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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를 다녀와서 (하)] 국내 소장 영국 자료 접속하기_한승훈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4.12.31 BoardLang.text_hits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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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4년 12월(통권 58호)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를 다녀와서 (하)]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를 다녀와서 (하)-2:국내 소장 영국 자료 접속하기한승훈(근대사분과)제가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를 다녀와서 (하): 국내 소장 영국 자료 접속하기_(1)'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약속을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2024년 12월)에는 국편의 전자사료관 사이트에서 열람이 가능한 TNA 소장 자료를 소개하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한국현대사 관련 사료를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솔직히 많이 후회했습니다. 제가 한국 현대사 전공자도 아닐뿐더러, 현대사와 관련된 영국 외교 문서를 기반으로 연구를 수행한 경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전문가인 제가 영국 외교 문서와 관련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두 번째 마감 직전까지 적잖이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제가 수집한 자료와 일전에 조사했던 내용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에 이번 시간에 주로 소개해드리는 자료는 FO 483입니다. 제가 알려드리는 조사 내용은 영국 외무부에서 제작한 한국 관련 외교문서집 출판에 관한 것입니다. 그 문서집 출판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영국 외무부 소속 역사학자의 존재 및 그들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50년 만에 공개된 FO 483FO 483은 영국 외무부에서 1947년 이후 한국 관련 외교 문서를 편집한 외교 문서집입니다(그림 1 참조). 제목 Confidential Print Korea에서도 알 수 있듯이, FO 483에는 주로 한국과 관련된 기밀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밀 문서라하면 영국의 대외 정보기관인 Secret Intelligence Service에서 수집한 자료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됩니다.
그림1 국사편찬위원회_전자사료관 소장 FO 483
20세기 중반, 영국의 대외적 관심은 주로 유럽의 냉전과 자국 식민지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은 한국이나 동아시아의 국제적 환경에서 행위 주체로서 뚜렷한 역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FO 483에 수록된 문서들을 연구한다고 해서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면모를 반드시 밝혀낼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한국 문제와 관련해 끊임없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이해당사국들과 외교 교섭을 진행하며 관련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또한, 전후 영국이 동아시아에서 구상했던 '제국 복귀 정책'의 기조 속에서 한국 정책을 추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격화된 냉전은 이러한 '제국 복귀 정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영국 외무부는 FO 483을 50년 동안 비공개, 즉 비밀로 분류했습니다(그림 2 참조). 영국이 FO 483을 50년 동안 비밀로 분류한 이유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FO 483을 통해 영국 외무부가 한국과 관련하여 어떤 부분을 세상에 공개하고 싶지 않았는지를 추적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림2 TNA 홈페이지 내 FO 483/4의 소개
※ “한국의 주요 인물들(LEADING PERSONALITIES IN KOREA)”
FO 483/4"와 이후 문서집의 말미에는 “한국의 주요 인물들(LEADING PERSONALITIES IN KOREA)”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그림 3). 이 문서는 한국의 주요 인물들을 간략히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서술 방식은 대부분 인물들의 이력을 단순히 나열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다소 무미건조한 인상을 줍니다. 게다가 이력 또한 이미 알려진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 독자에게 신선함이나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림3 “LEADING PERSONALITIES IN KOREA” No. 33, FO 483/4.
그래도 간혹 “비전공자”가 느끼기에 재미있는 구절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동일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추가되는 지점은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면 1949년(FO 483/4)과 1950년(FO 483/5)의 이승만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림4 “한국 주요 인물(1949)_이승만”, No. 33, FO 483/4.
그림5 “한국 주요 인물(1950)_이승만”, No. 133, FO 483/5. 위 그림은 각각 1949년과 1950년 판 “한국 주요 인물”의 이승만 편입니다. 출생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50년 판의 마지막에 한 문장이 추가되었습니다. 아마도 1950년 한국전쟁과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그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Already a very old man, he has been greatly affected by the present war and his pronouncements sometimes give the impression that developments have distorted his judgment of international values.
이미 고령인 그(이승만)는 현재의 전쟁으로 인해 큰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발언은 때때로 상황 전개가 그의 국제적 가치 판단을 왜곡시킨 듯한 인상을 준다.
