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무척 난감하였다. 시론을 부탁 받았을 때, 처음에 거절하려 하였다. 중세사를 연구하는 나는 지금의 사회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를 전개할 주제조차 마땅치 않았다. 느슨한 현실 인식으로는 비판적 논의를 전개할 엄두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의 청탁은 거절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무슨 주제를 다룰 것인가, 이 문제는 계속 고민거리였다. 현재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으니, 그야말로 시론(時論)은 포기하였다. 남은 것은 학계의 방법론 등에 대해 말해 보는 시론(試論)뿐이다. 그렇지만 평소 공부가 부족한 필자가 시론인들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그나마 최근 조금 관심을 지녀온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4차 산업혁명1)이라고도 불리는 기술 혁신과 이로 인한 사회 변화이다. 물론 필자는 이것조차도 제대로 공부하거나 다루어본 일이 없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디지털 기술에는 거의 문외한과 비슷한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지금 꺼내야 하나? 사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은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가 의장으로 있는 2016년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에서 주장한 말이다. 여기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던 간에 우리는 분명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한국사 연구와 관련이 있을까에 있다. 이 점에 관해 시론(試論) 수준이 아닌, 매우 주관적인 생각을 써보려 한다. 개괄적 글이라서 《역사와 현실》의 지면을 낭비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2. 4차 산업혁명과 한국사 연구
4차 산업혁명은 매우 식상한 주제이다. 사실 한국사 연구는 역사학이기에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간다. 4차 산업혁명은 무엇보다 기술의 변화를 기반으로 하기에 인문학과 거리가 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 무엇인지도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대체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현재 한국사학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잘 체감하지 못한다. 정말 4차 산업혁명의 여러 기술은 한국사 연구에 도움이 될까? 그리고 기술(테크놀로지)에 대해 한국사 연구자가 관심을 가져야 할까?
원래 기술의 변화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어왔다. 하지만 기술 변화가 사회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 점은 한국사 연구에서 많이 다루어진 주제가 아니다.2) 우선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이 적은 이유는 역사적으로 유럽과 한국과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유럽은 1차 산업혁명이 근대 국민국가로의 형성과, 삶의 방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유럽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가치와 평가, 그리고 사회적 변화와 인간에 미친 영향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오래전부터 중요하였다. 기술에 대한 전통과 이해, 그리고 관심이 인문학에서도 일찍부터 이루어진 편이다. 더구나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과학에 대한 이해 역시 다방면에서 이루어졌다. 과학기술의 가치와 그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었던 셈이다.
한국은 서구 과학과 기술을 외부로부터 수용한 것이며, 이 중 기술은 공학에서 다루어왔다. 공학과 역사학의 거리는 상당하다. 특히 인문학도의 경우 기술 자체에 이해가 쉬운 편이 아니다. 더구나 기술과 사회와의 관련성은 주로 산업적 측면에서 효용성을 발휘해왔기 때문에, 이를 역사학에서 다룰 이유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이 사회를 크게 바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 삶의 사회적 변화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올해에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챗gpt’를 포함한 다양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오래전부터 진행해온 로봇 분야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3) 로봇은 지금까지 사회에서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산업형이 아니라, SF영화에서 등장한 인간과 닮은 형태로 등장할 날이 이제 멀지 않아 보인다.4) 1차 산업혁명이 인간 근육의 힘을 대신할 기계의 발명이 기축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인간 지능과 지적 능력을 대신할 프로그램이나 로봇, 기계류 등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역사학은 이렇게 바뀌게 될 미래와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5) 바뀐 삶은 당연히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나아가 인간에게 각종 다양한 문제들을 던질 예정이다. 예컨대 인공지능에 자신의 판단까지 맡겨버리는 인간 유형의 증가, 그리고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의 진화로 인한 인간관의 변화6) 등이 그런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지능을 갖춘 로봇이 인간적 감정까지 과연 가질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학습을 하는 존재이기에, 인간처럼 편견을 가지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사회적 판단을 점차 인공지능에 의존하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모르는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에 대한 판단을 인공지능에게 의존하게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는 것은 매우 수월하여 습관화된다는 점과 함께, 두뇌가 디지털 정보에 대한 의존성이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는 것이 자신이 직접 데이터나 자료를 찾거나, 독서 등의 수고를 들이는 것을 대신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에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인공지능의 의견대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사회적 주류 의견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 점은 사회와 역사적 현상에 대한 기존 가치판단의 근간이 크게 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판단에 근거가 되는 가치관이나 윤리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자칫 길을 잃고 무력화할 수 있다. 결국 디지털 중독은 인간의 두뇌 구조는 물론이고 행동방식과 습관까지 바꾸는 시대를 열지 모른다.7)
이러한 인공지능의 이용은 한국사 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미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각종 프로그램은 한국사학계에서도 일부 이용되고 이미 그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한문 번역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과거 한국사에서의 지리적 연구, 금석문 번역, 빅데이터를 이용한 호적이나 인적 관계망 연구나 고고학이나 미술사에서의 3D입체 복원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아직 연구 성과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점차 늘어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과 한국사 연구와의 관계는 그 간에 몇 차례 논의가 되어왔다. 이미 그 성과로 나와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모두 학술발표회의 결과물이다.
