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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126호) 시론] 계속되는 역사교육의 정치도구화, 퇴행하는 역사교육 논쟁, 그리고 역사학계_이신철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3.01.18 BoardLang.text_hits 1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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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3년 1월(통권 37호)

[『역사와 현실』(126호) 시론] 

 

역사과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며


 

이신철(아시아평화화역사연구소)


 

1. 2011 복기

2011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1)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를 통해 새로운 교육과정을 발표하였다. 이는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시작된 교과서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권력에 의해 진행된 교육과정 개정 결과였다.

당시는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집필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검정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지만, 새로 들어선 정부는 새 교육과정 총론을 발표해 ‘역사’과목을 없애고 ‘한국사’로 대체했다. 심사 중인 교과서의 제목이 바뀐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고, 법적으로도 위법의 소지가 다분했지만, 새 정부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11월에 검정 출원된 『역사』 교과서는 이듬해 5월 6일 『한국사』 교과서로 검정 통과되었다. 1개월 이내에 현대사 한 장을 줄이고, 전근대 두 개 장을 보강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5월 12일 ‘한국사’ 과목에 대한 개정 교육과정이 발표되었다. 이미 검정 결과가 나왔는데, 그보다 뒤늦게 만들어진 교육과정에 맞춰 교과서를 수정해야하는 비상식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더불어 역사과 2007 개정 교육과정은 시행도 못해보고 사라졌고,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2011년 2월 교과부는 ‘역사 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설치했다. 위원장은 당시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배용이었다. 위원장의 일성은 “이념편향, 자학 바로잡겠다”였다.2) 그리고 3월에 국편 산하 ‘역사 교육과정 개발정책연구위원회’(이하 개발위)를 설치해 교육과정의 실질적 개발을 담당시켰다. 그리고 여론을 달래기 위해 정부는 한국사 필수과목화를 발표했다.

같은 해 6월 30일 역사 교육과정 개정 공청회가 개최되었고, 2011년 생긴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한국현대사학회라는 단체에서 「2011 역사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한국현대사학회’의 건의안」을 국편에 제출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명시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3) 보수단체들의 여론몰이가 이어졌지만, 7월 15일 개발위는 교육과정 최종안을 제출했고, 여기에는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포함되지 않았다.

19일 ‘사회(역사)과 교육과정 심의회’가 개최되었다. 심의회에 참여한 한국현대사학회 관계자 한 명이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삽입할 것을 제기했지만, 그에 대한 별다른 호응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4) 그리고 일주일 후인 26일 교과부는 추진위(부위원장 참석)와 국편(편사부장), 한국현대사학회(회장)가 참여하는 회의를 만들었고, 28일 국편은 한국현대사학회의 건의안 17개 중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비롯한 5개를 수용한다고 발표했다. 2011년 8월 9일 교과부는 민주주의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한 ‘2009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개발위원회는 물론이고,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작성하기 위해 8월에 구성된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 개발위원회’마저 강력 반발하고 교육과정 개발위원 대다수와 집필기준 개발위원의 일부가 사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방적 교육과정 수정은 철회되지 않았다. 이 같은 논쟁은 이후 주지하다시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을 거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파동’까지 이어졌고, 결국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정권 몰락의 한 요인으로까지 작용하게 되었다.

 

2. 2022 현재

2022년 12월 22일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최종 확정 발표되었다. 역사과 교육과정에는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 성취기준 및 해설에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가 들어가고, 중학교 역사과목 해설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명기되었다. 애초에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팀’의 시안에는 없던 내용이다. 연구팀의 시안은 9월 30일 공청회를 앞두고 8월 30일부터 교과부가 개설한 웹사이트 ‘국민참여소통채널’을 통해 다른 과목들의 시안과 함께 공개되었다. 9월 13일까지 개설된 이 사이트를 통해 전체 7,860건의 의견이 제출되었고, 그 중 사회(1,361), 도덕(1,076), 역사(715) 관련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총론과 사회과로 제출된 의견의 상당수가 역사관련 의견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역사관련 의견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역사관련 의견은 연구팀의 시안을 지지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6・25 남침 수록’,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지 말라’, ‘대한민국 건국 명기’ 등의 의견이 많았다.5)

