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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문을 말한다] 이승만 정부시기 의사 집단의 보건의료체제 구상과 재편_김진혁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06.28 BoardLang.text_hits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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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4년 6월(통권 52호)

[나의 논문을 말한다] 

 

이승만 정부시기 의사 집단의 보건의료체제 구상과 재편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23.08)
 
 
 

김진혁(현대사분과)

 
 
근대 이후 보건의료는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를 이어내는 주요 장치 중 하나로 부상했다. 전근대 시기 감염병 유행 역시 개인 생사의 결정을 넘어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때로는 국가 통치의 위기를 야기했지만, 개인 신체와 일상 영역에 대한 전근대 국가의 개입은 제한적이었다. 근대 이후 국가가 생산력 증대를 위해 개인의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 동원하였으며, 위생교육은 국민 정체성을 내면화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보건의료는 개인 생애의 시작과 질병 치료, 노화, 죽음에 이르기까지 구성원의 삶을 좌우했을 뿐 아니라 국가 존립과 부강의 필수조건으로 위치 지워졌고, 어느새 국가, 사회와 개인의 ‘이음새’가 되었다. 이는 보건의료사(史) 공부가 가지는 매력적인 지점이었다. 한 시대의 보건의료체제에 관해 설명한다면, 역사의 겉면으로 노출되지 않은 사회 세부 층위들 간의 연결을 드러냄으로써 종합적인 역사 이해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박사학위논문 「이승만 정부시기 의사 집단의 보건의료체제 구상과 재편」은 한국 보건의료의 특징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피기 위해 작성되었다. 논문을 쓰게 된 발단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이어져 온 보건의료 논쟁에 자극받은 것으로, 박사학위논문을 통해서 오늘날 한국 보건의료와 의사 집단에 대한 평가가 왜 찬사와 비난을 극단적으로 오가게 되었는지를 살피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한국 보건의료가 가진 각각의 특징인 서양의(西洋醫) 중심의 보건의료체제, 지역 보건의료의 취약성, 보건의료의 직역 갈등, 단기간에 높은 의학 연구의 성취 등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었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주요 연구대상으로는 보건의료체제와 이 체제의 핵심 주체인 의사 집단을 설정하였다. 해방 이후 보건의료정책은 정책가로 발탁된 주요 의사 집단에 의해 이끌어졌다. 의사 집단의 내적 분화가 크게 이뤄지지 못하였던 시기에 이들은 의사로서, 자신들 집단의 요구를 국가 정책으로 수렴시킬 수 있었다. 해방 이후 1961년까지를 연구시기로 삼은 것은, 보건의료체제에 관한 연구가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우선 앞선 시기를 짚어야 이후를 이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해방 전후의 상황이 파악되어야 식민지기와의 차이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논문은 크게 해방 이후 의료정책가의 등장, 신국가 보건의료체제 구상과 구체화, 보건의료정책 실시와 한계로 구성했다. 먼저 1장의 내용은, 국가 보건의료정책의 주체로서 의사 집단이 부상하는 과정을 다뤘다. 해방 이후 의사 집단은 미군정 아래 보건의료정책 집단으로 등장하며 공적 책임을 부여받았다. 한시적 통치기구인 미군정은 보건의료정책에서 ‘현상유지’를 추구하였고, 보건의료 개혁은 실시되지 못하였다. 다만, 보건의료 행정으로 진출한 의사들은 정부 수립 이후에도 지속성을 가지며, 보건의료체제가 서양의 중심으로 수립될 수 있도록 하였다. 

2장은 신국가 보건의료체제 구상과 정책 시행을 다뤘다. 미소공동위원회의 여러 보건의료 논의는 국가 수립 이후 지역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할 기본 방향으로 구체화되었다. 제헌국회에서 논의된 ‘의료균점’의 방향은 의사 배치, 보건소 및 의료이용조합 설치 등의 정책으로 수렴되었다. 정책 실시는 재원 문제로 지연되었으나, 한국전쟁기 의사의 분산, 전시·법적 강제력 부여, 외원 지원이라는 환경 변화를 맞이하며 지역조합을 기반으로 한 보건진료소 운영으로 도모되었다. 하지만 지역에 배치할 의사가 충분치 못했다. 한의사는 무의촌을 없앨 국가 보건의료 주체로 설정되지 못하면서 보건진료소에서 활동할 수 없었고, 전쟁 이후 남북 대치의 고착화로 늘어난 군의관의 규모도 의료인력 부족의 원인이 되었다.

