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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기] 근대사분과 특별기획 "생태환경사 연구방법론 집담회"_김정란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3.07.28 BoardLang.text_hits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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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3년 7월(통권 43호)

[참관기] 

 

근대사분과 특별기획 "생태환경사 연구방법론 집담회"


 

김정란(근대사분과)


 

극한호우, 2023년 여름 기상청에 의해 새롭게 생겨난 신조어다. ‘1시간 누적 강수량 50mm 이상, 3시간 누적 강수량 90mm 이상이 동시에 관측될 때’ 또는 ‘1시간 동안의 누적 강수량이 72mm를 넘을 때’를 의미한다. 보통 우산으로 비를 막기 어려운 수준을 말하는 ‘매우 강한 비’의 기준이 시간당 30mm라고 한다. 이보다 2배 이상의 강수량을 표현하는 극한호우가 지난여름을 시작으로 올 여름도 어김없이 한반도에 쏟아졌고,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극한더위, 극한가뭄, 극한호우, 극한 날씨, 그리고 기후플레이션[기후(Climate)+고물가(Inflation)=Climateflation]. 기후와 관련한 신조어가 넘쳐난다. 그러나 쏟아지는 신조어에 우리가 너무 쉽게 익숙해지는 탓일까.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파국’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지금도 기후환경에 대한 민첩한 논의는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오늘날 생태위기에서 비롯한 시급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역사학이 실천적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까? 2023년 6월 21일(목) 한국역사연구회 근대사분과에서는 분과총회 6월 특별기획으로 <생태환경사 연구방법론 집담회>(이하 집담회)를 개최했다. 한국사역사연구회 대회의실과 온라인상에서 동시 진행된 집담회는 평소보다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집담회는 우리 앞에 놓인 생태환경의 위기를 분명하게 인식하며,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해 우리의 삶과 생각을 바꿀 새로운 역사학을 전망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앞서 생태환경사 연구에 나선 이들의 진솔한 경험과 고민을 듣고 생태환경사의 다양한 방법론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어 더 특별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서민수(경동대, 고대사), 이현숙(연세대, 중세사), 배항섭(성균관대, 근대사), 백선례(국사편찬위원회, 근대사), 고태우(서울대, 근현대사), 김지연(서울시길동생태공원, 생태학) 이상 5명의 시대별 역사학자와 1명의 생태학자가 자리한 가운데, 1)생태환경사 개념 2)국내외 생태환경사 연구 현황 3)생태환경사의 쟁점과 한계 4)생태환경사 연구방법론 현황과 융복합(학제간) 연구, 5) 생태환경사와 새로운 역사학 전망 이라는 5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발제와 토론이 오갔다.
본 글은 현장에서 오간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구성했다. 역량이 부족하여 자리에서 오간 논의의 다양성과 깊이를 다 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미리 여러 선생님의 너른 양해를 구한다.

왜 생태환경사(ecological and environment history)인가? 먼저 생태환경사(ecological and environment history)라는 용어를 통해 생태환경사의 개념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생태환경사란 용어는 생물체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중시하는 생태사(ecological history)와 인류에 기본적인 초점을 두는 환경사(environmental history)를 결합시킨 조합어다. 기존의 환경사와 달리 ‘생태학적 전화(ecological turn)’의 의미를 좀 더 강조하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기존 환경사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포착하는 행위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인간을 특별한 위치에 둔다. 생태환경사는 그러한 기존 환경사의 시각을 공유하되, 다만 인간이 지구의 너무 큰 행위자가 된 지금, 인간이 특별한 행위자인 동시에 생태환경과 공존하는 생태계의 한 고리일뿐이기도 함을 보다 강조하기 위해 ‘생태’를 앞으로 끌어왔다. 작금의 인류세(anthropocene) 상황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학문으로서의 특징을 선명히 한다. 생태환경사는 ‘생태학적 전환’의 의미가 결부된 환경사의 확장판으로, 인간의 자연 정복 욕망을 비판하고 자본주의 근대문명의 부정적 산물을 반성하는 문제의식을 지닌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현재 서구 환경사학계 내에 흐르는 문제의식과 그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서구 학계의 경우, 환경사라는 것이 하나의 학문적인 분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어 환경사라는 용어 내에서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지만, 후발주자인 한국의 경우, 기존의 환경사와는 보다 구분되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서 현재의 문제의식을 보다 분명히 드러냈다.

