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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암각화 세계로의 초대_김근식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3.11.28 BoardLang.text_hits 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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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3년 11월(통권 45호)

[서평] 
 
 

암각화 세계로의 초대 

- 전호태, 『암각화 바위에 새긴 역사』 (푸른역사, 2023) -

 

김근식(고대사분과)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밝혔던 대로 이 책은 답사기 형식을 빌린 스토리텔링으로, 암각화에 낯선 대중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쓰인 것이다. 따라서 매우 전문적인 글이지만 의외로 술술 잘 읽히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만큼 저자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많은 저서를 기획하고 출간해왔던 역량이 고스란히 적용된 이야기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암각화라는 매우 낯선 주제를 가지고 대중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암각화 유적 답사라는 형식의 대화 내용을 통해, 전문가와 일반인의 시각적 차이를 적절히 풀어내고 있다. 
 
 
 
1. 선사인의 시선과 영감
 
암각화는 선사인들이 바위나 바위 면을 매개로 삼아, 그들의 시선과 영감을 새기기나 그린 흔적을 말한다. 암각화에는 검파문·동심원문·기하문·바위구멍 등 현재로서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문양뿐만 아니라, 바다와 육지 동물·사람·윷판문·성기문 등 얼추 의미를 알 수 있는 도상들도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선사 자료는 그 역할과 의미를 대부분 이해하기 힘든 만큼, 접근 가능한 유사 자료나 자연환경 등을 함께 고려한 추측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에서 이 책은 저자의 생각을 약간의 팩션(Faction)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정보 즉, 왜 하필 바위인가? 한국에는 암채화가 왜 없을까? 등의 중요한 문제를 분명하게 짚어가고 있다.
 
특히 저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왔던 반구대암각화·천전리 각석에 대한 해석과 이해도는 선구자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각인시켜주고 있다. 복잡하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두 암각화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은 절대 단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이 책에서도 역시 많은 분량이 할애되고 있으며, 그 내용에는 전문 서적 못지않은 수준의 높은 지식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어려운 분석과 해석 내용을 일반인에게 풀어 설명해주는 방식을 취하자, 두 암각화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쉽게 체득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삼 거대하게 느껴지는 저자의 내공이 한층 돋보이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선사인의 시선과 영감으로 제작된 암각화는 현대적인 감각과 상상력만으로는 그 내용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암각화라는 좋은 매개를 통해 꾸준한 대화를 이어간다면, 일면일지라도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에 더해 왜 그렸을까? 어째서 이 장소였을까? 등의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그들이 살았던 세상을 상상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암각화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조금은 다가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암각화 세계로의 여행 
 
사실 암각화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저 그림이 새겨진 특이한 돌 정도가 될 수밖에 없다. 막상 산 깊숙한 곳에 암각화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잘 보이지도 않고 무엇을 그렸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암각화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에서 제시한 경주․고령․포항․남원․안동․함안․부산․대구 등지의 암각화 소개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그나마 지자체마다 문화재 활성화를 위해, 암각화의 위치 안내판이나 안내 문구가 잘 정비되어있는 편이다. 하지만 암각화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없다면 굳이 찾아가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전문 학술지에서는 오히려 말하기 난감한 지점들을, 대중의 대화라는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쉽게 전하고자 노력한다.
 
가령 한국형 암각화라고 불리는 검파문 암각화는 2019년까지 모두 11곳에 발견된 독특한 사례이다. 검파문은 고령 장기리․포항 칠포리․남원 대곡리 암각화 등에서 보이는데, 굵고 깊게 새기고 갈아낸 선으로 형상되는 만큼 눈에 띄는 뚜렷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기원과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없는 만큼, 이와 관련된 막연한 추측들만 전해질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그 추측을 기반으로, 암각화 세계로의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주요 암각화의 분석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성기문․회오리문․석검문 등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거나, 동심원․별자리․윷놀이 등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주제들을 풀어나가며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 와중에서도 전문적인 맥락도 쉽사리 놓치지 않는 것이 이 책의 묘미라 할 수 있다. 
 
보통 암각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체로 서양의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동물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역시 반구대암각화의 동물과 같이 시인성이 좋은 암각화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선사인들 본연의 사고가 남겨진 여러 문양이야말로 그 못지않은 중요한 소산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들이 남긴 흔적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시공간을 이어받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것은 분명하다. 즉, 역사적 산물로서의 암각화를 궁리한다는 것은 시대적 책무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암각화, 바위에 새긴 역사』는 우리를 단숨에 암각화의 세상으로 보내줌은 물론, 그들의 감각에 접근시켜주는 좋은 안내서이다. 
 
 
3. 부록조차 값진 책
 
암각화는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켜왔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때문에 막상 접근을 시도하려고 해도 마땅한 자료가 없는 것 역시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부록에 제시한 주요 암각화 유적 개요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는 주요 암각화의 개요뿐만 아니라 실물 사진․실측도 등의 다양한 정보를 짧고 굵게 소개하고 있다. 사실 흔하디흔해진 인터넷 검색에서조차 암각화와 관련된 정보가 거의 없는 현 상황에서, 이를 널리 알리고 이해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적 가독성을 갖춘 이 책에서 제시한 부록은 그 자체만으로 매우 값진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서사 방식은 저자가 아주 오랫동안 고심하여 만들어 낸 역사문화 스토리텔링이 적용된 결과물이다. 이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잃어버린 고리가 많은 선사 및 고대 예술과 문화를 복원하는 차원에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방식이다. 사실 저자는 매우 조심스럽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이미 많은 저서를 통해 검증된 필력은 대중적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송구스럽지만 앞으로도 저자의 노고를 더욱 기대하며 서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