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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한국사교실 참관기] 대학원을 앞둔 나의 불안에 작은 실마리가 되어_장민영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03.05 BoardLang.text_hits 1,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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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4년 2월(통권 48호)

[한국사교실 참관기] 

 

대학원을 앞둔 나의 불안에 작은 실마리가 되어

 

 

장민영(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는 나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3월 전까지 놀 수 있는 만큼 다 놀고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사실 마음 한구석의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대학원에 일단 진학은 하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사상·문화사를 잘 해낼 수 있을까? 무사히 학위를 취득할 수 있을까?’와 같은 무수한 불안과 걱정이 앞섰다. 그때 학부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한국역사연구회의 ‘예비–초보 전문가’들을 위한 한국사교실이 열릴 예정이라는 메일이 왔다. 그 안내문을 받고 대략 일주일을 고민했던 것 같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던 만큼 마포구까지 가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수업이 나의 두려움에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신청하였다.

제13회 한국사교실은 2월 14일부터 15일 이틀간 시간순으로 시대별 수업이 진행되었다. 모든 강의가 시작되기 전 한국역사연구회의 각 시대별 분과와 활동에 대한 소개를 해주셨는데 신진 연구자에게 있어서 매우 유익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는 것보다도 자세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은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각자의 관심분야와 자기소개를 들으니 두근거림이 배가 되었다.
 
 

첫째 날

 
첫 번째 강의에서는 고대사 연구사에 대한 내용과 연구 현황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최근엔 문헌 사료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사의 비중이 줄고 목간과 같이 고고학 자료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며 인접 학문과의 연계성에 대해 강조하셨다. 인상 깊었던 점은 고대사 연구가 점차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보면 파편화되고 과열화되었다는 것으로 역사학에 있어서 큰 문제의식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셨다.

두 번째 강의는 고려시대가 주인공이었다. 고려시대라는 시기를 과도기로 볼 것인지, 특수성을 가진 시기로 볼 것인지 이렇게 두 가지 시각을 제시하여 강의하신 점이 인상 깊었다. 확실히 나도 고려시대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1차원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고대사도 아닌 근대사도 아닌 그 중간의 어떤 시기, 라는 이미지였다. 이러한 특수하고도 신비한 매력을 가진 고려시대의 특징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신선했다.

첫째 날의 마지막 수업인 조선시대 문화사 강의에서 깊은 가르침을 얻었다. 학부 내내 문화사학회에서 활동한 나는 대학원 지원 당시 연구계획서도 사상이 어떻게 연극 텍스트에 영향을 미치고 향유되는지를 연구하겠다는 포부를 썼다. 문화의 창조 및 향유 주체는 인간이기에 늘 연구 대상이 되지만 이것이 역사학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그 애매한 포지션에 대해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수업을 통해 문화사가 얼마나 다양한 학문과 연계될 수 있고 폭넓은 분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지를 배웠다. 내가 선택한 전공으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논문을 써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했던 최근의 가장 깊은 고민이 덜어지는 순간이었다.
 
 

둘째 날


둘째 날의 시작은 근대사 연구 논쟁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제강점기를 전공으로 꿈꾸는 학생이라면 학부 때 누구나 근대사의 논쟁에 대한 수업을 수강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재적 발전론에서 시작하여 식민지 근대성론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짧은 시간에 정리해주시고 식민사학 이후의 흐름을 알차게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의 연구 전망으로는 식민지 개발사, 과학기술사. 생태환경사를 소개하셨다. 이러한 분야들은 이공계의 지식을 적극 활용하고 인접 학문과의 교류에 나서서 근래의 역사학의 확장성을 느끼게 했다. 앞으로의 사학계가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이후 시간에는 데이터 베이스를 활용하는 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웠다. 전근대사 전공자가 활용하면 좋을 디지털 아카이브와 근현대사 전공자가 활용하면 좋을 디지털 아카이브를 따로 배울 수 있어서 유용했다. 마지막 시간은 현대사 연구의 짧은 소개와 논문 작성법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석사 논문 주제를 선정하는데 고려할 것들과 실제 논문 작성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들이었다.
 
 

돌아오는 길


일본 사상가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의 사상이라는 책을 읽으며 “문어 항아리”라는 표현을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항아리 하나에 한 마리의 문어만이 들어가는 것처럼 일본의 학문들은 연계 없이 모두 단절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한국의 사회와 학계 역시 이에 상당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하나에만 매몰되고 주변과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이 말이다. 하지만 이틀간의 한국사교실 강의를 들으며 다른 전공 시대 선생님들과 소통하고 역사학의 장래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었다. 시대 불문하고 인접 학문과의 교류를 두려워하지 않고 간학문적인 연구를 해나가는 현황들을 보면서는 나도 저렇게 더 넓은 시야의 연구를 하고 싶다는 다짐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가지고 있던 불안은 내가 전통적인 역사학이 아닌 길을 가려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나의 불안은 다짐을 통해 누그러지고 있음을 느끼며 모든 수업이 마무리되고 귀가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문뜩 한국사 교실에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교실을 통해 내가 연구계획서에 작성했던 간학문적인 연구를 진심으로 이루어내고 싶다는 다짐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이 다짐은 앞으로 내가 또다시 불안하고 힘들어질 때가 오면 큰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신진 연구자의 길을 앞에 두고 있는 또 다른 분들도 이 한국사교실을 통해 든든한 마음속 나침반을 찾아가실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