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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다 속 타임캡슐, 고려사를 건져내다_강재구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3.12.29 BoardLang.text_hits 1,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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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3년 12월(통권 46호)

[서평] 
 
 

바다 속 타임캡슐, 고려사를 건져내다

- 문경호, 2023, 『바다에서 발굴한 고려사』, 푸른역사 -

 


강재구(중세1분과)

 

바다는 예로부터 미지의 영역이었다. 해질녘 갑판 위에 서서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을 상상한다면 자못 낭만적인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바다의 참모습은 매서운 바람과 거친 파도, 언제 마주할지 모르는 암초와 칠흙 같은 어둠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국토의 형세에 대해 『고려사』 지리지의 서문에서는 “삼면이 바다로 막혀 있고[三面阻海], 한 모퉁이가 대륙과 이어져 있다[一隅連陸]”고 하였다. 바다는 더 나아갈 수 없는 곳, 즉 미지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물론 인간은 물 위에서 생활할 수 없으니 땅이 끊겨진 바다는 한계로 인식되었겠지만, 한 구석만을 남기고 삼면이 바다에 접해있는 마당에야 바다는 언제나 도전과 가능성의 대상으로 우리 역사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문경호 선생님의 신간 『바다에서 발굴한 고려사』(2023, 푸른역사)는 그러한 바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백년 간 진흙 속에서 묻혀 아무도 열어보지 않았던 타임캡슐, 그 시절 고려인들의 삶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저자인 문경호 선생님은 학계에서 고려시대 조운 연구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 평자는 책을 읽을 때 흔히 가장 앞에 수록되는 ‘책을 내며’와 같은 저자의 이야기를 가장 재밌게 읽곤 한다. 그에 해당하는 머리말에서 저자의 지도교수이신 윤용혁 선생님이 늘 “좋은 논문(조운 논문)”이라고 재치 있는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전문가가 자기 전문분야에 대해 쓴 책은 무겁고 딱딱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머리말에서의 이 일화와 함께 배워서 알게 된 것을 쉽고 재밌게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을 읽은 뒤에는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미 머리말에서부터 “좋은 책”인 셈이다.
이 책은 서두의 프롤로그와 말미의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본문이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_ 마도 1호선 뱃길을 떠나다
01 갯벌이 지켜준 고려 시대 타임캡슐
02 나라 살림의 버팀목, 고려의 조운제도
03 고려의 배, 서해를 누비다
04 고려의 바다, 고려의 뱃길
에필로그_ 그 많던 배들은 어디로 갔을까 
 
먼저 평자는 이 책의 백미는 바로 프롤로그라고 생각한다. 마치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 천관산의 한 그루 적송(赤松)이 베어져 큰 배가 되고, 물건을 싣고 항해를 떠나 개경으로 향하다가 거친 풍파를 만나 부서져 결국 깊은 바다 속 갯벌에 묻히기 되는 이야기는 오래 교단에 섰던 저자의 노련한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1장 “갯벌이 지켜준 고려 시대 타임캡슐”에서는 700~800년간 서해바다 갯벌에 묻혀 있었던 태안선과 태안 마도 1~3호선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선박들은 ‘발굴’되었다. 수백년 전 바다 속 깊숙이 파묻힌 선박과 거기에 실려 있던 화물을 건져 올렸다. 마치 땅 속 깊이 파묻힌 유적지를 발굴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바다 속에서 건져 낸 선박과 화물을 통해 당시 고려인들의 생활을 복원할 수 있다. 특히, 배에서는 화물의 수신처가 표시된 목간이 다량 출수되었고, 석탄(흑토)과 같은 희귀한 유물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태안선을 제외한 마도 1~3호선을 관선으로 이해하면서, 고려시대에는 조운과 같은 공적 사무를 수행하는 관선에 지방 각지에 수조지를 보유하고 있었던 관료들의 물자가 실리기도 하였다고 보았다.
 
