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기사

웹진기사 미디어 비평

남산의 부장은 왜 ‘유신’을 쏘았을까?_이휘현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02.22 BoardLang.text_hits 48,582
페이스북으로 공유 X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밴드로 공유
[미디어비평] 

 

남산의 부장은 왜 ‘유신’을 쏘았을까?


 

이휘현(현대사분과)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들어가며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대학 시절 있었던 이야기를 먼저 풀어볼까 한다. 대학 시절 친구와 동네를 산책하다 눈에 띄는 집이 있으면 들어가서 술을 한 잔 하곤 했는데, 어느 날은 보문동과 신설동 사이 위치한 해물탕 집에 들어갔다. 날이 추워서인지 기대보다 훨씬 맛있었고 그 뒤에도 종종 갔더랬다. 그러던 어느 주말 해물탕집에 함께 갔던 친구에게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그 해물탕집이 TV에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미인도 편》이었는데, 알고보니 그 해물탕집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던 바로 그날까지 살던 집이 있던 곳에 위치해 있었고 우리에게 친절히 대해주신 가게 아주머니가 그 집에 관해 인터뷰를 하고 계셨다. 꽤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김재규에 관해 크게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왠지 매년 10·26이 되면 그 집에 가 해물탕과 소주 한 잔을 한동안 제사지내듯 부시곤 했다.

습관처럼 10·26이 되면 항상 그 집에 가 여러 친구들과 술 한 잔하며 이야기를 하다보면 늘상 나오는 피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김재규는 대체 왜 박정희를 쏘았을까? 김재규는 어떤 사람일까? 등등. 박정희가 그의 심복에게 총에 맞아 사망한 날, 박정희를 쏜 이가 살았던 집에서 해물탕을 먹으며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딘가 굉장히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무도 저 질문에 대해서는 딱히 이렇다 할 만한 답은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썰들을 서로 나누며 추리하듯이 무언가를 꿰맞추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김재규 본인을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지 않겠냐는 말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리고 지금도 이게 정답이긴 할 것이다. 당시 박정희를 최측근에서 모시던 사람들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추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서 나름의 답을 내보려고 노력한 영화다. 김재규가 지금 돌아와 자신이 박정희를 왜 쏘았는지 답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영화는 사건 발생 40일 전부터 최대한 김재규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유신 시해자’ 김재규를 이해해보려 했다. 누군가는 김재규가 한국에 민주주의를 가져온 혁명가라 평가하기도 하고 자신을 아꼈던 상관을 살해한 배신자로 낙인찍거나 차지철과의 알력·갈등에서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평범한 인물이라는 등 그에 대한 평가는 서있는 입장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감독은 제작 취지에서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답을 내리기 보다는 최대한 여러 입장들을 고르게 보여주면서 인간 김재규의 ‘그날의 선택’을 이해해보려 했다고 밝혔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을 쏜 인간 김재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제 영화로 들어가보자.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남산의 부장들》 속 영화적 장치들, 팩트 체크


우선 영화를 보다 보면 놓칠 수 있는 설정들에 관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일단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박용갑)과 현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김규평)와의 관계다. 영화에서 이 둘은 굉장히 가까운 혁명동지로 설정되어 있다. 군사쿠데타에 성공한 후 열린 축하연에서 박정희에게 격려를 받고 있는 이 둘은 목숨을 걸고 쿠데타에 참여한 전우다. 영화에서 이 둘의 사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은 김형욱의 회고록을 회수하러 간 김재규가 김형욱과 워싱턴의 한 공원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김형욱) 왜 혁명하자고 했냐” “(김재규) 나는 니가 하자고 했으니까 했지.” “(김형욱) 내가? 니가 아니고?” “(김재규) 내가?” “(김형욱) XX.... 모르겠다.” 이 둘의 관계는 영화 전반부를 가로지는 김형욱 살해 공작과 이 과정에서 김재규가 겪은 내적 갈등과 분노를 설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장치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러나 사실 이 둘의 관계는 허구이다. 김재규는 1926년생 김형욱은 1925년생으로 연배는 비슷하지만, 김재규(육사 2기)는 김형욱(육사 8기)의 육사 선배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형욱은 5·16군사쿠데타에 참여한 혁명동지이지만 김재규는 5·16군사쿠데타 당시 미리 공모하지도 참여하지도 않았다. 물론 혁명동지가 아니더라도 김형욱과 김재규가 가까운 사이였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 둘의 관계는 거의 겹치지 않는다. 1963년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면서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김형욱은 1973년까지 군 생활을 하고 정권에 들어온 김재규와 활동영역이 거의 겹치지 않을뿐더러 김재규가 유신인사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1973년엔 이미 박정희에게 버림받아 미국에 망명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 영화 내에서 10·26 당시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지 친구도 죽인 놈이 어디서 고고한 척을 하고 있어?”라고 한 말은 만들어진 장치인 것이다.