연구팀은 이 중에 ‘6・25 남침’, ‘8・15 광복’ 등의 표현을 넣으라는 요구는 수용하였지만,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건국 표현은 수용하지 않았다. 9월 30일 공청회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한 2차 시안이 발표되었다. 공청회장에는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건국을 표기하라는 고성이 난무했다.6)

10월 14일 역사과 교육과정 심의회가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 용어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그런데 교육부는 11월 9일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일부 수정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행정예고 했다. 당연히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교육부는 자체 수정안에 대해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회에서 동의를 얻었다고 해명했다.7) 교육부는 회의에 참석한 위원 가운데 1명을 뺀 대다수가 교육부 안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7일 열린 운영위원회에서 참석위원들은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한쪽을 고집할 게 아니고 집필진(연구진) 스스로 문맥에 맞게 두 가지 표현을 알아서 쓸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자는데 동의한 것이었지, 교육부가 연구진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고쳐도 된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억지로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끼워 넣은 행정예고안을 보고 교육부에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는 한 심의회 운영위원의 증언이 보도되면서 교육부의 해명이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또 이 신문은 10월 10일 열린 연구팀 회의에 교육부 관계자들이 참석해 “이젠 정치의 시간”이라며 자유민주의 표현 삽입과 전근대 비중을 늘리라는 압박을 가했던 사실도 보도했다.8)

행정예고안 문제는 12월 2일 개최된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연구팀의 의사를 무시하고, 역사과 교육과정 심의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음에도 교육부가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10.14.)에서도 ‘자유’의 가치를 반영한 용어 수록 여부 등을 논의하였고, 연구진 시안의 ‘민주주의’ 용어를 지지하는 위원도 있었지만 서면의견을 제출한 위원 중 관련 의견을 명확히 개진하지 않은 위원도 있었”9)다고 설명자료를 배포한 것에 대한 항의가 이어졌다. 긴 논의 끝에 참석자 중 한 명만이 현실적 한계를 이유로 들어, 자유민주주의 용어 사용 찬성 발언을 하였고, 나머지 위원들은 모두 반대의사를 밝혔다.

연구팀과 심의회 위원 절대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수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행정예고 기간 동안 관련 학회 등에서 전근대사 비중을 확대하라고 요구한다며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에 전근대사 성취기준 3개를 일방적으로 추가했다. 이 수정안은 12월 6일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로 넘겼다. 12월 9일 개최된 국교위에서는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 표현에서 의견을 좁히지 못하였고, 재논의가 결정되었다.10) 14일 다시 열린 국교위에서는 "'추가 토론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무시하고 이배용 위원장이 일방적 강행 처리를 시도해 정상적인 심의・의결이 어렵다"며 일부 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교육부의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이에따라 교육부는 최종 교육과정 개정안을 22일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3. 11년의 간극, 반복되는 정치개입

2011년과 2022년에 진행된 일련의 과정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최대 쟁점이 ‘자유민주주의’ 용어 사용의 문제라는 점이다. 물론 이 외에도 ‘대한민국 건국’ 용어 사용, ‘6・25남침’, ‘4・3사건’, ‘5・18민주화운동’의 교육과정 적시 문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되었지만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 되지 않았다. 보수단체들이 주로 제기한 ‘건국’ 문제는 임시정부의 위상 문제와 결부되어 대중적 거부감이 적지 않았고, 6・25남침 표기 문제는 북침을 주장하거나 남침을 부정하는 교과서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취해진 정치 공세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계속 문제가 될 여지가 적었다. 이슬람 문제는 주로 종교적 이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적 지지가 크지 않았다.

