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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참관기] 제1회 저작비평회 《정조시대를 다시묻다》_김성희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1.07.06 BoardLang.text_hits 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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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7월(통권 19호)

[학술회의 참관기] 

 

정조 시대를 다시 묻다


 

김성희(중세 2분과)


 

일시 : 2021년 6월 3일(목) 15:00 ~ 18:00
장소 : 한국역사연구회 회의실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6월 3일 오후, 제1회 한국역사연구회 저작비평회가 개최되었다. 이날의 행사는 2020년 11월에 발간된 ‘정조학 총서(휴머니스트)’의 저자와 함께 연구의 지향점과 각 권의 내용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자리였다. 경인교육대학교 김호 선생님 등 네 분의 연구자들은 2015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총서사업의 지원을 받아 6년간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간의 노력이 정조학 총서의 간행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총서 각 권의 저자와 제목은 다음과 같다.

총서 1. 정조의 문치 / 글쓰기로 인의의 정치를 펴다 [백승호 (한남대학교)]
총서 2. 정조의 무치 / 문무를 갖춘 완전한 나라를 꿈꾸다 [허태구 (가톨릭대학교)])
총서 3. 정조의 예치 / 예를 바로잡아 백성의 마음을 기르다 [김지영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총서 4. 정조의 법치 / 법의 저울로 세상의 바름을 살피다 [김호 (경인교육대학교)]

이 총서는 흔히 계몽군주로 알려진 정조의 말과 행동을 그가 살았던 18세기 후반 조선이라는 역사적 맥락 위에서 재해석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오랜 기간 이 시기의 역사상에 착목하여 연구를 진행해 오신 저자 네 분이 각기 전문 분야인 문학‧군사‧예제‧법제를 주제로 설정하고, 관련 사료를 통해 정조와 그의 시대를 새롭게 조명하였다.

저작비평회의 사회를 준비하면서 둘러보니 총서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상당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정조가 지닌 위상이 워낙 높고 그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심대한 덕분이리라. 작년 말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등에 게재된 신간 소개 기사에는 하나같이 ‘계몽군주가 아닌 철저한 성리학 신봉자 정조’를 새롭게 ‘발견’하였다는 소식이 특필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정조에 대한 기왕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그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저술된 총서이니만큼 낯설음과 호기심의 눈빛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총서의 저자 네 분을 한 자리에 모셔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는 이번 저작비평회를 통해 저서의 행간에 스며있는 깊은 고민의 결과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을 것이라 기대하였다.

저작비평회는 총서의 대표 저자이신 김호 선생님께서 총서의 기획 의도와 저술 방향을 설명한 후 『정조의 법치』에 대해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백승호 선생님과 허태구 선생님, 그리고 김지영 선생님께서 각 권의 내용을 차례로 요약‧소개하고, 각자의 문제의식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저자들의 발제에 대한 약정토론은 단국대학교 김문식 선생님과 인하대학교 우경섭 선생님께서 맡아주셨다. 김문식 선생님이 먼저 『정조의 문치』와 『정조의 예치』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셨고, 다음으로 우경섭 선생님이 『정조의 무치』와 『정조의 법치』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셨다. 사회를 보면서 틈틈이 정리한 발제 및 토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네 분의 저자께서는 사료에 담긴 정조의 말과 행동을 당대의 맥락 위에서 해석한다는 기본적 입장을 공유하면서 연구의 출발선에 섰다. ‘정조학’이라는 총서의 제목에도 이와 같은 태도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조를 바라보는 오늘 우리의 시선은 곧 ‘근대의 문턱에서 좌절한’ 조선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울분의 정서와 그 맥이 닿아있다. 나아가 성리학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 보는 식민지 시기 이래의 부정적인 시각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간 학계에서 개진된 다양한 노력을 통해 조선을 바라보는 근대주의적 시각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지만, 계몽군주로 상정된 정조에 대한 일반의 관념은 아직도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실제 역사상과도 여전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적인 필요가 아닌 당대적인 맥락 위에서 정조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곧 조선을 새롭게 이해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걸음은 결국 ‘성리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로 통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인들의 사유체계에 스며들어있던 성리학적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각기 문치와 무치, 예치와 법치라는 영역에서 개진되었던 정황을 설명하고 있는 정조학 총서는 곧 위의 질문에 대한 저자 네 분의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무위이치(無爲而治)의 형정론’을 지향하고, ‘문학을 통한 성리학적 세계관’을 구현하였으며, ‘문무겸전(文武兼全)을 기초로 한 외교국방론’을 펼치고, ‘수신제가에서 치국평천하에 이르는 예교론’을 설파하고자 하였던 정조의 노력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실학’의 시대를 연 계몽군주가 아닌 ’정학‘을 철저히 신봉하였던 정조의 모습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는지는 미지수이다. 어쩌면 거친 반응이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총서의 간행으로 촉발될 논쟁은 현재의 필요, 혹은 욕망에 따라 과거를 소환하고 ’발견‘하는 현재의 역사 소비 행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근대주의라는 낡은 사유방식 아래 정체와 사대 그리고 당쟁의 이야기를 아직도 되풀이하고 있는 학계 일부의 조선시대사 서술 관행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 시의성이 높다고 진단한 우경섭 선생님의 논평 또한 이 같은 총서의 의의를 가리키고 있다.

