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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문을 말한다] 한국전쟁기 ‘인종주의 선전전’의 전개와 그 귀결_윤소영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12.31 BoardLang.text_hits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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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4년 12월(통권 58호)

[나의 논문을 말한다] 

 

한국전쟁기 ‘인종주의 선전전’의 전개와 그 귀결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23.08)
 
 

윤소영(현대사분과)

 
 
 

미국의 ‘적’은 누구인가?: ‘인종전쟁(Color War)’으로서 한국전쟁

 
한국전쟁기 미국의 ‘적’은 누구였을까? 미국의 인종주의적 타자는 비단 ‘아시아 공산주의자’ 뿐만 아니라 아군을 포함한 ‘한국인’ 전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념과 진영으로 묶인 ‘혈맹’을 뒤흔드는 ‘인종주의’란 얼마나 강력한 신념인가? 이러한 질문은 한국전쟁을 인종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첫 출발점이 되었다. 석사학위논문 「한국전쟁기 ‘인종주의 선전전’의 전개와 그 귀결」은 한국전쟁의 인종전쟁적 특성에 주목하여 피지배 주체들의 탈식민적 경험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이에 이 논문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 흑인 군인과 그들을 둘러싼 반인종주의 선전전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흑인 군인들은 자본주의 진영에 속한 ‘미국인’이면서도 피지배 소수인종으로서 이중 의식을 지닌 집단이었다. 따라서 이들 중 일부는 공산주의 진영과 상호협력 관계를 맺으며 탈식민과 냉전이 착종된 형태의 전쟁 경험을 드러냈다. 
 
 

국가와 진영의 경계 넘기

 
한국전쟁을 다룬 기존 연구들은 기본적으로 국민국가 단위로 전쟁을 검토하며,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이념대립 구도로 전쟁을 이해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전쟁을 ‘좌우’의 전쟁이 아닌 ‘위아래’의 전쟁으로 분석한 연구들은 이념이 아닌 ‘권력관계’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거대한 연구 성과들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경계’를 가로질러야만 했다. 첫째는 국가 간 경계였다. 한·미간의 관계를 동맹 관계가 아닌 ‘중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 사이의 종속’ 관계로 파악한 연구들은 미국의 ‘인도주의적’이며 ‘지도자’적 국가상을 해체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자본주의 진영 내부의 갈등과 모순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지만, 한국인들의 종속적인 위치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둘째는 진영 간 경계였다. 기존 연구들은 미군과 한국인 사이의 문화적·인종적 위계를 다루면서 ‘유색인종(황인종)’으로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백인 중심적인 미군의 단일한 이미지에 균열을 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진영 내 권력 위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연구들은 여전히 논의의 장을 자본주의 진영 내부에 한정시키면서 냉전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대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였다. 이에 이 연구는 냉전의 이분법적 인식에 균열을 가했던 사례에 초점을 맞추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흑인 군인의 ‘경계 넘기’ 시도와 그 함의를 드러내고자 했다. 
 
 