진보단체들이 주로 제기한 4・3사건이나 5・18민주화운동 누락 문제는 교육과정을 최대한 간략하게 작성한다는 ‘대강화’ 원칙에 따른 것으로 실제로 교과서에서 누락될 가능성은 크지 않고, 실제로도 아직까지 이들 사건을 누락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정치 공세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독 ‘자유민주주의’ 문제가 11년 전과 마찬가지의 공방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것이 지독히 이념적이고, 남한 자체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인민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북한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할 의무를 가르쳐야 한다는, 지극히 냉전적이며 정치적인 선동이 대중들에게 일정하게 먹혀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팀의 의견이 무시되고, 심지어 역사과 교육과정 심의회의 의견마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교육과정의 최종 결정 권한이 교육부 장관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정권에 따라 다른 정치 성향의 인사가 임명되는 장관의 의사에 따라 교육과정의 중요사항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이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수 십 명의 전문가들이 연구와 심의를 거쳐 내놓은 교육과정을 장관이라는 한 정치가가 인정하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세 번째 공통점은 교육과정을 결정하는 정점에 2011년에도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있었고, 2022년에도 그가 교육부 장관으로 있다는 점, 그리고 실무적 최고 결정권자의 위치에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2011년 당시 역사 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이 그때도 지금도 같은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이주호 장관은 2022년 10월 후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민주주의’ 표현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에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수록되어 있으나, 현재 공개된 시안에 해당 표현이 누락되어 이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2022 한국사 교육과정에서도 관련된 표현 수록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11) 교육부가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삽입한 행정 예고본을 발표한 것은 그가 취임한 이틀 후였다. 그가 장관 후보로 지명된 9월 29일은 이미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1차 의견수렴을 마치고 공청회를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교육부의 수정안에 당연히 그의 의중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은 취임 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참여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책임있는 균형잡힌 교과서가 나와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주도로 제작됐다.”, “여러 대학의 각 시대별 최고 전문가 교수들이 집필진으로 투입됐고 편집도 비교적 무난하게 구성되었다”며 옹호했다.12)

두 시기의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는 이들 중요 인물 이외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주도하는 세력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도 같은 점이다. 2022년의 경우 한국현대사연구회의 직접적인 역할은 없었지만, 2011년과 마찬가지로 보수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했고 그들의 앞 뒤에 보수 언론의 지원이 있었다. 2011년 중앙일보는 1월 10일부터 「한국사 필수과목으로 하자」 시리즈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이 신문은 한국사 필수를 주장하면서, 교과서의 내용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교과서 2종에는 피카소가 프랑스 공산당의 의뢰를 받아 그렸다는 ‘한국에서의 학살’이 실려 있을 정도였다.”라면서 각계에서는 즉각 “검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고 보도했다.13) 나아가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발족을 보도하면서 「“이념편향・자학 바로잡겠다.” 국사 교과서 프로젝트 가동」이라는 제목을 달고 이배용 위원장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14)

2022년에는 8월 30일 연구팀의 시간이 공개되자마자 조선일보가 하루 만에 「문정부 ‘교과서 알박기’ … 자유・남침 표현 뺐다」, 「‘남침으로 6・25 시작’ 삭제… 전쟁・분단의 北책임 명확히 안밝혀」, 「교육부 “‘자유민주・6・25 남침’은 기본 상식 … 교육과정 검토・보완할 것”」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15) 이 신문은 그 다음 날에도 사설 「[사설] 또 남침・자유 빠진 시안, 상식적 교과서 갖기가 이렇게 어려운가」를 비롯해, 「초등 역사교육에서 ‘6・25 원인・과정’ 뺐다」, 「“한국사 시안대로면 … 4・3과 여순사건을 통일운동으로 미화할수도”」, 「교육부, 논란 계속되자 “국민 목소리 듣겠다”」, 「與이태규 “남침・자유 빠진 한국사 시안, 즉시 폐기해야”」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이들 기사가 보수단체들의 방향지시등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4. 헌법 속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주의