다만, 이같이 높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총서에 대한 아쉬움 또한 날카롭게 지적되었다. 김문식 선생님은 새롭게 제시된 ’정조학‘의 개념에 대한 보다 더욱 구체적인 설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그리고 문‧무‧예‧법 네 방면에 걸친 정조의 노력이 사회의 각 방면까지 어떻게 전파되고 무슨 영향을 끼쳤으며, 나아가 18세기 후반 이후 조선의 역사상 형성에 어떠한 기여를 하였는지 개연성 있는 설명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우경섭 선생님 또한 정치권력과 사상권력 양면에서 전개되었던 정조의 전일적 통치가 ’사대부의 자발성‘을 전제로 하는 성리학적 체제 위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었는지, 나아가 정조와 그의 시대를 성리학이라는 틀 안에서만 설명하려는 시도가 합당한지 그 여부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셨다.

이날의 토론은 한정된 지면에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은 수준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총서의 발간이 촉발할 논의의 범주 확장 가능성과 필요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총서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고, 관련 논의의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논저를 떠올려보았다.

먼저, 실학과 북학, 그리고 성리학에 대한 근대 이래의 관념이 형성되어 온 과정을 살펴보고자 새롭게 연구사 정리를 진행하고 계시는 허태용 선생님의 최근 연구에 눈길이 간다. 특히 근간 「‘성리학 대 실학’이라는 사상사 구도의 기원과 전개」(『한국사상사학』 67집, 2021)는 정조학 총서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만한 논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역시 근자에 출간된 강지은 선생님의 『새로 쓰는 17세기 조선 유학사』(푸른역사, 2021)는 정조의 시대로 흘러가는 조선 성리학 역사의 물결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저작이다.

이날의 저작비평회는 여러 측면에서 최초의 의미를 지닌 행사였다. 우선 한국역사연구회에서 ‘저작비평회’라는 형식으로 마련한 첫 번째 학술모임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더구나 개별 저작이 아닌 총서 시리즈 전체를 대상으로 설정하고, 총서의 저자 네 분을 한 자리에 모셔 집중적인 토론을 진행하는 자리였던 만큼 그 논의의 깊이가 남달랐다. 아울러 이날 진행된 토론을 바탕으로 『역사와 현실』에 정조학 총서에 대한 서평이 게재될 계획이므로, 학술 현장의 생생한 논의가 지면으로 정리되어 가는 과정에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높다고 생각한다.

※ 금년 12월호 『역사와 현실』에 정조학 총서에 대한 우경섭 선생님의 서평이 수록될 예정이다-

다음으로 COVID-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저작비평회 현장을 ZOOM 화상회의와 유튜브로 연결하여 진행한 행사였다는 점 또한 연구회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오프라인 현장에는 저작비평회를 진행할 사회자와 총서의 저자 네 분, 그리고 연구위원장 배석만 선생님과 웹진위 간사 전효진 선생님 등 최소 인원만이 모여 감염병 예방 수칙 준수에 만전을 기하였다. 토론자 두 분을 비롯한 청중께서는 온라인상에서 저작비평회에 참석하였다. 유튜브를 통해 160여 분, 화상회의를 통해 40여 분이 행사에 함께 하셨으니, 흥행(?) 성적 또한 유례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참석자의 열의와 저작비평회의 높은 수준에 비해 온‧오프라인을 병행하여 행사를 진행하기에 연구회의 데이터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온라인으로 회의 장면을 송출하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데이터가 소모되었던 탓에 중간중간 영상이 끊어지고 음성이 뭉개지는 등 진행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청중이 함께 참여하는 자유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약정토론을 위주로 논의가 진행된 것은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네 분의 저자와 두 분의 토론자께서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까지 열띤 논의를 펼쳐주시고, 많은 선생님들께서 온라인을 통해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덕분에 아쉬움보다는 보람이 훨씬 컸던 저작비평회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지면을 빌려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사회자의 소임을 마치고자 한다.

 

* 제1회 한국역사연구회 저작비평회 《정조시대를 다시묻다》(2021. 6. 3.) 다시보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