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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패배의 사유를 위해_심희찬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5.03.03 BoardLang.text_hits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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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5년 2월(통권 60호)

[서평] 
 
 

패배의 사유를 위해
- 이시모다 쇼(石母田正), 김현경 옮김, 2024 『일본 중세적 세계의 형성』, AK -

 


심희찬(근대사분과)

 
 
 
광기의 역사서
 
  일본의 대학원에서 역사학 공부를 시작한 이래, 주위 사람들에게 종종 들은 말이 있다. 한 편의 역사학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2년이 필요하다는 것. 자료 조사와 수집에 1년, 수집한 자료를 해석하고 이를 논문으로 구성하는데 1년이 걸린다는 일종의 위협(?)이었다. 어떤 사람은 연구사 정리 1년을 더한 ‘3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특히 역사학은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학문이다. 돌다리를 두들기는 심정으로 몇 가지 단계를 신중히 거쳐야 하며, 다리를 다 건넌 뒤에도 지금 이렇게 건너는 게 맞는지 초조해하기 일쑤다. 논문을 그야말로 무지막지하게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사치스러운 위협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단숨에 글을 써야 할 때도 있다. 자료와 논리의 미로에 갇혀서 두 손 두 발을 다 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처럼 갑자기 글이 술술 써질 때가 있다. 이때 글을 쓰는 것은 나이지만, ‘동시에’ 내가 아니기도 하다. 이것이 칸트가 말하는 ‘자유’다. 자유의지는 자동 꼭두각시 인형에게만 깃들 수 있다. 자유는 자유가 사라지는 곳에서 발생한다.
 
그림1. 이시모다 쇼
 
   1944년 10월, 도쿄(東京) 교외의 작은 집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역사학자가 일본의 고대에서 중세로의 전환을 다루는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훗날 일본의 ‘전후역사학(戰後歷史學)’을 대표하게 될 이시모다 쇼(石母田正, 1912~1986)였다. 당시 일본은 ‘퇴폐’한 파시즘의 세계였다. 일본공산당은 정치적으로 패배했으며, 민중은 천황의 군대라는 이름 아래 아시아 각지를 침략하고 있었다. 얼마 뒤에는 하늘을 메운 미군의 B29 폭격기가 도쿄를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시모다는 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검은 커튼을 치고 촛불에 의지하여 단 한 달 만에 약 30만 자에 이르는 원고를 완성했다. 일본 역사학계의 최고 명저 중 하나라 불리는 『중세적 세계의 형성(中世的世界の形成)』이 탄생한 순간이다. 이 책은 이처럼 죽음의 냄새가 일상을 가득 채운 극단의 상황에서 저술되었다(간행은 패전 이후인 1946년). 이시모다는 퇴폐와 패배를 곱씹으면서 이를 극복할 방안을 역사학적 서술 속에서 찾고자 했다. 그리고 약 80년의 세월이 흘러, 자유가 광기라는 그 본래의 모습과 포개지는 시공간에서 쓰인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번역자의 노력과 출판사의 모험 정신에 경의를 표하면서, 아래에서는 이 책의 내용과 의의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괴물을 낳는 변증법
 
  이 책은 10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이가노쿠니(伊賀國, 현 미에현(三重縣))의 남부에 존재했던 구로다장원(黑田莊園)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시모다는 지역의 작은 장원의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일본 역사의 커다란 흐름은 물론 인간의 삶과 그들이 형성한 세계의 의미를 고찰하려고 한다. 거대한 문제의식만큼 일본 고대사나 중세사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독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그렇지만 구조적으로 복잡한 책은 아니다. 변증법의 도식이 책 전체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이시모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맑스주의 역사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변증법을 바탕으로 구로다장원의 역사를 그린다. 
 
  한편에는 오늘날 사슴 공원과 대불로 유명한 나라(奈良)의 도다이지(東大寺)가 구로다장원의 지배자로 존재하며, 반대편에는 피지배층인 장민이 있다. 도다이지가 대표하는 고대적, 도시적, 귀족적, 율령제적, 천황적, 즉자적 세계가 있고, 여기에 ‘무사단’, ‘악당’으로 대표되는 중세적, 농촌적, 농민적, 무가법적, 개인적, 대자적 세계가 대치한다. 두 세계는 서로 길항을 거듭하는데, 결국 도다이지와 고대적 세계가 모순의 심화 끝에 몰락하고 중세적 세계가 개시되는 과정에 대한 변증법적 묘사가 『일본 중세적 세계의 형성』의 주요한 내용이다.
 
