘 라트카우의 제자로서 유럽 환경사의 신예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서울대 국사학과의 마일란 히트메넥과 영국 옥스퍼드 한국학과의 제임스 루이스 두 사람도 초청하였는데, 이들 모두 앞으로 환경사 연구를 하겠다고 해서 서구에서는 환경사가 인기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환경사 세션에 참가했던 해외학자들과 학술대회가 끝난 저녁, 영월의 동강 가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그들은 내게 한국학계에 환경사가 자리 잡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돕겠다고 하였다. 한국 전근대 시기 질병에 관한 일련의 논문을 쓰면서 이를 본격적으로 환경사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지 가늠이 안 서던 차에 나는 생태환경사반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생태환경사반의 활동 2015년 김동진 선생에 이어서 생태환경사반의 반장을 맡게 된 나는 우리 학습반의 첫 학술대회 주제로 “숲과 권력”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통사적인 접근이 가능하려면 사료가 많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나무와 숲 관련 자료가 풍부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사 전공자만의 생태환경사를 해나가기에는 힘에 부치는 면이 있었다. 생태환경의 변화는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사 속에서 생태환경사를 하려면 서양사와 동양사 연구자와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좀더 자유롭게 외연을 넓혀서 공동작업을 하기 위해 나는 따로 학회를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다행히 반원들이 호응해주어서 2015년 11월 한국생태환경사학회를 발족할 수 있었다. 물론 이로 인해 한국역사연구회 운영위원회에 참석하여 일의 전말에 대해 소상히 소명해야 하였다.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 소속 생태환경사반으로 시작되었으나 실제 생태환경사는 한국사라는 테두리에 가두기에는 너무 크다. 생태환경사 연구의 지면을 확보하기 위해 그해 12월 생태환경과 역사를 창간하여 매년 생태환경 관련하여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잡지가 창간되기까지 도날드 휴즈와 프랑크 외쾨터는 YY 포럼에서 발표하였던 자신의 논문을 실어주었으며, 축사까지 보내주었다. 도날드 휴즈와의 인연은 이메일로 지속되었는데, 부인이 탈을 모으는 것이 취미라고 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하회탈을 인삼 엑기스와 함께 보내준 적도 있었다. 최근 얼마 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 올해 2월 3일날 그가 영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와 일주일 동안 함께 하면서 환경사에 대해 나누었던 대화들을 나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환경사를 만들었던 1세대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계승자들로 인해 더욱 발전하고 있다. 프랑크 외쾨터는 영국 버밍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7년 4월 한국생태환경사학회 학술대회에도 직접 참가하여 “동서양의 숲과 권력”에 대해 발표를 해주었다. 그는 분단국 출신답게 남과 북이 대치 중인 비무장지대를 꼭 가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동아일보와 인터뷰했던 기사가 크게 나서 환경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릴 수 있었다. “숲과 권력”이라는 주제에 3년 동안 천착한 이후 우리는 “기후 변화”와 관련되어 드러나는 한국사의 양상을 찾아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서구의 관련 성과와 생소한 자연과학 논문들까지 함께 읽어내야 했다. 그러나 인문학과 사회과학뿐 아니라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까지 아울러 학제를 넘나들며 이루어지는 연구가 바로 생태환경사의 진정한 매력이다. 21세기 생태환경사를 해야 하는 이유 인간 역시 지구상의 생명체로서 1만 년 전 신석기 혁명으로 인간이 지구를 변화시키는 시기를 인류세라고 명명하고 있다. 생태환경사를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반성하게 된다. 이러한 점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된 경우도 있으나, 지구의 전 생명체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환경운동가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어느 학문보다 지행합일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생태환경사라고 하겠다. 내가 그동안 연구했던 의학사는 주로 의사와 한의사들과 함께 연구하기 때문에 건강이나 질병 관련 이야기를 나누게 되므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반해 생태환경사를 연구한 이래로 나는 동네 쓰레기를 줍게 되었으며,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축산의 결과물인 고기도 덜 먹으려 노력하거나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을 안 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 저절로 주변에서 유난 떤다는 눈총도 받게 되어 이러다 주화입마에 드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될 때도 있다. 내가 평소 무심코 해왔던 행위들이 지구 환경을 파괴했다는 점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또 반성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평생 문헌사학자로 골방에서 책만 읽으며 살아온 내게 생태환경사는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도널드 휴즈의 딸이 환경운동가가 된 것이 환경사학자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 것처럼, 프랑크 외쾨터가 환경운동도 함께 하는 연유는 생태환경사라는 학문이 진정한 실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0세기는 한국 역사상 가장 격렬한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풍요로워진 한국의 21세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태환경사는 이러한 물음에 답을 줄 수 있을 거 같다. 생태환경에 대한 과거 우리 선조들의 고민과 현재 우리의 고민 지점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가 한국사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면모를 규명함으로써 이것이 한국에서 생태환경 파괴를 늦추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인생을 걸고 연구해 볼 만 한 것이 생태환경사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