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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경성크리처’, ‘경성’도 ‘크리처’도 놓친 식민지 이야기_임동현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03.29 BoardLang.text_hits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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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4년 3월(통권 49호)

[미디어 비평] 

 

‘경성크리처’, ‘경성’도 ‘크리처’도 놓친 식민지 이야기

 

 

 

임동현(근대사분과)

 
 
 
드라마 ‘경성크리처’는 식민지 시기 경성에서 인체실험으로 만들어낸 괴물을 둘러싼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식민지 시기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들은 최근에는 근대적 모습에 집중하기도 하지만 시대적 특징 때문에 대체로 민족운동이나 식민 지배의 폭력과 억압을 작품의 배경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식민지 시기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들은 드라마적인 변주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식민지와 크리처(Creature)물의 조합을 어떨까?
 
크리처(Creature), 괴물을 소재로 하는 크리처물은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인기 때문에 대부분의 크리처물은 초현실적인 설정을 하게 된다. 따라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처음에 경성크리처라는 제목과 설정을 들었을 때 ‘드디어 식민지 시기를 다루는 드라마의 영역이 확대되는구나!’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에는 당연히 걱정도 있었다. 식민지 시기는 한국 사회에서 아쉽게도 여전히 다양한 논쟁이 존재했고, 식민지에 대한 미화와 경직된 해석이 교차하고 있어서 재현에 어려움을 더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극적이고 참신한 해석이 필요한 초현실적인 크리처물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드라마를 모두 보고 난 후 필자는 식민지를 배경으로 크리처물과 같은 장르적 오락물로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괴물이 등장하는 크리처물에서 세세한 고증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대신 ‘경성크리처’에서 재현하고 있는 식민지의 모습을 살펴보고, 재현의 방식과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미지만 남아버린 731부대의 폭력성

 
서양의 오컬트나 히어로물, 크리처물에서 나치 독일을 절대적인 악이나 사건의 원흉으로 묘사하는 것을 생각하면 식민지 시기도 장르적 특성이 강한 크리처물을 만들기에 나쁘지 않은 소재일 수 있다. 본 작품에서는 미지의 생명체인 ‘나진’을 이용한 인체실험으로 괴물을 만들려고 하는 모종의 비밀부대가 등장한다. 드라마는 이 비밀부대가 ‘마루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731부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만주에서 퇴각,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생체실험과 실험 방법 등 드라마는 괴물 탄생의 배후로 731부대를 강조한다.
 
 
공식명칭 관동군방역급수부(関東軍防疫給水部), 통칭 731부대는 표면적으로는 전염병 예방과 정수 및 급수 업무로 위장했지만 실제로는 생화학무기의 개발, 세균전 준비,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각종 생체실험을 자행한 인류 최악의 전쟁범죄 부대였다. 잔혹한 생체실험을 했던 731부대를 모델로 괴물의 탄생을 설명하려는 설정은 식민지에서 벌어졌던 폭력과 억압을 장르적으로 재현하기에 적절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경성크리처’로 인해서 731부대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환기된 것은 큰 성과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아쉽게도 731부대를 매개로 식민지의 폭력성을 적절하게 재현하지 못하였다.
 
크리처물에서 괴물은 그 자체로 작품의 의도를 반영하는 상징체이다. 영화 ‘에일리언’에서 등장하는 외계 괴물은 의도적으로 남성기와 유사하게 묘사되었다. 배를 뚫고 튀어나오는 외계 괴물의 탄생 과정은 임신을 은유한다. 따라서 외계 괴물과 여주인공인 ‘리플리’(시고니 위버 분)의 대결은 그 자체로 페미니즘인 서사구조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경성크리처’에서 괴물은 어떤 존재인가. 731부대가 저지른 잔혹한 생체실험의 결과 괴물이 되어버린 피해자이다. 그녀가 아무리 잔혹하고 막강한 괴물이 되었다고 해도 그녀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731부대를 모티브로 하여 크리처의 기원을 설정했다면 그녀/괴물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피해자성이 드러나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피해자성 대신에 모성을 선택했다. ‘경성크리처’에서 괴물이 상징하는 것은 괴물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은 모성이었다. 이성을 잃어버렸지만 딸을 알아보고, 죽은 딸을 대신해서 자신을 희생시키는 모성이다. 모성을 부각했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731부대와 그녀/괴물과 직접적인 관계성이 흐려진 점은 분명히 아쉬운 점이다.
 
다음은 악당들의 모호한 설정이다. 가토 중좌(최영준 분), 이치로 병원장(현봉식 분), 마에다 유키코(수현 분) 등은 나진을 이용해 크리처를 만드는 비밀 실험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왜 나진을 이용해서 크리처를 만들려고 했는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가토 중좌는 비정상적일정도로 나진과 괴물에 집착한다. 극 중에서 처음 괴물이 등장했을 때 여신의 탄생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가토는 나진 발견을 페니실린 발견에 비유하면서 인간 진화의 새로운 단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토의 생체 실험은 직관적으로 인간 진화와 연결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치로 병원장이 괴물을 길들여 무기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마에다 유키코의 후원은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전부터 옹성병원을 후원하고 있던 그녀는 가토 중좌의 실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로 실험에 대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성크리처’ 속 악당들의 욕망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럴듯한 분위기는 보여주지만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다. 대신에 실재 역사 속 731부대의 이미지로 빈약한 설정을 가리고 있다. 드라마는 작품 내부의 서사 구조에서 731부대의 생체실험이 의미하는 식민지의 폭력성을 제대로 재현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작품의 허술한 설정을 보강하기 위해서 731부대의 폭력성이 이미지로 소비될 뿐이다.
 