3장은 지역 보건의료문제의 해결방안 실시와 한계를 다뤘다. 1955년 전후 외원 축소, 보건사회행정 정비, 보건소법 제정 등으로 보건의료환경이 변화하는 가운데 농촌경제 붕괴로 무의촌 문제가 다시 부상하였다. 지역에 배치할 의료인력 중 개업의는 농촌 개업의 수입 저하로 자발적인 배치가 어려웠고, 한지의사는 낮은 의료 수준으로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지 못하였다. 게다가 신규의사의 경우,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 유학 증가로 인해 해외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보건시설 확충 및 전환 배치, 장학생 선발, 공의(公醫) 배치를 추진하였다. 공의 파견이 주효하여 무의면을 300개로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 이승만 정권이 통치 위기에 처하면서 그 영향이 무의면 숫자의 축소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가운데 의사 집단 일부에서는 개업의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료보험제도 논의가 등장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서 한국 보건의료체제의 형성을 보건의료 정책가를 비롯한 의사 집단을 중심으로 검토함으로써, 해방 이래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국가의 조정이 있었고, 제한적이나마 사회적 합의 또한 존재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의료 편중 해결의 지난함은 의사 집단이 보건의료의 양적인 확대를 위해 다른 의료직제의 활용을 원치 않았던 측면에서 노정되었다. 즉,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의사 집단으로만 설정되었고, 이들의 의료 수준을 향상하여 높은 수준의 보건의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는 이후 한국 보건의료체제 발전의 방향성으로 나타남으로써 1945~1961년 정부와 의사 집단이 보건의료를 방임하였다는 일면의 평가를 달리 볼 지점을 제공하며, 한국 현대 보건의료체제의 시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지난 2023년 가을, 정부는 의료개혁을 추진한다고 발표하였고, 의사 수급 문제가 본격적으로 화두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의 논란이 지금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하였지만, 이즈음 박사학위논문을 몇 차례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회에 참가한 연구자들은 1940~50년대 보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오늘과 닮았다는 점에 놀랐다고 하였다. 전국민 건강보험제도의 실시로 보건의료 환경이 크게 변화했음에도, 지역 보건의료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해결책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은 지역 보건의료 문제의 해결이 가지는 어려움이 뚜렷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지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무엇보다 비슷한 점은 보건의료 혜택을 보편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풍부한 정책 논의가 소거되었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정부의 의료개혁이 의사 숫자에 몰입된 의사 증원 정책과 같은 말이 되어, 보건의료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질병, 빈부, 지역, 성차, 장애, 연령 등)은 논의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마치 해방 이후 미소공동위원회, 정부 수립 이후 보건의료 확대를 위한 구상이 제도적 실험과 함께 논의되었지만, 1950년대 ‘의료균점’의 지향은 한정된 공간에 최소한 필요한 숫자의 의사를 배치해야 한다는 무의촌 숫자 줄이기로 수렴되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지점인 것이다.

그렇지만 1950년대 보건의료체제를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해 정책에 제한을 가했던 당대 조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당시 한국의 사정이 충분한 의료자원 확보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보건의료의 양적 확대가 ‘실현 불가능한 꿈’에 가까웠다는 것이며, 보건의료 논의가 의료계와 정부만이 아니라 그 혜택을 받을 이들의 관점에서 더욱 전개되지는 못하도록 했던 냉전과 분단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반영한 것이었다. 

1950년대 보건의료체제에 대해 한 보건학자는 “가슴으로 일하던 시기”라고 평가했다. 보건의료에 필요한 인력과 자본, 기술이 부족했던 조건에서 보건의료 정책가들이 국가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일했던 때였다. 이때에 비한다면, 한국 보건의료 자원은 세계적 수준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갖춰졌으며, 정책적 논의 공간도 넓어졌다. 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논의가 양적인 차원과 함께 질적인 차원에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며, 전폭적으로 전개될 수 있기를 정부, 의료계 그리고 ‘시민사회’에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