별다른 의심 없이 영화를 쭉 본 관객들은 엥? 이게 설정이라고? 하면서 놀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만큼 김재규가 김형욱의 암살을 지시하고 이후 박정희의 반응을 보면서 치를 떨며 분노하는 장면들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중요한 계기 중 하나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영화 내에는 김재규의 내적 갈등과 분노를 설명하기 위한 허구적 장치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일단 앞서 말했듯 김재규가 군사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영화에서 그려지는 박정희와 김재규의 관계와 괴리를 만들어낸다. 영화에서 박정희와 김재규는 혁명동지이자 과거를 회상하며 술 한 잔할 수 있는 관계로 그려진다. 김재규는 그런 박정희를 존경하고 연민하며 분노한다. 물론 박정희와 김재규의 관계는 김재규와 김형욱와 달리 완전한 허구는 아니며 서로 긴밀한 관계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와 사실은 분명히 다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에서 개망나니로 그려지는 차지철(곽상천)과 김재규의 관계도 과장되어 있다. 김재규가 차지철보다 연배도 많고 군인으로서도 선배였으며 중령으로 전역한 차지철과는 달리 장성으로 전역했기 때문에 차지철을 자신보다 위로 봤을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자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중령이 중장으로 전역한 자신에게 따박따박 ‘김 부장’이라 부르며 하대하며 막나가는 꼴이 정말 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지철은 5·16군사쿠데타에 참여한 혁명동지이자 박정희가 총애하는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아무리 김재규가 차지철이 싫어도 대놓고 표현할 순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눈도 못 마주치는 개XX새끼가”라는 말을 내뱉으며 권총으로 차지철 뒤통수를 때리는 건 현실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이외에도 영화에서는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김형욱의 암살 건이나 미국의 압력 등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그럼 이제 김재규라는 인물을 살펴보자. 김재규는 경북 선산군 경북 선산군(現 경북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 출신이다. 즉 박정희 대통령과 동향이다. 1926년 태어나 1943년 안동공립농림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농업전문학교 중등교원양성소에 입학해서 1945년 수료한 뒤 일본국 특별 간부 후보생 출신으로 일본군 육군으로 짧은 군생활을 했다. 해방 이후에는 김천중학교에서 교직 생활하다가 1946년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박정희와 동기생으로 인연을 맺었다. 고향이 같을뿐더러 교사의 경력, 짧지만 일본군인 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둘은 여러모로 교감이 될 수 있을 만한 사이였고 연이 중요했던 당시 사회에서 당연하게도 이 둘은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때 맺어져 계속 이어진 이 둘의 인연은 이후에도 박정희가 김재규를 신뢰하는 중요한 배경이었다.