한국전쟁기 ‘인종주의 선전전’의 전개와 귀결

 
이 논문은 주요 장에 맞추어 미국, 북한·중국, 남한을 핵심 국가로 다루며, 같은 국가와 진영 내에도 다양한 인종 주체와 각 집단 내 이질적인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했다. 먼저 2장은 한국전쟁기 공산주의 진영의 ‘인종전쟁(Color War)’ 선전전과 그에 대한 미국의 역선전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공산주의 진영은 이 전쟁을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인종전쟁’으로 명명하며,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인종차별적 이미지를 전파하였다. 공산주의 진영은 미국의 국내 인종차별 문제를 대외적으로 활용하였으며, 반대로 미 흑인 사회 역시 냉전 환경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민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3장은 한국전쟁 공간에서 북한·중국군이 펼친 반인종주의 선전전의 구체적인 양상을 규명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미 흑인 군인을 대상으로 전개된 ‘특수한’ 선전전을 살펴보았으며, 삐라·함화·포로 대우로 나누어 선전방식을 분석하였다. 북한·중국군은 ‘이념’이 아닌 ‘피부색’ 문제를 중심으로 선전전을 전개하여 미 흑인 군인들의 피지배적 위치를 강조하였다. 그 결과 일부 미 흑인 군인들은 북한·중국군과 협력했으며 이념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태의 연대 의식을 드러냈다. 4장은 인종주의를 활용한 선전전에 대응한 미국과 남한 측 인식을 살펴보았다. 먼저 미 육군은 한국전쟁 중반기에 이르러 최초로 육군 내 인종통합(Racial Integration of Armed Forces) 정책을 실행하였다. 한편 남한의 경우 피식민 경험이 있는 탈식민 국가로서 갈림길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반공 우선 전략을 내세우며 ‘반미 정서’가 확대되지 않도록 미국의 백인우월주의를 비가시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럼에도 민간 영역에서 미 흑인 군인과 남한 군인/지역민들 간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때 양자 간의 관계는 자본주의 진영의 결속이라기보다는 차별 경험에 대한 동질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미 흑인 군인의 이념적·물리적 ‘월경(越境)’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종종 문제의식이 앞선다는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이념’과 ‘냉전’의 절대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도중에 두 가지의 ‘황금열쇠’가 이 논문을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 본국 송환을 거부한 21명의 미군 포로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들은 중국을 선택했다(They Choose China, 他们选择中国)”(2005)가 그 첫 번째 열쇠였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1954년 중국으로 떠나기 직전에 비송환 미군 포로들이 공식 선언을 남긴 영상을 담았다. 이 영상에서 본국 송환을 거부한 세 명의 미 흑인 포로 중 한 명이었던 윌리엄 화이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전한 평등을 보았으며, 한국인, 멕시코인, 필리핀인, 백인이 함께 섞여 있었다”라고 발언하였다. 인종차별 문제를 바탕으로 중국을 선택했다는 그의 발언을 확인한 이후, 비송환 미 흑인 포로들이 남긴 기록을 본격적으로 추적하였다. 그들의 기록과 북한·중국군의 선전 매체에 드러난 사례를 바탕으로 반인종주의 선전전이 쌍방의 정치적 협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논문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3장 2절의 내용, 즉 북한·중국군과 흑인 군인 간의 협력 시도를 구체적으로 실증하지 못했다는 데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던 도중에 석사논문을 완성한 이후에야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RG319 문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휴전 이후 FBI가 귀환 포로를 대상으로 인터뷰한 자료를 담았으며, 흑인 비송환 포로 3명에 대한 귀환 포로들의 증언과 선전 자료도 풍부하게 남아 있었다. 이 자료에서 비로소 공산주의 진영의 포로수용소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조망하게 되었고, 미 흑인 군인과 중국군과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울러 기존 사료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미 흑인 비송환 포로들의 목소리를 각종 선전물과 귀환 포로들을 통하여 우회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미 극동 육군이 흑인 비송환 포로의 ‘월경(越境)’을 이념이 아닌 인종 문제의 취약성으로 인정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자료는 석사논문을 완성한 뒤에 발견했기에, 이후에 투고한 「한국전쟁기 ‘인종전쟁(Color War)’ 선전전과 미 흑인 군인의 ‘월경(越境)’」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나가며: “국내에서 백인 우월주의는 해외에서 유색인종 대학살을 초래한다”

 
석사논문을 통해서 이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냉전의 틈새 공간을 발견하고자 했고 그 구체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이 바로 ‘유색인종’ 정체성이었다. 당시 진보적인 미 흑인 국제주의자들은 국내의 인종차별과 해외 투쟁을 동시에 사고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한국전쟁기에 나타난 미군의 폭격과 학살 등의 원인을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서 찾고자 했다. 이에 전쟁 공간에 나타난 미 흑인 군인들의 ‘경계 넘기’ 시도와 그 의미를 검토함으로써 한국인의 전쟁 경험 역시 탈식민의 관점에서 재고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였다. 앞으로 석사논문을 작성하며 얻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전쟁에 나타난 미군의 냉전 오리엔탈리즘과 여성혐오에 관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전쟁을 경험한 유색인종, 여성, 마을 지역민 등의 목소리가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인종화·젠더화 된 냉전 경험을 더욱 풍부히 드러낼 수 있도록 연구를 확장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