2장 “나라 살림의 버팀목, 고려의 조운제도”에서는 고려시대 바다를 통한 조세운송 시스템인 조운제도에 관해 다루었다. 주지하듯이, 저자는 태안 마도선을 관선 즉, 조운선으로 이해하였으므로 이 장에서는 고려시대 조운제도의 운용과 실상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고려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조세를 개경으로 운반하기 위하여 바다를 이용하였다. 개경으로 이어지는 전국 각지에 조창을 설치하여 거둔 조세를 배에 실어 운송하였다. 조운은 육로를 통한 운송에 비해 경제적이었고 빠른 수단이었다. 이러한 조운제도는 13세기 몽골 침입을 거치면서 점차 변화하였고, 고려말 왜구의 출몰로 인해 운영이 어려운 지경에 처해졌다.
 
3장 “고려의 배, 서해를 누비다”에서는 조운제도에 이어 그 수단인 배에 관해 다루었다. 조운은 매우 효율적인 제도였지만, 바다라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안정적인 수송을 위해서는 그 운반수단인 배의 건조가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물론 물자의 수송에는 관료와 같은 개인의 수요도 있었기 때문에 배는 관선(官船)과 사선(私船)으로 구분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특히 고려의 조선기술이 우수하였음은 13세기 여·몽 연합군의 일본원정 당시 이에 소요되는 선박을 빠르게 건조하였던 사실에서 추측해볼 수 있다. 이처럼 많은 인원과 물자를 싣고 바다를 넘어 일본에 상륙하여 작전을 수행한 후에 다시 바다를 건너 귀국을 할 정도로 고려의 배는 내구성이 우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4장 “고려의 바다, 고려의 뱃길”에서는 제도와 배 만큼이나 중요한 뱃길에 관해 다루었다. 고려시대 뱃길을 복원하기 위한 사료는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특히, 한반도의 서남해안은 해안선이 복잡하기로 세계적으로 손꼽는 지형이기 때문에 연안항해의 어려움도 그만큼 컸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고려에서 조선시대까지 악명 높았던 안흥량의 험로가 대표적이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수로로 연결하려는 운하(굴포) 건설 시도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국제무역항으로 알려져 있는 벽란도에 관하여서도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벽란도가 송과의 무역 뿐 아니라 사신 왕래와 같은 외교 창구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벽란도 일대에는 100여 척의 배가 상시 동원가능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그 구성이 상선뿐만 아니라 병선까지 포함된다는 점이 놀라웠다. 외국인이 오고가는 국제무역항에 병선이 정박해있다니. 아마도 그 병선은 병력이나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 외의 사무에도 동원되었던 것일까 궁금했다. 
 
프롤로그와 마찬가지로 에필로그 역시 잔잔한 울림이 있다. 바다에 대한 고려인들의 도전과 활력은 국제정세가 변화하면서 점차 약화되어 갔다. 13세기 몽골제국이 등장하여 세계가 통합되면서 고려의 해상 활동은 이전에 비해 쇠락하였다. 이는 몽골제국이 해로보다는 육로를 중시하였기 때문이었지만, 그럼에도 13세기 말~14세기 초에 이르러 몽골 세계제국의 국제교역망 속에서 고려의 존재감이 다시 살아나기도 하였다(이강한, 2013). 반면, 고려말 왜구의 출몰은 바다를 위험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조선에 이르러서는 명의 해금정책이나 조선중화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국제무역에서 고립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결국 증기선과 철도 등 근대문물이 도입되면서 전통적인 해운산업은 몰락하고 동시에 조선기술 역시 맥이 끊기고 말았다.
 
저자는 고려시대 해양사를 재조명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바다 속에 잠들어 있어 언제 발굴될지 모르는 타임캡슐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한국 해양사 연구가 문헌 중심보다는 실제 유물을 발굴하고 그 성과를 통해 연구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지극히 공감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