1)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4차 산업혁명과 한국사 연구》, 역사인, 2019
1편 한국사 연구의 원천 자료와 ICT・AI
박수찬, 고려시대 사료 서비스의 현황과 새로운 방향성 -외국 사례의 분석과 활용-
홍근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을 통한 고전문헌 사료 번역과 역사학의 미래
임동민,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과 한국 고대사 -목간의 인공지능 판독과 고대사 유적의 VR・AR 복원을 중심으로-
2편 문화유산 정보의 초연결성과 역사 지식 플랫폼
홍민호, 문화유산 정보 제공의 현황과 정보의 ‘연결’
곽금선, 한국사 연구자 네트워크기반 역사지식 플랫폼의 구축 방안 -연구자간 소통 확대와 역사대중화를 위한 모색-
3편 역사학의 대중화와 빅데이터 기술
김태현, ‘4차 산업혁명’시대 ‘역사학의 대중화’를 위한 시론 -팟캐스트: 만인만색 <역사공작단>을 중심으로-
문민기, 빅데이터와 역사학 연구의 전망 -한국근현대사 연구사례와 과제를 중심으로-
2) 《한국사연구》197, 2022, 특집 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사의 역할과 미래
이상국, 한국사 연구와 디지털역사학 연구방법론 –양적분석을 중심으로-
임동민, 네트워크 분석과 한국 고대사 연구의 접목 가능성 -함안 성산산성 목간을 중심으로-
정요근・김현종, 역사 GIS 기반 1910년 기준 면(面) 단위 행정구역의 복원
아울러 최근에도 한국사연구회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와 한국사의 미래>(2023년 11월 11일)라는 제목으로 학술 발표회를 열었다. 이처럼 한국사 연구에서도 디지털 기술은 주목할 만한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사 연구의 성과는 앞서 말했듯이 아직 초기 단계이다. 정말 디지털 기술, 예컨대 인공지능 등을 통해 어떤 성취를 이룩할 수 있을까는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한국사 연구 논문을 생산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논문 작성은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저작활동 중 하나이고, 학문적 성취를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를 직접 작성하는 것이 아니고, 인공지능이 한다면 우리는 상당한 문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까지 아직 그런 경우가 있다고 들어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현재 이미 인공지능을 훈련시켜 각종 예술적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근 이런 창작물의 저작권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라고 한다. 예술적 창작은 무엇보다 예술상품시장과 관련이 있기에 일찍 시작하였다고 본다.
과연 인공지능에 한국사 논문을 데이터로 제공하고, 이를 훈련시킨다면 한국사 논문을 쓰게 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할까? 이에 대한 답은 미래를 기다려 보아야 한다. 그러나 대학생 일부는 이미 리포트 과제를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작성한다. 논문 요약은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쉽게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학계에서 힘들어 준비했던 1년간의 연구 성과 정리를 인공지능에게 맡길 날이 곧 올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은 기존의 디지털화한 자료,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이나 한국고전종합DB와 같은 데이터의 활용에도 이용될 전망이다. 처음에는 분명히 데이터를 사람이 연결하고 이를 활용하도록 지표를 주는 형태이겠지만(슈퍼바이저 학습 방식), 이를 스스로 학습하는 방식으로 변화될 것이다.