2011년과 2022년의 교육과정 개편 과정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아있다. 정책적 판단의 주역마저 동일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11년보다는 논란이 조금 덜한 느낌이랄까? 교육부도 자유민주주의를 임의로 삽입하면서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용어를 시대상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적절한 곳에 사용하도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16) 결국 9월 30일 공청회 시안의 고등학교 한국사 성취기준에 있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탐색한다”라는 표현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을 탐색한다”라고 수정되었다. 또 공청회 시안의 한국사2 성취기준해설에 있던 “6월 민주항쟁 이후 각 분야에서 전개된 민주화에 기반해 오늘날 평화적 정권교체와 시민운동의 성장을 탐구하기 위해 설정되었다”라는 표현은 “6월 민주항쟁 이후 각 분야에서 전개된 민주화에 기반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정착되고 ~”로 수정되었다.17)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교육부가 연구팀과 심의회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일견 정치적으로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다 보니 학술 연구성과나 사실과 동떨어진 수정이 이루어져 버렸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했다는 것은 학술적인 연구성과와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도 다르다. 주지하다시피 제헌헌법 전문에는 ‘민주주의 제제도를 수립’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제헌헌법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이처럼 제헌헌법 전문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 확보하기 위한 전제로 민주독립국가의 재건을 내세우고 있다. 또 그것의 실현을 위해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할 것과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하고 민주주의 제제도를 수립’할 것을 천명했다. 또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며, 국제 평화유지에 노력할 것을 명기하였다. 제헌헌법의 어디에도 반북, 반공에 근거한 자본주의 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동포애’와 ‘민족 단결’의 정신이 강조되고 있다.

1972년 유신헌법에 이르러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리고 1980년 헌법전문에서는 다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는 구절로 변용 복원된다. 그리고 1987년 헌법 전문은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자율과 조화에 바탕 한 것으로 제한해 설명했다.18) 이 같은 변화 과정 어디에도 반공과 반북에 기반한 이념적 제약을 가하고 있지 않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반공주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법학자 이국운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해 방식을 네 가지로 구분한 바 있다. 그는 가장 자주 발견되는 현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체제보위논리로 내세우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반공주의를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시각이다. “입으로는 날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몸으로는 여전히 개발독재와 긴급정부의 향수에 빠져 있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 같은 맥략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으로 보았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또 다른 이해는 “자유민주주의를 무언가를 은폐하기 위한 용어로 간주하면서 차라리 그 은폐된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경우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자유주의 또는 시장주의로 읽으면서 민주주의라는 껍데기를 걷어내자는 사람들과, 자유민주주의를 대의제 또는 간접민주주의로 읽으면서 민주주의라는 알멩이를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수식어를 찾는 사람들로 나뉜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세 번째 해석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회피하는 대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공법학자들의 이해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격하고 그때 그때의 다수의사와 자유, 평등에 의거한 자기결정을 토대로 한 법치국가적 통치 질서”로서, 구체적으로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 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의 제도로 구성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해석이 그것이다.19) 그는 이 같은 시각과는 별개로 자유와 민주의 모순적 길항관계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양자의 접목과 조화를 모색하는 것을 자유민주주의의 본질로 보았다. 이 같은 대립과 길항이 접목과 조화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중첩적 함의의 제도화가 바로 ‘헌법’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의적 실현 형태는 역사적 조건과 맥락에 따라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다. 헌법상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편협한 반공주의에 기반 한 체제수호의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학문적 대중적 설득력이 있지도 않다. 이 같은 해석에 기반해 교육과정에 그것을 반영하라고 하는 주장은 무모하기 그지 없는 반지성적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에 기반하여야 할 것이고, 그것은 자유와 민주를 표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5. 역사교육이 정치 도구화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반북・반공주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독한 냉전의식에 기반한 진영논리에 갇혀 역사학계를 빨갱이 집단이나 진보적 집단으로 이해하고 공격한다. 게다가 그러한 행위는 정치적 이득과 연결되어 있다. 특정 정치인이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고 공격한다든지,20) 특정 정당이나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는 등의 방식은 너무나 직접적인 정치개입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정치개입은 현재 진행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민통합위원회 보고회에서 “지금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또 '자유'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규모 의견을 가진 세력들도 존재하고, 그래서 과연 안정적인 통합이 참 어려운 그런 국가”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21) ‘헌법의 자유민주주의’라는 발언도 사실과 다른 이야기이지만, 민주주의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교사들과 연구자들을 ‘안정적인 통합이 참 어려운’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도 대통령으로서 적합한 발언인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국민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에서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2022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주사파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세계사적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기초한 대한민국 건국 정신을 분명하게 교육”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22) 장관이 현재의 역사교육을 주사파 교육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교육감 선거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버젓이 내뱉는 정치의 수준은 절망감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이 같은 정치적 개입이 비단 우파만의 문제라고만 하기에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우파의 역사인식 일반을 친일파의 그것으로 몰아붙인다거나 4・3사건, 5・18민주화운동 등을 교육과정에 반드시 적어야 한다는 주장을 우파 정치세력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들은 모두 같은 맥락의 ‘역사교육의 정치도구화’ 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되돌아 보면, 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09 개정 교육과정 이후 2011 개정 교육과정, 2015 개정 교육과정, 2018 개정 교육과정에 이은 것이었다. 역사분야 교육과정이 다른 과목이 2007, 2015, 2022 등 2007 이후 15년 간 두 번째 개정을 맞는 것에 비해 세 번이나 더 많은 다섯 번째 개정을 맞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정치적 영향을 받고 있는지 명백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교과서 공격이 있었고, 국정화 시도가 있었지만,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2018 개정이 꼭 필요 했는지는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이처럼 용어에 집착하면서 교육과정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기적인 정치효과를 노리는 것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길게 본다면 미래의 유권자들인 청소년들에게 좀 더 유리한 역사인식을 심어주고픈 기대가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보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던 20대 유권자들이 최근 보수성향으로 돌아선 것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것이 과연 역사교육의 몇 가지 용어에 의해 좌우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교육은 정치와 무관할 수 없고, 비단 역사교육뿐 아니라 모든 교육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성과 학술성이 보장되어야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 정치가 바뀔 때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지지자들을 양성하는데 교육의 목표가 두어진다면 나라의 장래가 있을 수 있겠는가?

