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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재 학술상] 정년퇴직을 앞두고 받은 최초의 학술상_도면회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5.02.09 BoardLang.text_hits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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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5년 1월(통권 59호)

[호연재 학술상 수상소감] 
 
 

정년퇴직을 앞두고 받은 최초의 학술상

 


도면회(근대사분과)

 
 
 
연구회 총회를 1주일 앞둔 작년 12월 초순경 노영구 연구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올해부터 시상하는 호연재 학술상의 ‘우수저서’로 선정되었으니 그 다음 주 열릴 연구회 정기총회에 꼭 나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1983년 대학원에 입학하여 한국사 연구를 40년 이상 해왔지만 개인적으로 학술상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지라,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2014년에 출간했던 『한국근대형사재판제도사』로 문화관광체육부가 지정하는 ‘감성도서’ 부문에 선정되고 이번 수상 대상인 『한국인 경제관념의 근대적 기원』으로 세종도서 학술부문 추천도서로 선정된 적은 있었다. 다만, 그 상이 해당 서적의 출판사에 대한 기금 지원 형식으로 지급되었을 뿐, 개인적 시상이 아니었기에 수상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지는 못했던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상은 내게는 40여 년간의 연구 작업 끝에 받은 최초의 개인적 영예였다. 게다가, 본 호연재 학술상이 제정된 이후 최초의 수상이라는 점에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본 상의 기금을 마련해 주신 경인문화사 대표 한정희 선생님께 감사드림은 물론, 학술상 관련 규정과 수상자 선정작업을 해준 당시 부회장 박종린 선생과 연구위원장 한성민 선생, 그리고 각 분과 심사위원분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이번 시상 대상이 된 『한국인 경제관념의 근대적 기원』은 2014년 가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의 한국근현대사총서 편찬 지원 사업에 김윤희(현 한남대 교수), 신용옥(전 내일을여는역사재단 상임이사) 두 박사들과 3부작으로 신청한 <근현대 한국인의 경제적 상상>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로 출발한 책이었다. 나는 1876년부터 1919년까지, 김윤희 박사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신용옥 박사는 1945년부터 2000년대까지 시기를 나누어 집필하였다. 연구작업의 출발은 그해 겨울부터 시작하여 2022년 겨울에 가서야 마무리하고, 3개월 간의 인쇄와 교정 과정을 거쳐 2023년 4월 말에야 출간할 수 있었다.
우리 중 김윤희 박사는 가장 먼저 2018년 말에 『조선인 경제의 탄생과 시장의 탄생』을 출간하였다. 나와 신용옥 박사는 이것저것 다른 일들로 인해 작업을 중단한 시기도 많았으나, 한국학진흥사업단 김도형 선생의 배려와 편달 덕분에 2023년에 각각 『한국인 경제관념의 근대적 기원』과 『분단과 경제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이 기회에 김도형 선생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우리 프로젝트 기획의 핵심적 문제의식은 현재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경제 개념 대부분이 서유럽에서 출발하여 중국과 일본에서의 번역 과정, 일본 식민 통치기의 전파 과정을 거쳐 고정되고 해방 이후 2000년대 초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재차 의미 변용되어 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제적 개념들이 서유럽에서 수입되어 한자어로 번역될 때 중국과 일본에서는 지난한 논쟁을 거친 반면,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서 번역되어 확정된 개념들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내 경우, 서유럽에서 기원한 사회과학 개념의 수용과 변용에 대한 관심은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박사논문 주제 선정의 계기가 된 법원행정처에서의 『법원사』 편찬작업 과정에서 한국의 법학 관련 개념이 거의 모두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유럽의 것임을 절감하였다. 이후 2000년 전후 야마무로 신이치의 『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라는 책을 접하면서 한국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학문 분야의 개념어들 역시 한국인 연구자들의 논쟁이나 고민 속에서 번역된 사례가 거의 없음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우리의 번역어 작업 중 의미있다고 보이는 것은, 최재천 교수가 conciliation이란 용어를 '통섭'으로 번역하는 데 자그마치 6년 이상을 소요한 사례였다.

이 책에서는 경제, 소유권, 무역, 화폐, 은행, 시장, 노동 등 7개 개념을 다루었다. 이들 개념의 용례나 의미 변화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조선왕조실록』에서 나오는 개념들의 용례 등을 비교하고, 기존 연구에서 사용되는 용례들을 비교 분석하는 지리하고 피곤한 작업을 거쳤다. 처음에는 석박사 과정에서 발표한 화폐금융사로 충분하리라 생각하였지만, 개념사 연구는 그러한 작업 성과만 가지고는 도저히 해명할 수 없는 과제였다.

그러기에 현재 출간된 연구 성과는 당초 기획했던 수준의 70%밖에 달성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가지고 있다. 정년퇴직 이후 연구 작업을 계속하여 개정판을 내야겠다는 부담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여력이 있다면, 1910년대 한국인의 범죄 양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일본의 한국 통치가 갖는 식민지근대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싶다. 
다시 한번, 이 같은 큰 상을 안겨준 노영구 회장, 박종린 부회장, 한성민 연구위원장 및 심사위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