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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한국을 뒤흔들었던 '역사 왜곡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 되돌아보기_기경량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5.03.03 BoardLang.text_hits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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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5년 2월(통권 60호)

[미디어 비평] 
 
 

한국을 뒤흔들었던 '역사 왜곡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 되돌아보기
 

 


기경량(고대사분과)

 
 
 
  2021년 초 한국 사회는 SBS에서 방영된 「조선구마사」라는 드라마로 인하여 큰 몸살을 앓았다. 해당 드라마는 ‘역사 왜곡’의 혐의를 받으며 비난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슈의 파괴력이 가히 폭발적이어서, 인터넷 언론 기사와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는 「조선구마사」를 주제로 한 게시물로 뒤덮이다시피 하였다. 결국 「조선구마사」는 방영 2회 만에 여론의 뭇매를 이기지 못하고 조기 종영이 결정되는 한국 방송 사상 초유의 일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특정 이슈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앞다투어 한 마디씩 의견을 보태고 있던 비상한 상황임에도 역사학계는 침묵하였다. 논란의 핵심이 ‘역사 왜곡’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유관 분야인 역사학계가 끝까지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당시 여론이 쉽사리 입을 열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격하고 폭력적인 양상을 띠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학계가 이 일을 그저 ‘남의 일’로 간주하였던 측면도 지적할 수 있다. 역사학계가 평소 역사 창작물 전반에 대해 품고 있던 불만과 반감, 혹은 냉소적 시각 또한 방관의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모습은 상황이 종식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해당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과 연구는 주로 미디어 분야나 콘텐츠 분야에서 수행되었다. 최근 역사 분야에서 학문 범주 바깥의 공공역사에 주목하고 외연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조선구마사」 사태에 대한 역사학계의 소극적이고 방관적인 태도는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이 글에서는 다소 시간이 지나기는 하였지만, 한국 방송사에서 이례적이고 충격적이었던 사건으로 기억될 「조선구마사」 사태를 되짚어 보고 역사 창작물을 대하는 역사학계의 시각과 태도에 대해서도 약간의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그림 1.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포스터
출처: SBS
 
 
「조선구마사」 사태의 전개와 반중 감정

  「조선구마사」는 2021년 3월 22일과 23일에 방영되었던 SBS 방송국의 월화 드라마이다. 본래 16부작 드라마로 기획되었고, 엑소시즘 판타지 사극을 표방하며 총 180~320억 원으로 추정되는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국내 드라마치고는 대형 프로젝트로서, 2019년과 2020년에 넷플릭스에서 제작해 방영한 드라마 「킹덤」의 국제적인 성공에 자극받아 기획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작품 간에는 세부적인 차이가 있지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조선의 왕자가 감염 형태로 증식하는 좀비 비슷한 초자연적 존재와 대결을 벌인다는 점에서 설정상의 유사성이 있다.

  3월 22일 「조선구마사」 제1화가 방영된 직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역사 왜곡 문제가 지적되며 비판이 시작되었다. 네티즌들은 방송사·방송통신심의위원회·청와대 국민청원에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광고사·제작지원사·협찬사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불매 운동을 벌이며 압박을 가하였다. 그 결과 불과 수일 만에 모든 광고와 제작 지원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방송사인 SBS는 이미 전체 분량의 80% 정도 촬영이 이루어진 상태였음에도 「조선구마사」의 조기 종영을 전격적으로 발표하였다.

  우리나라 방송 역사상 정치적 외압 등의 요인으로 조기 종영된 역사 드라마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구마사」는 맥락적으로 특별한 면이 있었다고 지적된다. 정부 권력이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가 주도하여 압력을 행사하였고, 반중 정서와 감정 민족주의가 투사되어 드라마에 대한 평가와 해석의 프레임을 만들었으며, 인물 미화가 아니라 인물 폄훼가 비판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조선구마사」 방송 중단 운동을 적극적으로 선도하였던 것이 ‘더쿠’와 ‘여성시대’ 등 여성 중심 커뮤니티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신정원·오예주·홍석경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인터넷 여론은 여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먼저 문제 제기가 이루어진 다음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남성 중심 커뮤니티로 의제가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네티즌은 방송 중단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 ‘총공’,1) 트럭 시위, 광고주 불매 운동 등을 집중적으로 펼쳤는데, 이는 여성 중심 커뮤니티가 케이팝 팬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획한 것이었다. 당시 운동의 주체는 소비자로서의 권력을 이용해 「조선구마사」의 제작을 지원하는 업체들을 불매 운동으로 위협하였고, 이러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케이팝 팬덤의 운동 문화와 만나 짧은 시간 안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2)

