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기사

[나의 책을 말한다]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_이동해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10.31 BoardLang.text_hits 389
페이스북으로 공유 X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밴드로 공유
웹진 '역사랑' 2024년 10월(통권 56호)

[나의 책을 말한다]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푸른역사, 2024.8)
 
 
 

이동해(현대사분과)

 
 
 

 

7년의 무(모)한 도전

 
이 책은 내 외조부 허홍무를 렌즈 삼아 1935년부터 1959년간의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본 결과물이다. 부잣집 금수저로 태어났으나 금광 사업 실패로 집안이 쫄딱 망한 이야기, 한국전쟁기에 겪은 인공 치하 경험, 46개월의 군 생활과 결혼이 담겼다. 허홍무의 흥미진진한 젊은 시절을 살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공유할 기회가 거의 없을 것 같아 여기선 그 과정을 소개하려 한다.

솔직히, 심도 있는 이론적 고민이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시작한 건 아니다. 처음엔 정말로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2010년대 중반 학부 시절,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문학과지성사, 2001)와 백승종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푸른역사, 2011)을 읽으며 미시사를,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돌베개, 2010)과 서울문화재단에서 기획한 《1995년 서울, 삼풍》(동아시아, 2016)을 읽으며 구술사를 접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며 어떻게 이름 모를 개인에게 세밀히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떻게 구술을 자료로 활용하는지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러고 나니, 문득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자주 언급되는 공공역사적인 발상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외조부 허홍무가 떠올랐다. 집안 전설에 따르면 그렇게 부잣집이었다는데 진짜 그랬는지 알고 싶었다. 또 내가 겪지 못한 그 시절 얘기도 궁금했다. 2016년, 그렇게 어찌저찌 허홍무의 구술을 채록하고 녹취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학부생의 깡으로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이걸 책으로 낼 만한, 완성도 있는 원고로 바꾸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나만의 구술사 연습(?)

 
2019년, 학부 졸업 논문으로 「수원의 중심지 남문의 형성과 전성기」을 제출했었다. 수원 사람으로서, 왜 하필 남문이 수원의 중심지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여기서 8~90년대 남문의 전성기를 그리며, 당시 삼성전자에서 근무하신 숙모의 구술을 활용했다. 그 덕에 월급날이면 그렇게 들썩였다는 남문의 풍경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나는 이걸 수원시정연구원에서 발간하는 《수원학연구》에 투고까지 했다. 부끄럽게도 수정 후 재심 1건, 게재 불가 2건으로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내 딴엔 구술사 연구를 수행한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2020년 석사 과정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허홍무의 구술생애사 쓰기가 시작되었다.
 

녹취록에 칠해진 물감들

 
깊은 고민으로 책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5년에 걸친 긴 시간 틈틈이 원고를 작성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조금씩 더해졌다. 완성된 그림을 상상하며 물감을 칠하는 게 아니라, 물감을 칠하다 보니까 그림이 완성되어 갔다. 녹취록을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씹고 뜯으며, 나만의 고민과 관점을 투영해 발전시켰다.

물감 ①: ‘무명인’인 허홍무의 삶을 왜 조명해야 하는가. 일단 주요 인물이나 사건으로 구성되는 역사상에 의문이 들었다. 해방 후 중앙정치사를 전공한 영향도 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름 모를 개인은 별 의미가 없나? 이들에게 역사의 주체라는 의미를 담아 ‘민중’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나 가족 간에도 생각이 천지 차이일진 데 하나로 묶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나?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전혀 없는, 일단 태어났으니까 살아가는,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인 사람일지라도, 그를 한 시대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독립된 개체로 살펴보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내린 나름의 결론은, 이 작업을 추진할 강력한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물감 ②: 기존의 구술생애사 결과물을 보면, 단순히 구술 내용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한 사람의 수많은 경험, 생각,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다 보니 분석에 어려움이 따르기도 하고, 구술 채록 자체를 완성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구술생애사를 쓰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분석 방법이 맥락 찾기, 검증하기, 특정하기다. 가령 한국전쟁기 인공 치하 상황에서 이름 모를 사람의 반동분자 숙청 장면을 보았다고 하자. 먼저 왜 반동분자를 숙청했는지, 그 주체는 누구인지, 그 지역의 점령 상황은 어떤지 등의 맥락을 살핀다. 그리고 혹시 구술에서 의도적으로, 또는 실수로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 검증한다. 마지막으로 이름 모를 반동분자가 누구인지 특정해 보는 것이다.

물감 ③: 허홍무의 조부인 허벽은 일제시기 면협의원을 2차례나 지냈다. 친일 협력자라고 볼 지위다. 게다가 금광 개발에 손댈 만큼의 부를 거머쥔 지주였다. 또 허홍무는 지금도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완고한 반공주의자다. 그럼 나는 여기서 어떤 서술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골치 아픈 문제였다. 내 정치적 신념에 맞추어, 누가 나쁜지 착한지 따지고 싶지 않았다. ‘회색지대’ 개념이 말하듯,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면 생략될 부분이 너무 많아 보였다. 심사숙고 끝에 나를 외계인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마치 인간이 개미를 관찰하듯, 나도 외계인이 되어 인간을 관찰하기로 결심했다. 평가에서 자유로우니 더 많은 사실이 눈에 보였고, 잘했든 못했든 그저 일어난 일을 묵묵히 기술할 수 있었다.

물감 ④: 모름지기, 역사를 다루는 책은 무조건 쉬워야 한다고 보았다. 결국 독자의 손에 잡혀야 하고, 팔려야 가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중학생 정도로 생각하고, 이해될 때까지 내용을 풀고 또 풀었다. 어려운 용어의 사용을 지양하고, 긴 설명이 붙더라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썼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같은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책에 적용하고자 했다. 문장에서도 리듬감 있는 단문을 추구했다. 일필휘지의 능력이 없기에 한 문장을 쓰더라도 서너 번은 고쳐가며 쓴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김훈, 장강명, 천명관 소설가의 문장을 되뇌면서.
 
 

도전을 마치며

 
무(모)한 도전이 출간으로 마무리되다니,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그래도 구술생애사의 진전에 일조한 것 같아, 이름 모를 개인의 시선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하는 작업에 일말의 성과를 낸 것 같아, 공공역사 실천의 한 사례를 만든 것 같아, 보람도 찬다. 종종 힘에 부쳤지만 설렘이 함께한 지적 여정이었다. 조심스럽지만, 언젠가 1960년 이후를 다루는 제2탄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정진하리라 다짐하며, 나의 이러한 경험 소개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영감을 줄 수 있길 고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