2011년과 2022년의 자유민주주의 논쟁을 보면서 여전한 역사교육의 정치 도구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이 두 번의 개정과정에서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교육과정의 시안이 나온 이후,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진 고등학교 한국사의 전근대사 분량 확대이다. 이 문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동일한 학습을 피하고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들어준다는 차원에서 고안된 장치이다. 중학교 전근대사 교육,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육을 시도해 계열성을 확보해 보자는 것이다. 이 시도는 아직 온전하게 시행되어 본 적이 없음에도 적지 않은 저항감에 부딪혀 있다. 전근대사를 교육하는 입장에서 아직 역사인식의 형성이 부족한 중학교 때만 전근대사를 배우는 것이 쉽게 납득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이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가 세계사 교육의 파행과 축소이다. 학교 현장에서 세계사는 동아시아사와 함께 거의 선택하지 않는 과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구화 시대의 교육에서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중요한 문제들이 교육과정 시안이 다 만들어지고 난 후, ‘자유민주주의’ 논란에 모든 눈을 뺏기고 난 다음에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전근대사 교육은 ‘자유민주주의 논란’을 가리기 위한 교육부의 ‘배려’로 고등학교에서 보충되었지만, 세계사 교육을 대안이 없이 마무리되어 버렸다.

우리는 2009년이후 늘상 쫓기듯 역사과 교육과정을 만들고 있다. 정작 논의해야 할 더 중요한 역사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같은 중요한 일들을 교육과정개발 연구팀에게만 맡겨두었다가, 부족한 결과물만을 탓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역사학계의 게으름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2022년의 자유민주주의 논란이 생각보다는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 역사학계의 방관에서 기인했다고 하면 과언일까? 오직 현장의 교사들만이 실명을 공개하는 ‘모험’을 감행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23) 현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유민주주의 논란 속에서 나 자신을 포함한 역사학자들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의 무관심이 역사교육의 정치도구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하지 않을 수 없다.