  「조선구마사」 방송 중단 운동의 핵심 명분은 ‘역사 왜곡’이었다. 네티즌에 의해 지적된 사항은 매우 많은데, 이러한 지적들은 대부분 유치하고 억지스러운 수준의 트집이거나, 드라마 제작에 중국의 입김이 들어갔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기반한 음모론이거나, 기존 역사극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단순한 고증 오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처럼 사건이 커지게 된 본질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콘텐츠 외적인 상황이 훨씬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 핵심은 반중 정서이다.
 
  한국인들은 2004~2005년 무렵 중국이 진행한 동북공정과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를 중심으로 발생한 역사 갈등으로 감정이 크게 상한 바 있다. 2016년에는 한국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를 설치한 후, 중국이 보복 차원에서 시행한 한한령(限韓令)으로 한국 경제와 산업에 유의미한 타격이 발생하였다. 이에 반중 정서는 더욱 크게 상승하였다. 여기에 더해 드라마 제작사들이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아 만든 한국 콘텐츠에 중국 제품 PPL을 넣는 사례가 이어지며, 중국에 대한 한국의 콘텐츠 소비자들의 반감이 심화된 상황이었다. 이처럼 중국에 대한 적대감과 악감정이 장기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여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위태로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조선구마사」 사태가 터진 것이다.
 
 
그림 2. 「납작 엎드린 조선구마사 출연진·PD·작가…폐지 여진」
출처: 『국민일보』, 2021년 3월 27일
 
  중요한 것은 「조선구마사」 사태의 본질이 ‘반중 감정’ 내지 ‘혐중 감정’의 표출이었다 하더라도, 당시 대중은 어디까지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이라는 행동 명분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비록 제시된 근거들이 실제로는 ‘역사 왜곡’이라 규정하기 어려운 조악한 수준의 것들이었음에도, 다수 대중은 그 정당성을 믿고 공감하였기에 작품 제작에 참여한 이들을 응징하고 그들의 반성과 사과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에 가까운 행위에 기꺼이 동참하였다. 역사가 인터넷 폭력의 흉기로 활용된 것이다.
 
 
「조선구마사」 사태의 전조 「철인왕후」
 
  「조선구마사」 사태 때 인터넷상에는 작가인 박계옥이 조선족이라는 소문, 그가 소속된 회사 대표가 중국인민일보 간부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하였다. 물론 이는 근거 없는 루머였다. 하지만 「조선구마사」에 중국 자본의 영향력이라는 부정적이고 음습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렇기에 「조선구마사」 사태의 발생 원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 「조선구마사」가 방영을 하기 불과 한 달 전에 종영된 박계옥의 전작 「철인왕후」이다.
 
  「철인왕후」는 2020년 1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방영된 tvN의 20부작 드라마이다. 남성인 현대의 청와대 요리사가 타임 슬립하여 조선시대 철종의 왕비인 철인왕후의 몸에 빙의하였다는 설정의 작품이다. 타임 슬립과 주인공의 성별 전환이라는 점에서 판타지 코믹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요즘 웹소설 등에서 유행하는 ‘빙의물’로서의 성격도 지닌다. 현대인이 과거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의 몸에 빙의하여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대체 역사물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철인왕후」은 닐슨코리아 기준 최고시청률이 17.4%에 달하여 비교적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주목할 점은 「철인왕후」가 2015년 방영된 「태자비승직기(太子妃升職記)」라는 중국 웹드라마의 리메이크작이라는 것이다. 드라마 「태자비승직기」 역시 원작 소설이 따로 있는데, 해당 소설의 중국인 작가가 과거 자기 작품 속에서 고려인을 ‘빵즈’라고 지칭하는 등 한국을 비하하는 표현을 쓴 경력이 있다고 하여 논란이 된 바 있다.
 
