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기사

웹진기사 서평

[서평] 한국역사연구회 역사선 《금요일엔 역사책》 같이 읽기_이승호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01.12 BoardLang.text_hits 1,593
페이스북으로 공유 X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밴드로 공유
웹진 '역사랑' 2023년 12월(통권 46호)

[서평] 
 
 

한국역사연구회 역사선 《금요일엔 역사책》 같이 읽기

- 여호규, 2023, 『시간이 놓친 역사, 공간으로 읽는다』, 푸른역사 -

 


이승호(고대분과)

 
 
“시간이 놓친 역사, 공간으로 읽는다” 독자의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제목일 것이다. 역사란 본디 ‘시간’을 다루는 학문일진대. 시간이 놓친 역사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쉬운 역사’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금요일엔 역사책》은 한국역사연구회가 ‘대중서’를 표방하며 작심하고 기획한 시리즈이다. 분명 너무 멋진 제목이지만 그렇게 느끼는 건 내가 책 내용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연구자이기 때문이지, 분명 책은 대중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을 것이리라 짐작되었다. 대중서로서 너무 어렵지는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책장을 넘기면서 걱정은 조금씩 잦아들게 된다. 저자의 설명 방식은 너무나도 친근했다. 책에 담긴 여호규 선생님의 문장은 그 어려운 전공 지식을 최선을 다해 쉽게 풀어내고 있었다. 문장마다 ‘되도록 쉽게’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저자의 탄식이 들려오는 듯했다. 『시간이 놓친 역사, 공간으로 읽는다』를 비롯한 《금요일엔 역사책》 시리즈가 출판 시장에서 일반 독자들에게 호응을 끌어낼 수 있었던 동력의 원천은 이러한 연구자들의 한숨과 탄식이었겠지 싶다.
 
그렇지만 분명 대중서로서 쉬운 책은 아니었다. 특히 공간과 장소에 대한 여러 이론을 폭넓게 소개하는 1·2장의 내용은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역사 연구자들에게조차도 낯선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서점에서 책을 꺼내 본 일반 독자들은 처음부터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점이 있다. ‘대중서로서의 역사책은 반드시 쉬워야 하는가’라는 반문이다. 한국 역사를 서술하는 시중의 많은 대중서가 ‘쉬운 역사’를 표방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말들이 기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재밌는 공부는 있을 수 있어도 쉬운 공부는 없다는 말이 있듯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그렇게 순탄한 길로만 갈 수 없음을 누구나 안다. 더구나 그것이 역사가가 밤새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놓은 연구 성과들이 축적되어 구성된 것이라면, 그러한 지식은 더더욱 쉬운 내용일 수 없음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 대중서라고 꼭 쉬울 필요는 없다. 여기서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책의 내용이 분명 쉽지는 않으나 일반 독자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01 공간, 왜 주목해야 하나
02 공간 이해의 출발점
03 고대인들이 바둑판 모양 게획도시를 건설했다고
04 왕의 거주 공간이 왕궁이 되기까지
05 지방 각지에 ‘또 다른 서울’을 건설한 까닭
 
 
공간에 대한 주목의 필요성
 
흥미로웠던 것은 COVID-19 팬데믹 속에서 ‘온라인 공간’이 일상화되기 시작할 무렵 반대로 저자는 역사 속 ‘오프라인 공간’을 주목했다는 점이었다. 책은 ‘시간적 변화’와 더불어 ‘공간’에 주목하길 요청한다. 오늘날 현대인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전 세계 어디든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다. 이처럼 공간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 현대인의 시선에서 고대의 역사를 바라보면 자칫 전근대 사회에 작용하였던 ‘공간의 제약’을 놓칠 수 있다.
 