다음으로 국내외 생태환경사 연구 현황을 시대별로 살펴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먼저 고대사의 경우, 생태환경사 내지 환경사 개념과 용어를 사용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아직 구체적인 역사상을 해명하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최근 위로부터의 생태환경 변화가 어떠했는지를 다루는 도성 개발 연구와, 전염병 연구, 한국 고대신화에서 생태환경사상사의 연구가능성을 타진해 본 연구 등 흥미로운 연구들이 제출되고 있다. 더불어 기존연구를 생태환경사로 발전·계승할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중세사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치사, 문화사, 사회사를 기반으로 한 기존 연구에서 생태환경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살펴보면 새로이 생태환경사로 전환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특히 8-9세기 동아시아 전염병 유행을 기후와 관련지어 신라 말 정치변동을 생태환경 변동의 관점에서 살펴본 연구, 12세기 동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된 냉해와 고려의 정치변동을 살펴본 연구 등 기후가 사실은 정치 변동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음을 인지할 수 있는 연구들이 제출되고 있으며, 고려시대 충재의 원인과 성격을 인간 활동권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포착한 연구 등, 생태환경적 시야에서 새로운 소재를 다루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는 만큼 중세사 연구에서도 앞으로 생태환경사가 더 도약하리라는 기대가 공유됐다.
조선시대의 경우, 계획된 발제가 없었으나 당일 온라인으로 참석해주신 김미성 선생님 덕분에 간략한 연구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논의의 시작을 소빙기 문제라고 볼 수 있기에 현재도 기후, 재해와 관련된 주제들에 연구가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소재에 있어 소빙기 혹은 대기근 같은 것들이 많이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 같은 현상이 인간사회에 어떤 사회경제적 영향을 미쳤는지가 논의의 초점인 경우가 많다. 반면 인간 사회가 어떻게 자연 환경에 영향을 미쳤는가하는 방향의 연구로는, 김동진 선생님의 연구가 있지만 아직까지 그 이외에 연구가 많지 않아 보인다는 평이다. 인간 사회가 환경에 끼친 영향과 또 그것이 다시 인간 사회에 영향을 주는, 연쇄적으로 순환되는 부분이 좀 더 주목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필요가 제기되었다.
다음으로 근대사의 경우, 2010년대 중반 이후 소재 및 주제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특징으로 꼽혔다. 우선 개발의 그림자로서 생태환경의 변화, 파괴 등에 주목한 연구가 다수 제출되고 있다. 특히 최근 식민지 공해에 대한 연구가 나오고 있는데, 산업공해라는 것이 해방 이전에, 이미 20세기 초중반부터 한국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더불어 개발재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연구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데, 이 연구들의 경우 개발이라는 것이 갖는 여러 가지 근대적 속성을 보여주는 가운데 특히 농업 개발이라든지, 인프라 구축이라든지 하는 과정 등 재해를 예방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재난을 초래한 사례들을 포착하고 있어 흥미롭다. 한편 감염병 연구가 코로나 이후 시기 쏟아져 나왔는데, 방역제도의 확립이나 혹은 의료 기술과 관련된 연구들이 많다보니 생태환경사 연구로 보기엔 제한적임이 지적되었다. 이외에 농업, 축산, 수산 등 각 분야에서 생태환경사 연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최근 북미학계에서도 『통제의 씨앗: 식민지 한국에서의 일제 산림 제국 Seeds of Control: Japan’s Empire of Forestry in Colonial Korea』이라는 식민지 조선에서의 ‘산림 보호’와 관련된 환경 통치/ 자원 통제 프로젝트를 면밀히 추적한 연구가 나와 주목된다. 다만 다양한 분야에서 생태환경적 관점에 연구들이 제출되고 있는 긍정적 상황에 반해, 이 연구들이 계속 후속 연구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이 토로됐다.
한국 현대사의 경우 최근 5년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 한국의 현대사가 환경문제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는 평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우선 현대사 연구의 시기가 점점 최근에 가까워지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와 관련된 각 분야사 연구들을 축적하기 분주한 상황이며 둘째, 전 세계적으로 70년대 이후 생태주의가 확산되었고, 한국사회에도 70년대 이후 이러한 흐름이 공유되었는데, 아직 한국 현대사의 대상 시기가 50~60년대에 많이 집중되어 있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최근 5년에서 10년 사이 60년대 이후 한국의 환경오염이라든지, 환경파괴 문제에 관한 연구, 환경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의 변화, 폐기물에 관한 문제, 환경운동에 관한 연구들이 일정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산림문제와 치산녹화사업에 관해서는 기존의 산림녹화를 성공사례로서 보는 시각이 있는 동시에, 그 내면의 여러 주체의 관계와 진행 과정에 더욱 천착하려는 연구들이 진행되어 주목된다. 한편 최근 과학사 연구자들이 과학기술의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환경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점, 사회학계에서 한국환경사학회를 중심으로 2000년대 이후 최근 시기에까지의 문제들, 즉 가습기살균제 참사, 기후정의운동, 커먼즈와 생태정치, 에너지 민주주의 등 현장성 강한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더불어 최근 북미학계 한국학 연구자를 중심으로 한국의 환경문제를 다룬 저서, 『자연의 힘 한국 환경에 대한 새로운 관점 Forces of Nature: New Perspectives on Korean Environments』이 출간되었는데, 해당 저서는 한국의 환경을 국가나 정부 단위에서만 보는 것이 아닌 지역과 특정 행위자로 접근하고 있는 점, 역사학뿐만 아니라 생태학과 농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다양한 방법론적 접근을 취하는 학제간 접근이라는 점 등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생태학 전공자로서 길동생태공원 코디네이터로 계신 김지연 선생님께서 국내외 생태학의 흐름과 역사적 고찰들을 소개했다. 생태학은, 196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전개된 생태주의 운동의 성과를 끌어안으면서 극단적 환경보호주의와 서구 자본주의 중심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모색해 온 학문이다. 김지연 선생님은 생태학 연구자의 연구를 생태환경사라고 하진 않을 것 같고, OO생태학으로 분류하지 않을까 싶다며, 이런 관점에서 생태학 중 생태환경사적 고찰을 하는 연구들을 전통생태학, 경관생태학, 환경생태학, 복원생태학, 문화곤충학, 고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를 들어 소개했다. 토론에서 고태우 선생님은, 역사학에서 생태학을 단순히 방법론 정도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태학이 인간의 의한 파괴와 오염에만 초점을 맞추던 측면에서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라는 측면으로 깊어지며 다양한 분야로 분화된 바와 같은, 그러한 생태학의 학설사적인 영향을 역사학이 보다 중요하게 탐구하고 습득할 필요를 강조했다.