  「철인왕후」는 2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주색으로 유명한 왕의 실체가……. 『조선왕조실록』, 한낱 지라시네. 괜히 쫄았어”라는 주인공의 대사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해당 대사는 본래 남성이지만 여성의 몸에 빙의한 주인공이 왕과의 잠자리를 피하고자 이리저리 애를 쓰다가 정작 왕이 그냥 잠들어버리자 허탈해하며 내뱉는 대사로, 흔한 코미디적 장치에 불과하다. 역사적 사실성 문제와 무관하게 극의 맥락상 문제될 것이 없는 대사이다. 그럼에도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폄훼 논란에 휩싸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인 권고 처분을 받았다. 역사에 대한 우리나라의 지나친 엄숙주의와 경직된 관념을 보여 주는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철인왕후」 단계에서 이미 「조선구마사」 사태의 특징인 ‘중국·혐한·역사왜곡’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들이 투영되고 있었다. 「철인왕후」를 공격하였던 이들의 행동 기저에는 대중문화 창작물의 수준이 한국보다 한참 뒤떨어졌다고 얕잡아보는 중국의 드라마를 굳이 한국 방송국이 가져와 리메이크했다는 점에 대한 자존심 문제와 불쾌감이 작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철인왕후」의 경우 비교적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비현실적인 코미디물이라는 점과 작품 자체의 대중적 인기로 인해 문제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불편한 감정을 지니고 있던 일단의 사람들은 작가인 박계옥을 주시하였고, 「철인왕후」가 종영되고 나서 불과 한 달 후에 방영을 시작한 박계옥의 신작 「조선구마사」에 ‘중국·혐한·역사왜곡’이라는 「철인왕후」의 기존 공격 소재를 덧씌워 첫 방영부터 적극적인 비난과 여론몰이를 시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조선구마사」 사태는 그 자체로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철인왕후」에서 시작된 갈등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사건인 것이다.
 
 
그림 3. TVN 드라마 철인왕후 포스터
출처: TVN

 
 
「조선구마사」 사태의 재점화 「설강화」 

  「조선구마사」 사태 이후 드라마의 ‘역사 왜곡’ 논란을 다시 한번 점화한 것이 「설강화」이다. 「설강화」는 JTBC에서 2021년 12월 18일부터 2022년 1월 30일까지 16부작으로 방영한 드라마이다. 시대 배경은 1987년으로 어느 여자대학교 기숙사에 안기부 요원들에게 쫓겨 숨어들어온 남파 간첩과 이를 운동권 학생으로 오인해 숨겨 주게 된 여자 주인공의 사랑을 다룬 멜로물이다.
 
그림 4. JTBC 드라마 설강화 포스터
출처: JTBC
 
  「설강화」는 방영도 되기 전부터 공개된 시놉시스만으로 이미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핵심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간첩으로 폄훼하고 안기부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논란은 방영이 시작된 직후에 절정에 이르렀다. 작품의 시대 배경이 현대인 관계로 정치적인 문제까지 더해졌다.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자 당시 정의당의 대선 후보였던 심상정은 트위터를 통해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 겸허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설강화」를 비판하였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와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도 "역사적으로 너무 무책임하고 명백한 왜곡 의도를 지닌 드라마", "당시 청춘을 바친 시민들에 대한 모욕 행위"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지나친 면이 있었다. 비판의 핵심이었던 ‘운동권 학생이 간첩’이라는 설정부터 사실과는 달랐다. 실제 드라마는 안기부 요원들에게 총을 맞고 쫓기다가 우연히 여자대학교 기숙사에 들어온 북한 간첩을 여자 주인공이 운동권 학생인 줄 ‘착각해’ 도와주고, 결국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전개였다. 운동권 학생을 비웃거나 폄훼하는 기조도 딱히 보이지 않으며, 안기부에 대해서도 특별히 미화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강화」를 둘러싼 과열된 여론은 「조선구마사」 사태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조선구마사」 사태의 전말을 지켜본 바 있는 JTBC는 여론에 굴복하지 않고 방송을 강행하였다. 드라마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논란도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고, 결국 무사히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다만 방영 초의 화제성에 비해 최고시청률은 3.9%에 불과할 정도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였다. 「설강화」는 글로벌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에 판매되어 외국에서도 한국과 거의 동시에 시청이 가능하였는데, 정작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선전하였다.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과열된 ‘역사 왜곡’ 논란이 국내 시청자들에게 특별히 부정적인 선입견을 주어 시청률에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구마사」와 「설강화」는 모두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조선구마사」는 2회 만에 조기 종영되는 처참한 결과에 이른 반면, 「설강화」는 일정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무사히 종영을 하여 어느 정도 명예 회복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조선구마사」의 경우 ‘반중 정서’라는 폭발적 재료에 의해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휩쓸려 나간 데 반해, 「설강화」는 ‘역사 왜곡’ 사안의 타당성에 대해 어느 정도 논쟁의 경합이 가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쉬운 것은 「설강화」는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온전한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데 반해, 「조선구마사」는 극초반부만 방영이 된 미완성작으로 남아 작품의 의도와 연출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해져 버렸다는 점이다. 「조선구마사」는 심지어 SBS 방송국 홈페이지에서도 모든 정보가 삭제되는 ‘기록말살형’에 처해져, 기방영된 1화와 2화 방영분조차 구해보기 힘든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역사 창작물과 ‘역사 왜곡’
 