저자는 이 지점을 명확하게 간파하고 전근대 시기에 공간은 우연적 혹은 부차적 요소가 아닌 인간 행위의 근본 조건이었음을 역설한다. 이러한 공간에 주목하면 인류의 역사를 더욱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여러 공간에서 공시적으로 존재하던 다양한 역사 주체의 존재 양상과 상호 간의 관계망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논의를 따라가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실제 책에서는 저자의 오랜 연구주제였던 한국 고대 도성 연구를 실마리 삼아 이러한 이해가 구체화해 가는 과정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1장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역사관’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시간 우위의 역사관’이 낳은 폐해를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곧 시간 우위의 역사관은 서구 중심의 시간관념에 근거해 공시적으로 존재하였던 여러 문명과 역사를 발전의 척도에 따라 폭력적으로 줄 세우기를 하였다는 것이다.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라는 완성형 모델을 향해 서로 경쟁하며 달리기하는 것처럼 서술되어 온 고대국가의 역사상 그 자체가 시간 우위의 역사관이 빚어낸 왜곡이라는 지적이 너무 명쾌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공간을 중시해야 한다는 명제는 명확하지만, 사실 그 뒤로 드리워질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시선에 겁부터 집어 먹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2장의 논의를 통해 이러한 난점을 너무 수월하게 그리고 간명하게 해결하였다. 저자는 공간이 무엇을 결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위에서 펼쳐진 무수히 많은 역사상을 온전히 그대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공간이 역사를 결정하진 않지만, 역사는 공간에서 전개된다. 공간 자체가 역사의 전개 방향을 결정하진 않지만, 인간의 역사는 공간과 상호 긴밀한 관계 속에서 그것을 변용하고 새롭게 창출하면서 그 안에서 일구어진다. 공간에 주목해야 한다.
 
 
책을 관통하는 또다른 키워드, ‘사회적 생산 공간’
 
조선 시기 유학자들이 평양에 남아있던 옛 고구려 시대 격자형 가로구획 흔적을 기자 시대 정전제의 흔적이라 오해하였던 일화에서부터 풀어가는 3장은 분명 일반 독자들도 흥미로워할 이야기들이 많다. 이러한 조선 지식인들의 ‘기자 정전제설’은 어떻게 인간의 시선에 의해 기존 공간이 전혀 다르게 지각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지배 이데올로기나 정치체제를 동원해 새로운 사회적 공간을 생산하는지 잘 보여준다. 한편, 고대 도성의 바둑판 모양 시가지는 영토 확장과 인구 증가를 배경으로 건설된 사회적 생산 공간으로서, 격자형 가로구획이라는 사회적 공간의 생산을 통해 고대적 신분제가 더욱 단단하게 구축되어 갔음을 보여주는 지표와도 같다.
 
이 책은 삼국과 통일신라의 도성을 중심으로 고대의 ‘공간’을 설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대를 넘나드는 서술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경복궁 이야기로 시작하는 4장의 해설은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백미라 생각한다. 근정전을 중심으로 펼쳐진 경복궁의 구조를 비교 사례로 삼아 시기 별로 신라 왕궁이 어떻게 변화해 나갔는지를 추적해 가는 설명 방식은 마치 그러한 과정이 눈 앞에 이미지로 펼쳐지듯 생생하게 전달된다. 또 경복궁을 온전히 느끼려면 먼저 그곳이 권력에 의해 생산된 ‘사회적 공간’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도 다시 새기고 싶다. 4장에 담긴 저자의 해설은 경복궁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만든다.
 
책이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는 고대사회 지방 각지에 존재하였던 ‘또 다른 서울’에 대한 것이다. 신라는 왜 각각 그 위치에 5소경을 두었을까 평소에도 궁금해하던 차였다. 책에서는 삼국이 모두 지방에 서울과 비견되는 별도 혹은 소경 등의 공간을 새롭게 건설한 이유로 ‘재화의 공급 집적지’ 기능을 수행케 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적어도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신라의 5소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읽고 「신라촌락문서」 속 서원소경 촌의 공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5소경이라는 공간을 더욱 생생히 상상해본다.
 
 
내가 집을 갖지 못하는 이유, 그곳은 사회적 생산 공간이기 때문
 
마지막으로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사회적 생산 공간’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 곱씹어볼 생각이다. 딸아이가 일곱 살이 된 지금의 나에게 인생 최대의 목표 중 하나는 ‘내 집’ 마련이다. 언젠가부터 내 삶의, 그리고 노동의 방향성은 그러한 공간의 획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더 좋은 공간, 더 비싸고 앞으로 더욱 비싸질 공간으로 눈이 향해 있다.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현대 사회라지만, 이처럼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공간 자체는 욕망의 대상으로서 현대인의 삶의 양식을 여전히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왕경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고대나 현대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일까. 도성 안은커녕 성저십리 근처에라도 집을 마련해 살고 싶다는 내 욕망의 근원 또한 ‘사회적 생산 공간’과 닿아 있다. 내가 집을 못 사는 이유는 내가 살고자 하는 곳이 ‘사회적 생산 공간’이기 때문임을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