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의 책,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최근 읽은 한국사 교양서들 중, 그 메시지의 심도 측면에서 가장 ‘만만치 않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좀 추상적이지만 거창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보자. 역사학자가 다루고, 밝혀내는 것이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은 역사학 개론 시간부터 배우는 상식에 가깝다. 하지만 그 또한 따지고 보면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보통 이 주제에서 흔히 거론되는 것은, 자료에 투사되는 기록자의 관점에 대한 문제이지만, 좀 더 원론적으로, 사람의 언어/문자는 사람의 생각을 온전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까? 너무 현학적이라면 조금 더 사례를 좁혀 질문해보자. ‘한반도의 전근대인은 한문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현대인이 한문 자료만으로 전근대인의 삶을 온전히 확인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한국 전근대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한문 자료’를 다룬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에 가깝다. 한국 전근대사 연구자들의 연구 대상인 “조선왕조실록” 및 그에 준하는 각국 공문서든, 지식인 개인 문집이든, 묘지명 등의 금석문이든 대부분의 연구 대상은 당대의 지식층에 의해 작성된, 당대의 문어(文語)였던 한문 자료다. 물론 전근대의 보편 문어인 한문을 ‘한국’과 분리시켜 ‘중국어’라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한문 사용이 전체 인구의 일부분에 그친 것과, 그 기록들이 당대의 구어, 나아가 당대의 언어생활과 그대로 일치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대다수 문헌은 지식인층의 잘 다듬어진 표현들이며, 이는 ‘현실’의 빙산에 일각일 뿐이라는 사실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퍽 맥 빠지는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는 없다. 결국 역사학은 자료로 말해야 하는 학문이고, 그 의미에서 역사학자는 문헌에 예속된 존재다. 좀 더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역사학자가 만들어내는 지식은, ‘주어진 문헌을 통해 설명 가능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서사일 뿐, 당대의 ‘진실’ 그 자체와 동일시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잘 정련된 한문 자료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역사학자의 작업을 엘리트들의 잘 정돈된 문어를 그대로 옮겨 적는 일로 국한시킬 수도 없다. 이에 전근대를 배경으로도 ‘민중사’의 복원이나 ‘생활사’의 발견을 성립시키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이 이어져왔다. 문헌에 나타난 지배층의 언어를 비판적으로 독해하거나, 반대로 그 문헌에 남아있는 ‘이면’을 복원하려 하는 시도들이 오랜 시간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여러 비평적인 시도들이 유의미함에도, 결국 자료상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장지연의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는 바로 그 측면, 다시 말해 한문 자료로 포착되지 않는 구어적인 세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을 하나로 꼽아본다면, 역사학자들이 접하는 ‘한문 사료’와, 당시의 언어생활 내지 사고방식 간의 다양한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무겁지 않은 문체로 소개되는 여러 문제들이, 모두가 만만한 질문들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탁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그 제목에 대해서 곱씹어본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절묘한 부분은 이 책이 《한글의 한국사》, 혹은 《한국어의 한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구어적인 언어생활과 문어 한문 자료 사이의 간극에 대해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럴 때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릴 수 있는 구도는 바로 ‘한글-민중-여성’의 토착성-비주류성에 대해 다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엘리트의 한문’으로는 도무지 담아낼 수 없는 ‘우리 민중의 삶’은 한글 속에 아로새겨져 내려온 것이라고 정리하는 익숙한 방법이다. 저자도 인정하듯 이 또한 역사적 사실의 일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그것보다는 더 섬세한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저자는 ‘한문/중국어/지식인 vs 우리말/민중’의 구도를 이분법적으로 설정하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신중하다. 저자는 한문의 영역이 채 담아내지 못한 언어생활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한글-구어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기도 하지만, 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사용된 차자 시스템을 둘러싼 긴장의 역사, 한문 사료의 행간만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외교문서 등의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비단 한문/문어의 사용을 엘리트-사대-보편으로 단순화할 수 없는 국면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원 간섭기에는 몽골인들과 대면하는 국면에서 한문이 오히려 고려인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고 한다. 