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기사

[제12회 한국사교실 참관기] 갈림길 앞에서 찍는 작은 쉼표_박상진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3.03.29 BoardLang.text_hits 2,446
페이스북으로 공유 X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밴드로 공유
웹진 '역사랑' 2023년 3월(통권 39호)

[한국사교실 참관기] 

 

갈림길 앞에서 찍는 작은 쉼표


 

박상진(인하대학교)


 

1. 초학생의 고민

어느덧 학부 3학년을 마친 뒤 4학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각자 자기의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동기들, 선·후배들이 많습니다. 또 더러는 저와 같이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분들도 계신 듯합니다.
어려서부터 한자와 역사,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고등학생 이후 개항기 국제관계사에 큰 흥미를 느껴 역사학도로의 꿈을 키웠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여서는 많은 강의를 들어보고 여러 활동도 하며 근대사 외에 다른 여러 분야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군 전역 후 전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면서 대학원 진학에 대한 목표 의식은 서서히 옅어져 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지난 학기 본교 박물관에서 연구보조원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연구방법론을 배우고 실제로 활용해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감사하게도 많은 분께 도움을 받았고, 이후로도 자주 교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인하대학교박물관 류창호 선생님의 소개로 한국역사연구회(이하 한역연)에서 주최하는 ‘한국사교실’ 프로그램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과제를 하다 보면 한역연 소속 선생님들의 저서와 논문들을 접하는 일이 잦았기에 그 이름이 익숙하게 들려왔던 것 같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고, 여러 선생님께도 자문하고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2. 첫째 날 : 전근대 시기 한국사 연구 동향과 ‘연구자의 딜레마’

올해 제12회 한국사교실에서는 ‘한국사 연구 동향과 주제 모색’이라는 주제로 이틀에 걸쳐 오프라인으로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각 시기, 분야의 선생님들이 오셔서 미래의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연구 방법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날에는 인천가톨릭대에서 오신 김보영 선생님의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전근대 시기 연구 동향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강의를 진행하신 숙명여대의 강진원 선생님께서는 고대사의 연구 동향과 함께 신중한 용어의 사용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국제관계’와 ‘대외관계’라는 용어 사이에서 나타나는 관점의 차이를 예시로 들어주셨는데,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연구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고려대의 김윤지 선생님께서 고려사 연구 동향과 논점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그동안 배워왔던 ‘통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나아가 관점에 따라 통설을 ‘뽀갤 수 있는’ 연구를 해보면서 끊임없이 자료를 찾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셨던 것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마지막 시간은 연세대의 홍해뜸 선생님께서 조선 후기 사상사의 연구 동향을 중심으로 강의를 담당하셨습니다. 조선 시대에서는 많은 사료가 발굴되다 보니 기존의 정치사, 제도사와 더불어 학파별 사상사 연구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다산, 율곡과 같은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하거나 유학·예학의 범위에서 벗어나 넓은 시각으로 사상사를 연구한다고 정리해주셨습니다. 이때 관련 논문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소개해주셔서 큰 인상이 남았습니다.
한편 공부를 넓게 하다 보면 깊어지지 못하고 반대로 깊게 공부하다 보면 넓어지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강진원 선생님께서는 어떤 연구에서, 다방면으로 관점을 제시하다 보니 깊이가 부족하였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이때 오히려 자신감을 잃지 않고, 대신 자신의 단점을 덮어버리거나 변명하지 말고 앞으로 꾸준히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야 한다고 조언하셨습니다.
이와 반대로 김윤지 선생님께서는 최근 돌아보니 초학 때부터 한 분야에 깊게 공부하여 오히려 넓게 공부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고 하셨습니다. 연구하는 단계가 올라갈수록 그 내용과 사고가 좁아지게 되는데, 평소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두고 폭넓게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길 바란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특히 한국사를 전공으로 한다면 동양사와 동양철학과 관련된 서적을 많이 찾아보라고도 추천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우연히 서로 다른 입장의 두 선생님이셨지만 공통점으로는 시야를 넓히고 많은 양의 공부를 하며, 무엇보다 스스로 다독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3. 둘째 날 : 근현대 시기 한국사 연구 동향과 데이터베이스

둘째 날에는 근현대 시기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고, 데이터베이스의 활용법에 대해서도 배울 기회가 되었습니다. 첫 시간은 연세대 글로벌한국학연구소의 권기하 선생님 강의였습니다. 한국 근대사의 연구 동향을 보면 여러 분야로 연구가 파생되고 있는데, 과거와 달리 현재의 연구자들은 서로 토론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줄어들고 있다고 비판하셨습니다. 따라서 후배 연구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과 적극적인 토론 자세를 배워나가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사 부분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정대훈 선생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경제사 연구를 주로 하셨는데, 경제학이라는 분야 특성상 문과와 이과의 경계가 모호해져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경제학뿐만 아니라 현대사를 전공한다면 수리 통계를 활용하거나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학제간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미국 정부 문서 등 해외 자료를 참고하기 위해 꾸준한 영어 학습의 중요성도 다시금 환기할 수 있었습니다.
근대사와 현대사의 경우 자료도 방대하고 여러 세부적인 연구 분야가 탄생하는 시기라고도 불립니다. 이러한 동향에 대해 정대훈 선생님은 자기만의 특별한 주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반면에 권기하 선생님은 그런 때일수록 정치사나 제도사와 같은 전통적인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두 선생님의 서로 다른 의견을 모두 들으면서 후배 연구자들이 한 번쯤 생각해볼 과제를 던져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공통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시대와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과 연구자가 가져야 할 기초적인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환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편 과거 옛 선생님들은 자료를 구하기 어려워 도서관에서 수십 권씩 빌리거나 헌책방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술안주로 올라옵니다. 이와 반대로 오늘날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는 역사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터넷의 보급 이후 꾸준히 검색 포털이 발전하고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준성 선생님의 강의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활동하시면서 참여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과정과 변화하는 연구 환경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강의 중 ‘데이터베이스가 업데이트되는 경우 이전에 인용한 근거를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 강의가 끝나고 따로 찾아가 질문을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스템 비용과 효율성 문제로 거의 불가하다’라고 답해주셨고, 데이터베이스의 한계와 당면한 과제에 대해 짧게나마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온오프라인 자료 활용의 장단점과 함께 정확하고 꼼꼼한 출처 표기의 중요성을 상기해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의 박광명 선생님께서는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소개해주시며 학생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이른바 ‘꿀팁’들을 전수해주셨습니다. 이외에도 인문학을 전공하더라도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예시로 엑셀을 이용하여 ‘나만의 사료집’을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그 자리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시범을 보여주셔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4. 신진(新進)으로서의 마음가짐

이틀간의 한국사교실 강의는 이름 그대로 예비-초보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시해준 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뒤풀이 시간을 통해 많은 분과 이야기 나누면서 각자 가진 고민을 돌아보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값진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첫날 홍해뜸 선생님께서 진로 방향을 아직 정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학회에 가보며 ‘눈동냥 귀동냥’해보라고 조언해주신 것이 생각납니다. 이처럼 한국사교실에서 만난 새로운 분들과 또 다른 인연을 만들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강진원 선생님께선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 연구자는 운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운도 결국은 준비된 자에게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교실에서 뵌 선생님, 선배님들의 조언을 늘 새기며 단단한 내실을 다질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끝으로 좋은 강의를 진행해주신 여덟 분의 선생님들과 한역연 선생님들, 이러한 기회를 만들어주신 류창호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