세 번째 주제인 생태환경사의 쟁점과 한계의 경우, 집담회 곳곳에서 간간이 이야기되었지만, 시간부족으로 인해 선생님들이 준비하신 바에 비해 가장 논의가 덜 된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공통적으로 지적된 쟁점들을 살펴보자면, 우선 기후 및 재해를 사회변동과 연관시킬 때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고대, 고려, 조선시대 연구에서 특히 각종 재난이 많았던 시대를 사서에 나오는 재해 기록 숫자를 통계화하여 기후 변동과 연관시키기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되는 것은 특히 기후 환경이 어떠했고, 그래서 재해가 빈발했다는 다소 단순한 논리구조나 결정론적 입장이 강고하게 표출된 연구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사료의 문제를 다양한 방법론을 동원해 보정하는 것과 인간 사회가 변화시킨 생태환경이 어떠했는가를 함께 보는 보다 상호역학적인 관점을 확보한다면 극복할만한 것이라는 견해가 공유되었다.
다음으로 인과관계의 명확한 증명이 빠진 경고적 서술이 지니는 위험이 지적되었다. 자연훼손이 심하게 일어나서 자연재해가 빈번했다는 것과 같은 논의구조는 잘못하면 생태환경사를 그저 그런 이야기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이에 대해서는 사료에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들을 해석할 때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는 측면과 함께, 근본적으로 현재 우리에게 유용한 생태환경사의 관점은 무엇인가를 충분히 더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앞서 생태학의 변화와 분화에서 보이듯, 역사학도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역사학보다는 적응과 대응의 역사를 밝혀내는 작업 등, 생태환경사를 보다 예리하게 다듬어가는 작업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외에 동아시아라는 차원에서의 생태환경사 연구의 필요와, 근대이전시기 연구의 활성화 등을 통한 시기와 소재 다변화, 국제역학적인 관점에서 한국이라는 국경을 넘어서는 연구의 필요, 북한 지역에서의 연구 활성화, 장기사적인 시야의 필요, 학제 간 연구의 필요 등 현재 한국생태사가 극복해가야 할 쟁점과 한계들이 다양하게 제기되었지만 시간상의 문제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다음으로 생태환경사 연구방법론으로서 융복합(학제간)연구의 현황을 살펴보는 한편, 발전적 활용을 위한 제언이 있었다. 서민수 선생님께서 고대사에서의 사례 두 가지를 통해 융복합연구의 방법론을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나누어 소개했다. 첫 번째 사례는 역사학과 기후학 연구를 융합한 사례로, 사서에 나오는 자연재해 기록을 계량적으로 정리하고, 기후학 분야에서 나오는 연구 성과를 원용한 형태이다. 현재까지 대체로 많이 활용된 연구방법론이다. 두 번째 사례는 이제 자연과학 자료가 우선이 되고 문헌기록이 원용된 형태로, 최근에 나온 안소현 성생님의 논문에서 이러한 방법론이 활용됐다. 신라 왕경 개발에 대한 역사 사료들이 있으나 이 사료보다는 그 지역에 있는 숲의 변화를 유추할 수 있는 화분학 자료를 우선으로 하여 신라 왕경 지역에서 숲의 변화를 스케치한다. 이후 문헌 기록들을 원용해서 역사 해석을 가미하는 형태의 연구 방법론이다. 그러나 두 가지 사례 모두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이 발제에서 지적되었다.
서민수 선생님은 생태환경사에서 융복합 연구는 이처럼 여전히 많은 한계를 품고 도전되고 있는 상황이며, 융복합 연구가 필요하다는 선언은 가득하나, 본격적인 연구의 진전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사례 모두 기존 역사학의 방법론만으로는 완전한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분명하며, 학제간 연구 혹은 융복합 연구를 통해서만 파악이 가능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역사에도 능통하고 생태나 자연환경에도 능통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역사가 양성이 생태환경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는 학자 간 연구가 이상적인 연구방법론이지 않을까 제안했다. 