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24년 12월 한국역사연구회 총회에서 <호연재 학술상> 우수논문상(신진 부문)을 수상한 현대사 분과의 류기현입니다. 미디어출판위원회로부터 수강 소감 청탁을 받고,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조금 막연했습니다. 연말 수상식에 오른 연예인들처럼 무언가 멋있는 말을 남길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그간 공부하면서 감사를 표해야 할 분들을 죽 나열하고 끝내는 것도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신박하고 기깔난 말씀을 드리기보다는, 소박하게나마 이번에 수상한 논문의 문제의식이나 핵심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공부를 하면서 느낀 소회와 연구자로서 앞으로의 다짐 등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학술상 수상 논문 「유엔의 ‘한국 문제’ 연례 토의의 기원: 1953~1954년 미국·인도의 외교적 경합을 중심으로」는 제3세계가 한반도 냉전의 형성과 전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탐색하는 글입니다. 냉전은 흔히 미국과 소련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동서 대립’의 차원에서 이해되곤 하지만, 동서 대립 뿐만 아니라 북반부의 강대국과 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탈식민 신생국 사이에 전개된 ‘남북 대립’ 또한 냉전의 역사적 성격을 형성한 핵심 요소였습니다. ‘아·아(아시아·아프리카) 블록’, ‘중립국’, ‘신생국’ 등 다양한 이름을 지녔던 제3세계는 자본주의 진영·사회주의 진영의 경쟁이 벌어진 무대요 장(場)인 동시에, 비동맹 노선을 추구하며 미국과 소련의 양극적 대립을 일정하게 이완시킨 냉전의 핵심 주체이기도 했습니다. 저의 글은 1950년대 제3세계의 맹주인 인도가 유엔이라는 국제 기구를 통해 한반도 통일 논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분석함으로써, ‘동서 대립’과 ‘남북 대립’의 결합 속에서 한반도 냉전의 역사적 성격이 형성되는 양상을 실증적으로 드러내 보고자 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언뜻 한국과는 별로 관련이 없었을 것 같은 인도가 사실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약 20여 년간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 통일 문제가 매년 논의되는 단초를 제공한 핵심 주체였음을 발견했습니다. 미국은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이 끝난 직후 분단의 현상 유지를 위해 국제 무대에서 통일 논의를 봉인하려 했지만, 인도는 유엔 총회 무대를 활용해 정치회담의 재개, 남북한 직접 교류 등을 주장하며 미국의 입장에 적극 도전했습니다. 저는 논문을 통해 1950년대 유엔의 통일 문제 논의에서 미국의 ‘주적’은 소련이 아니라 인도였다는, 다소 과감해 보일 수도 있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인도의 이러한 입장이 ‘중립’이라는 신조에 입각한 ‘가치 외교’의 실천이었는지, 국익의 극대화를 위한 현실주의적 차원의 선택이었는지는 여전히 고민스럽고, 이는 후속 연구를 통해 계속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썼지만, 여전히 영글지 못한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연구자들이 실적 압박 때문에 여러 편의 논문을 정신없이 양산하다보니, 논문을 쓰면 저자 본인과 심사 위원 세 명만 읽고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슬픈 농담이 있는데요. 『역사와 현살』의 편집위원 선생님들께서 글을 읽어주시고 상을 통해 격려해 주시니 감사한 마음입니다. 역사 공부를 한다고는 하는데 과연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약간의 의심 섞인(?) 응원을 보내준 가족들에게도 당당하게 꺼내들 수 있는 무기가 생긴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글은 저의 박사논문(「1953~1971년 유엔의 한반도 분단 관리 구조의 형성과 전개」)을 토대로 쓴 글인데, 논문 작성 과정을 세심하게 이끌어 주신 지도 교수님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이 논문은 『역사와 현실』 131호에 현대사분과 군사·외교사연구반 동료들과 함께 특집으로 게재한 글이기도 한데, 함께 공부하고, 먹고, 마시며 지내고 있는 반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현대사 연구의 영역이 확장되다 보니, 신진 연구자들은 다양한 분야로 뻗어 나가고, 저의 주 관심 분야인 분단·통일 문제를 연구하는 역사 연구자들도 예전에 비해서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최근의 계엄 사태에서 ‘종북 세력 척결’이 언급되고, 북한과의 무력 충돌을 계엄에 활용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등장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분단·통일·북한 문제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핵심 화두일 수 밖에 없는 듯합니다. 한반도의 냉전 질서가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며 수명을 연장하는 이 현실을 애통하는 마음으로 사유하고, 누구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며, 말과 글과 실천으로 그 질서의 균열을 추구하는 연구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봅니다. 물론 저 자신도, 그러한 연구자의 대열에 들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