왜 영국 외교관들은 한국전쟁이 이승만의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고 굳이 적었을까요? 특히 어떤 요소들이 그의 국제적 가치 판단을 왜곡시켰을까요? 아마도 1950년 판이 수록되어 있는 FO 483/5를 분석하면 그 답을 알 수 있겠죠?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자료집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 외무부 소속 Historian(이하 역사학자)들이 편집한 한국전쟁 자료집입니다.
■ 영국 외무부의 Historian들이 편집한 한국 관련 문서집이 부분은 제가 집필에 참여한 『주요국의 외교문서집 편찬 :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중국, 일본, 조선』 (국립외교원, 2020. 6)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1950년대 전후, 한반도의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의 발발은 당시 영국 외무부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외무부의 핵심적인 현안은 유럽의 냉전, 소련의 팽창, 그리고 영국 연방의 미래와 식민지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을 한국전쟁에 투입했습니다. 더불어,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문제는 영국이 아시아 정책을 입안하고 처리하는 데 있어 주요 이슈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외무부 소속 역사학자들은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외교문서집을 편찬하기로 결정합니다. 구체적으로 외무부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이 편찬을 담당했던 Documents on British Policy Overseas(이하 DBPO) 시리즈에 한국편을 추가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당대 정책 결정자들이 한국 문제를 간과한 것과는 달리, PRO에 소장되어 있는 외교문서를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주제로 외교문서집을 편찬하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DBPO의 한국편에는 영국의 당시 한국 정세에 대한 무관심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문서와 한국전쟁 수행과정에서 생산된 문서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DBPO의 한국편 책임 편집자는 Heather J. Yasamee와 Keith. A. Hamilton입니다. 둘 다 외무부 소속 역사학자들로서 DBPO 편집을 주도했습니다. 한국편 목차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Documents on British Policy Overseas(이하 DBPO) 출판의 역사적 기원
19세기 중반부터 영국 외무부는 독자적으로 외교문서집을 편집하고 이를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은 미약했습니다. 1841년부터 출판을 시작한 British and Foreign State Papers는 조약문 등을 취합한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인 1914년 9월 영국 외무부는 The British Blue Book: Great Britain and the European Crisis를 출판했습니다. 이 문서집은 전쟁의 원인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돌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영국 외무부는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다루는 British Documents on the Origins of War, 1898-1914와 Documents on British Foreign Policy, 1918-1939의 출판을 결정했습니다. 각 책의 서문에는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삽입되었습니다.
“The editors have had the customary freedom in the selection and arrangement of documents. (편집자들은 (외교)문서의 선별과 편집에서 관례적인 자유를 가진다.)”
이를 통해 영국 외무부는 문서의 선별과 편찬 과정에서 역사학자들에게 독립성을 보장함으로써, 역사적 공정성과 균형감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1973년, 영국 외무부는 Documents on British Policy Overseas (DBPO) 시리즈의 출판을 결정하며, 그 목적을 다음과 같이 명시했습니다.
첫째, 영국인들에게 정부의 외교정책과 관련한 정확하고 공정한 문서를 읽을 수 있도록 한다.
둘째, 현대사를 공부하는 역사 전공 학생들에게 연구를 목적으로 한 1차 사료를 제공한다. 셋째, 다른 정부에서도 경쟁적으로 외교문서집 형태의 도서의 출판을 지원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영국 외무부는 연구자 및 일반인들이 영국외교문서를 기반으로 해서 영국 외교정책을 규정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보장한다. 영국 외무부와 DBPO 편집자들은 외교문서집 자체에 완결성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외교문서집에 수록되지 않은 문서들에게도 가치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 대신 그들은 연구자와 일반인이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in UK; 이하 TNA) 등에서 DBPO에 실리지 않은 문서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영국 외무부의 역사학자들은 DBPO가 단순히 외교문서집이 아니라, 국가 및 민간 소장 기록물과 연구자 및 일반인 사이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2025년 2월)에는 한국근대사 관련 사료를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확인이 가능한 사료를 중심으로 하되,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 보겠습니다. 아울러 본문 내 부록으로 영국 외무부 소속 역사가들의 이야기도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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