그러나 육사졸업 이후 둘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을 만한 사건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5·16군사쿠데타가 발생했던 당시 김재규는 국방부 총무과장(준장)으로서 앞서 말했듯이 쿠데타에는 전혀 가담하지 않았다. 쿠데타 이후 혁명군사령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부정사실이 발견되지 않아 석방되었고 이후 현역 장군 신분임에도 호남비료 사장에 임명되는 특혜를 누렸다. 이미 이때부터 김재규는 고향 형님인 박정희의 수혜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게다가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했던 1·21사태 이후 방첩부대장에 취임해 방첨부대를 보안사령부로 개편하고 초대 보안사령관으로 부임했는데, 1·21사태 이후 보안사령부가 갖게 된 위상을 고려하면 이 역시도 김재규가 군사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군사정부 아래에서 승승장구하는 군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군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김재규가 직접 박정희 군사정부에 복무하게 되는 시점은 유신체제 수립이후다. 1973년 육군 중장으로 전역한 김재규는 유신정우회 1기 국회의원으로 등장한 후 중앙정보부 차장으로 있다가 1974년 9월 건설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9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어 대한민국 정부의 2인자라고 불렸던 ‘남산의 부장’ 자리에 올랐다. 유신체제 수립이후 본격적으로 정권인사로 거듭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중앙정보부라는 부처의 수장, 즉 유신체제의 수호자 역할을 부여받았던 것은 김재규가 정권 내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이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어쩌다 ‘남산의 부장’이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출신과 이력, 인간관계 위에서 그가 내린 선택으로 유신체제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결코 유신체제의 어설픈 끄나풀이 아니었다.

 

《남산의 부장들》 이후, 여전히 남아있는 질문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이라면 기본적인 배경 설명 없이 10·26 이전 40일 간을 통해 김재규의 선택을 이해하려 하다 보니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거나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10·26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40일 간을 통해 이해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10·26이라는 엄청난 사건은 몇 가지 사건과 갈등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꾸준히 누적되어온 여러 가지 요인들이 중첩되어 발생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 의문들을 남긴다. 왜 차지철은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는가? 김재규와 차지철은 왜 저렇게까지 사이가 안 좋은걸까? 박정희는 왜 저렇게 찌질한 히스테리 노인처럼 행동할까? 김재규는 혁명에 대해서 정말로 어떻게 생각했을까? 특히 박정희란 인물은 말년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권력집착 싸이코패스처럼 그려진다. 정말 박정희는 그랬을까? 그랬다면 왜 그랬을까?

물론 박정희의 여자 편력, 히스테리, 과다한 분노표출 등등 육영수 사후 더 예민해진 박정희의 행동들을 통해 박정희가 다소 불안한 심리상태에 있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은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박정희의 모습은 그가 왜 저러는지 설명이 안 되는 채로 영화의 개연성을 위해 좀 과하게 망가져있다.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 “그 자식(김형욱)이 가져간 돈은? 내가 그자식이 있든 없든 뭔 상관이야. 어차피 배신자 새끼. 그 자식 가져간 돈이나 가져와.” 이 두 대사는 매우 인상적으로 박정희란 인물을 부수고 있는데, 반대로 이런 질문들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대체 저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18년이나 통치한 걸까? 어떻게 김재규는 저런 사람 아래서 저렇게 평생을 충성을 바쳐온 걸까? 저 사람의 진면목을 이제서야 알았다고? 바보 아니야?