다만 한국 학계 환경에서 이것 또한 어려운 측면이 있어, 우선은 생태환경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부터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헌 기록은 물론이고 자연과학 자료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 있는데 그 중 역사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을 추려서 데이터베이스화하면 보다 수월하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역사가가 선별적으로 자료를 채택하기보다 종합적으로 해석하려는 토대가 자연스레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크고 다양한 주제들이 한 자리에서 다루어지다보니 집담회 시간이 예정보다 많이 지체된 상황에서 생태환경사와 새로운 역사학 전망이라는 주제로 배항섭 선생님의 마지막 발제가 있었다. 오랜 시간 발표에 귀 기울이며 기다리신 선생님께 깊은 존경을 표한다. 배항섭 선생님은 현재 우리가 심각한 기후 환경과 같은 위기에 처해 있는 현실이야말로, 근대인들의 삶이라든가 근대적인 가치들, 혹은 근대 역사학 자체에 대해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근래 역사학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전망했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역사학, 특히 한국 역사학이 오늘날 기후 난제와 같은 시급한 문제들과 관련해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제공할 수 있는 통찰력이 너무도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두 번째로, 기후 문제, 환경문제 등을 논의함에서 단지 서양에서 만들어 놓은 이론들을 소비하기 보다는 한국의 현실을 토대로 해서 세계적인 차원의 논의들을 재검토하고 참견하려는 고민들이 더욱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나 기후 환경 문제는 글로벌한 차원의 문제로, 우리에게 제국주의 혹은 식민주의에 대한 재조명을 요구하며, 무엇보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한 깊은 사유를 요구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위와 같은 사유를 통해 한국 역사학이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을 해나가야 한다고 보았는데, 예를 들어 동학을 연구한다면, 이제 동학이 얼마나 반봉건적이고 반외세적이었느냐를 중심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농민군이 보여주었던 자연관이라든가 생명관이라든가, 근대적인 것들 혹은 이후의 지식인들과도 다른 결의 역사적 통찰들을 드러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학을 모색하게 할 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있던 제국주의를 향한 욕망 등과 같은 여러 문제들을 드러내며, 한국 역사에 대한 이해를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방식으로 진전시킬 수 있다.
토론에서는 이와 같은 전망에 동의하며, 한국에서 어떻게 새로운 역사적 서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공유됐다. 고태우 선생님은 경제적 성공, 민족주의, 민족적 열망과 결부되면서 망각된 생태계 파괴와 기후 변화 등의 문제를 역사의 서술 구도를 바꾸어 드러내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배항섭 선생님은 충실한 사례 연구의 축적이 물론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연구의 축적이 꼭 새로운 인식론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시론적인 연구들, 인식론적 변화를 모색하는 연구들 또한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안했다.

“토끼 중에서 역사학자가 나오지 않는 한, 역사는 사냥꾼들에 의하여 이야기될 것이다.”, 동물의 역사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발제 중 김지연 선생님은 이 구절을 인용하며, 현 시점에서 생태환경사를 연구한다는 건 ‘인간은 어떤 사냥꾼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하셨다. 비단 역사학자에게만 지워지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역사학자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질문일 것이다. 공부가 부족해 발표의 모든 내용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선생님들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고민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발표를 기획하고 준비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