  이시모다는 이 책에서 대립하는 두 요소를 비교하는 서술방식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겹쳐지는 변증법적 발전을 강조한다.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동시’라는 시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것은 ‘바깥’에서 찾아오는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래된 것 안에 이미 포함된 ‘내부’의 타자이기도 하다. 구로다장원을 오랜 시간 지배했던 도다이지의 힘은 그들에 앞서 해당 지역의 맹자로 군림했던 후지와라노 사네토(藤原實遠)와 그의 “영주제가 갖는 내부 구조의 모순”에서 나왔다(98쪽). 도다이지는 농민으로의 발전을 이루고 있었던 사노(寺奴)를 억누르고 그들을 직접적·인격적 지배의 대상으로 두었는데, 그 논리는 “사노의 보유지인 본면전(本免田) 속 논리의 필연적 발전”에 다름 아니었다(178쪽). 
 
  열매는 이미 싹 속에 들어있고, 싹은 이미 씨앗 속에 들어있다. 이것은 하나의 계열을 이루며 서로 분리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고대와 중세는 서로 대항하지만, 중세는 “고대의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그 유산을 계승해야만 성립할 수” 있으며(479쪽), 그렇기에 “중세는 고대에 비해 대립적, 부정적이면서도 고대가 아닌 데서 태어날 수 없다.”(489쪽) 중세는 고대 안에 이미 들어있다. 중세는 고대 안에 있으면서 고대를 능가하는 내부의 타자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과의 대립을 극복·지양하지 못한다. 이시모다에게는—대부분의 선배 역사학자들이 그러했듯이—중국적 질서와는 다른 궤적을 밟았던 일본의 역사를 추출하고 이를 고대 노예제에서 중세 봉건제로의 전환이라는 익숙한 내러티브로 환원시킨다는 선택도 주어져 있었다. 도다이지의 고대적 지배가 관철되는 고립된 구로다장원에서도 중세적 세계의 맹아는 발견된다. 재지에서 성장한 무사단이 이를 상징하는바 그들은 “공동체적 질서의 제약”에 구속되었던 “중국 고대 데스포티즘(despotism)”을 지양함으로써 “비로소 중세로의 길을 개척”했고(327쪽), 나아가 “천황과 그 종자에 지나지 않는 중앙 귀족”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독립성과 총명함”을 획득했다(346쪽). 고대의 문을 닫고 새로운 중세의 시대를 열어젖히는 것이 무사단에게 부과된 역사적 사명이었다.
 
  하지만 이시모다의 붓은 그러한 방향으로는 나아가지 않았다. 창밖으로 폭탄이 비처럼 떨어지는 현실의 무게는 녹록지 않았고, 변증법의 틈에 갇힌 그는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했다. 부패하고 타락한 고대적 질서에서 태어난 중세는 이러한 고대의 퇴폐 또한 자신의 고유한 속성으로서 공유해야만 했다. 구로다장원에서 발생한 무사단은, 그들이 바로 구로다장원에서 발생했다는 그 이유로 인해 도다이지와 고대적 세계의 퇴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장민은 통치자의 퇴폐를 많든 적든 나누어 가져야” 하며 “장민은 그 퇴폐를 그들의 정치적 패배의 결과로서, 즉 유산으로서” 짊어지기 때문이다(418쪽). 정치는 패배했다. 그리고 일본 역사의 변증법적 진행은 어미의 배를 찢고 튀어나오는 에일리언이라는 괴물을 낳았다.
 
 
빈사 상태에 놓인 거대한 고대의 괴물에 기생하여
그 썩은 고기를 먹으며 성장해 간
야마토국의 무수한 버러지들이 이제는
그 몸속에서 생생하게 해방되어 간다.(453쪽)
 
 
  퇴폐의 변증법. 그 귀결은 ‘구로다악당(黑田惡黨)’이었다. 중세적 세계를 상징하는 재지 무사단에 뿌리를 가지는 구로다악당은 도다이지가 체현하는 고대적 세계와 정면에서 충돌했다. 고대적 질서를 고집하다가 스스로 썩어버린 도다이지에는 악당을 제압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구로다악당은 퇴폐와 황폐를 거듭하는 도다이지의 지배에 대해 농민이나 피압박민을 대표하여 대립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장민을 저항 운동의 주체로 조직하기는커녕, 도적으로 돌변하여 농민의 가옥에 불을 지르거나 무의미한 살인을 저질렀다. “한 사람의 인간이 퇴폐하는 현상은 그 인간이 연결된 세계의 퇴폐를 표현”하듯이(564쪽), 구로다악당은 퇴폐한 고대적 세계가 잉태한 괴물에 불과했다.
 
 
다시 변증법의 틈 속으로
 
  구로다 악당은 중세를 열어젖힌다는 자신들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사멸했다. “구로다 악당은 결코 도다이지 때문에 패배한 것이 아니다. 도다이지는 자기 힘으로는 악당에게 손끝 하나도 댈 수 없었다. (중략) 구로다 악당은 자기 자신에게 패배한 것이다.”(610-611쪽) 그리고 구로다장원에는 이미 수명이 끝난 고대가 마치 악령처럼 귀환한다.
 