그리고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혁명에 관한 질문이다. 영화에서 혁명이란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특히 김형욱이 김재규에게 던진 질문은 메아리처럼 영화 내내 울린다. “규평(김재규)아, 우리가 혁명을 왜 했어. 목숨걸고 혁명을 왜 했냐고.” “각하, 왜 혁명을 하셨습니까. 왜 우리가 목숨을 걸고 혁명을 했습니까. … 각하를 혁명의 배신자로 처단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실제로 김재규는 군사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영화에서 이 질문은 김재규가 왜 박정희를 쏘았는지에 대한 이유 중 하나로 엮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를 다 본 지금도 김재규나 김형욱, 박정희가 왜 혁명을 한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김재규는 영화 내내 무언가 혁명의 잘못된 지점을 바로 잡으려 혼자 노력하다가 그 안에서 결국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인다. 무얼 바로 잡으려 했던걸까? 김재규는 박정희를 쏜 이후 무얼하려 했던 것일까?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이에 대해 영화에서 뚜렷한 답을 내릴 수 없던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사실 그 점을 명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혁명에 관한 질문 역시 애매모호하게 뭉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김재규가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투사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가 생각한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이건간에 유신체제의 가장 중심에 있었던 이가 생각한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현재 시점에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자유민주주의와는 결을 달리할 것이다. 실제로 1979년 4월 크리스찬 아카데미 간사들을 고문하고 협박해 국제적 논란이 된 공안사건을 조작한 장본인이 바로 김재규였다. 육군 중장 초대 보안사령관 출신 김재규가 생각한 자유민주주의의 테두리는 유신체제와 범위는 다를 지언정 핵심은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 내용이 조금 다르더라도 크게 의미부여할 만큼의 내용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자, 그렇다면 이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남산의 부장 김재규는 대체 왜 유신의 심장 박정희를 쏘았을까?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다.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열망, 차지철과의 갈등, 미국의 사주, 분노에 의한 우발적 암살, 김영삼 지지설 등등. 소거법으로 제거한다면, 일단 김영삼 지지설은 개연성 부족으로 탈락, 우발적 암살은 그 이전부터 김재규가 심복들에게 거사에 관해 이야기해왔던 것으로 보아 단순 우발이라 보기 어려워 탈락, 미국의 사주는 너무 말이 안 돼서 탈락이다. 그럼 남은 것은 차지철과의 갈등, 민주화에 대한 요구, 박정희에 대한 실망과 분노 정도가 있을 것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이 세 가지 중 어딘가에서 헤매는 김재규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실 그 헤맴이 역사적 진실일 것이다.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역사가 어디있을까. 역사는 항상 여러 요인과 우연이 만나 만들어진다. 10·26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쨌건 리뷰를 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인 추리를 살짝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상상해 덧붙여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김재규가 차지철과 굉장한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기껏해야 중령 출신이자 약 10년 정도 아래 연배인 차지철의 안하무인인 행동을 김재규로서는 정말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차지철은 일부러 장성 출신 군인들을 더 아랫사람처럼 부리고자 했다. 두 번째 여기부터가 정말 추리의 영역인데, 김재규가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유지되는 방식에 불만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 막상 유신체제의 중심에 들어가 남산의 부장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자신이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역할과 박정희의 추악한 면모에 실망했을 수도 있다. 이때 발생하는 자괴감과 분노, 상황적 요인들이 합쳐져 10·26을 저질러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요인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 진실은 고인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나가며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흥미롭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은 영화다. 유신의 수호자가 유신의 심장을 쏜 역사적 사건을 영화로 그려냈다는 점, 이 소재 자체는 매우 흥미롭지만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여러 질문들을 영화가 남길 수밖에 없는 것은 영화가 더 이상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박정희와 관련된 사건을 소재로 다룬다는 것은 부담이 적지 않은 일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최대한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토대로 살짝의 영화적 장치들을 집어 넣어 잘 버무렸다. 만약 영화가 김재규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더 추가적인 장치나 상상력을 가미했다면, 김재규가 생각한 혁명의 본질과 자유민주주의에 관해 조금 더 설명을 집어넣었더라면, 미국의 압력을 조금 더 과장해서 그렸더라면, 제작진이 겪어야 할 후폭풍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박정희를 소재로 다룬 사건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실 영화에서 아쉬운 점을 이리저리 말하긴 했지만, 이 스토리를 이렇게나 긴장감 넘치고 밀도 있게 그려낸 영화는 없었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를 이렇게 그려내 그 시대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도 영화가 가진 큰 매력이다. 그 말이 사실이었든 아니든 영화에 나온 대사들과 사건들은 관객들이 이 시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영화를 본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영화 대사였던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하고 싶은 대로 해.”는 말 그대로 박정희의 비열하고도 야멸찬 이미지를 만들어냈으며 중앙정보부의 김형욱 암살은 그 시대의 엄혹함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박정희를 다룬 영화들이 더 많아지면 재밌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아도 한국현대사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비중은 매우 크다. 18년 간이나 한국사회의 정점에서 지도자 역할을 자임한 박정희가 1960~70년대 한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열쇠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부담이 되더라도 박정희라는 인물을 다시 이해해보려는 시도가 역사학이 아니더라도 새롭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박정희란 개인의 공과를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적으로든 문학적으로든 체제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을 여러 상상력을 동원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박정희 시대에 관한 논의의 장을 확대시킬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남산의 부장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도 김재규 부장이 아니라 박정희 각하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훨씬 더 많았다. 각하, 대체 말년에 왜 그러셨어요? 언제부터에요? 그게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