과연 디지털 기술이 가져오는 한국사 연구는 어떻게 변화할지?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
3. 디지털에 중독된 사람들의 역사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뇌과학에서 디지털 중독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이루졌는지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핸드폰 중독은 디지털 이용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속의 정보와 오락성은 분명히 뇌의 구조에 영향을 준다. 그것은 독서와 관련된 문해력 저하와 관련이 있으며, 이미 사회문제로 제기된 것이 제법 되었다.
철저한 주관적 판단이지만 요즘 대학생 내부의 세대 차이가 있다고 느낀다. 즉 코로나로 인해 가정에서 온라인 학습만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입학한 올해 신입생은 이전과 또 다르다. 이들의 문해력은 현저히 저하된 느낌이다.
시대적 흐름이겠지만 학생들이 추상적 개념과 단어를 더욱 어려워하고, 문맥 이해를 힘들어 한다. 물론 모든 학생이 이렇게 변화했다고 일반화하거나 보편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만나는 교수자분들에게 여쭈어보면 그런 경향이 상당하다는 답변을 듣는다.
과연 우리는 이런 학생들에게 어떤 역사 교육을 해야 할까? 현재 한국사 교과서는 상당수 학생에게 거의 암호문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한자 용어와 역사적 개념, 그리고 철저히 축약된 내용은 학생들에게 무척이나 어려운 난관의 대상이다. 그만큼 교과서는 한국사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또한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 증가는 역사학 연구와도 관련이 갖는다. 미래 역사학의 존립이 외골적 지식이나 편협한 시각을 지닌 소수에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학 연구의 발전은 상식적이고 비판적 판단을 하는 다수 대중을 배경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다수 대중이 역사학의 결과나 대중화 작업물을 소화해 줄 때, 학문 연구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역사학 연구자의 공급 역시 선순환할 것이다.
결국 기존과 같은 읽기와 쓰기 방식이 역사학 교육에서 유효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당면한다. 물론 변화가 쉽게 가르치는 방식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디지털에 중독되었다고 독서를 하지 않거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해졌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을 역사학의 재미에, 아니면 적어도 역사에 대한 관심과 유용성에 대해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디지털을 이용한 역사교육 방법이 고민되어야 하고,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 않을까?
현재 필자 역시 여기에 대한 답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만 이러한 문제를 느끼는지 궁금하였다. 계속 대안 없이 문제만 제기하고 있는 자신이 오히려 문제아가 아닌가 싶다.
<미주>
1)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구글에서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즉 “4차 산업혁명이란 인공 지능(AI)과 사물 인터넷(IoT), 빅 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모바일 등 지능정보통신기술이 기존의 경제와 산업, 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만들어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말한다.”
2) 한국사 분야에서 기술과 달리 과학사 분야는 일찍부터 활성화하였고, 연구 성과도 많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의 역사를 다룬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3) 산업에서 로봇 사용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다. 한국은 산업계 로봇 사용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국가이다. 2021년 산업용 로봇밀도(노동자 1만명 로봇사용대수)는 한국이 세계 1위(932대)이다(「한겨레」 신문, 2021년 10월 29일).
4)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하지만 비전문가의 눈에도 로봇과 인공지능과의 결합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 테슬라는 작년 공장에서 사용할 로봇을 개발하였는데, 외형이 인간의 틀과 유사하다. 미래에 출시될 가격은 25,000달러 정도일 것이라고 하는데, 올해 공개된 업그레이드 모델은 관절 사용이나 사물 인식 능력이 한결 높아졌다. 이것에 인공지능이 탑재되고 훈련된다면 가정에서도 활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필자가 로봇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5) 역사학의 역할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실증이나 고증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미래사회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
6) 우리는 ‘인간과 로봇의 구분’이나 ‘로봇의 자의식 형성’, 나아가 ‘로봇의 로롯권’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AI>란 영화는 오래 전에 이를 다루었다. 결국 이러한 사회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며, 인간관의 변화에 대한 역사학의 역할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7) 이런 지적이 필자의 단순한 기우로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인간이 이렇게 디지털에 의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