  『일본 중세적 세계의 형성』의 이러한 내용은 당대 일본에 대한 강력한 알레고리였다. 고립된 산간에서 고대적 지배를 유지하는 구로다장원의 모습은 일본의 역사 전체를 상징한다. “촌락 생활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온 새로운 질서가 부정되고”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의 어둠이 오랜 시대에 걸쳐 뒤덮고 있는 때에는, 그것은 그 세계 주민의 마음도 잠식”하게 된다(567쪽). 일본은 천황제와 파시즘에 잠식되었다. “도다이지가 장민을 사노로 생각하는 것은 지장이 없지만, 장민이 스스로를 도다이지의 사노라고 느끼게 되면” “정신적 황폐함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569쪽). 스스로를 천황의 신민이라고 여기는 한 일본인들은 “자기 자신에게 패배”할 것이다. “자자손손 동일한 토지에서 동일한 지배자를 받들고, 동일한 신불에 예배하는 경우, 수세기는 수십 년과 같은 것이다. 지자무라이(地侍)가 악당이 되기를 그만두고, 장민이 스스로를 사가(寺家)의 지배를 받는 토민이라고 생각하기를 그만두지 않는 한, 고대는 몇 번이고 부활한다.”(611쪽)
 
  이 책은 제목과 달리 변증법적 역사발전의 결실이어야 할 ‘중세적 세계의 형성’이 “차질과 패배”(612쪽) 앞에 좌절하는 과정을 그린다. 달라질 내일이라는 달콤한 꿈을 꿀 수 있는 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반면 패배 속에서 사유를 전개하는 이시모다에게 내일은 퇴폐한 오늘이다. 상술한 것처럼 『일본 중세적 세계의 형성』은 전시 중에 집필되었는데, 패전 이후 이시모다는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내용에 변경을 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변증법의 틈, 혹은 오래된 세계와 새로운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이윽고 일본의 독특한 시대구분인 ‘전후(戰後)’가 시작되고, 맑스주의자들이 주도했던 전후역사학이 학계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그 기수 중 한 명이었던 이시모다는 오래된 것은 붕괴했지만 새로운 것은 미처 도래하지 못한 전후의 시공간에서 재개된 정치적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인민의 투쟁”을 패배로 그려서는 안 된다는 『일본 중세적 세계의 형성』에 대한 일차적이고 단선적인 비판을 “나 자신의 역사인식의 미숙함”으로 받아들였다(9쪽). 인민이 승리할 내일, 이는 변증법의 틈바구니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이시모다는 일본공산당의 분열 과정에서 무장투쟁에 의한 폭력혁명을 추진했던 소감파(所感派)를 지지했다. 소감파는 ‘산촌공작대’, ‘중핵자위대’ 같은 무장 조직을 만들어 파출소를 습격하거나 여기저기에 화염병을 던졌다. 이시모다는 그 일환으로 ‘국민적 역사학 운동’을 전개했으며, 의식 강화를 위한 노동자와 농민의 서클을 조직했다. 역사학을 거점으로 강철의 법칙에 따르는 혁명 주체로서의 인민을 창출하기. 언어에 관한 스탈린의 논문을 읽고 ‘민족’을 재해석한 이시모다는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의 혁명 방식, 즉 이른바 ‘근거지론’을 일본에 도입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전후역사학은 훗날 민족 중심의 일국사, 교조화된 이론의 기계적 적용이라는 엄혹한 평가를 받게 되었고, 이시모다 역시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무사단과 악당, 아니 이시모다와 전후역사학은 또다시 패배했다. 이시모다는 자신이 쓴 『일본 중세적 세계의 형성』을 스스로 반복했다.
 
  그리고 이 패배는 지금 여기 한국의 현실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 퇴폐의 변증법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시모다는 우리에게 무거운 물음을 던진다. 어쩌면 우리는 이시모다에 대한 ‘사후적’인 비판들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그가 고뇌를 거듭했던 변증법의 틈을 다시 불러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또 다른 에일리언을 낳게 되더라도 말이다. 저자인 이시모다를 거슬러 이시모다를 다시 읽기, 혹은 이시모다가 패배한 지점에서 더 나은 방식으로 패배하기. 시대착오적 망념, 또는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손쉬운 단정에 타협하지 말고, 모든 소를 검게 만드는 “세계의 어둠”에 대해 처절한 투쟁을 벌였던 이시모다와 전후역사학의 패배를 우리 자신의 패배로서 변증법적으로 전유해야 한다. 우리는—그리고 이시모다 본인조차도—아직 이 책에 새겨져 있는 패배의 사유를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다. 안이한 주장과 경박한 예측 대신 변증법의 틈 속으로 과감히 진입하여 그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고통에 나를 던질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자유’를 향하는 유일한 윤리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전쟁통에 이시모다로 하여금 역사서를 쓰게 만들었던 그 자유를 우리는 공유할 수 있을까? 『일본 중세적 세계의 형성』의 번역을 진심으로 반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