충선왕이 몽골 조정에 과거제를 건의하는 국면에서는, ‘한문에 기초한 문화’야 말로 몽골인에 대비될 수 있는 스스로의 개성이었다. 따라서 저자에 따르면 보편문으로서의 한문에 대한 고려의 열망 또한 저자에게는 조선시대 여성의 한글 사용만큼이나 중요하게 살펴야 할 고려인의 언어·문화생활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글의 한국사》는 물론이고, 그보다는 훨씬 정확한 제목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한국어의 한국사》 또한 (특히 ‘한국어’를 ‘중국어가 아닌 언어’로 정의한다면) 그리 정확한 제목은 아니다. 광의적으로 ‘한국’에서 사용되었던 모든 문자/구어를 포괄한 개념을 ‘한국어’라고 정의한다면 안 될 것도 없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한문’ 주변부를 둘러싼 긴장을 보여주기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저자가 제시한, 한글의 존재가 한문의 문해력 향상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가설은 무척 흥미롭다. (확실히 해 두자면, 저자가 훈민정음이 한자 발음기호를 위해 창제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서민/여성=한글, 엘리트/남성=한문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구어를 표현하는 수단인 한글이 조선시대 문화/교육 전반에 미친 파급력을 주장한다. 한글이 실질적으로 엘리트층의 문해력 확대를 야기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과감한 상상에 따라, 한글은 비단 비 엘리트-주변부의 언어적 도구만이 아닌, ‘조선시대 사람들’의 문화적 역량을 이끌어가는 수단이 된다. 같은 취지에서 양반 남성의 한글 사용이 저자에게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굳이 번역하지 않고 구어를 그대로 노출하고 싶어 하는 한 끗”은 굳이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이 다루는 것은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의 역사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문어로서의 한문에 익숙한 엘리트에게도, 그렇지 않은 비 엘리트에게도 표현의 열망은 똑같이 존재한다. 비 엘리트에게 그것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고도의 정치적 수단이자, ‘진정성’을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저자는 한글의 주변부/변경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한문-성독을 중심으로 한 권위가 한글-묵독을 기반으로 뒤집혀져가는 이야기는 그 차원에서의 묘한 짜릿함이 있다. 하지만 엘리트라고 해도 그들은 오롯이 한문의 세계에서만 살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도 자기표현의 열망으로서의 ‘한문의 한계’는 구어적인 표현 수단인 언문의 등장과 함께 해소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배움에 대한 열망뿐 아니라 가르침의 열망마저도 자극한 것이기도 했다. 시대마다 그 수단을 달리하였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이 시대를 이끌어갔음이 저자의 책이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론할 이 책의 중요한 개성은, 상기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 의미에서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문헌으로 포섭되지 않은 세계가 있었음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려 하는 것’, ‘말해지지 않은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는 상상을 멈추지 않는 것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목소리를 빌어,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본다.
"문자가 사라지며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은 없는가?
정말로 다른 문자는 다른 역사상을 보여주는가?
보편 문어는 늘 보편 문어였는가?
보편 문어와 구어의 세계는 어떻게 교섭하고 변화하는가?
새로운 문자의 창제는 당대에 어떠한 비중을 가진 것이었는가?
새로운 문자가 불러온 새로운 현상은 무엇인가?
문자의 소유가 불러온 인간의 욕망은 무엇인가?
문자 생활의 젠더화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문자가 변경에 놓였을 때 변경이라서 얻는 것은 없는가?"
(174쪽 인용)
물론 “자료가 충분치 않은 만큼 온전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저자 또한 그 한계를 뛰어넘는 신비한 묘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그 점이 저자의 책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답을 당장에 찾을 수 있는가와 별개로 “이러한 의문을 마음 한켠에 품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 시기를 납작하게 상상하는 우를 범하진 않게 될 것”(150쪽)은 분명할 것이다. “한문이/말하지 못한/한국사”를 보여준다는 저자의 선언은 그 의미에서 짧지만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가볍게 읽어도 금방 읽히지만, 깊이 생각하려 할수록 파고들 만한 문제들이 적지 않게 제시되기도 한다. 서두에서 그 메시지의 심도 측면에서 가장 ‘만만치 않은’ 교양서라고 시작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기꺼이 일독을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