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기사

웹진기사 답사기

[2024년 한국역사연구회 여름답사기] 프루스트 현상(Proust effect): 2024년 한국역사연구회 여름 답사를 다녀와서_이정희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08.31 BoardLang.text_hits 700
페이스북으로 공유 X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밴드로 공유
웹진 '역사랑' 2024년 8월(통권 54호)

[2024년 한국역사연구회 여름답사기] 
 

프루스트 현상(Proust effect)

-2024년 한국역사연구회 여름 답사를 다녀와서-

 

 

이정희(일반회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배낭에 자전거 하나 들고 무작정 호치민으로 떠난 것이 10년 전인 2014년 11월이었다. 호치민에서 캄보디아를 가로질러 태국 방콕까지 1,000킬로미터를 가는데 한 달 반이 걸렸고, 그 한 달 반 동안 앞으로 갈 모든 여행을 ‘계획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출국일과 입국일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어느 도시에서 며칠을 머무를지, 어느 지역으로 움직일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내 여행 스타일이 되었다. 실제로 지금도 그러하다. 여행을 좋아하고 직업 특성상 시간을 만들기도 어렵지 않아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인데, 출국일과 입국일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이 관광(觀光)이 아닌 여행(旅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답사는 내가 추구하는 ‘여행’의 방향과는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정해진 루트가 있고, 제한된 시간이 있고, 짜여진 일정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답사’라는 단어에 이렇게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그것이 관광도 여행도 아닌, 답사(踏査)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련과 여순, 답사의 시작은 상상력

 
학부 일학년 봄 답사, 그러니까 사학도라는 타이틀을 달고 첫 답사를 경주로 갔었더랬다. 서쪽 하늘이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어가던 그 시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황룡사지에서 그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이곳에 구층 목탑이 있었겠구나. 치미가 올라간 금당이 있었을 테고, 수많은 전각과 전각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겠구나.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쪼그려 앉아, 답사를 준비했던 학우들의 설명을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내 곁을 빠르게 지나가는 무수히 많은 신라 사람들을 상상했었더랬다. 대련항 인근에 위치한 대련수상경찰서로 추정되는, 고풍스러운 형태의 건물을 바라보며 나는 사람들로 가득 들어찬 대련항을 떠올렸다. 부두에는 조선과 일본에서 출발한 연락선이 정박해 있고, 항구와 접해있는 기차역에는 남만주철도를 따라 내려온 증기기관차가 뜨거운 증기를 내뿜으며 정차해 있는 대련항 포구의 분주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한 상상력은 답사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러일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계관산에서도, 어딘가 우울한 분위기가 감도는 여순감옥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긴장감 넘치는 추억을 남겨주었던 203고지에서도, 여순만이 내려다보이는 백옥산 정상에서도 나는 다른 시간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1. 만철대련부두사무소와 수상경찰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풍스러운 건물
 
 
사진 2. 동계관산에서 한성민 선생님이 러일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3. 여순감옥 초입에서 설명. 이렇게 모여 있으면 현지 사람들이 ‘뭣들 하는 거지?’하며 기웃거리고는 했다.
 
 

산성(山城)을 얕보면 안 된다

 
학부 답사 때에도 산성(山城)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산성에는 여러 가지 추억이 있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라고 한다면,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올라가는 추억을 뽑고 싶다. 처음 대흑산 비사성을 ‘걸어서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땀 좀 제대로 빼겠구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셔틀 차량이 있었다. 차량으로 편하게 올라간 대흑산 비사성은 ‘城四面懸絶 惟西門可上’이라는 기록처럼 천혜의 요새임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진 4. 대흑산 비사성에서 내려다본 전경, 천혜의 요새라고 불린 만큼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 5. 당나라 수군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왔는지를 여호규 선생님이 설명해주셨다.
 
 
대흑산 비사성에 비하면 박작성은 좀 초라한 감이 있었다. ‘내 것은 내 것, 네 것도 내 것’이라 주장하는 중국에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 호산산성’이라고 우기는 박작성(泊灼城)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도 않았고, 벽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성벽은 산책로처럼 망루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망루에 오르면 압록강도 보이고, 북한 땅도 보인다고 했고, “여기까지 왔는데 올라가는 봐야겠지?”라는 선생님들의 말에 설득당해 가벼운 마음으로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산책로 같은 성벽 다음에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쉬엄쉬엄 올라갔으면 좀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체력이 흘러넘치는 김창회 선생과 보조를 맞춘 것이 잘못이었다. 땀은 무슨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줄줄 흐르고, 숨은 히말라야 팔천 미터 고지에 올라간 것처럼 턱턱 막혀왔다. 그렇다고 힘드니까 이쯤에서 포기하고 다시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포기하기에 너무 많이 올라오기도 했고, 또 이대로 포기하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 겨우 망루에 올랐고 부끄러운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사진 6. 박작성 망루에서 바라본 북한 의주 지역.
 