  역사 창작물에서 ‘역사 왜곡’ 이슈가 얼마나 폭발성을 가질 수 있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확인하였다. 해당 이슈를 정리하면서 느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역사 왜곡’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 왜곡’은 사적 이익, 혹은 정치·이데올로기적 목적성을 가지고 명백한 역사적 사실과 평가를 부정하거나 부당하게 뒤트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변형적 활용이 부득이한 역사 창작물에 ‘역사 왜곡’이라는 딱지를 무분별하게 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심지어 단순한 고증 오류조차 ‘역사 왜곡’이라고 몰아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역사 왜곡’이라는 개념과 규정의 무게감과 효용성을 오히려 감쇄시키는 행위이다. 따라서 역사 창작물에서 예술적 목적을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기능적으로 개변하는 것은 ‘역사 변용(變容)’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조선구마사」 사태를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는 역사 드라마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지금은 ‘역사 왜곡’을 빌미로 창작물을 공격하는 모습은 한풀 꺾였고, 비교적 정상적으로 역사 드라마와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조선구마사」 같은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조선구마사」에 대한 학계의 일반적 평가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반중 정서’ 내지 ‘혐중 정서’가 폭력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폭력의 주체였던 대중에게 그러한 시각 교정과 자기 반성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에게 「조선구마사」 사태는 중국 자본의 침입과 역사 왜곡을 행동하는 다중의 힘으로 응징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역사학계가 모든 책임을 질 필요는 없겠지만, 제때 적절한 역할을 하지 못한 후과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남용되고 있는 ‘역사 왜곡’이라는 표현은 역사 창작물의 자율성과 상상력을 제한하는 재갈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지나치게 신성시하거나 엄숙하게 대하는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역사 창작물은 본질적으로 역사학이 아닌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 필자 역시 충실한 역사 재현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역사의식이 반영된 역사 창작물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작자의 역사 변용에 너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은 곤란하다. 역사학계는 창작물에서의 역사 변용을 비난하거나 교정하려 하기보다는 창작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권리를 인정하고, 역사학계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새로운 지식 상품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아울러 역사학계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연구 성과와 최신의 문제의식이 역사 창작물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반영될 수 있도록 창작자들과 상호 교류의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기경량, 2025 「역사 창작물의 왜곡 논란과 역사학의 역할 :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문학연구』 62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일부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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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이해관계자들에게 전화·메일·팩스·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집중적으로 항의하는 것으로, 케이팝 팬덤의 운동 방식 중 하나이다. 「조선구마사」 방송 중단 운동 당시 일반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하여 관계자나 기관의 연락처에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총공’의 매뉴얼이 제작되어 온라인상에서 공유되었다.
2) 신정원·오예주·홍석경, 2022 「여성 주체와 온라인 민족주의: 「조선구마사」 방송 중단 운동을 중심으로」 『언론정보연구』 59-3, 212-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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