 

<미주>

1) 교육과학기술부는 2013년 교육부로 개칭되었다. 2013년 이후에 해당하는 내용에는 교육부를 사용한다.
2) 「“이념편향・자학 바로잡겠다.” 국사 교과서 프로젝트 가동」 『중앙일보』 2011.5.2. 이 글에서 인용한 언론 보도는 모두 웹검색을 통해 확인한 인터넷판을 활용했다. 관련 URL은 기사 제목으로 대신한다.
3) 「뉴라이트 역사교과서가 온다」 『시사저널』 1733호, 2013.6.12.
4) 심의회의 구성원과 회의 내용은 비공개이다. 다만, 교육부가 필요에 따라 회의 내용의 일부를 공개하기도 한다.
5) 「국민의 소중한 의견, 새 교육과정에 담겠습니다. -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국민의 주요 의견 공개-」(교육부 보도자료), 2022.9.19.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역사과의 ‘자유민주주의’와 더불어 도덕과의 ‘양성평등’ 문제였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측에서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제3의 성도 인정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밖에 역사과목에 대해 ‘이슬람 미화’를 주장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되었다. 결국 이념과 혐오가 교육과정 의견 수렴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표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6) 「고성에 폭력까지 오간 새 교육과정 공청회…최종안 마련 가능할까」 『news1』 2022. 10.10.
7) KBS는 “교육과정심의회를 통해 교육부가 ‘이견이 있는 용어들’을 주도적으로 넣었다는 것이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지만(「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 등 수정”」 『KBS』 2022.11.9.),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에서는 논의조차 된 적이 없었다.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회는 교육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국장급 인사 1명이 부위원장을 맡는다. 과목별 심의회 위원장 등 민간위원 28명이 참여해 구성된다.
8) 「‘자유민주주의’ 집착 교육부… “찬성 안했는데 회의 결과도 왜곡 발표”」 『한겨레』 2022.11.13.
9) 「교육부는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회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역사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마련하였습니다.」(교육부 설명자료), 2022.11.14.
10) 「교육부의 역사 교육과정 연구진 ‘패싱’ 논란 … 연구진 “심각한 자율성 훼손”」 『한국일보』 2022.12.9.
11) 「이주호 “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 필요”, 교과서 전쟁 터지나」 『오마이뉴스』 2022.10.26.
12) 「[창간 34주년 특별인터뷰/이배용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역사’의 씨줄과 ‘문화’의 날줄로 엮어 ‘백년지대계’ 교육의 미래 그리겠다」 『한국대학신문』 2022. 10.18.
13) 「‘한국사, 고교 필수과목 됐다’ 중앙일보 어젠다 100일의 성과」 『중앙일보』 2011. 4.23.
14) 「“이념편향・자학 바로잡겠다.” 국사 교과서 프로젝트 가동」 『중앙일보』 2011.5.2.
15) 『조선일보』 2022.8.31.
16) 「교육부는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2022 역사 교육과정 행정 예고안을 마련하였습니다.(교육부 설명자료)」, 2022.11.24.
17) 『2022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 검토 공청회』, 2022.9.30., 자료집 37쪽. 밑줄은 필자
18) 역대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변용에 대해서는 이인재, 2011 「역대 대한민국 헌법의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역사와 현실』 82, 한국역사연구회 참조.
19) 이국운, 2019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헌정주의자의 시각 -」 『공법연구』 47, 92~95쪽
20)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김무성 “우리나라 역사학자 90%는 좌파”」 『MBN』 2015. 10.7.
21) 「尹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 삭제하려는 대규모 세력 존재”」 『연합뉴스』 2022. 12.21.
22) 「교육부는 왜 역사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를 다시 소환하나」 『시사IN』 2022. 12.2.
23) 「역사교사모임, ‘역사교육과정에 정치적 개입 되풀이 말라’」 『노컷뉴스』 2022. 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