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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한국사교실 참관기] 고민의 여정_문지혜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03.05 BoardLang.text_hits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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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4년 2월(통권 48호)

[한국사교실 참관기] 

 

고민의 여정

 

 

문지혜(덕성여자대학교)

 
 
 
지난 2023년 최대 관심사는 바로 대학교를 졸업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한 것이었다. 슬프게도 4학년 1학기의 시작을 약 2주 앞둔 지금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진로 고민의 갈래는 뻔했다. 취업이냐 진학이냐. 사실 마음은 이미 대학원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전공으로 삼고 싶은 분야를 찾는 것은 도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려사 강의를 들으면 그 시대가 궁금해지고, 고대 그리스·로마에 대해 알게 되면 지중해로 가야겠고, 선택지가 불어나기만 하니 진정으로 원하는 걸 찾지 못해서 문제였다.

졸업을 일 년도 채 안 남긴 이번 방학의 목표 중 하나는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 《2024년 제13회 예비-초보 전문가를 위한 한국사교실(이하 한국사교실)》을 알게 됐다. ‘한국사 연구 동향과 주제 모색’이라는 주제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학계 내 연구자가 소개하는 기존 연구 흐름을 알면 관심 분야를 확실히 설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여 참가하기로 했다.

한국사교실은 이틀간 진행됐다. OT로 시작해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의 연구 현황과 전근대·근현대별 DB 사용법을 배웠다. 또한, 한국사교실을 운영하는 한국역사연구회에는 고대사, 중세사1(고려), 중세사2(조선), 근대사, 현대사 총 다섯 분과가 있다. 분과별로 수업이 진행되며,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각 분과의 활동 특히 연구반을 소개했다. 연구반은 일종의 스터디 그룹이다. 특정 시대와 연결되는 공부를 하는 연구반이 많지만 국한되지 않는 반도 있다.

한국사교실의 목적은 대학원 생활을 보조하기 위해 연구 동향과 논문 작성 방법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업마다 각 선생님께서 경험하신 시행착오를 토대로 한 조언을 듣는 느낌이었다. 생생하고 구체적인 사례는 단순한 이론이 아닌 설득력을 가진 근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은 신경미 선생님의 〈조선시대 문화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였다. 대개 다른 수업은 경계가 상대적으로 뚜렷한 정치·사회·경제·사상사를 다루었다. 그중에서 문화사는 튀었다. 초반에 문화사를 정의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셨는데, 현재 학계 내에서도 정의가 통일되지 않았다고 한다. 공통된 것 없이 각자만의 문화사만 있으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이 문제는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연구가 문화사로 수용될 수 있는 고유한 지점을 각자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연구자는 논문과 연구를 계속 평가받는 직업이라고 하셨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평가에 마구 휘둘려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자기만의 생각에 고립되어서도 안 됐다. 그리고 조선시대 경우 사료가 다양하기 때문에 전부 다 읽을 수는 없다. 이 실질적인 한계를 역사 이론이나 사회학적·인류학적 방법론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으니 여러 이론서를 읽을 것을 적극 권장하셨다.

또한, 연구자로서 고민을 공유해주시기도 했다. 〈한국 고대사학계는 지난 20년간 무엇을 고민해왔는가? -정치사와 사회사 연구 경향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강의하신 박초롱 선생님은 최근 고대사 연구 주제가 다양화·전문화되었다고 정리하셨다. 그러나 이는 곧 파편화·과열화이므로 공동의 큰 문제의식이 상실된 게 아닌지 우려하셨다. 따라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고대사 연구의 본질과 고유한 의미를 고민하고 답할 필요가 있었다.

당장 그리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정보는 박광명 선생님의 수업 〈한국근현대사 연구와 디지털 아카이브-구축 사례와 활용 방법〉에서 얻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저장 기능과 엑셀을 활용해 나만의 사료집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일일이 복사하기, 붙이기를 반복하며 자료 수집했던 날에 작별을 고했다. 또한, 한컴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잘 몰랐다. 매번 한자 키를 쓰거나 미리 복사해 두어 그때마다 붙이기를 하며 홑낫표, 겹낫표를 쳤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 외에도 이상민 선생님은 〈고려시대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들-00년대 이후의 정치/사상사 연구들을 중심으로〉에서 고려가 조선으로 이행되는 과도기 시대인지 고유한 특징을 가진 시대인지에 대한 물음을 큰 줄기로 삼아 진행하셨다.〈논쟁으로 보는 한국근대사 연구 동향〉에서는 해방 이후 식민사학을 타파하기 위해 등장한 내재적 발전론부터 시작해, 당시 정치적·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며 기존 이론이 어떻게 비판받고 발전하는지를 쭉 훑으셨다. 이준성 선생님의 〈한국전근대사 관련 DB 활용 노하우〉를 통해 디지털 사료의 편찬 목적을 알고, 이용자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환기하는 기회를 가졌다. 김선호 선생님의 〈한국현대사연구와 논문작성법〉은 현대사 연구 자료 종류를 간단히 살펴보고, 논문 주제 설정부터 집필까지의 논문 작성 순서를 짚어보는 시간이었다. 학위 논문은 개인 연구가 아니라 지도 교수와의 공동 연구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사교실을 참여하며 진로 고민이 말끔히 해결된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기적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대신 고민의 동력을 가속화하고, 재차 의지를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 무엇이 부족한지 점검하고, 그것을 채우는 방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홀로 관심 분야를 분명히 말하지 못했던 자기소개 순간의 민망함을 기억한다. 이를 양식으로 삼아 고민의 막판 스퍼트를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