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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인 듯 섬이 아닌 신안군 답사기①] 암태도 소작쟁의 현장을 찾아서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02.22 BoardLang.text_hits 6,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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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1월(통권 13호)

[섬인 듯 섬이 아닌 신안군 답사기]

 

암태도 소작쟁의 현장을 찾아서


 

남기현(근대사분과)

 

 

 

천사(1004)섬 신안군


한국역사연구회 근대사분과 토지대장연구반에서는 매년 2회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답사가 가능하게 되면 한번, 소수의 인원으로 한정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마스크 착용, 손소독제의 수시 사용, 저녁시간 이후 모임을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2020년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전라남도 신안군 일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신안군은 전라남도 남서부에 위치해 있다. 신안군의 가장 큰 특색은 섬으로 이루어진 군이라는 점이다. 답사일정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신안군 홈페이지에 들어 가보니 ‘천사(1004)섬 신안’이라는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신안군은 약 1,02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무와 풀이 없는 섬을 제외하면 1,004개가 되기 때문에 ‘천사(1004)섬’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한다.

 

<사진 1> 신안군
(신안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shinan.go.kr/home/tour/guide/page.wscms)
 

답사 참가자들이 만나는 장소는 목포역이었다. 개인적으로 이상하게 가볼 기회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사정이 생겨서 가보지 못한 장소가 있다. 나라로는 일본, 국내지역으로는 목포이다. 이번 답사의 목적지가 목포는 아니지만 목포를 경유했다는 점에서 다음번에는 쉽게(?)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2> 호남선종착역을 알리는 조형물(@남기현)
 

목포역에서 선생님들을 만나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미리 예약해 놓은 렌터카 업체의 직원을 만나 차량 인수인계를 했다. 오후 2시경부터 본격적으로 답사가 시작되었다.

 

 

압해대교를 건너 압해읍으로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신안군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포에서 신안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2008년 목포시 연산동과 신안군 압해읍이 압해대교로 연결되면서 차를 이용하여 신안군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사진 3> 압해대교 전경(신안군홈페이지 http://www.shinan.go.kr/)


첫 답사 장소는 압해읍 분매리 숭의촌 일대였다. 이곳은 농지와 염전 등으로 이루어진 간척지구로 1967년 이후 경작자와 소유권을 인정받은 숭의학원 사이에서 격렬한 분쟁이 일어난 곳이다. 고아수용시설인 숭의학사의 이사장 김신근 목사는 1954년 매립면허를 취득한 후 1965년부터 농지에 대한 소유권을 각 농가로 이전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농지에 대한 소유권은 각 농가로 등기되지 않았고, 1967년 광주에 있는 숭의학원 명의로 등기가 되었다. 경작자들은 숭의학원 명의로 소유권이 확정된 것에 강하게 저항했다. 숭의농장의 사례는 일제시기 때부터 이어져온 간척지 매립 상황과 해방이후 진행된 정책과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진 4> 숭의촌 일대(@남기현)
 

숭의농장이 있던 곳을 따라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압해도와 가란도를 연결하는 다리인 가란대교가 설치되어 있다. 자동차가 다닐 만큼 큰 다리는 아니지만, 오토바이 혹은 자전거 등은 왕래할 수 있는 규모였다.
 

<사진 5> 가란대교 전경(@남기현)

 

 

암태도소작쟁의의 현장을 찾아가는 길


목포에서 압해도까지를 잇는 다리로 압해대교가 있다면, 압해도에서 암태도까지를 잇는 다리가 있다. 일명 천사대교로, 길이는 7,224m에 이른다. 2010년 9월에 착공했으며 2019년 4월에 개통했다.
 

<사진 6> 천사대교 전경(신안군홈페이지 http://www.shinan.go.kr/)
 

암태도에서는 다시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 지역들은 현재 행정구역상 신안군의 면(面)으로 편제되어 있다. 답사시간과 경로를 고려하여 안좌도, 암태도, 자은도 순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안좌도는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김환기(1913~1974)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김환기 고택을 방문했을 때 시간은 대략 오후 3시경이었다. 가옥은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낮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경관이 멋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 때문에 김환기라는 미술가가 성장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김환기가 살았던 당시 주변 환경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는 대화도 오고갔다. 1913년 시점에 김환기 고택 앞에 있는 나무가 울창한 산은 아마 민둥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정책 등을 고려해보면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7> 김환기 고택(@남기현)

 

 

암태도농민항쟁사적비


다음 답사장소는 암태도소작쟁의를 기념하는 공간이었다. 이번답사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암태도소작쟁의는 일제시기 가장 대표적인 농민항쟁이었다. 교과서, 개설서, 수험서 등에서 빠짐없이 소개되고 있다. 1924년 암태도 농민들은 문재철을 위시한 지주들의 과도한 소작료 징수에 항의하였다. 이들은 목포시내로 배를 타고 나가 적극적인 행동을 전개했다.
암태도소작쟁의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이 있었다. 암태도라는 섬에서 거대한 소작쟁의가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섬은 보통 바다와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농지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암태도는 농지가 넓게 펼쳐진 섬이었다. 따라서 해안 주변을 제외하고 섬 내부의 사람들은 농사를 주로 지으면서 생활했다. 답사를 통해 암태도에서 소작쟁의가 일어날 수 있었던 한 이유를 직접 확인 할 수 있었다.
 

<사진 8>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
 

암태도소작쟁의를 기념하는 탑의 이름은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이다. 기념탑의 주변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길게 솟은 탑에는 위에서부터 한자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 9>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우)(@남기현)
 

기념탑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오른쪽에는 탑명과 암태도소작쟁의에 관한 설명이, 중앙에는 기념탑건립위원들의 이름이, 왼쪽에는 암태도소작쟁의의 의의와, 1997년 8월에 기념탑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기념탑을 기념하는 글은 송기숙 교수가 썼다.
 

<사진 10>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중)(@남기현)
 

<사진 11>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좌)(@남기현)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과 주변을 살펴본 후 암태도와 추포도를 잇는 노두길을 걸었다. 노두길은 섬과 육지를 연결하기 위해 돌을 쌓아 길을 의미한다. 마침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이어서 노두길을 걸으면서 넓게 펼쳐진 갯벌을 볼 수 있었다.
 

<사진 12> 암태도-추포도 노두길(@남기현)
 

암태도를 거쳐 숙소가 있는 자은도로 향했다. 자은도로 들어갔을 때 이미 저녁 6시가 넘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숙소 근처에 있는 두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먼저 충혼탑이다. 충혼탑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지역민들을 기리기 위해 2000년에 건립되었다. 충혼탑의 형태가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을 축소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13> 충혼탑(@남기현)


답사 첫날의 마지막 방문지는 ‘무한의 다리’였다. 무한의 다리는 자은도 둔장해변에서 시작하는 인도교이다. 총 길이가 1004m에 이르며, 구리도, 고도, 할미도를 연결한다. 시간이 늦어서 끝까지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대규모로 펼쳐진 갯벌을 다리위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사진 14> 무한의 다리(@남기현)
 

<사진 15> 무한의 다리에서 본 전경(@남기현)
 

답사를 하는 날은 언제나 평상시보다 시간이 몇 배는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다음날은 아직 다리가 놓이지 않은 신안군의 섬을 방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