‘경성크리처’ 작가는 드라마를 통해서 731부대의 악행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731부대의 폭력성과 크리처의 피해자성을 좀 더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사적 고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판타지적인, 장르적인 특성을 활용하여 731부대의 폭력성을 효과적으로 재현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다.
 

주인공 주변에서만 사라져버린 식민지

 
‘경성크리처’는 크리처물인 동시에 로맨스물이다. 험난한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던 두 남녀가 만나게 되어 사랑하고 이별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과 주변인들의 생존을 걱정하며 열심히 살아가던 장태상(박서준 분)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윤채옥(한소희 분)를 만나게 되면서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구하는 과정에서 각성하여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 된다는 서사 구조는 시대극의 전형적인 로맨스 구조이다.
 
 
장태상은 전당포 금옥당을 운영하여 ‘자수성가의 심벌마크’라고 불릴 정도로 막대한 자산을 구축한 ‘북촌의 자산가’이다. 각종 파티를 다니면서 인맥을 쌓고 친일파 아버지를 둔 권준택(위하준 분)과도 친구가 된다. 독립운동단체와 관계도 거부하고 돈 벌 궁리만 하는 삶을 산다고 묘사된다. 물론 이후 알고 보니 본정(本町) 조선인 상인들을 보호하는 사실상 본정 조선인 상인들의 대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나온다.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자신의 재력으로 많은 조선인을 도와준 것으로 묘사된다. 요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재벌가 주인공의 전형을 조금 변형한 설정이다.
 
그런데 작품 배경이 문제이다. 1945년 3월, 태평양 전쟁 말기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태평양 전쟁 말기, 북촌의 자산가, 각종 파티를 다니며 인맥을 쌓고, 그 인맥을 바탕으로 경무국에 들어가 순사에게 고함을 칠 정도의 영향력을 갖춘 존재.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친일파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설정이다.
 
1930년대 초반으로만 설정했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해볼 수 있었겠지만 1945년 3월은 불가능하다. 1938년이 지나면서 일제의 탄압 강도는 점점 높아져서 온건한 민족운동단체도 강제해산되거나 친일 행위를 강요받게 된다. 자산가들에게는 전쟁 수행을 위한 각종 기부금 요구가 강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태상과 같은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권준택의 아버지보다 더 철저한 친일파가 되어야만 했다.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증 오류는 이미 많이 지적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친일파 미화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시대적 상황이 거세되어버린 주인공의 설정이다. 친일파 아버지를 두어서 괴로워하는 권준택은 어쩌면 아버지와 같은 친일파일수도 있는 장태상과 친구가 되고 싶어하고 그를 독립운동단체에 끌어들이려고 한다. 장태상이 감옥에 갇힌 조선인 상인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후원금 모금 파티에 대한 본정 상인의 협조를 거부하면서 압박하는 장면은 조선총독부의 전쟁 수행에 그동안 협조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인데 마치 장태상이 조선인을 구하기 위한 결단의 순간처럼, 조선인의 연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묘사된다. 더 흥미로운 점은 장태상에 대해서 비판적인 독립운동가들 조차 그를 친일파라고 비난하지 않고 천한 근본과 돈 궁리, 살 궁리만 하는 오사리잡놈, 노선이 명확하지 않은 회색분자라고만 비난한다. 마치 장태상의 주변에만 시대적 상황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드라마는 묘사하고 있다.
 
‘경성크리처’의 작가는 인터뷰에서 “키워드를 생존과 실존으로 잡고 친일-반일프레임보다 이 시대를 아프고 힘들게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장태상을 식민지 시기에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일반인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저 평범하게 식민지를 살아간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장태상은 너무 큰 부자이다.
 
친일과 반일의 프레임을 걷어내고 동 시대를 살아갔던 일반 사람들에 주목하겠다는 작가의 의도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친일과 반일의 프레임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마저 걷어낸다면 결국 남아버리는 것은 식민지가 거세된 ‘모던 경성’의 이미지뿐일 것이다.
 

더 많고 다양한 식민지 장르물을 기대하며

 
‘경성크리처’에서 대중적으로 많이 논란이 되었던 것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묘사이다. 필자도 ‘경성크리처’의 독립운동가의 묘사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도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매체에서 지적을 했기 때문에 본 리뷰에서 별도로 다루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필자의 리뷰에 대해서 ‘아니, 경성에 괴물이 등장해서 사람들 죽이는 크리처물에 무슨 이렇게까지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는거야?’라고 지적하실 독자분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그러한 비판에 동의한다. 필자도 차라리 이 드라마가 ‘식민지’라는 시공간을 활용해서 크리처와 사투를 벌이는 오락물이었다면 더 마음 편하게 봤을 것이다.
 
그런데 ‘경성크리처’는 적극적으로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옹성 병원 지하 감옥에 갇혀있던 생체 실험자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희생당한 학병이 기억해달라고 하고, 장태상과 윤채옥이 식민지 시기 피해자들과 일제의 만행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이 작품은 스스로 단순한 크리처물이나 오락물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식민지시기 일제의 만행과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자 했다면 좀 더 세세한 설정이 필요했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크리처의 상징과 기원을 설정해야했고, 주인공에 대한 설정, 독립운동과의 관계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식민지 시기는 한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통과 억압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를 배경으로 크리처물이라는 장르적 재미를 온전히 즐기게 하려고 했다면 오히려 꼼꼼하고 세세한 설정이 필요했다.
 
필자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려와 오락성이 양자택일의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문학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슬픔과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했던 해학인 것처럼 시대의 어둠을 재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고 믿는다. ‘경성크리처’는 많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앞으로 식민지시기를 다루는 더 많고 다양한 장르물이 등장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