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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반 탐방] 정진(精進)하는 불교사상과문화반을 탐방하며_정서윤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3.08.29 BoardLang.text_hits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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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3년 8월(통권 44호)

[연구반 탐방] 

 

정진(精進)하는 불교사상과문화반을 탐방하며


 

정서윤(부산대학교 사학과)


 

사실 불교사상과문화반에 대한 소개글 작성을 부탁받았을 때, 고작 몇 번 세미나에 참가한 신입 반원인 내가 어떻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부담부터 앞섰다. 이제껏 글로만 뵙던 여러 연구자분들께서 본 연구반을 잘 이끌고 계셨기에, 행여 필자의 우고가 반원분들이 일궈온 것에 누가 되지 않을까 글을 작성 중인 이 시점까지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연구반 소개글이 아닌 본 글이 실릴 [연구반 탐방]이라는 카테고리명 그대로 ‘탐방기’를 작성해보려 한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에 새로 투입된 엑스트라 정도의 시각임을 밝히며 서두를 뗀다.

지난 4월에 개최된 한국중세사학회 학술발표회에서, 필자는 발표자이자 신진연구자로서 선진학자분들께 인사드릴 수 있었다. 훌륭하신 선생님들 앞에 주섬주섬 꺼내 보인 필자의 원고가 여러 마음에 안타까움을 돋아나게 했으리라. 장내에 계신 선생님 한 분께서 논지에 대한 따뜻한 타이름과 함께 불교사상과문화반의 『동문선(東文選)』 강독 세미나 참여를 제안해 주셨고, 필자는 그 손길을 냉큼 잡았다.

초대해주신 단톡방에 들어가니, 지난 학술대회 준비를 위해 제시된 주제들이 공지로 띄어져 있었다. 해당 주제들이 본 연구반 세미나의 주안점으로 보여 그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주제
: 동문선 기록을 통해 소실된 고려시대 불탑의 형태와 기능 추정
: 동문선을 중심으로 보이는 고려시대 사찰구조, 사원형식
: 불사나 의례를 통해 고려인의 삶과 사상을 이해
: 불교 관련 글을 통해 신앙활동이나 영험을 다룬 글을 추출, 성격을 검토
: 지식인의 글쓰기 방식 정리, 불교 지식 정도 구현을 검토
: 동문선 기문 청탁자의 성격과 배경


본 연구반명이 ‘불교사상과문화반’인 만큼 이상에서 나열된 주제 역시 반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더라. 반장님께 소개받은 바, 본 연구반은 『동문선』에 전하는 불교 관련 기록을 함께 검토하고자 하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다. 반원 역시 불교에 기반하여 역사학, 미술사학 전공자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대사분과·중세1분과·중세2분과 등 여러 분과에 소속된 연구자분들이 모여 학습하고 있다. 이처럼 시대와 분야를 아우르는 불교사적 교류의 장에 참여하게 된 필자는 한국 중세 의례 중에서도 기은(祈恩)을 공부 중인데, (필자의 논지에 따르면) “기은은 유(儒)·불(佛)·도(道)·무(巫) 등 다양한 사상적 색채를 띤 의례”였다. 즉 불교적 속성을 지닌 의례를 다루고 있는 만큼 나 역시 ‘세미(semi) 불교사 전공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연구반에 주저 없이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필자가 참가한 첫 번째 세미나 시간에는 석무외(釋無畏)의 「법화경(法華經)·열반경(涅槃經)·금광명경(金光明經)·무량수경(無量壽經) 전독소(轉讀䟽)」, 「사성금자법화경소(寫成金字法華經疏)」(『동문선』 권111)에 대한 강독이 진행되었다. 본 편의 작성 배경부터 문구 및 용어 해석에 대한 부분이 논의되었는데, 필자는 당시 9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의 입이 열릴 때마다 정신은 아득해졌고 손은 그 배의 시간 동안 바빠야만 했기 때문이다.

반원들이 ‘상구(桑丘)’가 ‘북경’을 의미하는지 혹은 ‘우리 땅(고려)’을 지칭하는지에 대해 논의할 때, 필자는 해당 용어가 지명(地名)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찰나에 눈치채야 했다. ‘단연(檀筵)’이 ‘시주하는 자리’라는 해석 외, ‘법회’ 자체를 의미할 가능성, ‘두기(逗機)’라는 두 글자에 ‘딱 맞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라는 위엄스러운 뜻이 내포된 사실 등, 의미와 해석의 잠재성이 무궁무진한 단어가 마구 쏟아져 내리더라. 이상에서 나열한 사례는 까다로운 축에도 들지 못할 만큼 어렵고도 방대한 양의 용례가 우수수.

90분의 세미나 시간 동안, 일반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용어들의 적정한 풀이에 대해 열띤 논의가 이루어졌다. 반원들은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광대사전 등 불교 관련 전문 자료에서조차 명확한 의미를 제시하고 있지 않은 문구와 표현에 대해 고고학적 사료를 기반한 해석을 더해갔다. 그야말로 『동문선』을 위시한 불교사에 대한 반원들의 열의와 애정을 빈틈없이 체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처럼 기운찬 대화의 장에, 필자는 연구자가 아닌 속기사로 자리하고 있었다. 의례사를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필자의 수준을 절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미 불교사 전공자”란 말, 취소다. 그런데 초학자로서 손이 분주했던 만큼, 세미나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불교사 이외의 것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반원들의 열의와 필자의 감흥이 더해져, 당시는 철저하고도 온전히 불교사를 마주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상 다음 내용으로 필자가 학문적 부족함을 점차 극복해나가는 모습, 쾌활하게 세미나에 참여하는 장면 등이 등장할 차례이지만, 아직 발단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상이다. 본 지면에서 완벽한 서사구조를 기대할 수는 없으므로, 이윽고 반원들과 더 깊고 많은 시간을 공유할 터, 그 시간 동안 정진하여 세미나 참여에 적극성을 높이고자 하는 필자의 목표를 대신 명시하려 한다.

필자에게 학문적 압도감 및 과중함을 건네줌과 동시에, 불교사와 만날 수 있는 순전한 시간을 선사해 준 불교사상과문화반에 깊은 경의와 찬사를 보내며, 본 탐방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