 
사진 7. 여유로운 모습의 홍종욱 선생님과는 달리, 턱 끝까지 차오는 숨을 겨우 고르고 있는 비참한 모습
 
 

압록강은 유유히 흐른다

 
압록강의 첫인상은 ‘깔끔하다’였다. 수질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강안(江岸)이 잘 정비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마치 한강 변 고층 아파트처럼 압록강을 따라 고층건물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강변도 산책하거나 운동하기 좋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국경이라기보다, 일반적인 하안도시 같은 느낌을 주었다. 반면에 강 너머의 북한 지역은 마치 죽어있는 도시 같은 느낌을 주었다. 고층건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강변 너머에서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1984’에 묘사된 오세아니아의 런던처럼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다고나 할까?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둘러본 후, 단동의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 압록강 단교로 향했다. 사실 압록강단교는 이번 답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곳이었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어떠한 감상을 느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고 정신이 없었다. 반면에 조중우의교라 불리는 압록강 철교에는 수많은 컨테이너 차들이 중국 쪽 입국을 기다리며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과연 북한에서 오는 저 컨테이너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며 바라보았다.
 
 
사진 8. 압록강 단교 끝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 고층건물도 보인다.
 
 
사진 9. 위화도에 있는 북한 주택, 멀리서 보면 그럴싸해 보이는데, 가까이 가 보면 허름한 실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커피 원정대

 
2010년 초반, 회사 업무로 중국 출장을 몇 번 왔었던 적이 있었더랬다. 그때만 해도 ‘살짝 촌스럽다’는 인상이 있었다. 무어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어딘가 도로도 지저분하고, 무단횡단에 새치기 같은, 기초적인 질서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나고 방문한 중국은 그때의 촌스러움을 완전히 씻어낸 느낌이었다. 도로로 깔끔하고, 나름의 교통 체계도 잘 잡혀 있는 듯해 보였고, 눈살이 찌푸려지라는 모습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마 대도시, 그냥 대도시도 아니고 동북지역을 대표하는 대련, 단동, 심양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변모한 중국의 모습이 조금은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바로 커피였다. 이상하게 카페 프랜차이즈가 잘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목적지였던 대련에서 한 번 보았고, 마지막 날 심양의 번화가에서 본 정도? 특히 마지막 날 아침은 자본주의의 맛이 가미된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걸어서 이십 분이나 떨어져 있다는 호텔 직원의 말에 쓸쓸히 돌아서야만 했다.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인들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물가에 비해 비싼 커피값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카페 찾기가 쉽지가 이리도 어렵다니. 아니, 어쩌면 우리 주변에 카페가 너무 많은 걸지도 모르고.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귀한 커피 스틱을 제공해 주신 이승민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사진 10. 심양 남탑 앞에서 설명하는 김창회 선생. 이 발표를 위해 전날 밤 몇 시간 동안 준비를 했다.
 
 
사진 11. 대련에서 마지막으로 마셨던 프랜차이즈 커피. 한국돈으로 7천 원 가까운 비싸고 귀한 커피였다.
 
 

프루스트 현상(Proust effect)

 
이 답사기를 작성하기 위해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답사 사진을 전부 살펴보았다. 첫날 대련 러시아 거리를 걷던 그 순간부터, 마지막 날 심양 서탑을 바라보던 그 순간까지가 마치 며칠 전의 기억처럼 리와인드 되는 느낌을 받았고, 다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프루스트 현상(Proust effect)이라는 것이 있다. 과거의 특정한 맛, 소리, 냄새 등으로 무의식에 가려져 있던 옛 기억이 다시 표면 위로 떠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먹은 찐 옥수수에서 외갓집을 떠올리듯, 나는 이번 답사에서 이십 년 전, 학부답사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렇게 이번 답사도 그렇게 떠올릴 것이다.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난 후, 우연히 들른 러시아 상점에서, 가운데 유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중국식 원형 테이블을 보면서, 어딘가의 산성(山城)을 따라 산책을 하다가, 박물관에서 근대전(近代戰) 무기를 보고, 강을 따라 흐르는 유람선에서, 딤섬을 먹다가 다시 이번 답사를 떠올리겠지. 그럴 거다. 분명히.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동행을 허락해주신 한국역사연구회 노영구 회장님과 박종린 부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특히 이번 답사를 준비하고 시행하는데 가장 큰 고생하신 한성민 선생님께 깊게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자 한다.
 
 
사진 12. 압록강 단교를 배경으로 찍은 단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